Double Stack Icecream Hein
[라비] 밀짚꽃편지
TRPG PlayLog

 

Kpc.라이아나 | Pc. 바스타르 | Written By. 전복의 시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울어도 나는 좋아요.

당신이 울고, 뒤이어 웃을 수만 있다면.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울어도 나는 좋아요.당신이 울고, 뒤이어 웃을 수만 있다면.
 
Call Of Cthulhu FanMade ScenarioWritten by. 전복의 시
 
 
KPC 라이아나 | PC 바스타르
 
Date 2023.11.17
 
 
 
 
도입
 
1일차
 
그날, 당신은 분명 그의 손에 죽으려 했습니다.
 
...
 
하지만 잘 되지는 않았나 봅니다.
 
2일차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 펜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꺼풀을 가물가물 꿈벅이면 어둠의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빛이 흔들립니다.
 
마치 촛불처럼요.
 
촛불처럼 흔들리는… …
 
라이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라이아나:...조금 더 쉬어도 괜찮아.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펜 소리.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가 무언갈 쓰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더 자세히 묻기엔 너무나 졸려와요. 몸은 물 속에 잠긴 듯이 무겁습니다.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몸.
 
곧장 기운을 차리기엔 힘도 시간도, 그리고 마음도 부족합니다.
 
삶은 늦게, 천천히 올 수록 좋습니다.
 
좀 더 자고 일어나도록 해요.
 
아, 빗소리는 멀어지고……
 
 
 
3일차
 
느닷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간은 절대적인 간격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쌍둥이 중 하나가 바다에 살고 하나는 산에 산다면,
 
둘의 나이는 수학적으로 아주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우리가 긴 꿈을 꿀 때면, 뇌는 실제로 시간의 흐름을 보다 길게 인지한다는 사실은요?
 
있는 힘껏 달리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흐른답니다.
 
로켓을 타고 멀리 우주 너머로 떠난 자가 딱 4년 후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연인이 호호백발이 된 채 정거장에 서 있었다는 공상과학 이야기를 아시나요?
 
…이런 얘기를 갑자기 왜 하냐고요?
 
그야… 바스타르, 당신이 거의 이틀을 내리 잠만 자고 있기 때문이겠죠.
 
꿈도 꾸지 않고 가만한 당신에게는 이 세계가 한없이 느리겠지만,
 
곁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라이아나는 당신보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고 느낀답니다.
 
온 세월이 다 무색할 정도로.
 
이제 일어나는 게 좋겠다는 말이에요.
 
벌써 아침이잖아요.
 
 
 
 
무거운 눈을 뜨자 창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토록 좋은 날이라서 이만 일어나야지 싶기도 하지만,
 
이토록 좋은 날이기 때문에 좀 더 자고 싶기도 해요.
 
삶과 죽음이 그랬듯이. 당신을 잠식했던 감각이 그러했듯이.
 
…보아하니 라이아나가 계획한 ‘마지막’이 잘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묘한 이질감 때문일까요?
 
이렇게 좋은 날에,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애써 그 때를 상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탈할 정도로 성큼 멀어진 감각을 되새기다 보니…
 
가만. 곁에 라이아나가 없네요.
 
잠결이지만 분명 계속 곁에 있어줬다는 걸 느꼈는데 말이에요.
어딜 간 걸까? 잠시 침실을 나가볼까요?
 
바스타르:...라이아나..? (보여야 할 것 같은 이가 보이지 않는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곤 침실 밖으로 나갑니다)
 
침실을 나섰지만 라이아나의 모습은 곧장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의 기척을 느꼈는데…
 
아리송해 할 찰나,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외시경으로 살펴보니 우체국 집배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밖에 서 있네요.
 
확실히 우편물이 배송될 시간이긴 하지만…
 
별달리 주문한 것도 없고, 이곳은 여관인데….
 
누가 무엇을 보낸 걸까요?
 
바스타르:...올 것이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의문을 품으며 문을 살짝 열어봅니다)
(라이아나는 어디로 가고...)
 
의문감과 함께 문을 열었더니, 앞에 서 있는 집배원-당연하게도 괴물-은
 
집배원: 바스타르씨 맞나요?
 
하고 묻습니다.
 
바스타르:아, ...맞습니다.
 
집배원: 여기, 바스타르씨 앞으로 보내진 편지입니다.
 
집배원은 작고 반듯한 편지봉투 한장을 건네주고 금세 돌아갑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모양입니다.
 
대체 누굴까요?
 
바스타르:편지 같은 걸 보낼 사람이 있었던가. ...지금은 이런 편지가 중요한 게 아닌데.....(한숨을 쉬며 편지를 확인해봅니다)
 
봉투를 열어보면… 정갈한 글씨로 쓰여진 편지 한 통이 자리합니다.
 
바스타르:...
라이아나...(...) 알겠어. 알겠으니까...라이아나, 거기 있어? 이런 편지를, 보내도...(횡설수설...혼잣말을 하며 다시 문을 닫고 여관 안으로 들어가 애타게 라이아나를 부릅니다. 애정하는 그 사람을...)
 
어디서 나온 건지, 가볍게 열린 문을 툭툭, 두드립니다.
 
라이아나:있어. …진짜 부끄러워서 안 나온 거니까. (괜히 시선 한 바퀴 굴리고는 다시 시선을 맞춘다.)
 
바스타르:아, ...그래. 진짜로 있었구나...(꽤 마음을 졸였는지 대뜸 손을 잡았다가 살짝 놓아주곤 편지를 펄럭인다.) ...이거, 뭐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라이아나:아니 그니까. 편지 제대로 안 읽었어? (네 입을 턱, 양 손으로 막는다.) ...얘기하지 말라고. 그냥, 입으로 얘기하긴 민망한데 얘기는 하고 싶어서 적은 거니까…. 아무튼, 잘 잤어?
 
바스타르:...너는 안 보이고, 대뜸 이런 편지가 오니까 어쩔 수 없잖아. (민망하다는 말에는 뒷목을 긁적이지만 그래도 안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 살면서 가장 오래 잔 것 같기도 하네. 네가 계속 곁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
 
라이아나: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지만... (잠깐 입을 달싹이다가 눈 한 번 깜박이곤...) 옆에 있었던 거 맞으니까. 잘 잤다면 다행이고... (몇 발자국 움직여 서랍을 뒤적거린다. 머그컵 두 개를 꺼내고,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나는 커피 마실 건데, 너도 뭐라도 마실래?
 
바스타르:(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지금은 물을 수 없는 것이 더 많음을 느낀다. 어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를 바라보는 당신을 향해 조금 다가가곤) 우유가 있다면 그쪽으로. ...커피 많이 마시면 밤에 잠 못 잔다, 라이아나.(농조)
 
라이아나:(묻고 싶은 걸 삼키는 게 눈에 보여 다행이라는 듯 시선을 돌린다. 스틱을 꺼내고, 물을 끓이고, 붓고... 행동이 익숙하고 깔끔하다.) 이미 많이 못 잤네요. 피곤해서 잠 깨려고 마시는 거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가볍게 답하고는 우유를 살짝 데워서 건네준다.) 여기.
 
얘기를 듣던 중 문득 라이아나를 보니 얼굴에 피로가 만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스타르:...라이아나, 괜찮은 거 맞아? 너...(...)
 
라이아나:…괜찮다니까. (시선 허공으로 돌린다.)
 
바스타르:...아니. 커피를 마실 때가 아닌 것 같아. 얼마나 못 잔거야? 밤이라도 샌 건가?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살핀다... 꽤 걱정이 서려있는 듯한 표정으로.)
 
라이아나:그치만 시간 아깝잖아, 네가 일어났는데… 아예 밤 샌 건 아니긴 한데… ( …이틀…? 이어지는 질문에 얼버무리듯 얘기한다.) 아니, 근데 진짜, 괜찮다니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바스타르:...이틀, 이라고..? (그럼 내가 이틀을 잠만 잤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기다려주었다는 사실에는 기쁜 마음이 생기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라이아나의 이마에 살짝 손을 댄다. 체온이라도 재보려는 듯...) ...넌 사람이야. 그 정도 쉬지 못하면 없던 병도 생기겠지.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라이아나:...응. (이마에 닿는 손의 온도, 대보아도 늘 그렇듯 네가 조금 더 따뜻하고 내가 조금 찰 뿐이지. 눈을 느릿하게 내려감는다.) …조금 피곤한 것 뿐이지 멀쩡해, 진짜. 몸 아픈 곳도 없고, 너 잘 때 밥도 챙겨먹었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난 내 상태보다는 네 상태가 더 걱정이니까.
 
라이아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 연신 괜찮다며 당신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정말 누가 봐도, 한 눈에 봐도!
 
이 사람은 잠을 자야한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파리한 라이아나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기어다니는 갓난아기도 걱정스럽게 자기 담요를 내밀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라이아나:…대신 오늘 저녁에는 일찍 잘게. 그걸로 봐줘. 낮부터 잠들기에는 오늘 청소도 해야되고… 설거지랑 빨래랑... (줄줄 읊는다. 아무튼, 별로 잘 생각은 없다는 듯이. 일단 여긴 우리가 산 집이 아니니까...)
 
바스타르:...하여간. (한숨 푹...이내 멋대로 침실로 데려가려고 하는 듯,) 뭐가 문제인가 했는데. 그런 건 내가 하면 되니까 너는 조금이라도 자둬. ...부탁이니까. ... ...아니, 부탁이야.
 
라이아나:아니, 안 잘 거라니까...! (잠깐 당황한 듯 네 팔을 먼저 붙잡는다.) 지금 자면 어차피 밤에 못자잖아... 그냥 너랑 얘기하면서 시간이나 보내고 싶다고. …네가 불편한 거라면 어쩔 수는 없지만. (말꼬리 흐리면서 뒷머리 만지작거린다.)
 
바스타르:잠깐, 라이아나..! (먼저 붙잡은 팔을 보며 곤란한 듯 눈썹이 꿈틀거린다.) ...집안일 같은 건 내가 하면 되니까, 그동안이라도 쉬면 좋잖아. ...그렇게 해도 꼬박 이틀을 새었으니 잠을 못 잘 것 같지도 않고. (잠시 가만 고민하더니 조금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라이아나, 조금 실례해도 되나?
 
라이아나:그러니까… 내가 일은 안 해도, 잠은 밤에 자도 괜찮잖아. 지금은 자기보다 그냥, 소소하게 대화나 하고 싶은 거라니까... (...물론 못 잘 것 같은 건 아니지만, 아침부터 자면 언제 일어날 지도 모르고, 오래 자면 그만큼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원인은 모두 제게 있다고는 하나, 모처럼 둘이 깨어있는 시간인데.) …뭐 하려고?
 
바스타르:...그런 안색으로 말이지. 내가 너무 오래 자버린 탓도 있지만, 그래도 무슨 시간에 쫓겨서 잠을 자는 시간도 아끼려 해. 그런 건 천천히 하면 되잖아. (그만큼 기다려주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뒷말은 멋대로 허락처럼 받아들여 라이아나를 안아 든다. 그래도 성인 남성 만큼의 힘은 있는 건지...아주 제멋대로지만.) ...침실로 연행.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지만, 역시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네가 이해해.
 
라이아나:…네가 방금 일어났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일어나는 거 보려고 밤 샌 거긴 한데, 일어나는 거 봤다고 이대로 바로 자면...! (그냥 평범하게 시간 보내보고 싶었다고. ...상황이 바뀐 건 알고 있다. 자신은 결국 네게 죽음을 선물하려고 했고, 그로 인해 네가 깊은 잠에 계속 빠져있게 되었다는 것. 불편해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냥, 네가 일어났을 때도 가능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잠들려고 했는데.) 아니, 잠깐…!! (놀란 건지 반사적으로 목에 팔을 두른다.) 이해한다며!!! (다 망했어.)
 
바스타르:...뭐 어때. 내가 일어날 때까지 네가 내 곁을 지켜주었으니, 이젠 네가 일어날 때까지 내가 곁에 있으면 되잖아. 나머지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고. ...오지랖 넓은 것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어떤 인간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편지에 적은 내용만 보아도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당장 다른 분위기로 맞이하는 이 순간 순간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너에게 죽어도 괜찮다 할 만큼,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니. 아주아주 사소한 것이라 해도 같은 반응을 하게 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일부터 해도 늦지 않으니까.) ...아하하-. 이런 모습은 또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래, 이해해. 하지만 이해와 행동은 다르잖아, 그렇지? (안 들린다는 듯 저벅저벅 침실로 간다...)
 
라이아나: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 같긴 했지만… 하아, 진짜. 이런 면에서는 왜 한 번도 져주지를 않아, 너는. 다른 건 쉽게 져줘놓고. (알고 있다. 바스타르가 어떤 인간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가끔 어떻게 행동할 지도 종종 예상될 만큼 투명하니까. 가족이라는 얄팍한 단어 안에 너무 큰 울타리가 자리해서, 그 안에 있는 한 네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은 변하지를 않겠지. 나는 영원히 이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거고. ...너의 맹목이, 나는 여전히 두려워, 비타.) 웃는 거 봐. 재밌어? (짧게 이마를 손으로 꾹 누른다.) …하나도 이해 안 해주는 것 같은데. 언행 불일치잖아.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린다. 안겨있는 마당에 몸부림이라도 쳐? 라는 생각도 잠시, 잘못하면 둘 다 다칠 것 같으니 계속 꿍얼댈 뿐이다.) …많이는 안 잘래.
 
바스타르:...너도 한결같네. 어떤 답을 할지 알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이런 것도 져주기를 원해? 아쉽게 되었어. 난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만 져주는데. (타인에겐 무관심하다는 말을 어렵게도 돌려 말한다. 바스타르 또한 알고 있다. 라이아나는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니, 이런 것 또한 알고 있으리라고. 라이아나가 바스타르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점 만큼은 평생 변하지 않겠지. ...네가 계속 이곳에 남아있어 준다면 말이야.) 그러게, 재밌네. 어째서일까- 지금 정말 안도하고 있거든. (꿍얼대는 소리에는 여러 의미가 담긴 표정으로 가볍게 웃음 짓는다. 좀 전과 같은 장난이 아닌, 정말 진지한 웃음으로.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조심히 라이아나를 내려놓는다.) ...그래. 아주 조금도 괜찮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곁에 있을게.
 
라이아나:타인이 될 리가 없으니까 영원히 져줄 일은 없겠네. 그래. (익숙하다고 해도 오늘만큼은 어째 불만스러운지. 잘 알고 있는만큼 이런 면에서는 말 한 마디도 져주지를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만, 아주 약간은 타협점을 찾아보지않을까 싶었는데. 괜힌 기대였네, 응. 그래, 못 이기겠다. ...네가 느끼는 소중함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가끔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가 끊어질 매개체는 결국에는 죽음 뿐인 거지, 그런 거지…. 너는 나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안도는 왜...? (가는 동안, 온기 때문인지 천천히 눈이 감겨간다. 침대에 눕혀지고 나서는 이미 하는 행동도, 하는 말도 느릿해진다. 침대가 온 몸을 감싸듯 느껴지는 편안함에 잠식되어간다.) …너도 방금 일어났는데 미안해…. 정말 조금만 자고 일어날 테니까….
 
바스타르:그건, 만족스러운 답변이네. (서로 잘 알고 있는 영역에서도 여러 번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확신은 깊어져 가겠지. 라이아나의 편지를 읽은 바스타르는 그 짧은 순간에 설명할 수 없이 많은 생각을 담았다. 만일, 그것이 진짜라 하여 우리의 끝이 죽음이 아니게 된다 하여도... 생명의 죽음으로서 끝을 볼 순간까지 나는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니. ...네가 사라져도 내가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그냥. 그리운 느낌이 들어서. 너무 긴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그럴 지도 모르고. (점점 눈이 감기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금 더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역시 피곤했으면서,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이불을 덮어주며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그런 건 걱정 마. ...좋은 꿈 꿔, 라이아나.
 
라이아나:좀 져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긴 하지만… (계절이 하나 지나가고, 봄이 와서, 조금씩 피어나고 태어나길 반복하는 생명체들을 바라볼 때면 겨울을 되새길 때도 있었으나, 당장은… 그래, 그냥. 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기꺼워. 언젠가의 이별이 너에게는 두렵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친다. 너는 찾아낼 것이라 이야기할 거고, 기다릴 것이며, 결국 나를 발견할 것만 같아서… 이유 모를 확신.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달라지지 않는 신뢰.)
…응…. (짧은 대답 끝에,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다. 방 안에는 짧게 색색 대는 작은 숨소리만이 남는다.)
 
라이아나가 잠에 들고 나면, 대화가 오가던 방 안은 조용해집니다.
 
자, 그러면 바스타르가 해야 할 일은… 집안일이었죠?
 
바스타르:자...그럼 시작해볼까. ...우선...(곰곰...뭐 해야 했나 다시 되짚어보며)
 
겨우 잠들 수 있게 만든 침실 청소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네요.
 
꽤 오래 머무르고 있는 이곳은 여관이라고는 하나, 인세로 친다면 펜션 같은 분위기입니다.
 
괴물들의 마을이 꽤나 문명이 발달한 만큼 그간 이곳에서 지내기도 다른 곳들에 비해 편했죠.
 
오늘의 남은 시간 동안엔, 이틀 동안 밀린 청소를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아래 내려가 공용 세탁기를 돌려 놓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빨래를 널고, 마지막으로 방을 정돈합시다.
 
이것만 해도 이미 하루는 훌쩍 지나가 버릴 테죠. 사는 게 늘 그렇듯이.
 
바스타르:세탁기를...돌리러 가볼까. (우선 아래로 내려갑니다. 라이아나가 깨지않게 작은 소리로 조심조심!)
 
:귀엽군요. ^ㅡ^.... 조심 조심… 내려갑니다. 라이아나가 깨지 않도록, 또, 바스타르도 넘어지지 않도록!
 
도착한 세탁실은 깔끔합니다.
 
요 며칠 라이아나도 나간 적이 없을 뿐더러, 비타도 이틀 내내 잠들어있기만 했으니…
 
보이는 것은 가벼운 옷가지와 수건 정도군요.
 
자, 그럼…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는 거였더라?
 
 ✷ 교육 판정 ✷ 
 
바스타르:
교육
기준치: 40/20/8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바보.
세탁기를 안 돌릴 수는 없으니.... 원한다면 강행도 좋고, 행운으로 마구 잡이로 눌려도 좋고, 아니면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당연하게도 괴물)에게 물어봐도 좋습니다.
 
바스타르:...이런 물건은 다루기가 너무 어렵군. 자연에서 전부 해결할 수 있거늘... 쯧. (일단 아무거나 눌러봅니다... 이게 뭐지. 순서가 이게 맞나?)
 
 ✷ 행운 판정 ✷ 
 
바스타르:
기준치: 20/10/4
굴림: 97
판정결과: 대실패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세제는 넣었던가요?
 
섬유유연제는요?
 
이렇게까지 현대 문명에 무지할 수가!
 
일단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죠…
 
바스타르:... ...찢어지거나 걸레짝이 되지만 않으면 사용할 수 있다. (라고 라이아나에게 변명을 하면 되겠군...)
 
…쓰읍, 세제도 안 들어가서 물만 묻힌 빨래가 될 것 같지만 말이죠.
 
어떻게든 되겠죠. (안 됩니다.)
 
바스타르:...후... 그래도 한 건 해결. (진심인가? 싶지만 진담인 모양...)
 
된 거 맞아?
 
바스타르:미안하다, 라이아나. 하지만 내겐 너의 잠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꼭...알아주길 바란다. (허공에 대고 중얼중얼)
 
…어떻게든 한 건은 해결! 했으니...
 
이제 다음 미션! 설거지를 하러 가볼까요.
 
바스타르:...다음은 설거지를 할 차례였나. 음, 그건 어렵지 않으니... (저벅저벅... 설거지를 하러 출발)
 
그쵸. 설거지는 별 거 아니죠.
 
무려 우리는... 24살, 26살이니까요!
 
부엌으로 가보면…
 
아까 커피와 우유를 마신 머그컵을 포함해, 접시 몇 개와 포크, 프라이팬 정도가 눈에 보입니다.
 
그리 양이 많지는 않아서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요.
 
바스타르:(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어.)
 
 ✷ 손놀림 판정 ✷ 
 
바스타르:
손놀림
기준치: 40/20/8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박박박... 아까 세탁기도 못 돌리던 사람과는 다른 폼으로 폭풍 설거지하며)
 
뽀득 뽀득 뽀득 뽀득…
 
접시가 거울이 된 수준이네요. 먼지나 이물질 없이 깔끔합니다.
 
이 정도면 인간 식기 세척기 정도 수준인데요.
 
접시도 안 깨고, 깨끗하고 깔끔하게, 설거지를 마무리합니다.
 
바스타르:(라이아나...식기는 지켜냈다. 안심하도록 해.)
 
그래요, 옷은 우리 것이더라도 식기는 펜션 건데, 깨먹었다가는 손해 배상 비용이……
 
…순간 아찔해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무사히 끝냈으니 된 거죠.
 
세탁기가 다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20분 정도가 더 걸릴 것 같은데, 뭘 하는 게 좋을까요?
 
바스타르:흐음... 아직 20분이 남았나.
레시피 북이라도 있으면 저녁에 무얼 할지 고민이라도 해보겠는데.
 
:그러고보니,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번 가서 찾아볼까요?
 
바스타르:(솔깃...)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더 있을 지도 모르니... 가볼까. (도서관을 찾아본다...?)
 
도서관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네요.
 
척 보기에도 깔끔한 공용시설입니다.
 
바스타르:...생각보다 잘 되어있는데? (기대 이상이야...) 레시피 북이 어디 있나...(라이아나에게 해줄 저녁을 생각하며 레시피 북을 찾아본다)
 
 ✷ 자료조사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별 이상한 책들만 눈에 들어오네요.
 
바스타르:(이상하군...여기에 그런 것 하나 없을 리가...)(흐릿...)
 
요리와 관련된 코너가 분명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요리의 역사, 베이킹 책 따위만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한 번 찾아볼까요?
 
바스타르:...이 정도로 이상한 책만 있을 리가 없다. (다시 열심히! 찾아본다. 삼계탕 레시피 적힌 거 어디 없나...)
 
 ✷ 자료조사 강행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찾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만개의 레시P.
 
바스타르:(이번에 찾지 못했다면 정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을 지도...) ...다행, 음... .
(책 제목이 좀 독특한데..?)
 
뭐, 제대로 된 요리책은 맞는 것 같으니까요.
 
제법 두꺼운 것이,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스타르:이곳에도 삼계탕이 있나 싶은데...기력 회복에는 그런 것이 최고인 법이지. (펄럭 펄럭...)
 
:상당히 K스러운 선택이군요....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 재료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스타르:...시간이 남을 때 창 하나를 만들어두면 좋겠군. (아마도 잡아서 만들 생각...)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거지? 너무 오랫동안 찾았어... 이거 하나 빨리 찾지 못하고 쯧...
 
한 30분 정도는 지난 것 같군요.
 
돌아가면 빨래는 다 돌아가 있기는 하겠습니다.
 
레시피 북도 찾았겠다, 돌아가볼까요?
 
바스타르:후...아직 할 일도 남았으니 슬슬 돌아가볼까. (열심히 찾은 레시피 북을 제법 소중하게 들고? 돌아갑니다)
 
전리품은 레시피 북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여관으로 돌아옵니다.
 
아무래도 빨래는 다 돌아간 것 같네요. 라이아나도 아직 깨지는 않은 듯 하고요.
 
천천히 남은 집안일을 마무리하면 되겠습니다.
 
바스타르:아주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냈군. (만족하는 모양) 빨래를...이제 널면 되겠지? (찢어진 곳은 없나...살피며 꺼내든다)
 
찢어진 곳은 없는 것 같네요. ...빨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물을 먹어서 축축하긴 합니다.
 
바스타르:...왜 좋은 향이 안 나지...? 의문이군. (탁탁 털어서 널어본다)
 
 ✷ 손놀림 판정 ✷ 
 
바스타르:
손놀림
기준치: 40/20/8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구깃구깃...)
 
구깃꾸깃...
 
제대로 펴지지 않고 엉성하게 널립니다.
 
방금 수건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바스타르:...모양새가 왜 이러지? 역시 나뭇가지에 널었어야 했나. (수건에 맞곤) ...으윽,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어찌 저찌...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빨래를 널다 문득 눈에 들어온 창문을 보면,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쾌청하여 꽤나 보기 좋습니다.
 
그래요, 이제는 겨울을 지나, 봄입니다.
 
방금 나갔을 때도 추위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었죠.
 
바스타르:...봄, 인가. (함께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봄이 찾아왔구나.) ...신기하네.
라이아나에게, 봄의 풍경을 전부 보여주고 싶은데. (살아오며 수 많은 봄을 느껴오긴 했겠지만...그래도.) ...그러려면 할 일을 끝내는 게 먼저려나. 정돈이 남았었지. (뭐가 좋은지 피식...웃으며 마지막 청소를 하러 방으로 올라간다)
 
방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것은 익숙한 침대 두 개와 탁자, 서랍과 옷걸이 정도입니다.
 
가끔 환기는 시켜놓는 곳이라 그런지 먼지가 많이 쌓이지는 않았네요.
 
가볍게 쓸고, 탁자 위를 닦는 정도면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스타르:으음. 할 일이 많진 않을 것 같은데. 우선 보이는 곳이라도 닦아볼까-... (구석구석 쓰고 닦고...탁자 위를 닦는다)
 
침실 구석 구석의 먼지를 쓸고 닦고…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개운해집니다.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찌뿌둥하던 몸도 풀리는 것 같네요.
 
바스타르:(기분은 좋네...가벼워지는 것 같고...) (더 열심히 쓱쓱)
 
험한 일을 겪은 것 치곤 이상할 정도로 가뿐한 몸입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런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던 도중, 침대 근처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 관찰력 판정 ✷ 
 
바스타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음?
 
탁자 위에 못보던 노란 꽃이 꽂힌 병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스타르:...꽃? (노란 꽃...그것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런 게 여기 있었나?
(병을 살피고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꺾였다기보단 비교적 뿌리에 가깝게 캐와진 이 꽃의 꽃잎 끄트머리는 살짝 말라 있지만,
 
여전히 생생한 색을 비치며 싱그럽게 피어 있습니다.
 
이 꽃이 뭐였더라. 분명 이 근처에 한껏 핀 들판이 있었어요.
 
 ✷ 식물학 판정 ✷ 
 
바스타르:
식물학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그래요, 분명 밀짚꽃입니다.
 
누가 갖다 놓았을까요?
 
음, 사실 뻔한 일이죠. 그건 바로…
 
바스타르:...라이아나가 가져다 놓은 건가.
밀짚꽃...을 말이지.
 
라이아나:맞아.
 
…어느 새 깼는지, 라이아나가 뒤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바스타르:라이아나...? (언제 일어난 건지 모를 당신을 멀뚱 바라보다가 다가간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더 쉬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라이아나:응, 그냥… 깼어. 원래도 많이 자고 살지는 않았으니까.... (한번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혼자 힘들었겠다. 할 일 많지 않았어?
 
바스타르:...그래. 더 쉬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야. (흠...질문에는 시선을 조금 굴린다. 물에만 빤 것 같은 옷가지와 구깃해진 빨랫감들을 생각하니 자신있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할만했어. 그리 어려운 일도...아니었고. (...) 그보다 이 밀짚꽃, 네가 가져다 둔 거라고? (꽃에 관심이 생겼냐는 표정...)
 
라이아나:응, 원래도 그렇게 많이 피곤했던 건 아니고… 멀쩡했으니까. (…그렇게 안 보였을 것 같기는 하지만, 오기인지 뭔지 그런 말을 하고는 뒷목을 손으로 가볍게 주물거린다. 뻐근한 건지…) 그래? 다행이네… 나중에 빨래는 같이 개자. (이어지는 질문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린다.) 음, 그게… 너 자는 동안, 밖에 한 번 나갔거든. 근데 근처에 꽃밭이 있길래… 하나 뽑아와봤어, 너 자는 동안. 일어났을 때 뭐라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리 이야기하고는 한 번 꽃병을 바라보고, 다시 시선을 올린다. 어색한 웃음도 함께다.) 마음에 들어?
 
바스타르:멀쩡...(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그래도 한 번은 내 뜻을 따라주었으니 굳이 꼬투리 잡을 필요는 없었다. 뻐근한지 뒷목을 주물거리는 모습에는 안마라도 해줄까, 잠시 고민하고) ...이틀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군.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응. 역시 마음에 드네. (단순히 꽃이나 자연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밀짚꽃의 꽃말은 분명... 기억과 관련된-... ...어색한 웃음에는 똑같이 웃음으로 답한다. 어색함이 묻어있어도 역시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들지 않게 잘 관리해보면 좋겠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소중히 대하게 될 것 같아.
 
라이아나:...거기까지. (더 얘기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말을 한 번 끊는다. 목을 만지던 손을 내리고는 몸을 돌려 침대 밖으로 다리를 빼낸다. 오랜만에 누워있었더니 편하긴 했어. 네가 깨어난 걸 봐서 그런지, 긴장도, 불안감도 없는… 그냥, 평소와 다름 없을 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 그런 가벼운 감상이 들었다.) 응? 딱히 많은 일을 하진 않았는데? 편지 써주고, 꽃 가져오고, 가끔 정리 좀 하고… 그게 전부야. 짧았을 수도, 길었을 수도 있지만... ...으음, 생각하다보니 네 말대로 뭔가를 많이 하긴 했네, 나 혼자 있던 것 치고는. (그렇지? 짧게 되묻고는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주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눈을 내리 감은 채 안심 섞인 숨을 내뱉는다.)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지. …이왕이면 시들기 전까지 오래오래 부탁해. 이왕 가져온 거니까 말이지.
 
바스타르:...확실하긴. (자신이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 알고 있으니 저런 확실함도 있는 거겠지. 그리 생각하면 꽤 재밌는 일이기도 했다. 가벼운 감상에는 별 다른 의문이나 생각을 품지 않는다. 아침의 그 편지를 보고 난 후라 그런지, 바뀐 상황에 대해 적응할 시간은 필요 했지만... 그건 분명 좋은 방향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평화와 그런 감상도 마음 놓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겠지.) ...외롭진 않았어? (...) 다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 의미 그대로... 그 이틀 간, 자신은 함께 있어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을 테니.) ...왠지 안심하는 느낌이네. 네가 생각해서 가져다준 건데 당연한 거지. 생명이 시들지 않도록 하는 건 자신 있어. 최대한...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해줄게. (물론, 시들지 않게 하는 생명에는 예외도 있지만. 예를 들면... 너와 나 같은.)
 
라이아나:(외롭지는 않았냐, 라… 달싹이던 입을 다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보같아. (결국 나오는 말을 이런 거였다. 네가 나에게 이런 걸 물을 처지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어째서 그 순간이 지나고 난 지금에서도 그런 말이나 하는 건지.) …노코멘트 할래. 아니면 너부터 알려줄래? (어땠어, 그 끝없는 잠에 잠겨있을 때.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꾸지 않은 채 까만 밤에 잠겨있었을까. 시선을 천천히 내리고는 다리를 짧게 휘적인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잠겨있는 너를 볼 때 들었던 감상은… …단지 숨 쉬고 있다는 안도감. 그 뿐이었다. 홀로 앉아 편지를 적어 내려갈 때조차도 종종 고개를 돌리며 너를 바라보았던 것도, 네 머리를 한 번 쓸어내보았던 것도… 모두 안도와 미련에서 나왔던 것이겠지.) …뭐, 왜 가져왔냐고 물었을 지도 모르니까. 일단 심어져 있던 걸 뽑아서 온 거기도 하고… 자신 있다니 믿어볼게. 얼마나 오래 갈지, 기대할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입꼬리를 짧게 올려본다. 우리의 생은, 숨은… 지켜낸다고, 사랑하고 아껴준다고 해서, 시들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과한 애정은 사람을 죽이곤 하지.)
 
바스타르:...라이아나. (달싹이다 이내 바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한 가지 더 깨달았다.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던 '그 일'을...라이아나는 아직 마음에 담고 있는 걸까. 사실 의문이었다. 모든 것이, 참 많은 것이... 편지에 답이 나와있는 사실들에도 의문이 남고 마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내가 먼저 알려주면, 너도 알려줄 건가? (무언가 감상을 남겨줄 만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만 가만 한다. 바스타르의 관심사는 본인의 죽음의 순간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어찌되었던 지금 살아있는 이상, 자신에게 남은 걱정이나 생각이라곤 그 잠시라도 라이아나가 혼자이기에 느낀 외로움이나 감정이 있는지...그런 것 뿐이니까. 나의 죽음을 바랐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고... 라이아나는 내가 깨어날 순간까지 곁에서 기다려줬다. 문득 흐릿한 시야 속에서 보였던 라이아나의 모습과 한 마디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는 참 기쁜데. 그런 것 보다도 네가 그 이틀을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 지가 더 궁금해서. ...정말 죽었다면 이런 걱정도 할 수 없었던 걸까, 싶어지는 아주 깊고 깊은 생각만이.) ...음. 처음에는 그걸 묻고 싶긴 했어. 혹시 밀짚꽃을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 그렇다면 그 이유를 또 물었겠지만, 글쎄. 지금은 조금 기쁘네. (짧게 올리는 입꼬리에선 작은 진심이 느껴진다.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 애정이 너를 더욱 깊은 곳으로 몰게 되면 어쩌나 하고... 아니, 그리 생각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역시 그럼에도 나는 애정으로 너를 마주하고 싶어. 나의, 평생의 애정을.) ...기대해도 좋아. 이곳을 떠나게 될 때 까지도 살아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라이아나:…응, 비타. 왜 불러. (무던한 낯으로 마주하는 얼굴. 편지에 많은 것을 적어내려갔고, 나 역시 그 안에 진심을 녹여냈지. 너도, 읽었으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거 알까. 상상과 현실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혹시 모르지. 그런데… 물어보지 않는 걸 추천하고 싶네. (사실 나도 그렇다 할 이야기는 없을 지도 몰라. 그냥, 마음이 급했다. 그 뿐이었다. 선혈 가득한 손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 느꼈던 것은 분명하게… 기쁨이나 희열, 혹은 쾌락. ...그 이상한 것들이 온 몸을 휘젖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조금이 지나고 나서는, 사고회로가 굳어버렸던 것 같아서, 제대로 생각나는 것 하나 없다. 응, 잘 모르겠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해도, 나도 이번엔 해줄 이야기가 별로 없거든. (올려다보며 또 한 번 가볍게 다리를 흔들거려본다. 가벼운 움직임. 침대 시트를 가볍게 그러쥔다. 너는, 나를 너무 알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 나는 너에게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놔버려서, 이제는 더 털어놓을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너를 기다리는 순간 동안, 단지 네 숨이 꺼지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희미한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작은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밀짚꽃을 좋아하게 됐다...는 아니긴 하지만. 뭐, 단순히 근처에 있어서 뽑아온 게 맞을 지도 모르겠는 걸. 그리고 생각보다 이 노란 빛이 예뻤거든. 눈에 띄길래. (애정은… 사람을 누군가에게 길들이도록 만드는, 아주 쉬운 매개이자 온기. 애정에 익숙해질 수록, 다정에 녹아내릴 수록, 너는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반복한다. 숨기는 것이 없게 만들도록,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버팀목이자 홀로 남은 이에게 이야기를 건네주는 숲이 되어주니까. 네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생각될 만큼, 너의 그 다정과 애정, 사랑과 신뢰가… 두려워, 비타. 내가 없는 네가 존재했으면 좋겠어.) 그래? 생각보다 기대되는 걸. 그렇게까지 오래 살아있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 능력 하나는 정말 인정해줘야겠네. (생명을 사랑하는 너의 의지, 사랑, 그 재능을.)
 
바스타르:...그냥. 이름을 계속 부르고 싶어서. (그리 큰 생각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네 이름이 불릴 일이 이곳에선 나를 제외하고는 없겠구나...그런 생각도 문득 들어서. 혼자 많은 생각을 삼키는 동안 편지의 내용도 곱씹어본다. 분명 너의 진심이 느껴진 것은 사실인데, 왜 이렇게...기분이 이상할까. 너를 보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던 지난 날과 달라진 게 없는 것만 같아서.) 추천한다면 추천하지 않는 쪽을 따라가보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 아니겠어? (답지 않게 작은 농담이나 던진다. 하려는 말이나 질문은 그대로, 변함 없겠지만.) 나는, 죽고 나면 그 후에는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꿈을 꾸지 않았고,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어느쪽이 진짜일까. 내가 완전히 죽지 않았기에 난 그 이후를 볼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만약 죽었다 해도 그 이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죽어가는 나를 보았다고, 너는 그리 이야기 해줬지. 이상하게도 흐릿한 기억만이 존재한 채, 나는 그 이상의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네가 기뻐하는 표정도... 진심으로 웃는 거, 보고 싶었는데. 살아돌아온 와중에도 드는 생각이 이 모양인 것을 보니 나도 어지간히 이상한 놈인가 보지. 피식, 가만 웃는다. 죽어가는 와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솔직히 절망에 가까웠다. 그래서는, 나중에 찾아온 너를 이끌어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기회를 다시 받았으니 그것으로 괜찮다. 당신을 빤히... 조용히 바라보다가 옆에 털썩 걸터 앉는다.) ...바보 같다면, 그냥 바보 할까 봐. 네가 민망하다고 해서 이야기 하지 않으려 했지만, 솔직히 기뻤어. ...나는 여전히, 네가 살아가주길 바라거든.
아, 그냥 단순한 사고였어. 왜 밀짚꽃일까, 그런 생각. 사실... 주변에 있다는 사실 뿐이라도 꽃에 눈길을 준 건 사실이니까. 밀짚꽃, 그리고 이런 이쁜 노란 빛의 꽃은 따뜻한 날에 볼 수 있지. 함께 볼 수 있어서, 조금 즐겁기도 하고.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오긴 했구나, 그런 뒷말을 담다 말고 삼킨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찾아온 봄날 앞에서는 식상한 것 같아서... 그저 기쁘다는 감정 표현으로 드러낼 뿐이다. 꽃이 애정과 사랑을 머금으면 더욱 이쁜 빛을 내기 마련이듯, 사람 또한 받은 애정 만큼 달라진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바스타르는 그 생각을 라이아나에게는 적용시키지 않았다. 애정을 받은 만큼 변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텅 빈 마음을 애정으로라도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그것 뿐이었다. 나의 다정과 애정은 너의 어디까지 닿았을까... 여지껏 나는 모른다. 그러니 끝을 모르는 만큼 나는 영원히 네게 그것을 주고자 할 뿐이야. ...더욱 담아줘, 라이아나. 이 모든 것은 너의 것이잖아.) 꽃도 그렇지만, 모든 생명은 저마다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거든.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이니... 나는 이 생명이 시들도록 두고 싶지 않아. (또 다른 너라고 생각하며... 오래토록 품고 싶어지거든. 네가 이쁘다고 생각한 이 노란 빛이 색을 잃지 않도록.)
 
라이아나:그럼 나도 부를까? 비타. (나지막히 한 번 불러본다. 그러고보니, 네 이름을 늘 제대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십 몇 년을 그렇게 불렀으니 이제는 이 별칭이 익숙한 게 당연하지만. 내가 네 이름을 온전히 제대로 부를 때는, …네가 알 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리를 두고 싶을 때. 그 때 뿐이다. 물론, 그 순간조차도 너는 내가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았었고. 너에게 내 심연을 한 번 드러내보았을 때, 원망이나 후회, 두려움이나 불신, 그 많은 감정들이 존재했다. 너에게서 멀어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인 만큼,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한 발 멀어질 때면 두 발 다가와. …이상해. 바보같아. 너의 그 모든 행동은, 가끔 이해되기가 어려웠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이름을 부른 후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너에게 나는, 언제나 사라질까봐 두려운 존재인가? 심연으로 숨겨버릴까봐, 눈 속에 파묻혀버릴까봐, 또, 너를 두고 갈까봐….) 청개구리도 아니고. …그래, 아무것도, 못 봤다는 얘기네. 둘 다, 있을 법한 이야기지.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하잖아. 또, 차라리 이번이 마지막 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너는, 어느 쪽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개인적으로… …둘 다 좋은데. (차라리 아무도 나와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했고, 동시에, 죽은 뒤에도 한 번쯤… 사랑하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서.) 아무튼 그렇게까지 내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거니까… 들려주자면…. …나는, 외롭지는 않았어. 그래도 네가 살아서 옆에 있었으니까. 대신에 혼자 있는 것 같다는 착각도 잠깐씩은 들었지. 혼자 밖으로 나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하늘을 볼 때나… …너도 알잖아?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라는 걸.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너에게 내가 진심으로 웃는 표정, 기뻐하는 표정 모두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면, 아쉽네. 정말이지 유감이야. …옆에 느껴지는 무게감, 침대가 짧게 가라앉는 진동, 턱을 괴며 네 쪽을 바라본다.) 바보해도 돼, 너는. 가족들밖에 모르는 바보. …너무 한결 같은 것도 바보 같고. (저 역시 한 번 짧게 픽 웃는 소리를 내었다. 살아가길 바란다. 죽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로 상반된 것을 가지면서도… 결국, 이 시간에 공존한다.)
이제는 따뜻하더라, 정말…. 겨울이 길어서 봄은, 제대로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따뜻하고, 향기롭고… …응, 널 닮았다, 정말. (생명력이 가득한 계절. 모든 것이 피어나며, 따스함이 세상을 감싸는, 누구보다 다정한 계절이지.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고, 또, 기쁘게 느껴지나보다. 그런 표정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러니까,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라는 거다. 너의 애정과 다정은,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순수함은 나를 웃게 만들어. 네가 바랄 만큼 가장 큰 웃음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보이는 이 웃음도… 너에게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제게 닿았다가 밑으로 사라지는 그 다정과 애정, 사랑의 한 순간이 나를 잠깐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었다. 나의 것, 이라. 소유물이 아닌데도, 너의 숨을 받아냈더라도, 나는 네가 너로 살았으면 해. 너의 의지로 내 곁에 남는 것도 알고, 네 꿈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늘 너와 다른 것을 바라. 반대의 것을 바라. 네 모든 것이 온전이 내 것이 된다면, 그 때 네가 망가질까봐…. 늘, 가장 깊은 곳까지 너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가족들마저 불신했던 기억은 이따금, 나를 잔인할 정도로 차갑게 만들었다.) …그래. 널 생각해서 가져온 거고, 널 위한 것이기도 한데…. …사실, 그렇게 아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네 말대로 예쁘기도 하니까. 오래 간직해줘, 비타. 이왕에 오래 품고 아껴줄 거라면, 이름도 붙여서 더 정 붙일 수 있겠네. (가벼운 농담을 함께 덧붙이면서 꽃병을 톡, 하고 가볍게 건들인다. 어때, 붙이고 싶은 이름이라도 있나?)
 
바스타르:...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묘해. 뭐, 나쁘진 않지만. (비타. 네가 불러주는 나의 별칭이자, 오직 너만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니 내게 그 단어는 더 이상 다른 것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상하지, 원래 이름보다 그것이 마음에 더 들 때도 있으니. 라이아나가 한결 같이 불러주는 이름이 존재하기에, 바스타르는 라이아나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불러줄 때가 어떤 상황에서 인지, 제대로 느낀 적은 없었다. 너무나도 한결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내왔다 보니...라이아나가 거리를 두려 하는 순간도 그 거리감에 멈칫한 적이 없었다. 네가 거리를 두려는 순간은 우리를, 나를 싫어하게 되어 멀리하려는 순간이 아니니까. 그러니 알아챌 수 없었다. 너의 마음에 그 애정이 계속 남아있는 한은...알 수 없겠지. 그러니 이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거리를 두려 해도,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다가갈 뿐이니까. 이왕이면 그 별칭으로, 계속 불릴 수 있기를 더 바라게 될 뿐이니까. 너의 손을 놓치다 못해 잡히지 않는 곳으로 시야가 침몰되지 않도록... .) 뭐, 요약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해 했던 주제거든. (처음에는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그 이후에는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 필요한 장소로서. 그런 의미로...) 둘 다. 이것만은 일치하는 것 같네. 나 역시 둘 다...나쁘지 않다 생각하거든.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 이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고, 이게 마지막이라면... 이렇게 마지막이 되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아서. 혼자가 아니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알아. 함께 있다는 존재감으로 느끼는 것과, 그럼에도 느껴지는 소리는 하나 뿐이라는 것은 다르니까. ...그래서 속상했어. 나를 일찍 깨우지 그랬어,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거든.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참 이상한 말이기도 하지. 죽어가던 것을 다시 살려낸 건 라이아나인데 그 앞에서 이런 이상한 탓을 하다니.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만큼 속상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까, 아니면...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조차 싫다는 어리광으로 들을까. 비록 가장 최고일 순간에 그 표정과 행복한 모습을 보지 못한 건 아주 큰 아쉬움으로 남겠으나,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너는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과거를 함 걸어온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그래, 아주아주 근거 없는 자신감. 가만 앉은 침대의 옆에서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따라간다.) 까딱하면 인세에서는 나를 바보로 부른 사람이 없었다며 반박할까 싶었는데... 그런 의미의 바보라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네. 음...아니. 굳이 말하자면 조금 기쁠지도 모르겠어. 내 애정이나 마음이 그만큼 깊게 닿았다는 뜻이 되는 거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아주 뚜렷한데, 우리는 여전히 공존한다. 그 너머에 지극히 가까워진 순간을 딛고 지금의 순간을 맞이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품은 것이 삶이고, 네가 품은 것이 죽음이 아니라... 그 무게를 전부 네가 짊어지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래. 좀 전에 나갔다 와보았지만...역시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전부 지나간 것 같더라지. 모든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에 도착한 거야. ...너와 함께 볼 수 있어 기뻐, 라이아나. (나를 닮았다...그 말에는 가만 미소 지을 뿐이다. 우리는 닮은 계절도 지극히 반대라서... 서로 다른 것을 닮았다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울과 봄은 이어져 있는 계절이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서로가 품은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추측도 세워볼 뿐이다. 여전히 웃고 있는 표정을 보면서는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죽음을 마주할 뻔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자고 일어난 탓에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건지. 그리운 감각 만큼은, 여전히 지워낼 수가 없어서... 너의 그 진심과 웃음이, 정말 나를 기쁘게 만들어서. 나는 영원히 그것을 바랄 것이다. 영원히 네가 웃을 수 있는 날을 바랄 것만 같다. 아니, 바란다. 내 모든 의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와 함께 했으니, 이것 또한 변치 않을 마음일 텐데. 너를 온전히 원하기에는 주제에 지나치니, 멀리서라도 그 웃음이 영원하길 바라고 싶어진다. 너는 내가 빛이라고 해주었지만, 조금 다를지도 몰라...라이아나. 나 또한 네가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모든 것을 걷어낼 만큼 거대한 빛이 되고 싶으니까. 그래, 적어도 너의 길이 어둡지 않을 정도의 빛을.) ...이름이라. 이름...이름... .(들려온 질문에는 꽤 깊게 고민한다. 틀린 말도 아니고, 오히려 괜찮은 방법이라서 장난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지. 당신에 의해 톡, 건들여지는 꽃병을 보며 깊은 고민을 마친다. 조금 더 털털한 표정으로 가볍게 담은 이름은...,) ...그럼 네 이름을 빌려서, 라이아나로 할까. 너라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될 것 같거든. (싫다해도 어쩔 수 없어. 이미, 그렇게 정했으니까.)
 
라이아나:네가 먼저 해놓고 이상하다고 해봤자지. (어깨를 가벼히 으쓱거리고는 다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름은 가장 가볍고도 무거운 것이라는 걸, 가끔 느낀다. 가장 쉽게 부를 수 있는 것이면서도, 이따금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만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어서. 네가 바라는 것은 늘 간단명료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곁에 있어줄 것.', '포기하지 않을 것.' '멀어지지 않을 것.' 결국엔 다 비슷한 결과를 내는 것들이지만, 어쩌면 나는, 이루어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길 때가 가끔 있지만, 네가 한결같이 바라고, 또 바라는 것. 바스타르는 늘 자신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기 때문에, 제게 바라는 몇 안 되는 것들조차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자괴감이 조금 올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너를 미워하지 못한다. 애정과 다정으로 점철된 그 모든 사고와 행동, 마음, 사랑, 신뢰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래, 나는 결국 네 다정에 길들여지고 말아. 원하든, 원치 않든, 너는 늘 같은 것을 내어주고 있으니까. 홀로 멀리 떠나가게 된다면 너는 결국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할 게 뻔하기 때문에,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미리 일러주어야 하나 싶었다. 찾지마,가 아니라… 기다려줘, 라고.) 너도 그래? 흐음, 솔직히… 사후세계 이야기는 네가 한 적이 있으니 예상은 했는데,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건... 왜야? 알려줄 수 있어? (예상과 관철은 라이아나의 특기이자 습관이라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고, 항상 이야기했지만 바스타르는 라이아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기에. 한 번, 나지막히 물어본다.) 죽어가는 사람 깨우는 것도, 꽤 바보 같은 짓 같으니까… 그것도 내 손으로,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깨워봤자… (스스로 후회하며 멍청한 걸 되새기를 꼴이잖아. 뒷말을 삼킨다. 너는 내가 후회하는 것을 바라지 않잖아. 속상하다는 말,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네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보다는, 이상하게 속이 쓰렸다. 이제와서 죄악감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네가 편히 눈을 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알량한 배려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너에게… 다른 것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단순한 내 웃음과 행복이 아닌, 삶과 너의 행복을. 나에게 한정된 것이 아닌, 너 자체의 행복을 알고 싶다.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하고 싶은 것, 나를 위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살아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해서. …언젠가 네가 정말로 내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면, 그 때는.... 내가 먼저 죽어야할 지도 모르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삶은 길지만죽음은 찰나라고.) 너의 애정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걸. 다른 사람들한테는 몰라도 가족 한정으로는 그렇게 바보처럼, 그게 전부인 사람처럼 굴잖아. ...구는 게 아니라 사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말이지. 나 역시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에서 가족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비타, 너는… 살아갔으면 한다는 말, 생각보다 무겁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보다, 훨씬 무거운 것 같은데.
…하우스에서 나온 이후, 첫 봄이지, 이거. (가을에 하우스 밖으로 나온 뒤, 우리는 인세에서 흩어졌고, 다시 만난 것은 겨울, 그리고 그 겨울에 이어진 유랑…. 처음 함께 맞는 봄은 생각보다 따스했고, 어제까지는 비가 내렸던 것 같기도 한데, 오늘 하늘은 또 쾌청했다. 눈 내리던 겨울 날에 같이 걸었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랐다. 겨울에 죽여주겠다는 그 약속조차 나는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 충동적이었던가.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니 붉은 선혈이 제 손을 스쳐지나갔던 감각만은 명확하다. …결국 지금은, 살아있지만. 되새길 때면 손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몇 번 쥐었다가 피기를 반복하다, 손을 쥐며 고개를 내렸다.) 비타, 있잖아. (제 얼굴을 계속 바라보는 걸 보니 이 표정이 어지간히도 좋은가본데. 그랬다가는 얼굴에 경련이라도 날 것 같으니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심연의 안에서, 바깥 세상의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이 두려워서 숨어보기도 했다. 나는 홀로 있는 그 시간이 두려웠고, 곁에 있어준 빛이 따스하고 기꺼워서… 분명 그 때, 한 번 크게 울음을 터트린 적도 있더라지. 나는, 네 앞에서 이상해져. 평소의 나 답지 않은 것처럼, 그래… 인세에서 지내는 동안 감정을 몰랐던 인형 같았다면, 가족을 만난 뒤 움직이기 시작하여, 너로 인해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나는, 네가 나를 응원하는 만큼 응원해. (뜬금 없는 말, 시선을 맞추며 눈을 몇 번 깜박거린다.) '너보다'라는 만큼은 이야기하지 못하겠어. 그런데… 적어도 너만큼은, 나도 너에게 주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만큼 애정하고, 사랑하며, 신뢰하고, 응원하고, 너의 웃음을, 꿈을, 영원한 행복을 바란다. 불가능할 것 같은 영역이라 할 지라도, 내가 죽어가는 너를 살려낸 이유이자, 진심이니까. 네가 빛나지 않고 꺼지더라도 심연 속에서 함께해줄 거라는, 나 역시 너처럼 품고 있는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네가 빛없는 심연을 두려워한다면 나는 기꺼히 네 옆에 있음을 증명해낼 테니까.) 뭐? …잠시만 잠시만, 그게 뭐야? 진짜로 내 이름 붙인다는 건 아니지? (답지 않게 놀란 눈을 하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네 앞에 선다.) 진지하게 생각해,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눈 앞에 있는데, 내 이름을 붙인다고? 정말로?
 
바스타르:...네가 이해해. 나는 솔직하잖아. (우리는 매 순간 서로를 부르는 그 몇 글자에 진심을 담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즉,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 ...네가 불러주는 그 두 글자의 별칭도 같은 것이겠지. 그런 당연하고도 잊고 있던 생각을 뒤로, 바스타르는 라이아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다. 내가 바라는 것들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면서도, 네겐 한결같이 어려운 것들일지도 모르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으니, 부디 이 손을 놓지 말아달라는 것이...내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말아달라는 것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행동을 보아서라도 이행해주는 최소한의 노력. ...하지만 난 그런 것이라도 상관 없는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많은 애정을 주고, 그것을 끊임없이 쌓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서로 평생 미워할 수 없겠지. 다른 말로는, 나를 미워해도 좋으니 네가 부디 무거운 마음을 떠안지 않길 바라는 무언가의 바람. 나의 모든 사랑과 신뢰, 애정은 너를 향한...너를 위한 것이나 너는 그것과 똑같은 것을 내게 내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너에게 애정을 바라고 있는 것도 같아서... 네가 사라진다면 너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마음은... 온전히 너를 향한 것인지 아닌지. 어쩌면, 나의 이기심일지도 모르고.) ...심오한 질문을 하네.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건...그래. 좋겠다기보단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어차피 나의 마지막은 네게 맡겼던 것인데, 이 모든 것이 마지막이 된다면 나는 너와 마지막을 함께하는 거니까.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만은 바스타르의 천성이기도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너와 함께 하는 마지막이니까 좋은 거지' 라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는 꼴이니... 라이아나가 어떻게 받아들이던 하염없이 진심을 고할 뿐이다. 그래, 나는 오직 언제나 진심만을... .) ...죽어가는 사람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너는 나를 죽게 두지 않았잖아. 도대체 무얼 신경 쓰고 있는 건지. (죽음. 어차피 우리 둘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끝으로 정해두고 모든 것을 시작했었다. 그리고...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너에게 죽었어야 했지. 그럼에도 나는 지금 살아있다. 네가, 나를 죽게 두지 않아서. 깨어난 뒤로 계속 의문이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을 보면 납득이 갈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내 죽음이 끝에서는 라이아나에게 다른 것을 느끼게 한 건지... 영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라. 어찌되었던 지금 와서는 이미 지나간 것을, 계속 신경쓰지 않길 바랐다. ...라이아나가 품은 것이 후회인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무에게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닌 바스타르는 희생의 개념 조차도 스스로에게 성립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즉, 이 모든 것은 자신의 행복이기도 한 것을... 라이아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라이아나가 원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는 아마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모를 지도 모른다.) ...가족을 향한 애정이나 사랑은 너도 마찬가지 잖아. 이럴 때 쓰던가, 사돈 남 말 한다는 이야기. 내가 바보면 너도 바보다, 라이아나. (물론, 장난이지만. 가족을 향한 애정에 대한 이야기는 진심일지 몰라도, 라이아나를 바보로 볼 리가 없지 않은가. 뒤이은 질문에는 그저 이불을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며 고민할 뿐이다. 이내 답을 하려는지 괜히 어깨를 으쓱이곤) ...무겁지. 아주아주 무거운 말이지. 누군가가 살아갔으면 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니까.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저주처럼 들리는 효과가 있지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큰 무게가 실려. (그걸 알고 있음에도...난 네가 살아주었으면 하니, 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쥐여주고 있는 것인지 다시금 느끼고 만다.)
...그래, 같이 보는 봄은 이것으로 두 번째가 되갰지. (솔직히,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작게 중얼거리곤 삼킨다.) 인세에서는 계절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바라보지 않았어. 내가 있어야 할 장소로 느낀 적은 그닥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내겐 이 봄이 의미가 아주 커. ...너는 어때? (시간이 무섭게 지나갔음을 느낀다. 우리는 여전히 끝없는 길을 걷고 있구나. 겨울날에 나누었던 대화를 전부 기억하는데, 우리에겐 봄이 찾아왔다. 그만큼의 기억을...또 함께 쌓아왔다. 당신이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는 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고민해 보았으나, 역시 답은 나오지 않더라지. 당연하게도, 라이아나가 하는 생각과 과거의 감각은 바스타르가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바라보고, 또 고민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응, 라이아나. (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이를 선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남겨준 미소가 있기에 충분히 만족하게 되더라지. 어렸을 때 만큼 다양한 표정과 표현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음을 알고 있으나...그럼에도 전보다는 무언가 변화가 있었으리라, 꼭 그랬으면 좋겠다며 되뇌이고 바라게 된다. 그래, 감정을 모르는...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기만 해도 큰 한 걸음이라 생각하니, 언젠가 더 다양한 것을 느끼게 되길 바라며. ...더욱 솔직하게, 너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를 끝의 끝까지 바라고 있다.) ...뭐? (응원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때 들어온 뜬금없는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지만 이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뒷말에는 조금 더 표정이 풀어지는 것이, 감동이라도 받은 건지.) ...그런 마음은 이미 충분히 받고 있어, 라이아나. 네가 나에게 많은 것을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도...그래, 알고 있어.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하여도, 역시 네가 나를 살려낸 이유는 그것에 있을 것 같아서. 결국에는 인정하 만다. 라이아나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다시 생을 부여해주어도 나는 다시 너의 곁에서 끝을 선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그 안에 기꺼이 들어갈 용기를, 나는 너를 보며 얻는다. 결국 나도 네게 그런 마음을 받고 있다니... 이 얼마나,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일까. 네가 나의 곁에서 자리를 지켜준다면, 나 역시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를... 그것만은 영원히.) ...왜 그렇게 당황해? 나는 진심인데. (벌떡 일어나 앞에 서는 당신을 보며 그만 작은 웃음 소리를 내고 만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이유가 궁금해..?
...그러니까 이미 정했어. 걱정은 하지 마. 쉽게 시들게 둘 생각은 없으니까.
 
라이아나:그건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비타. (눈을 내리감으며 짧게 웃음 소리를 흘려본다. 매순간이 아니더라도 많은 순간에 네 이름을 부를 때면, 그 말에는 무게감이 담겼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벼울 때도 있지. 네가 바라는 것은 나의 평범하고 행복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일상. 어렵다는 걸 알고 있고, 늘상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만큼 이따금 잊고 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네가 주는 다정이, 나에게는 독이라.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스스로를 잃어가는 기분에, 또, 충동적으로 굴어버리는 바람에 문득 올라오는 살인충동을 참아내기도 한계일 때가 있다. 그래도 말이지, 늘 멈추게 돼. 지금까지 그랬어. 이번 한 번의 실수는 평생 내게 남겠지만, 그래, 지금까지는… 그랬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낯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남기지 않았다. 익숙하게 감정을 숨겨내고, 늘 그렇듯 답을, 너를 탐색한다. 서로 바라보는 시선의 교차는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라이아나가 피한 탓이다. 바스타르의 단순한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노력의 깊이가 상당히 커서. 가끔 스스로가 도망이라도 친다면, 충동적으로, 무의식 중에 네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찾아내지 못할 곳으로 도망친다면 어떻게 될 지, 라이아나는 또 한 번 생각해본다. 가끔은 찾아내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이야기했다시피 단지 기다려줬으면 해서. 언젠가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그 자리에 없다면 방황하는 사람이 둘이 될 뿐이니까. 바스타르는 라이아나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 단지, 언젠가는 서로가 가진 이기심으로 인해 상처주게 될 지도 모른다. 라이아나는, 그 때가 두렵다.) …낯간지러워, 그런 말. 나는 너를 모르겠어, 이유를 들으니까 더욱. (꿈을 위한 약속, 혼자 두기 싫다는 배려, 내가 너의 상냥함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피하게 되는 진심. 자신이 받은 숨, 마지막,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약속…. 내게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무어라 해보아도, 네가 나에게 맡긴 것만 하다.) 무엇을 신경쓰고 있냐, 라고 물으면… 간단하게 답해줄 수 있어. 네 삶. (그게 전부야. 바스타르가 의문을 던진다면 라이아나는 기꺼이 그 답을 내어줄 뿐이다. 죽어가는 너를 살려낸 이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은 이유?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당장 자신이 신경쓰고 있던 건, 내가 최근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너의 삶이지. 자세한 것을 입에 담지 않는 것은 늘상 같은, 입을 다무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희생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던데, 라이아나가 보기엔 그렇지도 않았다. 그건 단지, 살아있는 이에게 자신의 죽음의 무게를 얹고 삶을 종용하는 이기심일 뿐이다. 스스로의 삶을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것을 기껍게 받는 이유라면, 분명 다들 삶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생각과 이야기는 적용되지 않지. 그러니,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희생’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너만큼은 아니니까 그렇지. 넌 가족들한테는 무르니까. 나는 사랑한다고 해도 너만큼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야. …사람들이 바라는 애정과 사랑은, 보통 네가 하는 것들이니까. (꾸욱, 네 어깨를 검지로 가볍게 눌렀다가 뗀다. 팔은 안 쪽으로 굽는다. 당연할 만큼 자신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끌어안는 것, 애정하고 사랑하며 희생하는 것,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 다정을, 베풀어주는 것.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 즉,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으나,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기에 사랑한다 이야기할 수가 없어지게 된다.) 알고 있으면서 욕심쟁이네. (덤덤히 이야기하곤 침대 시트를 짧게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이제는 같은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어서… 짧게 갈무리를 하고 말았다.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밖을 바라보면 언제나처럼 맑은 하늘, 푸른 들, 어여쁘게 핀 꽃까지…. 지독하게 평화롭다. 언젠가는 이런 평화가 깨지기를 바란 적이 있었는데, 아니, 어쩌면 지금도….)
시간이 흘러갔구나 싶어져. (인세에서,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 지도 모르는 채 살아갔다. 봄이 와도 별 감흥이 없었고, 겨울이 와도 춥다, 정도의 감각만 존재했다. 늘 뒤늦게 계절이 바뀌는 것을 깨달을 때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해졌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 그냥, 새삼스럽게 느껴져, 모든 게 피어나는 계절이라는 걸.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다. 어쩌면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봄.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삶의 의미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눈을 감으며 속을 삼킨다. 많은 생각을 할 때면 늘, 속이 복잡해지기 일쑤이니.) 알고 있다면 됐어, 다행이네. (우리가 언젠가 삶을 끝낼 때에도, 눈을 감아 심연 속에 몸을 맡기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결국 모든 것들이 나에 의해서 결정 된다. 그러니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해보려해. 내 손 위에서 마음껏 유영하며 네 빛을 보여줘. 작은 빛무리야, 드넓은 숲아. 너로 인해 나는 안정을 얻어. 내가, 우리 바라는 것은, 어쩌면… 결국 죽음이 아닐 지도 모르겠어. 속으로 흩어져버린 작은 중얼거림. 내가 바라는 것은,) …영원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내가, 계속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다면…. 평생은 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단지 안식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낯간지럽네. 이런 얘기는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진심이라는 게 더 어이없거든. (웃는 걸 보고는 시선 돌리며 뒷목을 만지작거린다. 하필이면 어떻게 꽃 이름도 라이아나. 나한테는 말고 꽃한테는 실컷 주던지. …물론 정확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맞겠지만.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미 과분할 만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느릿하게 감았다가 뜬 눈.)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정신은 차린 것 같다. 덕분에 잠도 확 깨네.) …밥이나 먹자. 청소도 다 했고 잠도 잤고, 이제 밥 먹고 빨래 개면 될 것 같아…. 대신 많이 먹을 건 아니니까 적당히만.
 
바스타르:아하하. ...그럴 리가. 네가 내게 얼마나 많은 솔직함을 내어주고 있는 지는 잘 알고 있거든. (어깨를 가볍게 으쓱, 표정에는 안정이 드러난다. 저를 피하는 시선은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고 싶은 것 또한 너의 마음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서.) ...맞아. 너의 말대로, 나는 가족에게 한없이 무르고 따뜻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어. 하지만 라이아나, 나는 늘 이야기 했듯 그것이 천성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사람은 아니야. ...나의 다정이, 이 애정이. 지금은 온전히 너를 위한 것이라면? (...농담. 묘하게 미소짓는 모양새로 갈무리 한다. 그리 농담이라 부를 만큼의 장난도 아닌 모양이지. 나는 언제나 네게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 걸. 이런저런 생각으로 간극을 채우던 것도 잠시, 침대의 시트지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위치에서, 당신을 바라본다.) ...나의 삶을, 나의 순간을 신경 써주어서 고마워. 영광인걸. 네가 그런 말을 해줄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조금 기쁜 것 같네. 내가 바라는 것과는 별개로... 네가 그 말을 해주어서. (라이아나가 지금 바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바스타르는 알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만을 믿고 그렇구나 생각할 뿐...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은 변하지 않는다. 라이아나가 삶을 바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결코 그 이유가 자신이 아니길 바란다. 그저 고요한 안식만이, 소란스럽지 않은 평화만이 그 곁에 맴돌길 바랄 뿐인데...이 역시 이기심인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전에 너에게 그런 적이 있었지. 너의 유일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 더욱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그 생각은...물론 변함없지만. 조금은 번복할까. (...) 유일이 아니더라도, 역시 평생이라는 건 조금 원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 왜냐면...(...짧은 간극을 끝으로 말을 끊는다. 그 끝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이 '라이아나'라 이름 붙인 꽃이니... 다시 꽃에 대한 이야기나 늘여놓는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넘겨준 끝으로 등을 돌려 머리를 묶는다. 다시 바라본 때는 조금 더 밝은 미소를 짓곤,) 그럴까. 으음, 오늘의 요리사는 나야. 내가 좋은 걸 찾았거든.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짧게 덧붙인다.)
 
라이아나:그 말은 못 믿을 걸, 놀랍게도. 농담 맞지? (네가 늘 진심만을, 진실만을 이야기 해준다는 걸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믿기엔 너는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바보같은 사람이었으니. 믿을 수 없다, 아니, 기대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금 높아진 시선에 자연스레 눈동자가 가볍게 움직였다. 입가에 그려진 가벼운 호선을 띄운다. 한참 시선을 맞추며 바라보며 네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나간다.) 너와 내가 바라는 건 늘 그렇듯 정 반대의 것이지, 비타. (이유야 어떻든, 나는 너의, 너는 나의 삶을 바라잖아. 바스타르는 기쁘다 이야기하더라도, 라이아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너처럼 온전히 기뻐하지는 못하더라도, 네가 기쁘다면 다행이다, 그리 생각했다. 라이아나가 가진 마음은 분명 바스타르보다는 크지 못하겠지. 정확한 것을, 진심을 내어주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서로가 이야기하는 것을 믿고, 또 믿어본다. 우리가 지금껏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하기에, 이 역시 당연한 것이라 여겨버리게 되었고, 나는 이 얇팍한 나의 감정에, 삶에 묶인 네게 의지하고 있으니. 죽음은 삶의 종막. 내가 원하는 안식…. 너는 그 종막이 아닌 삶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러지 못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노력해볼게.'라는, 무게감 실린 단어일 뿐이야.) 평생 있을 생각이면서 내가 유일을 찾길 바라는 건 바보같지 않나, 뭐,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 상관은 없어.
(눈을 내리감고 있던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네가 하는 말, 목소리, 숨, 행동… 그 가까이서 느껴지는 것들에 한 순간 숨을 참는다.) …비타. (너는 늘 나에게 새로운 것을 바라지. 생명체이나 아무것도 못하는 꽃 하나가 고작 뭘 해줄 수 있겠어, 나에게. 묶어진 머리를 한 번 매만지다, 깜짝아... 하고, 낮게 중얼댄다.) …그건 알아서 해. 나보고는 하지 말라는 거지? 오늘 아예 아주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왜. (픽, 짧게 웃음 소리를 흘린다.)
자, 아무튼… 내려가자? 이러고 계속 있다가는 점심 때 다 지나겠네. (몸을 돌리곤 가볍게 한 걸음 딛으며 뒤를 돌아본다.) 안 오면 내가 할 거야. 근데… 요리는 정해놨다고 했지? 뭐하려고?
 
바스타르:...그래. 그래야지. (잠시 주춤하지만 몇 초 뒤에 당신을 따라간다. 질문에는 음...하고 뜸을 들이고,) 기력 회복에 좋은 것. 사실 레시피 북만 구하고 무얼 하면 좋을 지는 고민 중이었거든. 뭐가 땡겨?
 
라이아나:음. 난 아는 요리 아니면 안 해먹어서 그런 건 잘 모르는데... (고개를 기울인다.) 복잡한 요리는 안 해먹자의 주의라서… (원래 소식해서 그렇다.) 기력 회복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될 것 같으니 동의는 하겠다만...
 
바스타르:하긴, 워낙 많이 먹는 편도 아니라 그런가... . 그럼 내가 정하지 뭐. 생각해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뒷말에는 멀쩡하다느니, 신경 쓸 필요 없다느니...그러한 말을 덧붙인다.) 인세에서 들은 적이 있어. 흐음... 닭을 이용한 기력 회복에 좋은 음식.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유명하다더군. 어때?
 
라이아나:(응, 오늘 아침에 일어난 사람이 그런 이야기해봤자 하나도 안 믿겨져. 짧게 중얼거리듯 이야기하고는 가만히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닭요리...는 스튜나 치킨 말고는 뭔지 모르겠는데… (음.) 그래 뭐, 네가 하기로 했으니까 괜찮겠지. (고개 끄덕 끄덕.) 근데 안 해본 요리 아니야? 안 복잡해?
 
바스타르:그건...너무한데. 다 믿어주는 거 아니였어? (농조를 담아 피식, 이야기 하곤 레시피북을 팔랑거린다.) 스튜도 좋지만 역시 평범하다는 느낌이 드니까 오늘은 패스야. 요리 실력이 뛰어나게 좋다, 까지는 아니지만 노력해볼 정도는 되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육수를 우려야 한다고... ...(갑자기 잘 만들어질지에 대한 걱정이 확 들었으나, 그런 고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라이아나:평범한 게 제일 좋을 텐데... (특히 기력 회복으로 도전하는 요리에 처음 해보는 걸 하다니...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어, 일단 믿어볼게. 화이팅. (컵 가져와서 물이나 따른다.)
 
자, 그럼 즐거운... 아니, 조마조마한 요리시간입니다.
 
바스타르, 처음 보는 생소한 요리인데~ 자신 있나요?
 
바스타르:음...그래. 믿어봐. 내가 설마 이상한 걸 네게 먹이겠어? (은근 걱정되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며...)
 
:자, 처음 도전해보는 요리인지라 바스타르가(사실 저도) 불안 불안한 게 사실이기 때문에…
칼질 및 손질 - 손놀림,
간 조절 - 행운,
불조절 - 관찰력 순서대로 한 번씩 판정해보겠습니다! ^ㅡ^... 모든 건 다이스에게.
 
바스타르:자, 그럼 시작해볼까. (걱정말고 쉬어도 된다는 눈빛을 보내며 손질을 위해 칼을 든다.)
손놀림
기준치: 40/20/8
굴림: 2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제법 괜찮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만족하며 육수를 우리고 간을 쳐보며...)
기준치: 20/10/4
굴림: 1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완벽하군. 역시 내가 그간 해온 게 헛되진 않은 모양이지. (중얼중얼... 다 태워먹으면 큰일이니 열심히 불조절도 하고!)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바스타르:...이, 게 왜 이러지. 흠. (화륵...)
 
불이 순간 화르륵. 만들고 있던 냄비에서 육수가 조금씩 끓어 넘칩니다.
 
서둘러 불은 끕시다!
 
바스타르:...아니, 괜찮다. (아마도...침착하게 불을 끈다...)
 
불을 끄면 천천히 끓던 육수는 사그라듭니다....
 
oO(나중에 가스레인지 청소 해야되겠네요.)
 
바스타르:...일만 늘었군. ... ...
(라이아나는 못 봤겠지...? 괜히 찔려서 주변 살피며)
 
라이아나:...? 왜 그래? (잘 안 보였는지 별 생각 없는 듯 그냥 멍 때리는 중이었다…)
 
바스타르:...아니야. 아주 잘 되었으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럼 이제 옮겨담고, 식사하면 되겠네요.
 
마지막은 다소 어설프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요리에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바스타르:(끓어넘친 가스레인지는 대충 닦아두고 그릇에 이쁘게 옮겨 담는다. 조심조심...) ...기대해도 좋아, 라이아나. 이 정도면 대성공이지, 아무렴.
 
라이아나:아, 다했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복잡한 요리를 했구나, 하는 가벼운 생각도 든다.)
 
라이아나는 일어나선 식기를 두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는 조금 그랬나보죠.
 
라이아나:(수저 다 놓고는 눈 깜박) 근데, 요리 이름이 뭐야?
 
바스타르:(가만히 있어도 되는데...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질문에 말을 더듬는다. 생각을 하는 모양...) ...음. 요리 이름. ... ...이게, 그러니까... 다른 언어가 조금 섞여 있어서. 아마도...닭, 닭고기 국. 일거다.
 
라이아나:아하... 닭고기 국... (신기하네...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말 처음 보는 음식이네.) 근데 그럼 스튜랑 비슷한 거 아니야? (고개 갸웃.) 스튜가 치킨 올라간 스프... 같은 느낌이잖아. (???)
뭐어, 네가 선택한 이유는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눈 깜박 깜박.) 일단 앉아, 만드느라 고생 했어.
 
바스타르:이건 그대로 끓이고 간을 강하지 않게 해서 좋은...아무튼 그런 이야기가 써 있던데. 분명 좋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솔직히 듣고 보니 스튜와 비슷한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한 모양... 일단 앉는다.) ...아무튼 먹어봐. 하라는 대로 했으니 분명 괜찮을 거다.
 
라이아나:(시식은 해본 거지?) 으응, 고마워, 잘 먹을게. 너도 먹어. (포크 두개 잡아서 가볍게 슥슥... 살 발라내며 한 입 먹는다. 우물 우물. 몇 번 씹고, 삼켜낸다.) ... ...뭔가, 신기한 맛이네... 이런 저런 향이 엄청 배어있어... (물끄럼.) 뭐랄까, 정말 되게 건강한 맛. (하하. 맛없다는 건 아니고.)
 
바스타르:설마 너를 시식단으로 삼을까. (웃는 낯에서는 진심이자 장난이 느껴지는 듯 하다. 건강한 맛이라는 말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기도 하고...) 봐, 역시 스튜나 우리가 알던 음식과는 다르지? 건강한 맛 만큼 네가 더욱 건강해질 지도 모르지. 음...그랬으면 좋겠네. 앞으로도 이것만 해줘야 하나.
 
라이아나:혹시 모르지? (자신 역시도 장난스레 툭, 내뱉고는 마저 몇 번 먹었다.) 다르다는 건 인정하기는 하는데, 네가 자꾸 날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나 이미 건강하거든. 너보다도. 내가 너보다 힘 센 거 잊었나봐... (어이없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나보다 네 건강이 더 걱정이라니까.) 같은 것만 하지는 말고. 이거 꽤 복잡해보이기도 했고, 난 원래 많이 안 먹는다고 했잖아. (...) 이거 생각보다 크다고.
 
바스타르:나 참, 나를 뭘로 보고... (그래도 잘 먹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은지 표정은 잔뜩 풀려있다.) ...뭐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역시 이틀을 꼬박 샌 사람보다는 내가 건강하지 않겠어? 힘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15년 동안 단련한 것이 있는 법이지. (제법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여놓곤 걱정 말라는 말로 갈무리 한다. 피곤해보인다는 명목으로 이러고 있으나...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건 언제나 들던 마음이었으니.) 음. 그럼 다른 것도 찾아보면 더 나오겠지. 차 종류라던지, 제법 처음 보는 것들이 다양하게 있는 모양이라.
 
라이아나:방금 자고 일어나서 어느 정도 괜찮대도 그래. 난 오히려 네가 날 너무 과잉 보호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은데. (물끄러미 바라보다,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결국은 네가 나를 위해 하는 일들 중에서는 나쁜 거 할 일은 없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기 때문에...) 그래? 차라… 나중에 뭐 하나 사러 나가도 되겠네. 차는 돌아다니면서도 마실 수 있으니까. (음.) 커피도 사고… 슬슬 여름옷도 사야 하려나.
 
바스타르:...그래? 하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과잉 보호라도 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과잉 보호를 택할 것 같거든. (궁금하다면 네게 제일 먼저 해줄게.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하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여름... ...여름이라.) ...다음 겨울까지는 또 다시 새로운 시간이 생겼네. 차를 마시고, 여름옷을 사며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여름이 되면... 그래. 너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걸.
 
라이아나:그러니까, 나는 지킬 필요 없다고 입 아프게 말했던 것 같은데, 비타. 이왕이면 택하지 말고. (턱 괸 채 한 번 포크 휘적인다. 과보호가 필요한 나이도 아니고, 네게 지킴 받을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지키려고 들지 말았으면 하는데 들어주지를 않네, 늘.) 뭐, 겨울이 다가온다는... 반증이기도 하지. 봄도 끝물이고, 여름이 오는 거니까... (가볍게 툭, 툭...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든다.) …여기 바다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인세에는 확실이 있겠지만 여기는… 넓기도 하고 지리도 잘 모르다보니, 잘 될 지는 모르겠네. (픽 웃는다.)
 
바스타르:하여간. 이럴 때는 확실하게 누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알고 있어. 그런 건 택할 생각도 없고, 뭐...그런 류의 집착은 내 체질이 아니거든. (장난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하곤 어깨를 으쓱인다. 물론, 분명한 거짓이 섞여있을 이야기였지만.) ...하지만 이것 또한 자연의 뜻이지. 다른 말로는...시간의 흐름이라는 것. 겨울이 다시 다가온다고 하여도 그때까지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겨울만이 아니라 사계절 전부를 살아갔으면 한다, 라고 말한다면. ...역시 그건 힘든 부탁이라고 답할 건가? (아직 너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상, 나는 전과 같이 너를 대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 넓고 넓은 땅 위에 더 넓은 바다. 만약 없다면 괴물들은 참으로 불쌍한걸. 그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다니. (따라 픽 웃는다.) ...없다면 뭐... 아주 큰 폭포라도 우리의 바다로 삼을까 하고.
 
라이아나:그럼 내가 누나지 동생이겠어, 비타. (짧게 입가에 호선 그리고는 손 뻗어 머리를 가볍게 톡, 하고 두드린다. 부분적으로 거짓말인 건 알고 있지만, 넌 정말… 쓸데없이 고집이 센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결국엔 하고 말겠지. 그러니 더 말을 얹지 않았다. 그저, 네 말대로 흘러가게 둘 뿐이다. 자연의 섭리로. …허나 나 때문에, 내가 위험해서 네가 죽는 건 안돼. 나를 지키려다 죽지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나 역시 스스로 조심하고 살아갈 수밖에. …네가 희생을 자처하는 순간 나는 너를 미워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응. 너, 욕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거 알아? (묵묵히 네 말을 들으며 음식을 목 뒤로 몇 번 넘기고 나서 식기를 테이블 위로 내려둔다.)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마, 비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원하는 게 많지는 않아. (다른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 역시 명확히 느끼고 있지. 하지만 그게 내가 그 계절들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단지, 나는.) 응. 뭐어, 나도 제대로는 본 적 없지만. 인세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상 나도 마찬가지일지도. (여기서는 인간이든 괴물이든 똑같지. 식용아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이단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만, 그 외에는...) 나쁘지 않네. 굳이 폭포가 아니더라도... 호수도 괜찮을 것 같고. 숲 가운데 호수가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예쁠 것 같거든.
 
바스타르:그런 대답을 들으니 뭔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두 살 대신 받아갈 테니 어려져 볼래? 괜히 장난을 덧붙인다.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에선 묘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이...저 역시 과거의 어린날을 여전히 기억하는 몸인가 보지. 그리 생각한다. 방금까지 나눈 대화를 더하여, 사실 자신이 어떤 답을 남기던 라이아나는 제 진심을 알 것 같다는 것이 바스타르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묘한 거짓말을 택하는 건 역시 몰라주었으면 해서. 언제나 '희생'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제법 이기적이고 냉정한 삶을 살아왔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떠돌고 돌고...또 다시 돈다. 그럼에도 만일 내가 그런 선택을 하거든, 그건 희생이나 나의 목숨을 버린다는 어리석은 단어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 될 거야, 라이아나.) ...꼭 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음, 말하자면 소원 종이에 소원을 적는 것과 같은 '소망'에 가깝겠지. 하지만 네가 허락해준다면 욕심을 부려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물론, 이거 하나 만큼은 그닥 진심이 아니기에 진정성을 더하지 않는다. 그야 라이아나가 지금도 노력해주고 있음을 전혀 모를 리 없지 않는가. 삶을 신경 쓰고 있다, 살아갔으면 한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숨기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스타르는 영원토록 라이아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을 바랄 지도 모르지.) 그건, 좀 아쉬운 점이네. 인세에서라도 실컷 보고 왔다면 모를까...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말이야. ...역시, 네게 그리 흥미 있는 풍경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그렇다면 역시 이곳에서라도 보는 게 좋겠네. 그래, 그 말대로 호수라던지 말이야. (흠...짧게 고민하는 소리를 낸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끄적이는 모양은 숲이라도 상상하며 그려내는 것인지.) 숲에 있는 호수...그게 좋겠네. 미신 같은 이야기지만, 숲 속의 호수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온다는 귀여운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지.
 
라이아나:인정하고 말고가 어디있어, 이건 명백한 사실이거든? 됐어. 굳이 너보다 어려보일 생각도 없고. (이런 어이없는 무맥락 대화도 가끔 하면 재미있기는 하지. 이래저래 어렸을 적 생각도 나지만 꽤 오랜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여전히 그 때가 그립다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때는 너에게 거짓 한 점 없이, 솔직하고 늘 진심을 다했지. 너 역시 나에게 그리 해주었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떻지. 가끔은 서로를 위한 거짓말을 하고, 진심을 드러내면서도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아. 성장했음이 분명하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정말… 삶을 향해 나아가던 그 때와는 다르게, 죽음을 향해 뒤로 걷고 있는 게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희생이라는 단어가 달갑지 않았던 만큼 네 선택에 개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이더라도 나는 그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 같지. 네가 정말 그럴 작정으로 보이면,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하고 떠나버릴 것이라고. 여전히 그러하니, 선택과 판단은 너의 몫이 될 거야.) ...그래, 소원지는 열심히 걸어봐. 어쩌면 그 중 하나쯤은 이뤄질 지도 모르지. (간결하고 짧은 답. 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줄 만한,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단지 눈을 내리감아볼 뿐이다. 제 옆에 있는 이의 이뤄질지 모르는 소망을, 마음 속에 한 번은 품어보면서.) 아니, 보고 싶기는 했지만… 난 인세에 머물고 싶지 않았으니까. 괜히 그 풍경에 홀리기라도 할까봐 겁이 났지. (너희와 함께 돌아갈 날만을 고대했는데, 혹시나 그 찰나의 아름다움에 흔들리기라도 할까봐. 굳이 어딘가에 옮겨다니지 않고, 인간 관계를 만들지 않으며, 너희를 만나러 다니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나는, 인세에 적응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짧지 않은 15년 동안 익숙해져 버릴까봐 겁이나서.) ...요정 같은 귀여운 이야기를 아직 믿는 구나. 뭐, 괴물도 있는 마당에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나... (뜸.) ...따로 빌고 싶은 소원이라도 있는 거야?
 
바스타르:...쯧, 냉정하긴. 그래, 그럼 인심 써서 동갑 정도로. (분명 지금까지도 적잖은 순간의 평화를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알맹이도 고민도 없이 나누는 아무렇지 않은 대화는 왜이리 오랜만으로 느껴지는 건지. 역시 완전히 어른이 되어 어린 마음을 떠나보낸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 한 편으론 안심을 더한다. 과거를 살아가는 너를 거들어 올릴 생각을 했는데, 나 역시 과거에 머물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니...참으로 웃기기도 하지. 그럼에도 우리는 역시 어른이 되었다. 삶을 이야기 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죽음을 향해서 함께 걸어왔다. 있지, 라이아나. 너는. ...너는 내가 희생을 택하면 나를 위해 희생을 택할 만큼 나의 삶을 신경 써주고 있는 건가? 너는... 정말로 그런 걸 바라게 된 거야?) ...그리 말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 장씩 열심히 써서 걸고 있지. 그래, 너에게 말이다. 내가 말하는 소망은 다 네게 써서 걸고 있는 소원 종이 아니겠나 싶다만. (...역시 이뤄달라는 뜻은 아니고. 짧게 덧붙인다. 이뤄주길 바란 적도, 이뤄달라 간청할 생각도 아닌데...그럼에도 매일매일 꾸준하게도 하고 있다. 이뤄주는 건 힘이 들지만, 들어주는 건 힘이 들지 않는다고들 하던가. 혹시 몰라서. ...내가 붙인 종이 중에 네 마음에 드는 게 있을지 혹시 몰라서.) 홀리고 싶지 않아서라. ...멋진 이유네. 너에게선 처음 듣는 답인 것 같거든. 그 장소가 인세가 아닌 이곳이라 하여도...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 ...나는 홀려도 괜찮을 것 같거든. (자신이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 같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구태여 말하자면 네가 말한 것과 일치하겠지. 나도 그것을 바랐기에 지난 날 동안 그곳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인세를 벗어난 무언가...너와 함께 하는 길에서 홀릴 일이 있거든,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오는 건 왜 인지.) ...이왕이면 동심을 품고 살아가려고 노력했거든. 뭐, 물론 내 관심사는 요정보단 소원 쪽이야. (뜸 들이는 모습을 보며 피식, 장난스럽게 웃는다.) ...궁금하면 맞춰볼래? 내 소원. 맞추면...그래. 너의 소원 하나 들어줄게.
 
라이아나:넌 어떻게 해도 나랑 동갑도, 나보다 연상도 안 되거든. 억울하면 2년 빨리 태어났어야지. (그런 말.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여전해도, 당장 지금 느끼는 평화가 제법 안정적이라, 요 근래에는 그런 생각은 조금 덜 했던가. 미래와 과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과거를 선택 하겠지만, 머물러 있는 현재가 마냥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내면의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다 해도 내가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그럼에도 네가 할 법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자면, 아니. 나는 희생하지 않아. 방관 하던 내가 한 순 간 너를 돕고, 네게 실망하며 너를 버리고 갈 뿐인 거다. 그토록 바라지 않는다 이야기했던 일을 네가 해내고야 만다면, 나는… 그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야. 네가 절대 바라지 않을 선택을. 너를 홀로 두고, 나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버리겠지. 네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바보같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 모든 일련의 생각들이, 나의 찰나의 행동이, 모두.) 나한테 소원 빌지 말고 널 위한 소원을 좀 빌어. 그리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고 했잖아. (어린 애처럼 고집도 세, 이럴 때는. 무겁네, 네가 바라는 소망들은 한결같이, 모두.)
…글쎄. 이곳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 한 번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도, 이곳에는 미련을 남긴 적이 없거든. 우리가 본 곳은 하우스 뿐이라고 해도,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까. (고향... 이려나. 지금까지 돌아다니며 꽤 많은 걸 보기도 했지. 그래도 마음에 차는 곳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만한 곳이 있다면… 내가 아마, 계속 그곳에 머물고자 하겠지…. (그 풍경이, 내가 보는 것이 아름답다 느낄 수 있을 만한 게 있다면, 죽음 말고도 다른 것이 존재한다면, 언젠가 삶을 바라게 될 지도 몰라.) 내가 네게 바라는 소원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원권은 가지고 있을게. 맞춘다면.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직 오후이고, 그다지 어둡지 않은 데도 찰나 너와 나, 세상에 둘 뿐인 것 마냥 사방이 검은 어딘가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잠깐의 정적이. 어쩐지 네 소원이, 나에게 달려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살아줬으면 좋겠어."
"네가 삶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
"혼자 두지 않을 테니 포기하지마."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이아나:…생각나는 건, 이 정도인데. (네가 지겹도록 했을 말들.) 어때.
 
바스타르:...글쎄. 어린 취급을 받는 건 썩 나쁘지 않지만, 역시 그보단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거든. (나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리 덧붙인다. 부자연스럽게 이어진 최근의 일들은 모두 제가 기억하는 것 중 흐릿한 것이 있기에 그런 것일 거라고, 그렇게 믿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이런 평화가 계속 되길 바라는 마음, 무언가 달라진 것 같지만 그래도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스스로 어느 쪽이 진실 된 마음일지 조차 모르면서도 지금의 평화를 계속 바란다. 그렇다면 이것이 다시 깨어지는 순간은...너와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할 때가 될까. 그런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내가 만일 희생을 택한다면, 너와 나는 더 이상 지금처럼 지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하고.) ...아마 그럴 일은 없어. 나는 네가 주는 죽음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까. (...깊은 생각을 가득 채우는 것도 잠시, 이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림을 남긴다. 혹여, 그 결과로 네가 떠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더하여... 나는 결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 ...아마도, 말이야.) 늘상 이야기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이미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많이 이루었어. 아니, 정확히는 바라는 것을 말이야. 후회할 만한 일을 더 이상 만들지도 않았고, 너의 손을 놓고 뒤늦게 찾아다니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도 않았지. ...나 역시 바라는 것이 많지 않은 거야. 뭐, 당연하지만- 네게 들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고. 만일 나를 위한 소원이 너와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라면 들어줄 의향은 있고? (진담으로 받아들이진 말라는 둥 가벼운 태도를 보인다. 어차피 자신의 소원이나 소망 같은 건 네게 한없이 무거울 것임을 잘 알기에.)
그래도 괜찮잖아. 어차피 풍경이나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다니는 관광객도 아닌 것을, 그런 건 다니다 보면 한 곳 정도는 생기겠지. (아니어도...상관없고. 가볍게 어깨 으쓱인다.) 만일 발견하게 된다면...그래. 그 말대로 계속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안정적인 곳이던, 그렇지 못한 곳이던...네가 마음에 들어 한다면 기꺼이 따를 테니. (당장 삶을 바라달라는 말은 역시나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 조차도 언젠가의 가능성인 것을, 그리고 내 작은 소망인 것을... 그래도 이왕이면 너의 모든 것이 종장을 맞이하기 전에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말, 그 한마디는 더한다. 매일 아침을 아름답다 생각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삶을...너 또한 느껴보았으면 해서.) ...제법 자신 있는 모양이네. 좋아, 들어볼까?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아 마주 응시한다. 네가 고민하며 그 네 가지 문장을 담는 사이, 그 간극과 고요는 얼마나 길고도 무겁던가. 그야... 너라면 모르지 않을 거야, 라이아나.)
...내가 이렇게 쉬운 사람은 아닐 텐데 말이야. 너는 역시 잘 알고 있을 것 같았어.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야. 너는...만일 이 중에서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소원'으로서 존재한다면,
...무엇을 가장 바랐으면 해?
 
라이아나: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 않나? 너는 이미 그런 사람인데, 뭘 더 바라고 있는 건지… 가끔 모르겠다니까. (물끄러미 바라보다, 의아한 듯하 표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분명 평화롭지만, 모종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로의 마음을 꿰차고 있기에 안정될 수는 없는 거려나. 그래도… 괜찮지. 나쁘지 않지. 지금의 일상이, 겨울이 지나간 봄이 평화롭잖아. 그러니, 나는… 섣불리 그 때를 걱정하고 싶진 않아. 지금만 생각해도 바쁘니까.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평행선. 끝과 가는 길은 같으나, 서로의 방식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자연사나 사고사라도 하면 어쩌려고? 괴물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죽이고 가면. (죽음은 받아들이는 게 좋지, 비타. 네가 자주 했던 이야기가 있잖아. 죽음은 자연의 섭리. 받아들여야 하는 것. 부검의로 수많은 죽음, 시체들을 봐왔다. 총살, 자살, 격살, 책살, 척살, 소살…네가 그 많은 것들을 피해갈 수 있을까? 자신 역시도 죽을 것이라면 그 끝에 자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없을 때'를 가정하게 되는 게, 요즘따라 잦아졌다. 내가 잘 때, 정신이 없을 때, 혹은 잠시 자리를 피했을 때, 누군가 네 목숨을 노리거나 네가 갑자기 쓰러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 때 따르는 죽음은 불가피하니까. …이 정도 까지였던가? 내가 너에게 넘겨받은 숨이, 원래도 그 정도의 크기를, 가치를, 의미를 지녔던가? 약속했던 그 때와는 다른 것 같은 기분. …맹목. 그래, 맹목같다.) 무엇인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비타. 내가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음, 뭐. 지금처럼 요리는 네가 할 테니 나보고 가만이 있으라는 류의 이야기 정도라면야. (가볍게 툭, 건네는 말.)
(어느 곳이 아름다울까. 사람들은 보통 어느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 하는가? 일반적인, 보편적인 곳에 자꾸 자신을 끼워맞추려 하다보면,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져 자꾸 내던지게 된다.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한 이유. 내 생각으로는 끝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나의 생각, 언젠가 그걸 깨부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 직접 보고, 느끼며, 내 입으로 그 단어를 내뱉을 수 있게 될 때… 그때를, 너와 내가 바라며 걷고 있는 거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군주 쯤 되고 네가 귀족 쯤 되는 것 같은 기분인데, 비타. (짧게 웃음을 터트리다 만다. 그런 곳을 정말 발견하게 된다면 내가 눈을 감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 될 때… 다른 느낌이 들까. 지금처럼 다시 심연으로 빠져들고자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랑 있던 시간이 꽤 기니까. 모르는 게 이상하지. (덤덤히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질문? 하고 작게 반문했다. 네 말이 마쳐지고 나서는,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면서 느릿하게 눈을 꿈벅인다. 일초, 이초, 삼초… 시계가 째깍이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진다. 자리에서 일어나선, 네 앞에 선다.) 바라지마. …비타. (네 얼굴을 조심스레 잡고 이마에 가볍게 제 이마를 맞댄다.) 무엇도 이루어줄 수 있다 당당하게 이야기해줄 수 없어. (이야기했지. 라이아나는, 한 번쯤 상대가 가진 마음을 가볍게 꺾는다고….) 네 소원이야. 네 소원을 나에게 어떤 것을 바라느냐 묻지마.
…그저 네가 간절히 바란다면, 바라고 있어. 언젠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게 기약없는 기다림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바스타르:이것도 결국 내 욕심이 아니겠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더욱 믿음직스럽고 강한 사람이 되어 지탱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 ...그것 뿐이지. (네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의아한 듯한 표정에는 미묘한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우리는 분명 많은 것을 해오고, 함께 걸어오고...순간의 평화는 끝도 없이 우리를 찾아왔는데, 언젠가 맞을 그 미래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서. ...그렇기에 더욱 그랬을 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지금의 이 색다른 평화가 더욱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리가 그런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 ...나는 그렇게 생각해, 라이아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 말대로야.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그 운명의 뜻대로. 운명론이나 정해진 무언가에 대해 받아들이라는 이론은 믿지 않지만, 아주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거든.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건,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는 것. 그것 뿐이야. (너에게 준 나의 숨과 생명의 끝은 나의 선택이기에 피할 수 있다 해도 피하지 않는다. 그래, 네가 내 삶을 응원하게 되었다 해도- 네가 바라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 다면 나도 다시 그 곁을 걸어갈 뿐이야. 네가 수도 없이 많이 봐 왔을 그 죽음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그 이전에 삶으로서 너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이 될 수 있겠지만...역시 아직 거기까지는 바랄 생각이 없으니.)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면...뭐어, 그래. 그런 사소한 것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하네. 이런 거라도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퍽 웃긴 상황이 따로 없군.
(라이아나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늘 아름다운 것을 찾았을 지도 모르겠으나, 네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그토록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그래, 모르지 않아. 함께 해온 만큼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그렇기에 너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도, 결국엔 네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찾길 바란다. 네가 직접...찾길 원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무엇이던, 나는 그 끝까지... ...끝까지..¿) ...원한다면 종도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어떤가 싶거든. 어때, 관심 있어? (당연한 우스갯소리. 짧게 터트리는 웃음에 대한 답일 뿐이다. 네가 찾을 일말의 빛이 너의 심연을 밝혀 아침의 커튼을 열어줄 크고 환한 빛이면 좋겠구나.)
...그래. 너는,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사람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잠시간의 침묵은 참 길고도 짧아서... 그 공허를 채우는 시곗바늘의 소리조차 우리의 답을 기다리는 박자처럼만 느껴진다. 고요한 가운데 퍼지는 숨소리가 가까워 질때면, 네가 내 앞에 다가와 있더라.) ... (바라지 말라는 말 속에 들은 무게가 어찌나 무겁던지, 이내 마주하는 이마에서 저보다 낮은 체온이 느껴진다.) ...내 소원을 물었어? 정말로 그게 궁금한 거야..?
(들고 있던 고개를 조금 더 들어 한쪽 팔을 올려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시야일지라도, 시선만은 분명 당신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내게 중요한 건 시간이나 세월 같은 게 아니야. 난 언제나 기다림을 각오하고 있어.
...알겠어? 라이아나. 나는- 네가 이럴 수록 네가 말한 그 모든 걸 원하게 되어 버린다고.\
 
라이아나:(라이아나는 다정을 위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해서 바스타르에게 침묵할 때가 제법 있었더라지. 너를 위한 침묵, 비밀, 그리고 진실. 라이아나는 혼자 머릿 속에서 온갖 생각을 다하는 버릇이 있다. 너라면 알고 있겠지만, 언젠가 숨겨놓았을 때, 너희가 진실을 알고 떠나갈까봐, 라고 했었고, 진심을 말했을 때는 같이 죽어달라는 이야기를 같이 있어달라는 말로 포장하였다. 라이아나에게 있어 진심은 드러나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이 여행길에서도 그건 별반 다르지 않았다지. 속에 꾹 꾹 올라오는 충동들을 참아내며 바스타르의 웃는 낯을 마주할 때면 저 역시 한 번 호선을 그려보고, 함께 걸을 때 무언가를 바라볼 때면 같이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런 평화가 나쁘지 않아 안주할까 싶다가도, 무료하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어 계속 걷기를 반복하지.) 그래, 그러니까… 나에게 죽는 것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피해보겠다는 이야기네. (분명 처음에는, 단지 죽는 모습을 보는 것에 그쳤던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너의 죽음을, 너는 나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마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이 달라지고 있다. 희미하게, 하지만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단순히 죽음 하나로 시작된 약속이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기쁨, 행복, 그 모든 것이 자신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느끼는 라이아나는 자신이 들어줄 수 없는 바스타르의 소원이자 소망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소한 거랑 방금 말한 것처럼 심오한 건 이야기가 다르니까. 사소한 것도 못 들어줄 만큼 내가 쪼잔한 인간은 아니거든. (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너는 나의 곁에 함께 있어줄까. 그게, 네가 바라는 것인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응원하며, 내가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그 끝에 맺어질 결실을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직접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고, 난 결국 네게 칼을 들이밀게 됐고…. 입술을 꾹 깨문다. 그래, 생각 회로가 돌아가는 게 늘 이런 꼬라지지. 잊을 만 하면 생각나고, 지울만 하면 되새기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해, 관심 없다는 거 알면서 이러는 거지? (힐끗 쳐다보고는 짐짓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한다. 입을 한 번 달싹이다 꾹, 다물었다. 사실 지금, 그것도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긴 한다. 결국 네 목줄을 쥔 것은 내가 된 것 같으니…. 빛으로 향하는 건 두려워도, 그 빛을 바라볼 때만큼은 늘 따스했고, 동경하게 되니까… 언젠가 심연을 한껏 젖히게 된다면 그 때는… 지금의 나도 녹아내릴까….)
너 역시 나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지, 비타. (짧은 답을 내어준 후, 내가 이어 했던 말들은 분명 네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걸 어렵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네 기대감이 높아질 수록, 바라는 게 많아질수록 나는 그것이 두려울 뿐이니까. 무겁게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네게 어떻게 닿았을지는 몰라도 너와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은 결국, 삶과 죽음이다. 우리는… 찰나밖에 공존할 수 없어.) ……비타, 제발.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가까워지는 심적 거리. 저를 마주하는 동시에 머리에 닿는 손길에 눈을 내리감아버리고 만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록 너는 내가 이뤄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거짓을 내뱉는대도 너는 그것을 믿어버리겠지. 나는,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결국 되새겨버리고 말아.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했잖아. 나의 유일도 필요없다고 내쳤잖아. 평생은 바랄지도 모른다 했지. 너의 평생은 필시 내가 받아가겠지만,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도 없어.)
너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라이아나는 바스타르에게 유약했다. 이제는 거짓도 쉽게 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단지 침묵을 배워, 숨겨내고 말았다.)
네가 그것들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금 더, 이룰 수 있는 무언가를 네가 바랐으면 좋겠어.
 
라이아나:(네 팔을 잡아 내리고는 고개를 뒤로 빼내며 거리를 유지한다. 계속, 계속 이야기했잖아. 네 소원이 나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어째서 늘 그런 것들을 바라는 거야….
 
바스타르:...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알아. (아마도. 그 세 글자만은 숨겼다. 라이아나가 제 앞에서 침묵을 택할 때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여지껏 잘 모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에는...그래. 분명 우리에게 숨기는 것이 있었지. 그때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직접 이야기해주는 그 순간까지도 몰랐다. 그러니, 어쩌면 그때와 같을 지도 몰라. 너는 평생 내게 모든 진실과 진심을 털어놓을 수는 없음을. 나는 끝까지 네가 진심을 털어놓길 바랄 것이고, 너는 끝까지 그 침묵을 깨지 않겠지. 무얼 위해... 그것이 부디 나를 위해, 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또 간절히.) ...그런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한 부류지. 죽음의 순간을 고대하거나, 혹은 삶을 포기한 인간.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부류까지는 아니다, 라이아나. 잘 알겠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야. 그 무엇도 포기한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다른 것들에게 죽을 생각은 없고. (그러니까, 그 요약이 정확하다는 말이다. 너에게 죽는 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니 괜찮고, 다른 이들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는 말. 분명 처음에는 그저 꿈이나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것인데...지금은 마치 내 꿈처럼 원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 죽음을 원하는 것과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꿈을 원하는 것은 결이 다른 법이지. 이 길의 끝이 변질되어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면 그것 또한 좋겠지만...역시. 난 이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걸.) 사람의 행복이나 희망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라지. 행복까진 아니어도, 네가 사소한 바람이나마 들어준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까 하고. (...)
...알고 있었지. 자처해서 한다 해도 네가 거절할 것 같았거든. 아닌가? (언제부터 이런 것을 바라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우스에서의 9년, 나는 그 누구보다 꿈이 많은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사랑했으며...인세에서의 15년, 나는 그 세상을 불신하며 오직 사랑하는 이들의 거름이 되기 위해 그 세월을 이용했다. 분명 그것으로 다 된 일일 텐데...어째서 이토록 바라고자 하는 것이 새롭게 생겨버렸는지. 네가 보는 만큼 내가 지금도 꿈 많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인간일지. ...아니. 네 곁에서 응원하고 그 끝을 함께 가는 것으로 내 자유가 새롭게 성립되고 있는 건지. 결국 이렇게 무거운 짐만 쌓아주는 건 아닌지 이따금씩 생각 안 해본 적 없으나...) ...그래도, 그 만큼... . 그래, 그 만큼 각오가 있다는 뜻 정도로 받아들여. (그 이상의 말은 얹지 않고 그것만으로 답을 낸다. 편지를 받았을 때 무엇이라 적혀 있었던가... 그때부터 느껴온 묘한 감각은 역시 네가 '그 만큼 진심을 내게 보여줄까'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또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전부 비춰 밝혀낼 정도의 빛이 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쓴 맛이 감돈다.)
분명히 하자면... 그렇길 바랐어, 라이아나. 가장은 아니더라도... 너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 (결국 이루었는가? 나는 아직도 너에 대해 이 만큼이나 모르는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네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무거운 짐을 쥐여주는 것만 같은데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서... . 삶이란 이렇게나 길고도 복잡한 것이었던가? 그 짧은 생이 주는 것이 무어라고, 우리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이토록 씁쓸한 시선을 마주해야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어. 네가 그렇게 이야기 해도... 이 이상으로 날 위한 것을 바라라고 하면 무얼 바라야 하지? 난 이미 차고 넘치게 많은 것을 이루었다 생각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네가 아무리 내게 곁을 내어주어도 너는 나를 밀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 무엇이 두려운지 몰라도 너는 끝없이 밀어내고...또 피한다. 그런 너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나는 또 그 끝을 쫓고야 만다.)
...그럼에도 숨기는 것이 있잖아.
(거짓말을 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스타르는 알고 있다. 저를 위한 것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숨기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묻지 않는 이유라면 자신은 라이아나가 그 무엇을 숨겨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줄 자신이 있으니까.)
이루고 싶고, 이룰 수 있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지. 그래, 네 말대로... 내가 그런 것을 바랐다면.
 
바스타르:(저와 거리를 유지하는 당신을 보며 가만 웃는다. 밝은 웃음도, 순수함이 서린 웃음도 아닌...언젠가 우리가 완전히 틀어져버릴 것만 같은 때 지었던 똑같은 표정으로. 유지하는 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네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 그렇잖아?
 
라이아나:그래,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내가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을 바라지 말라는 거야. 차라리 기적을 바래.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은 달라.
(숨기는 게 많은 이들은 늘 말의 꼬리가 긴 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 내지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당신이 알까. 나는 늘 속으로 삼켜내. 네가 바라는 것이라 이야기해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겨울 날에, 라이아나가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나. 누군가가 죽음을 바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삶을 바라고, 대부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살아남고 싶어하는데, 당신은 아니다. 정 반대의 것을 이야기한다. 타인을 위해, 나를 위해, 죽어줄 것이다 이야기하는 사람. …상식을 벗어난 것을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지. 교차하는 시선, 쓴 웃음 서린 표정과 간절함에서 비롯된 미간 구긴 표정이, 서로를 마주한다. 혹시나 잊었을까 이야기하는데, 당신 앞에 있는 라이아나라는 사람 역시.)
네 삶은, 내가 없어도 되잖아. 그래도 흘러갈 수 있는 거잖아. …네가 이 길을 선택했다는 걸 알아. 네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해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비타, 나는… 네 선택과 소원에 구태여 내가 있지 않았으면 해.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모르는 멍청한 작자라서. 아니, 어쩌며 이야기한다 해도 납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니, 이야기해줄게. 너의 소원에서 나를 지우면 무엇이 남아? 너의 남은 일생에서 나를 지우면, 무엇이 남지? 네가 여기서 '없다'라고 답하는 순간, 결국 네 모든 것에 내가 관여하는 게 되어버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반대로 생각해봐. 너는 내가 그렇다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바스타르:...네가 보기엔 지나치게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의 말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만,
그게 바로 내게 주어진 '삶'인 거야.
불가능을 바라지 말고 기적을 바라라고... 나는 불가능이 기적처럼 이뤄지길 바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는 잘 아는 거 아니였어? 정말로 이상한, 무어라 부를 수 없는 삶은 스스로 택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삶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그래, 알고 있어. (그 말의 끝을, 그 이야기의 끝을 쫓아가면 그건 결국 네가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자 다정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도. 나는 결코 그것을 따를 수 없다. 이해하지 못해서, 이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생각되는 기적이라서도 아니야. ...내가 바라는 것이 달라지면, 결국... ... . 머릿속에서 조차 생각하던 것을 거둔다. 서로를 위하는 다정이나 애정이 이토록 쓰고 아플 줄이야. 그런 생각만이 자리하고 만다. 너에게 있어 나는 상식을 벗어난, 죽음 조차 사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바보같고 멍청한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지을 수 있 표정과 시선으로, 간절함만이 남은 제 앞의 검은 새를 바라본다.)
...하우스가 무너지던 그 날, 나는 아주 잠시 그 속에서 함께 끝을 맞이할까 고민도 했었어. 가족들과의 약속, 함께 하기로 한 약속...그래. 모두 중요했지. 하지만, 내가 15년 전에 정한 내 스스로의 일은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어야 했거든. 죽음을 바랐다거나, 이제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었어. 단지, 내 꿈은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까.
라이아나,
이것을 선택과 소원이라 생각하지 마. 내가 단어들을 택한 것은 단지 그게 더 가볍게 와닿길 바랐기 때문이야.
 
바스타르:...난 그날 너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다시 한 번 세운 거라고, 이렇게 이야기 해줘야 해?
(제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자각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진심이라 하여도 결국 당신에겐 닿다 꺾일 말일 뿐인데, 그럼에도 이런 말을 택하고 말아서.)
또 다시, 나의 답을 알면서도 질문하는 구나.
...애정하는 라이아나, 나는 네 생각 이상으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이야.
나는 납득할 수 없다고 답할 것을 너는 분명 알고 있을 거야. 동시에, 내 남은 일생에서 너를 지우면 무엇이 남는지에 대해서도.
너는 충분히 노력해 주었어. 차고 넘칠 만큼...많이. 그러니 이제 괜찮아.
 
바스타르:...나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네게 있어 나는 그 정도의 존재로 충분하니까.
 
라이아나:……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렇다면 너도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마, 비타.
서로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지,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이 뒤섞여서 각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더 이해하려고도, 깊이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을 거야. 보이는 것만 볼게. 너도 그렇게 해.
 
바스타르:... ...가능하다면,...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그리 약속하고 싶어.
이미 차고 넘치게 복잡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네가 편해질 수 있도록... 나도 그걸 바라.
...하지만, 라이아나.
미안하다.
...나는 그럴 수 없어. 내겐 이 모든 게 복잡하고 어려운 무언가가 아니기에... ...
또 다시 너에게만 그리 해달라고 할 수밖에 없어.
 
라이아나:…비타. 나에게만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난 앞으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어.
나는 너에게 깊이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지.
나 역시 너에게 똑같은 것을 제안했을 뿐이야.
그런데… 그렇데 답한다면, 내 대답 역시 할 수 없다야.
…공정하지 못해.
 
바스타르:...그래, 알고 있어. 내가 지금 공정하지 못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너의 다정과 애정이 나를 얼마나 많이 고려해주고...이해해주려 노력해왔는지...그것 또한 알고 있어.
...그런 네게,
내가 어찌... 이런 것까지 이해하고 생각해달라고 할 수 있어? ...라이아나. 내가 어찌, 네게... 내 삶에 대해 생각해주는 네게-
그런 것까지 생각해 달라고 할 수가 있겠어.
네 삶의 일부가 되어도 좋으니 네가 이해하라고, 그런 말을... 이렇게까지 계속 생각해주는 네게
 
바스타르:...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라이아나:...비타, 나 역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아. 너도 알고 있지 않아?
내가 진짜, 도망가야 만족할래…? (한 발, 앞으로 다가가서는 탁자에 손을 올린 채 입술을 꾹, 깨문다.)
아니잖아. 네가 바라는 게 그런 거 아니라는 거, 나도 알고 있다고.
나에겐 한 발 양보하라 이야기하면서 너는 계속 욕심내겠다는 거, 정말 비겁해.
내가 네 삶을 생각하는 건, 지금껏 네가 준 것을 돌려주고 싶을 뿐이야.
그걸 알아야지. 내가 지금 내어주는 다정은…, 네가 나에게 준 다정이잖아.
 
바스타르:...알아. 네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히려 전보다 한없이 작아졌음을...
그때 내게 했던 말과 반대의 것을 요구하려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준 만큼 네가 내게 주는 애정과 다정 또한 너무나도 커서... .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엔 이쪽에서 한 발, 다가간다. 다시 거리가 가까워져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러곤 힘을 주지 않은 채 어깨에 고개 숙여 기댄다.)
...이제는 네가 사라지는 게 싫어져 버린,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이라서.
...네가 내게 그런 걸 바라지 않았으면 하는,
 
바스타르:네 말대로 바보라서, 라이아나.
 
라이아나:(이제는 서로 알고 있을 거다. 각자가 요구하는 것이, 서로 내어주는 다정과 애정이… 얼마나, 서로에게 독이 되고 있는지. 얼마나 큰 것인지, 상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라는 걸. 어깨에 기대어진 무게감을 느끼다, 네 어깨를 꾹, 잡는다.)
…비타, 내가 보기에는.
우리는 같이 있으면 안 될 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한 번, 등으로 팔을 뻗어 가볍게 도닥인다. 알고 있어,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는 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를 않아.)
너는 내 다정조차 제대로 받아주질 않잖아. 나는, 너에게 너무 많은 걸 받고 있는데.
왜… 항상 우린 이렇게까지 다를까, 비타.
 
바스타르:...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겠어.
나는 네게, 네가 바라는 것 만을 따라가라고 해줄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젠 네가 나에게 다른 것을 바라려 해. 더욱 쉬운 것이 분명한데... ...나에겐 너무 어렵다, 라이아나.
(서로의 애정이 독이 되고...그 다정이 발목을 잡고. ,,,정말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분명 이런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불리우기도 하던데, 왜 우리는 여기에서 아픔을 나누고 있는 것인지.)
(잡히는 어깨, 이내 토닥이는 감각을 따라...결국 우리는 서로가 미워서 이러는 것은 아님을, 분명 알고 있다. 그저 가만히... 저 역시 한 손을 뻗어 같이 토닥여주기를...)
...열심히 내어준 결론인데, 미안해.
언젠가 이야기 했었지. 내가 따를 수 없는 너의 뜻이라면...
 
바스타르: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다르기에 공존할 수 있다는 그런 말은 이제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다름도, 나는 역시 피하기보단 이해하고 싶은 것 같다.
...이것이 내 진짜 소원.
 
라이아나:…그래놓고 나에게 바란 게 뭐였어? 비타 네가, 방금 나에게 요구한 게 뭐였는데. 거리두기야.
(등을 쓸어내던 손은 중력을 타고 떨어진다. 목소리에 희미한 떨림이 생겼다. 기껏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까지 다가와놓고, 네가 나에게 내린 결론이… '그 정도의 존재로 충분'이라며.)
그렇다면 나 역시 다가갈 생각이 없어. 너는 나를 이해하더라도,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정도의 존재로 충분하다면, 난 네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이 없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에게 어디까지 의지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지금껏 널 믿고 의지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너는 늘 진심만을, 진실만을 이야기해왔으니까. 나에게 숨기는 것 하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너에게 내가 숨긴 것들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한 거야.
…애초부터 피할 생각은 없었다는 거 알아. 너는 그런 애니까. 내가 바라는 죽음조차도 이해하려는 애니까….
 
라이아나:너와 내가 가진 '다름'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겠지. …아직 나는, 네가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네가 거리 두려고 한다면, 나 역시 멈추고 뒷걸음질 칠 뿐이야, 비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는 건… 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러니 부탁을 취소하든, 나를 포기를 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내가 내줄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없어.
 
바스타르:이기적인 선택지를 내밀었다는 사실, 알고 있으니까. ...그래 맞아.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지만...너는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다 부디 힘들어하지 않길 바랐어.
(가끔은 이런 생각...서로를 위한 선택지나 생각 따위가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한다더라. 그걸 몰랐던 바스타르는 지나치게 어리석었을 지도 모른다. 소중한 이가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서 거리두기를 제안 하다니. 막상 그 정도 존재가 된다면 씁쓸해 할 것을, 지금 와서 하는 뒤늦은 후회의 일종이기도 하다.)
...처음에도 분명 같은 생각으로 시작했었어. 나는, 너에게 그 정도 존재가 되어 그저 너의 기억 속...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 생각 했던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자연스럽게 증명해주었지.
...그래. 그러니 인정할게.
나는 네가 힘들거든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실을. ...결코 그런 사이가 된다면 서운해하지 않을 자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에게만은,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바스타르: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나 또한 조금이나마 네게 의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부, 인정할게.
...그러니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어. 그래... 너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
이대로 모든 것이 멀어져 바스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싶지 않아.
너에게, 내 이런 소원이나 마음까지 이해해 달라고. ...그런 부탁을-
감히 해도 되는 걸까, 라이아나.
 
라이아나:…그러니까, 시작부터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될 걸, 왜 그렇게 빙빙 돌아가냐고.
내가 그렇게 이해 안 해줄 것 같았어? 못 받아줄 것 같았냐고… …죽어달라는 부탁까지, 평생 못 이룰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그런 것 정도,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 못 내어줄 것 같았어?
(그리 많지 않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길지 않을 거라 장담한 여행길, 길어봐야 몇 년. 짧다면 당장 내일에도 끝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나는.)
…내 남은 시간 네게 주는 건 기꺼워. 네가 나에게 내어준 것처럼.
그러니, 아까 이야기한 대로 말하자면…… (잠시 뜸 들이다가, 한 발 물러나며 시선 맞춘다.) 유일이나 영원 같은 건 없다해도, 그 짧은 평생 정도야 줄 수 있을 거라고.
 
바스타르:아까도 이야기 했지. 이미 네가 내게 얼마나 많은 노력을 보여주고, 생각해주려 하는 지 알고 있다고.
...그래서 더욱이 바라고 싶지 않았어.
네가 나의 삶을 바라여도, 나의 온전한 자유...네가 포함되지 않는 소원이나 삶을 바라라고 하여도...
나는 그걸 약속해줄 수 없으니까.
그리고... 네가 나를 잘 알듯, 너 또한 내게 그 시간을 내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알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하여도 우리에겐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 전부인 것을, 어찌 그리 쉽게 요구할 수가 있을까. 결국 그것 또한 너의 숨이고 삶이기에 나는 감히 요구할 자신이 없었던 것을... 너는 기어코...,)
 
바스타르:...너는 나에게 그것을 주는 구나. (하하...작고도 무미건조한 소리를 흘린다. 처음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준다 했는데, 이젠 달라고 하는 제 자신이 웃기기라도 한지.)
...유일이나 영원은...상상만큼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 하지만,
사라지지만 말아줄래. 내게...너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매일을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내 앞에 있는 라이아나 네게...부탁할게.
 
서로에게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라이아나는 바스타르에게 죽음을,
 
바스타르는 라이아나에게 삶을.
 
분명, 그렇게 시작된 여행길이었죠.
 
한 계절, 두 계절이 지나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어봤고,
 
그만큼 또 많은 길들을 함께 걸어본, 가족이자 서로의 이해자로.
 
이제는 다소 다른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의문 한 두개, 혹은 비밀 한 두개.
 
서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이 존재할 것이고,
 
언젠가는 밝혀지게 될 것들이 있겠죠.
 
오늘도 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밤하늘에 별은 가득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었을 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거리에 다시금 존재합니다.
 
...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눈을 뜨고, 상대를 마주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내비치면서.
 
산다는 건 이렇게 아무렇지 않고, 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일 테죠. 괜히 침대 시트 가장자리를 손으로 다듬고 침대에 눕습니다.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이틀 전의 일이 바로 조금 전의 일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저 멀리 사라진 것처럼 막연합니다.
 
마치 어딘가로 잘못 날려 보이지 않는 지대에 떨어진 야구공같이요.
 
얼른 잠들어야 이 느낌도 지워질 텐데…
 
앗.
 
어느 새 곁으로 다가온 라이아나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입술만 달싹입니다.
 
하지만 결국 말은 이어지지 않고,
 
그대로 질문도 대답도 거치지 않은 채 옆 자리에 눕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옅은 밤빛에 노란 꽃만이 푸르게 반사되고 있습니다.
 
이 꽃도 분명 눈 깜짝할 사이에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열심히 가꾸고 아껴준다면 조금 더 살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생명이란 그렇습니다.
 
작고 약하며, 한 순간에 바스라질 수 있는 존재.
 
그럼에도 라이아나가 당신의 손을 잡아 오네요.
 
라이아나:…비타.
내일도 나와 같이 있어 줘.
 
바스타르:...라이아나...?
...
당연한 것을.
 
이 순간, 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자신 앞에서 최대한 평소의 모습처럼 있으려고 하는,
 
애써 생각을 지워보며 곁에 다가오는 라이아나.
 
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아끼고 또 애정하는지.
 
사실, 그게 꼭 아름답고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물론 나쁘고 추하지도 않죠.
 
그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당신의 심장 속을 스치고 가는 듯 합니다.
 
불안함, 미안함, 안도감, 피곤한,
 
그리고 기쁨, 슬픔, 충동, 애정하는 마음,
 
이타심, 이해, 안도, 사랑스러운,
 
……'살아 있음'이.
 
...그래요.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바스타르.
 
라이아나:…응, 당연한 건가. (작게 웃음 소리 흘리고는 네 등에 머리를 툭, 기댄다.) …미안해. 늘 고마워.
 
바스타르:...약속했잖아. 너 또한, 이 곁에 남아주겠다고. (툭, 기댄 느낌에 가만히...잡아오던 손만 꼬옥 잡는다.) ...미안해 하지 마. 나야말로, 네가 있어 안도하는 순간이 많은 걸.
 
라이아나:……있잖아. 이미 이야기한 거긴 한데. (손이 잡히는 감각에 눈을 내리감는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 심연. 라이아나는 언젠가 적어내린 짧은 말을 뱉는다.) 난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잘 자, 바스타르. 좋은 꿈 꾸고…… 내일 봐.
 
바스타르:...라이아나. (어떠한 말을 전하기도 이전에, 다시금 삼킨다. 이어진 밤 인사 까지 듣고 나서야 조금의 간극을 두고 조금 뒤를 돌아본다. 이불을 조금 더 끌어올려 덮어주고, 그제서야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이 또한 네게 받은 두 번째 숨인 모양이지. 다시 한 번...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까 해.
... ...좋은 밤이야, 라이아나. 행복한 꿈으로 이 밤을 보낼 수 있길-... .
 
라이아나가 되돌려준,
 
부여받은 두 번째 숨.
 
앞으로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나갈 지는, 오롯 당신의 선택이겠죠.
 
한 번 무리한 몸, 침대에 느껴지는 두 명분의 온기에 눈이 감겨옵니다.
 
작은 온도 차마저도 그 따스함에 지워지고 나면…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심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침이 오면 다시금 빛이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고, 편히 몸을 뉘어요.
 
…잘 자요, 바스타르. 라이아나.
 
 
~ 2023-11-25, 02:00 CUT ~
 
~ 2023-12-08, 17:00 ~
 
4일차
 
어김없이 밝아온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역시 조용하고, 고요하며…
 
창 밖으로는 떠올는 햇살이 방 안을 비추고 있습니다.
 
희미한 새의 지저귐 소리,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
 
방 안을 채우는 조용한 숨소리까지….
 
평범하고, 또 평화로운…
 
… …
 
똑똑.
 
어제와 비슷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문 소리는 아닌 것 같고, 밖인 것 같네요.
 
나가볼까요?
 
바스타르:...찾아올 사람이 없는 데에도 또 다시... 설마. (복잡한 생각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뭐 별 게 있겠나요.
 
생각한대로 두 사람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고,
 
식용아를 노리는 이가 있다면 그것 이단자들 뿐인 걸요.
 
과격한 그들이라면 노크가 아닌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지도.....
 
아무튼요, 괜한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방금 막 잠에서 깨 조금은 무거운,
 
그렇지만 어제보다는 가벼운 문을 이끌고 바스타르는 현관으로 향합니다.
 
또 한 번 들려온 노크소리에 문을 열면…
 
음, 익숙한 얼굴이네요.
 
그러니까, 어제보았던 우체부 집배원입니다.
 
집배원: 바스타르씨 맞으신가요? (맞겠죠?)
 
바스타르:...또 뵙는군요. (...음.) 예, 맞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신지..?
 
집배원: 제가 따로 무슨 볼일이 있겠습니까. (하하.) 오늘도 바스타르씨 앞으로 온 편지가 있어서 말입니다. (가방 뒤적이더니 정갈한 편지 봉투를 건넨다.) 여기 있습니다.
 
바스타르:편지, 말입니까. (건네오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받는다. 앞에서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볍게 고개 꾸벅이곤,) 예,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집배원: 계속해서 편지가 오는 걸 보니 인기가 많으신가봅니다~ (허허 웃으며 모자 슬쩍 들며 꾸벅 인사하곤 돌아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쇼!
 
집배원은 가벼운 웃음소리를 남긴 채 돌아갑니다.
 
바스타르:(...꾸벅)
(예상이 맞다면 인기가 많다거나 같은 이상한 이유가 아니라...) ...발신인이...
 
발신인은…
 
네, 익숙한 이름.
 
라이아나입니다.
 
바스타르:참 이상하기도 하지. 이것도 민망해서, 같은 이유를 대려나. (왜 편지로 하는 것인지 의아해 하며 봉투를 뜯어본다. 제법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뜯어서 열어보면, 내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익숙한 편지지입니다.
 
바스타르:... ...허.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조금 고민한다.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다던가, 아직도 같은 말을 하는 게 너 답다던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서로가 서로의 꿈을 바라는 만큼이나 조금 더 희망적인 것을 바라게 되는 구나, 싶어서 느릿한 간극을 둔다.) ...라이아나, 오늘도 거기에 있어?
 
라이아나:…하여간에 눈치 빠른 거 하곤. (옆에서 슬쩍… 고개 내민다. 눈동자를 한 번 굴리며 무슨 말을 할까 하다, 가벼운 아침인사나 건네본다.) 좋은 아침.
 
바스타르:네가 안 나왔다면 저쪽의 라이아나와 대화를 했을 지도 모르겠군. (슬쩍, 자신이 라이아나라고 이름 붙여준 밀짚꽃이 있던 방향을 바라본다.) ...그래, 좋은 아침. 내 앞의 라이아나도, 밀짚꽃 라이아나도. 오늘도 멋진 선물을 내게 준 모양이라... . (편지지 팔랑이며)
 
라이아나:저쪽… (진짜 그 이름으로 굳어진 거구나... 하는 생각이나 하면서 방 방향을 힐끗 쳐다보다가 눈 한 번 깜박. 편지지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버린다. 큼, 괜히 헛기침 한 번 하고는….) 됐다. 그냥 넣어둬. 내 앞에서는 이왕이면 안 꺼내줬으면 좋겠거든... (본인이 써놓고 이런다. ...그치만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라, 괜히 손으로 뒷목 만지며 얼버무리기라도 하듯 이야기 한다.)
 
바스타르:내 성격을 알면서도 그런 부탁을 하면 어떡해? 이런 걸 받았으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두고두고 눈에 담아야지. (괜히 장난스럽게 웃는 낯이 심술궂다. 당신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것 같은 말을 하다가도, 이런 것에는 청개구리 마냥 행동한다지.) ...음. 이상하네. 편지 속의 라이아나는 조금 더 다정한 느낌인데. 어느쪽이 진짜려나. (고민하는 '척'을 하며 중얼거린다. 어제 있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분명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그런 무거운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나는, 너는...아니,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여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니까.)
 
라이아나:못됐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지. (딱히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벼히 이야기하고는 조금 밉지 않게 째려보다가 한숨 한 번 내쉰다. 애도 아니고, 꼭 한 번씩 이럴 때가 있다니까. 평소엔 어른 같은 모습이 조금 더 두드러지지만…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본인보다 어린 게 너무 잘 느껴지기도 한다. 뭐, 괴리감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종종 신기하달까. 가끔 어릴 때처럼 동생…같은 느낌이 드는 게.) …그렇게 다정한 게 좋으시면 편지 속에 들어가지 그랬어. 안 말려. (괜히 이마 꾹. 한 번 눌렀다가 몸을 돌린다. 익숙하게 주방으로 가 컵 하나를 꺼내 들고…) 몸은 좀 괜찮고?
 
바스타르:정확하네. 그나저나 그렇게 안 봤다니, 기분 좋은 걸. 착하게 살면 세상 살이가 피곤해질 뿐이다. 그렇지 않아? 차라리 나쁜 인간이 나은 편이지. (뜸...) ...너한테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진 않고. (째려보는 눈빛이 향하여도 웃는 표정이 여전하다. 악의가 담긴 시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런 장난도 가능한 것이지,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언제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고, 그리 생각하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그건 분명 너도 마찬가지 일 것 같아서 맘 편히 짓궂은 장난이나 한다. 왜, 내가 뭐든 혼자 척척하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계속 남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예상 외의 답. 이런, ...아무래도 매정한 부분이 있다니까. (실은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주방으로 가는 걸음을 그대로 따라가기나 하고,) 멀쩡하다니까. 확신하지만, 너보다 훨씬 건강할 걸.
 
라이아나:그럼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건가? 내 앞에서는 피곤하더라도 착하게 산다는 거? …그게 더 피곤하게 사는 것 같은데 말이지. (웃는 표정, 그게 참 한결같고... 안정감 있다. 짓궃게 군다 해도 딱히 밉지 않았단 것이 사실이고, 밉다해도 애정 섞인 미움이 분명하기 때문에... 무어라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너는 애 같으면서, 어른 같은... 종종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라 그런지 가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만들지. 15년 간은 혼자 잘 살아왔으면서, 어리광인건지.) 언제는 내가 조금 더 상냥하게 굴었다고. (함께 어깨를 으쓱이고는 픽 웃으며 시선을 내린다. 다정하다거나, 상냥하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가 본인과 가깝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내가 보기엔 네가 나를 너무 약하게 보는 것 같은데? 나도 오늘은 잤어, 멀쩡하게. 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컵에 물을 따르고는 한 모금 마신다.) 날 너무 허약하게 보는 것 같아, 너는.
 
바스타르:세상 사람들은 내 알 바가 아니잖아.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내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만... 그런 의미로 너한테는 착한 척을 하게 된다 해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진 않은데. (아, 그렇다고 그간 매정하게 살아온 건 아니다. 내가 구한 인간만 열은 넘을 걸? 이라며 덧붙이는 말이 꽤나 해명스럽다. 확실히 지난 15년. '혼자'를 택한 만큼 많은 것을 하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것도 수없이 많아졌고, 머리 굴리는 건 그 중 특기가 되었다지. 그러니 이것은 어찌보면 어리광이다. 내가 더 어리니까 챙겨줘, 하는 어리광이 아닌... 그런 어리광이라도 부려볼 테니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을 달라는 것. 스스로도 퍽 웃긴 일이지만...) 그럼. 상냥하고 말고. ...뭐어, 따지자면 지금도 그렇긴 하지. 너는 우리를 매정하게 내친 적은 없으니까.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세상 다정했는데... 라이아나, 사회 생활을 하더니 쓴 술을 많이도 들이켰나봐? (내리는 시선에서는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 생각하는 것이겠지. 뭐, 어쩔 수 없는 건가. 나도 스스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데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싶고.) ...네가 이해해. 정말 긴 꿈을 꾼 것 같았는데...그래서 아직도 조금 흐릿한가 싶거든. 오랜만에 본 네 모습이 워낙 그랬으니, 기억의 각인이라는 게 얼마나 굉장한 건데. (가만 제 턱을 매만지다 머리를 뒤로 넘긴다.) ...네가 그러니 믿을게. 그럼 오늘은 기력 회복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맛을 생각해서 준비해야 하나.
 
라이아나:아예 매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가 봐온 네가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겠어. 뭐어… 네가 다정하게 구는 게 가족 한정이라는 생각은 딱히 변함이 없지만. (골디폰드에서 했던 얘기를 떠올려보면 대충 그랬지. 너는 그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얻고자 그곳에 남기를 원한 거였으니까. 나도 좋은 뜻으로 그 곳에 남자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보면 너나 나나, 가족에게는 맹목적이어도 타인에게는 조금 매정한 부분이 있지. 그 과정에서 사람 몇 구해볼 수도 있는 거였고. 너는… 위급한 사람을 그냥 못 지나치려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아마, 내가 위험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내버려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매정하지. 네가 이야기하는 상냥과는 거리가 꽤 멀다는 생각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글쎄, 사회생활이라고 봐야 되나. 가끔 동기들이랑 술 먹거나 회사에서 회식하거나 하면서 술 먹은 적은 꽤 있기는 하지. (...) 딱히 쓰지는 않았는데. (직관적 해석. 뭐, 아무튼... 나이 들면서 변한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예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언제든, 무언가가 바뀌기 마련이라고. 우리도 인간이기에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사실이지.) 넌 그래도 걱정이 과해. 네가 기억하는 만큼 내가 기억하는 모습도 각인 됐다는 걸 좀 염두해줬으면 좋겠는 걸. (이어지는 말에 잠시 뜸 들인다.) …오늘도 안 믿었으면 아마 앞으로 건강 얘기 안 꺼냈을 걸. (가벼운 투로 이야기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있는 거 좋기는 한데… 아침이니까 가볍게 먹자. 진짜 가볍게. (강조)
 
바스타르:내가 받아들인 의미 적으로는 다행이지만...만약 내가 영웅 마냥 세상의 모두를 위하는 사람으로 보였다면 조금 유감이라고 하려 했거든. (이렇게까지 말을 하긴 하지만... 사실 조금 더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타적이라거나 한없이 선량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만, 완전 그런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줄곧 변함없이 말하는 '내 애정은 너를 위한 거야' 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급한 사람을 본다면 지나치지 않을 지도 모르고, 라이아나가 방관을 택한다면 그 몫까지 더욱 도우려 들지도 모를 일이고... 결국 스스로도 모를 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야기로만 듣던 생활이긴 하네. 동기라거나 회사의 회식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그래서, 어땠어? 네가 어릴 적에 생각했던 생활과는 비슷했을까 궁금해서. (사회생활을 피해오던 자신으로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되도 못할 공감보다야 질문이 훨씬 편했다. 어릴 적 라이아나가 상상했을 것은, 분명 그런 건 아니었을 것 같으면서도.) ...무얼 기억하고 있는데? (돌직구로 던져버린 물음에는 괜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수습한다. 혹여나 좋은 것을 기억해줄까 싶어 던진 질문이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다는 것.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말을 잇는다.) 아무튼...그래. 가벼운 것, 말이지. 스프 같은 건 너무 가벼우니까 제외하고... ...(...)
 
라이아나:옛날에는 그런 사람일까 싶었는데 아니라는 게 요즘따라 더 잘 느껴져서. 네가 직접 이야기한 것들도 있고 하니까… 그걸 전부 무시하고 내 생각만 고집할 만큼 고집불통은 아닌 걸, 나. (결국 이제는 너를 그렇게 선한 이로 볼 리 없지 않겠냐는 이야기. 순전히 개인의 기준으로, '나'의 시야로만 본다면 선하고 다정하며, 상냥한 사람이 분명했으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 이젠 알고 있기에 착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다정, 애정, 사랑까지... 그럼에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응? 딱히 멋진 삶은 아니었는데. 어차피 살아가야된다면 적당히 살고자 했을 뿐이야. ...음, 솔직히 어릴 때 내가 기대하던 것들이랑… 많이 닮지는 않았어. 너희가 없는 인세는 나에겐 그저 사람이 많고 떠들썩한 곳이었을 뿐이니까. 그래도…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긴 했지. 술 먹고 꽐라된 사람도 꽤 많이 봤거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떻게, 다음엔 너도 마셔볼래? 근처에 사올 곳 한 두군데 정도는 있겠지. 와인이든, 양주든.) ... ... (네 말이 이어지기까지 짧은 침묵. 뭐, 네 예상처럼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닌 게 분명할 테다. 자신이 이야기한 '기억'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짧게 입가이 미소를 그렸다가, 내린다. 이어지는 말에 빤...히. 몇 초가 황망한 시선.) ...왜 내가 생각한 걸 단번에 지워버리는 거지? 그 정도면 아침으로 적당하거든?
 
바스타르:꽤 많이 이야기 하긴 했었지. 그야... 한참 골디폰드에 남았을 때 말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까지 챙길 여유가 되느냐' 같은 말을 들었었거든. ...그래서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했었어. 네게도, 모두에게도. (그런 의미로, 자신을 선하게 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행일 일이었다. 라이아나가 여러의미로 신경 써주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선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박혀, 이것조차 라이아나를 위한 배려라느니...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진 않길 원했으니까.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너를, 소중한 이를 위해서라면 사회에는 악해질 수 있을 만큼 생각이 뚜렷한 사람. 그 정도 인식이면 충분했다. 이 안에 있는 마음을 네가 전부 받아줄 수 없다 하여도...주는 것은 자유이지 않느냐고. 그런 답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역시 그런가. ...인세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공동체에서 즐길 수 있는 낭만이나 즐거움이라 생각하더군. 너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나도 너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래서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더라. 전부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와 즐겨보고 싶다 생각한 인세의 문화가 꽤 있었나 봐. (물끄러미 보는 시선에는 피식, 소리를 흘린다.) 주량이라고 하던가.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직감도 들어서. ...괴물 몇이랑 친구 먹고 다같이 술 파티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면... 단 둘이 마셔주게? (난 그것도 나쁘지 않아. 짧게 갈무리한다. 이어지는 짧은 침묵에는 무슨 의미가 깃들어있을지 알 것 같아서, 소리를 섞지 않는다. 그래도 곧 그려지는 미소에 아주 잠시 안심을. 들려오는 소리에는 뻔뻔한 손짓을.) ...그런 표정은 하지 말아봐. 스프는 언제든 먹을 수 있잖아. 내가 특별히 열심히 찾아온 책을 두고 그런 걸 찾겠다고? 특.별.히, 말이야.
 
라이아나:거기 가게 된 이상 정보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기는 하니까. 원래대로라면 난 농원으로 돌아가게 될 줄 알았거든. (마마도 볼 수 있을 줄 알았고…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리다가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는다. 지금에서야, 아무 쓸 데 없는 생각이라지만, 역시 가족들과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고,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과거의 바램은… 쉽지 않았으니까. 애초부터 윤리적이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지겹게 이야기했듯이 라이아나는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 맞았음으로. 평범했으니 사실은 악인이었고, 가족들에게도 미움 받은… 미움 받을, 그런 운명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 뭐, 몇 명은 여전히 좋아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몇 명에 너는 당연히 포함되었으며, 나는… 나를 애정해주는 가족들에게서 안정감을 느낀다. 사랑해줘서, 애정해줘서, 믿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너에게마만 직접 전할 수 있고, 다른 아이들은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이야기 한 번은 해주고 싶었더라지.) 낭만은 잘 모르겠네, 나는. 솔직히 회식 같은 경우에는 딱히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거의 마시고 죽자. 같은 분위기였거든. (택시 태워서 보내는 게 제일 귀찮았어. 중얼댄다.) 응? 음, 뭐... 나는 상관 없지. 여기도 술집은 있을 거고, 필요하면 합석해서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네 말대로 둘이 마셔도 되고. 나도 주량은 약한 편은 아니라, 네가 잘 마셔도 어느 정도 어울려주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어느 쪽이든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잠시 침묵. 아니면 오늘도 괜찮으려나. ...깨어난지 얼마 안 된 몸상태를 생각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괜찮다고는 하지만 역시 걱정이 앞선다.) …원래 익숙한 게 좋은데. (...진짜 별 거에서 고집을 부린다니까.) 거기 처음 보는 요리가 더 많지 않아? 나도 요리는 간단한 거밖에 못해서 잘은 못 도와줄 것 같은데... ...으음, 뭐, 혼자 한다고 하면 그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오늘은 뭐가 하고 싶은데? 방금 이야기했지만 난 가벼운 게 좋아, 아침이니까. (사실 점심이거나 저녁이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을 했겠지만, 지금도 마찬갖기였다. 딱히 무리해서 먹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가벼운 생각.)
 
바스타르:원래대로라면, 말이지. 오배송이라고 하던가...지금 생각해도 웃기다만, 확실히 우리가 그곳으로 가게 된 건 있어선 안될 실수였던 것이고. ...일종의 기회가 되긴 했지.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우스의 마지막에도 도달하긴 했으니 말이야. (그 끝을 낸 것도 우리니 할 말이 없지만.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에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마마'라는 단어를 부른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 또한 마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라이아나가 가지고 있을 마마를 향한 사랑에 비하면 별 거 아닌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과, 모두와 함께하길 바랐다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훨씬 이전에, 그런 모순을 지녔기에 힘들 사람은 라이아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뇌리에 스친다. 바라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지 않았던적, 우선 자신은 그런 적이 없었으니. 이런 것을 이기적이라 명명해도 되는 것일지 고민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흠. ...그런 분위기라면 나도 사절이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즐기는 얕은 술은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만, 확실히 그런 식의 모임은 역효과가 더 잘 나지. 결국 그 말대로 고생은...네게 떠넘겨진 적도 있는 것 같고. (중얼거림에 웃음을 짓다가도, 뒷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첫 술을 네가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영광이네. 누가 먼저 잔을 놓칠 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너를 고생 시키는 일은 없도록 해야 겠지. 그래,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어떤가 싶은데. ...네가 괜찮다면, 말이지. (침묵이 향하는 걱정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 채, 혹시 몸이 안 좋아서 그러나... 당신을 걱정한다.) '가볍다'는 조건이 들어가면 되는 거지? 그럼...샌드위치라던가. 아니면 바게트의 속을 파서 무언가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고... 아아, 네게 시킬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 내 요리 실력이 셰프급은 아니지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거든. 어때?
 
라이아나:응, 뭐. 오배송이 좋은 결과를 낸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어. 결과적으로 그 일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없었고, 단지 미련으로 인해 그리워 하는 것에 불과하였으나… 이따끔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결국 나는 과거를 늘 품에 안은 채 살아갈 운명인가보다.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선택에는 늘 과거가 잔존하니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내 탐욕에 눈이 멀기도 해보았고… 이미 떠나간 이들, 사라진 이들 역시 잊을 생각은 없기 때문에, 기억에서 살아가준다면 그걸로 족했다. 언젠가, 네가 한 이야기처럼. 누구 하나 자신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니 나는 죽는 순간까지 가족들을, 마마를, 너를, 잊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거다.) 나도 몰랐네. 마신 적 있을 줄 알았는데… 으음, 뭐. 나는 괜찮으니까, 마신다면 좋고… ……그,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다문다. 나중에 얘기해야지.) 아침은 샌드위치로 괜찮아. 바게트보다는… 말랑한 식빵쪽이 좋은 걸. 마실 건 뭐로 해줘? 차, 우유, 커피, 물. 골라봐. 이 정도 준비는 내가 해줄 순 있거든. (…) 아, 혹시… 안주는? 좋아하는 거나 먹어보고 싶었던 거라도 있어?
 
바스타르:지나간 일은...잊으라곤 하지 않겠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혹여나 그러고 있다면 말이지. 어떠한 것이든 그때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새로운 미래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 선택한 현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구보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네게 그것을 잊으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픈 것이던,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던... 그 어떠한 감정이라도 내치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이게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일 테지. 미련, 후회...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있기에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라 한다. 나 또한 그 후회의 일부에는 사로잡혀 있고. 하지만, 지금은 네가 그 과거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붙들고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똑같이 과거를 바라여도, 누구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너를 조금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해줄 수 있도록. 모두를 기억하며 걸어나갈 수 있도록.) 굳이...마실 필요나 이유가 없었다 해야 하나. 술의 종류를 알아가기 보단 냇가의 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더 잘 안다. (이런 쓸 때 없는 정보도 말하곤) ...쯧. 그렇게 말을 끊으면 궁금해지잖아. 아무튼, 아침은 그럼 샌드위치로... 넣고 싶은 토핑이 있다면 이야기 해줘도 좋고. 아무래도 있을 재료는 다 있는 것 같거든. (으쓱,... ...음?) 안주? 아, 그 술과 같이 먹는...그런 것이라던가. 보통 무얼 먹지? 난 버섯만 씹어 먹으라 해도 불만이 없긴 한데.
 
라이아나:잘 아네. 나는 늘 옛날 일 되새기는 게 습관이 돼버려서 그래.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문득 문득 계속 생각나게 되는 것도 있고 하다보니까.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 더 커서 그런가. (가벼운 어투로 대답하지만 거짓 섞인 말은 없었다. 다가올 미래보다 지나간 과거에 초점을, 앞으로의 여정보다는 지금까지의 추억을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즐거웠던 것도 같으니까. 네가 있으니 지금도 앞으로 조금이나마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그저 지금까지처럼 과거만을 바라보며 현실에 안주했을 것이다. 딱히, 미래로 나아가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을 테지.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해. 동시에, 미련하다고도 생각이 들지만. 짐짓 고민이라도 하듯 컵을 만지작거리다 네게로 시선을 돌린다. 후회를 할 때에는, 이미 늦었다는 소리나 다름 없으니, 앞으로의 네가 후회가 없기를 속으로 바라본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이든간에.) 냇물 정화. (...) ...신기하네. 뭐, 나도 학교 다니면서 과학 시간에 가볍게 배우긴 했었지만… 기계 사용하는 게 더 편하지 않나? (...현대문물.) 그나저나 이제 배우고 싶은 건 없어? 근처에 도서관도 있으니 독학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지는데. 나야 지겹도록 공부는 해봤지만... 너는 딱 한 가지 목표만 대고 팠을 것 같으니 아닐 것 같기도 해서 묻는 거. (짧게 혀 차는 소리 픽 웃는다.) 별 얘기는 아닌데, 밥 먹고 얘기해도 될 것 같아서. 아침 시간 늦어지면 점심 시간 애매해져서 못 먹는다? 넣고 싶은 건… 생각나는 건 없으니까 알아서 해줘. 근데 감자 들어가면 좋겠어. (짧게 덧붙인다.) 으음... 치즈나, 과자나... 술 종류에 따라서 단 거나 짠 거, 고기나 과일 같은 거 먹는 것도 좋고… 아무튼... 입맛에만 맞으면 되겠지 싶어. (나도 자주 마신 건 아니라서, 하고 덧붙였다.) 적당히 마트가서 식재료 몇 개 골라올까? 아니면 그냥 완제품 사와도 괜찮고.
 
바스타르:그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일지도 모르지. 누구나 과거를 잊을 수는 없어. 생각을 하다보면 더욱 깊은 곳에 들어가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언젠가, 나는 차라리 이 모든 기억이 사라지길 바랐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국 잠시였다 하여도 그건 자신의 나약함을 증명하는 꼴이기에 말을 아낀다. 요약하자면,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것. 라이아나의 무언가가 크게 뒤바뀌지 않는 이상, 그는 앞으로도 미래보단 과거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걷는 걸음이 지금을 가리키고 있을 지도 모른다.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지. 미래에 대한 설렘보단, 과거에 있었던 빛나는 그 순간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이미 빛이 바래 먼지 속에 감춰진 필름에 불과하다 하여도, 그것조차 네겐 소중한 것일 테니. 결국 우리가 향하는 종지부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무언가라 하여도, 너는 과거를...나는 미래를 걷는다.) 물론, 기계라는 것도 많이 손을 댔었지만... 아무렴, 나의 지식은 전부 자연이 원천이니 말이야. 하지만 한 가지 알려주자면, 대학이나 전공서적에서 볼 법한 어느 분야의 깊은 내용은 아니더라도 잡다하게 많은 지식을 얻었어.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던 것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지. 딱히 모르는 것도 없게 된 참이라...공부에 대한 미련보다는...그래. 역시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곤 주방의 식재료를 살펴본다. 시선은 그곳을 향하지만, 대화만은 여전히 이곳에 집중하면서.) ...흐음. 감자 말인가. 샐러드처럼 조금 으깨서 넣으면 되겠네. (짧게 남은 식재료들을 훑어봤는지 손을 털며 일어난다.) 그으-럼... 너도 자주 마신 것은 아닌 모양이니 네 말대로 직접 가서 골라볼까. 그 전에...(다시금 향하는 시선은 밀짚꽃이 있는 방의 방향.) ...'우리 라이아나'에게 물을 주고 나서.
 
라이아나:그래, 응.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누구든 빛났던 순간을 동경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게 과거인 거고... (...) 음, 너는 어떨 때였어? 방금 이야기한, 모든 기억이 사라지길 바랐던 때. (기억을 잊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지워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가 없는, 기억과 추억이 없는 자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워초적인 고민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라이아나 본인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 만약 그가 가진 기억을 전부 지우게 된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 본능도, 탐욕도, 가족도 모두 지운 채가 되겠지만… 적어도 '삶을 갈망하게'될 지도 모르지. ...딱히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만, 라이아나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잊지 않는 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몇 번이고 돌려보는 영화는 지루할 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 과거는 질리지 않을 기억이며 자신의 단편이고, 몇 번이고 되갚아봐서, 잊지 않고 싶은... 그런 추억이다. 그 정도의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더라도 우리는 함께 걷지. 절벽 끝을 향해 걷는 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지도 모르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경험하기에.) 솔직히... 나보다는 네가 더 똑똑하지, 여러 의미로. 취미나 만들어, 공부가 싫으면. 내가 안 놀아준다고 하면 어쩌려고. (가벼히 이야기하고는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별 생각 없이, 어투만큼이나 장난에 불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으응, 그러면 될 것 같네... 베이컨 남은 게 있던가. 같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안주는 조금 있다가 마트에 가서... ... (하... 결국 한숨쉬면서 미간 짚었다. 저 호칭은 죽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지. 왜 하필 그 많은, 세상에 그 많은 이름들을 두고 하필이면 라이아나인 거냐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누가 이름을 그렇게 붙여, 대체!) …그래 알아서 챙겨... (...) (괜히 열심히 챙기라고 했나? 싶어지지만... ...뭐어, 챙겨주는 건 좋은 거니까...)
 
바스타르:내가 바라보았던 과거 역시 빛났으니, 너의 마음을 이해해. 알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아주 짧은 간극.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망설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떨림이 왔다가 사라진다.) ...우선...인세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한 2년 반 정도 지난 이후. 알겠지만 나는 굉장한 겁쟁이였거든. 그런 내가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고서, 혼자 힘을 기르고 많은 계획을 준비하며 다른 사람이 되기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했어. 그리고 그 시점에서 아주 잠시 무너졌던 거다. ...선택을 해야 했지. 식용아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가족의 곁에 돌아가 남은 생을 함께 할지. 아니면, 잊지 말고 끝까지 일어서 모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준비할지. 그리고...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이것. (꽤 가벼운 어투로 말하며 제 머리카락을 가리킨다.) ...과거를, 나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지독하게 모두를 사랑했거든. 너처럼. ...그래, 그리고...(말을 이으려다 말고 이내, 아니라며 말을 갈무리 한다. 필시, 말하려고 했던 것은 두 번째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다시 기억이 사라지길 바랐던 순간이...'네가 진심을 이야기 해준 순간'이라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너를 포기하지 못해서 더욱 힘들게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지.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바람은 다시 거두었다. 이유야 뻔하지만...) ...글쎄. 그 많은 지식이 있어도 아직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 여전한 바보인 모양이지. 그야, 그 질문 말이다. 네가 안 놀아준다고 하면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또 다시 이상한 행동이나 할 것이 뻔한데. (물론 똑같은 장난. 그러한 어투로 답한다.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장난인 모양.) ...좋은 날에 한숨이나 쉬긴. 기다려 봐. 내가 물도 주고 애정도 주며 곱게 키우고 살려서 파릇파릇한 라이아나를 보여줄 테니. (그리 말하며 빈 컵을 한 두번 헹구고, 물을 담아 걸음을 한다.) ...궁금하면 같이 봐도 좋고.
 
라이아나:(목소리에서 느껴진 것이었는지, 아니면 네 손이 조금 떨렸던 건지.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 굳게 다문 입술. 명백하게, 지금은 온전히 네 이야기만 듣겠다는 태도였다. 15년 간 가족을 위해, 강해지려 노력한 너였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궁금할 만도 했지. 그 긴 15년은, 우리에게 너무 길고 어려웠나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어지는 말들이 차분하게 귀에 들어온다. 평소와 다름 없지만 조금 가벼운 이야기처럼 이야기한다. ...속은 별로 그러지는 못할 것 같은데, 지레짐작한다. 아까 떨리는 손을 본 이상 어쩔 수 없는 사고 회로다. 그랬구나, 하는 짧은 말로 입을 떼었다.) …길었겠네. 홀로 고민하는 시간도, 다시 인세에서 홀로 보낸 시간도. (그리 이야기하며 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동생 취급이 아니라, 그저… 홀로 싸워왔을 너를 위한 위로에 가까웠다. 식용아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길이다. 남은 시한부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지 않았지. 사육감을 선택했든, 아니든…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어진 시한부 인생보다, 더 나은 곳을 바라보면서. ...그래, 우리는 결국, 사랑으로 키워지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에 불과하지.)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쉽게 예상되지 않는 다음 말. 잠시 시선을 굴리다, 말하기 싫으면 됐고. 하는 말도 덧붙인다. 기억이 지워진다면… …너와 나도 남이 되겠지, 싶었으나, 그걸 바란다면 붙잡기보다는 놓아줄 생각이 더 컸으니까.)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날 이해하는 건 어려울 걸. 네가 아닌 그 누구여도… 심지어는 나조차도 말이야. (뒷목을 짧게 주물거리다가) 그러니까, 딱히 바보라고 할 필요는 없고… 굳이 이해하려고 하진 않아도 괜찮… … (잠시 말하고 멈칫. 어제 한 이야기가 있어서다. …너는 나를 이해하고 싶다고 했지. '나'에 대한 것들은 하나 같이 쉬운 게 없는데도, 너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를 않는다. 바보같지 않다 이야기했지만, 역시… 이런 면에서는 바보같고 미련하다. 늘 생각했던 대로.) ………하… (더 깊은 한숨.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이거 맞나? 아니, 주지 말 걸 그랬나? 이게 맞는 건가 싶어졌다. 내가 안 받아주니까 지금 꽃한테 가서 다 퍼주고 있는 거 같잖아. 그렇게 미간을 한참 짚고 있다가… 이어지는 말에 눈 가늘게 뜬다.) …알아서 잘 키워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해서 이미 듣기는 했지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놀림받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이런 말이나.)
 
바스타르:(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으니, 완벽하게 자신의 떨림을 숨겼다는 착각에 들 뿐이다. 같은 15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왔으나, 모두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을 과거의 편린. 쓰다듬는 손길에 시선이 네게 향한다. 평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에도, 눈동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너의 모습을 담고 있던가.) 나 뿐이 아니야. 너에게도, 아주 길었을 시간일 테지. 그러니까 이왕이면...네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앞으로도 하지 않았으면 해. 너는 너로...그 자체로 존재해주었으면 하거든. (부디 어떠한 일에도 스스로를 져버리려 하지 말아, 그리 이야기 하고 싶은 것 뿐이다. 우리에게 그 길었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길. 가족 모두에게 그 길었던 시간이 다시 찾아올 일이 없길. 함께 뜻을 모으고, 탈출이라는 것을 해보고, 각자의 길도 걸어보고 , 재회도 해보고... 싸우고, 뜻이 갈라져 서로에게 눈물을 보이고, 총을 겨누다가도 결국엔 같은 자리에 모여 자유라는 것을 얻은 우리는. ...그러한 우리에게, 그리고 지금은...'네게'. ...그간의 고생을 보답 받을 수 있을 만큼 안식이 찾아오길. 다시금 자신의 모든 것이 지워지길 바라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 ...그리고...더 이상 나는 홀로라고 생각하지 않아. (저를 쓰다듬던 손을 잡아 제 이마에 마주한다. 조금 숙인 고개에선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나, 또렷한 소리는 울린다. '그리고 너도 홀로로 두지 않아.' 라고-) ...풋. 끝까지 말했다면 조금 서운할 뻔했다만.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는 점에서 바스타르는 만족했다. 그래, 조금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 또한 하나의 약속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싶어서.) ...나도 알아. 너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1000년도 어려울 것 같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뭐어- 내 바보같은 만행이나 더 즐겨 봐. (바보같고 미련함을 인정한다. 당사자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가능케 만들려고 하니 당연한 것이지. 미간을 짚는 모습을 보면서는 잔뜩 기웃거린다. 가늘게 뜨는 눈에 허리를 살짝 숙여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웃고있는 모습이 영 능글맞게 구는 것 같아 보이기 짝이 없고...) 꽃인 라이아나는 내가 주는 것이라면 뭐든 받아줄 테지. 물도, 햇빛도, 바람도... 사랑과 애정까지도. 예로부터 그런 말이 있잖아. 고운 말을 해준 양파는 이쁘게 잘 자란다던가.
 
라이아나:…왜, 내가 나로써 존재하는 게 아닌 것 같아? 그럼 네가 보기에, 나는 뭐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말을 마친 뒤에 이어지는 건 짧은 침묵. 나는 스스로를 버린다,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알다시피 정말 단순하게만 생각하자면, 희생같은 것들 말이다. 다른 사람이 하기를 원치 않는 만큼, 스스로가 택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니. …혹여 모순이 존재할까, 이 사실에. 생각하다보니,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다. 한차례 정리가 되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만다.) …아. 알겠다. 인세에서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거지? (감정을 버린채,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모른 채로 살아간 그 시절을 더이상 닮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겠지. 지금까지 있던 시간들은 우리에게 상처가, 후회가, 미련이, 불안이, 기쁨이 되기도 했지. 그러니…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거다. 떨어져있는 시간은 길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을 함께했으며, 빈자리가 컸던 만큼,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에는 많은 감정이 필요할 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허나 글머에도 지금에서는 쓸모없는 생각이다. 너는 이미 내 옆자리를 꿰차고 있고, 잊을 수 없으며, 너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며,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안식을 갖고, 눈을 감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래? 다행이네. (짧막한 말. 표정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는 듯 했다. 늘 그랬지, 너는…. 스스로의 생각에 불확신은 존재하지 않았고, 원하는 게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니까. …손에 닿은 온기가 따뜻했다. 사람의, 인간의, 생명의 온기.) 그래서 멈췄잖아. 더 얘기했으면 또 한참 한 소리 들었겠다 싶어졌었거든. (그런 이야기나. 하지만… 장담컨데,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나는 끊임없이 너에게 의문을 남기게 될 사람일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어.) 바보 같이 행동하는 거 멈춰볼 생각은 없고? 진짜 이럴 때만 고집이 세다니까. (어제도 느낀 거지만 말이지. 마주치는 시선에 그대로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 눌러 밀어버린다. 요즘 따라 이러는 게 잦다? 하는 말도 덧붙인다.) ……그래 뭐, 그런 실험이 있기는 했지. 나쁜 말 들은 양파가 더 잘 자랐다는 결과가 나온 적도 있었고. (픽 웃고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뭐, 그래도… …너한테 준 꽃이니까. 주고 싶은 만큼 줘, 뭐든. 뭘 주더라도 거부하지는 않겠지. 인간 라이아나랑은 다르게. (꽃은 사람보다 나약하지. 대체로 꺾이거나 뿌리가 뽑히면 그대로 시들어버리기 일쑤니까.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아껴준다면, 조금은 안심이야.)
 
바스타르:그래, 맞아. 그렇기에 말하는 것이지. ...너는 너로서 존재해도 괜찮다고-. (그 잠깐의 침묵 동안, 너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감히 조금 상상해 본다. 그간의 일들을 곱씹으며 생각해 본 것일까? 아니면, 나는 지금도 그렇지 않던가 생각하며 내 답에 의문을 남겼을까. 하지만 내게 되돌아온 답을 듣고나니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알아주었구나, 하고.) ...물론, 인세에서 지낼 동안의 네가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등 뒤로 한 채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야. 아주 간단한 이야기대로...너는 그 시간동안 행복하지 않았다고, 내게 말해주었잖아.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해왔는데에도...내가 다시 만난 너는 공허했으니까. 그러니까...무얼 하던, 어떤 선택을 하던. 너는, 너로서. '라이아나'로서 존재하다 그 끝을 맞이했으면 좋겠어. (괜한 걱정같아? 작게 웃으며 가벼운 표정을 짓는다. 내가 고하는 진심이 또 다시 무거운 상황을 이끌어오지 않길 바라서. 바스타르 역시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라이아나가 살아주길 바랐고, 삶의 의미를 찾아주길 바라고... 그러한 이야기를 전부 제치고, 지금 이 자체로 라이아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점 말이다. 분명 흑백으로만 이뤄진 빛 잃은 세상에 색을 칠해주기 위해 나는 네 손을 잡고 걸어나가기 시작한 것일 텐데, 나 역시...지독하게도 외로웠나보지. 그 긴 시간동안... 받은 편지로부터 꿈을 찾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위안 삼았을 정도로. ...너를 점점 특별취급 하게 되어버리잖아, 라이아나. ...라고. 차마 꺼내어선 안 될 말을 속으로 삼킨다.) ...누가 들으면 내가 잔소리만 하는 줄 알겠네.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려나. (제 뒷목을 가만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인다. 우리는 서로서로가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태까지 그걸 그만두지 않았으며, 서로에게 짓궂은 물음을 던진다. 그래, 알고 있어. 내가 널 이해하지 못하는 한, 너 역시 이런 행동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을. 그렇다면 이제 답을 바꿀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라고... .) 가끔은 바보가 편한 법이다, 라이아나. 굳이 말하자면 비효율을 택하려고. 그리고...(...) 그냥. 한 번 아득한 어둠을 겪으니 있을 때 더 많은 걸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해둘까. 그저 의지되고, 소나무처럼 우뚝 서서 지탱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이건 내 아쉬움인가 봐. (뭐, 싫으면 말고. 하는 말과 다르게 피식 웃고만다.) ...그런 충격적인 결과로 나의 동심을 파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상관 없으려나. 난 꽃인 라이아나에게도, 인간인 라이아나에게도 똑같은 것을 줄 거거든. 거부하면 새로운 것을 다시 주면 될 일이고. (금방 시들어버릴 것만 같은 식물도 마음으로 보듬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그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서. ...두 라이아나 모두, 내겐 같은 라이아나니까.)
 
라이아나:글쎄, 괜한 걱정은… 아닐 지도 모르지. 너나 나나 각자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뒤로 미루는 짓은 잘 하는 편이잖아? (누군가는 죽음을, 누군가는 가족을,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목표로 삼아 살아갔다. 네가 이야기한대로, 많은 것을 했음에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외로웠으며, 공허했다는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가족들과의 재회는 행복했다지만 그 역시 나의 과거의 일부였고, 과거를 되새기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그 시간 역시도 늘 떠올리게 되는 것이 당연했으니. 흑백, 눈밭, 밤하늘, 녹음… 우리가 가는 길에는 늘 비슷한 것들이 보였지만, 늘 삶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며, 나는 이 길에서 조금씩… 무언가가 편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평소, 혹은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아닌… …아마도, 너와 내가 깊은 대화를 하게 될 때마다. 조금씩 이해도가 올라가고, 미래를 기약하며 무언가를 약속하게 될 때마다. 너에게 내가 무언가 큰 의미로 존재하게 될까… 나는 그게, 달갑지 않았다.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면 족했으니까. 크게 자리하게 되면 될 수록, 불안감이 앞서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대체할 수 없는 이라는 것부터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생각을 머리속에서 애써 지워내본다. 네 말대로 나는 생각을 깊이하는 버릇이 있지. 영워조차 탐하게 된다고 했던 말이 아른대며 생각나는 탓에, 입을 한 번 다물었다.) 뭐, 아무튼 말이지….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어. 내가 라이아나가 아니면 누구로 생을 맞이할까.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괜한 이야기를 하며 짧게 웃어넘긴다.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하루를 시작하기엔 가벼운 이야기가 적격이니까.)
네가 하도 나한테 많이 뭐라고 해서 이러는 거잖아. 걱정도 많고 잔소리도 많고, 이거 과보호라니까…. (내가 나이가 몇인데. 하고 중얼댄다. 결국 이해하지 못할 운명이라면, 이해하지 못한 채도 괜찮지.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관계가 끊다는 것이 아니니까. 예전에 분명 네가 그랬어. 아마, 내가 떠나게 되거든 붙잡는 것은 네가 될 거라고. 그 말을 곱씹다보면, 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너무 비효율적인데다가 바보같아서 할 말이 없네…. 너무 편하게 살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바보라고 부를 걸, 너. (머리는 좋으면서 이럴 때는 그 머리 안 쓰고 말이지. 그럼에도 너는 자신에게 있어 충분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딴지만 걸 뿐 구태여 말리거나 하지는 않아본다.) ……그치만 진짜인데? 엄청 잘 자랐다는 소문이. (짧은 웃음 소리를 흘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더 남을 동심이 있나, 우리 무려 20대 중반이라고? 그런 말이나 했다. 이어지는 말에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물이 든 컵을 손으로 가볍게 툭, 하고 쳤을까.) 됐다, 됐어. 무슨 말을 못하겠네. 가서 물 주고 와, 아침에 필요한 재료들 꺼내둘 테니까. (이해 못하는 거 아니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시들지 않게 오랫토록 피어있을 꽃을, 나를.)
 
바스타르:우리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그러니까, 네가 네 감정을 좀 더 스스로 잘 알아봐 줬으면 하는 거고. 내가 미루는 것은 겉으로 보이지만... 네가 미루는 것은 내가 알 수 없어. (무엇이든 숨기는 너라면, 오히려 미루고 티내지 않는 것을 더 잘 할 테지. 그렇게 너는 방황을 하며 15년을 보낸 걸까. 꿈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향해갔던 나와는 다르게, 그런 것조차 없어서 막연하게 인세의 인간들과 비슷하게 살아갔을 너와. ...그 공허함의 차이는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렁텅이가 분명하니... 나오는 것은 무미건조한 한숨 뿐이다. ) ...하지만 안심이야. 어찌되었던, 네가 내게 들려주는 답은 그것이라서. 그래, 내가 아는 라이아나는...너 하나 뿐인 걸. (우리는 차디 찬 겨울의 숲을 걸었고, 꽁꽁 언 냇물의 멈춘 시간을 바라보았으며...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을 타고 그 순간을 내어주기도 하였다. 바스타르는 라이아나의 행복이 될 생각이 없다.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며, 라이아나가 바라지 않는 것을 그 또한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아나가 바라볼 봄을 곁에서 같이 바라보고 싶다. 지켜줄 수 있는 이가 아닌... 지탱해줄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고 싶다. ...그러니, 내가 갖는 너의 의미를 결코 말하지 않을 거야. 나도 모르게 너를 묶어버리지 않도록, 내게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에게 결코 고할 수 없겠지. 용서해줄래, 라이아나. 너에게 숨기는 것 하나 없다 하였지만, 이것 하나는 비밀 삼게 해줄래. 짧게 웃어넘기는 소리와 바람 빠진 웃음 소리가 교차하여 겹친다.)
...음. 있잖아, 나는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제법 들어왔거든. 그래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는 편보다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예로부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나이가 몇이냐며 중얼대는 소리에 멈칫한다. 그러게, 우리 생각보다 많이 살아왔네...그런 소리나 남기곤 가만 미소 짓는다. 오히려 너를 복잡하게 하고 있던 것은 나였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니 단순한 문제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이고, 서로에게 남기는 것이 확답이기 이전에 의문이자 질문이라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했지만 이미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 전보다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건 지금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무엇을 불안해하던 것일까.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네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우습기도 하지. 이미 그렇게 되면 찾아내던 잡고 늘어지던 내가 붙잡겠다고 말까지 해놓고.) 그럼...진짜 바보나 되어보지 뭐. 내가 원하는 것을 그만둘 정도로 바보라는 호칭이 싫은 건 아니거든. 실제로, 지금도 양파 이야기에 동심 운운이나 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에 진짜로 충격을 받았을 리는 없으니까. 오히려 컵을 치는 것을 보며 움찔한다.) ...어제보다 라이아나가 얼마나 더 파릇파릇 해졌을 지는 궁금하지 않나 보군. 아쉽네. (다녀오라니 진짜 다녀온다며 뒤돌아 시선만 힐끗한다. 실제론 이해해주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당신이 보이지 않는 시각에서 웃음을 피운다. 아직은 시들지 않겠구나, 싶어서.)
 
밀짚꽃에 줄 물을 들고, 익숙하게 계단을 오릅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햇빛을 받으며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는 화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란빛은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시들지 않은 채, 꽂꽂하게 서 있습니다.
 
흙은 다소 말라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열린 창문,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은 차분히 흔들리네요.
 
언뜻 보면,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는 모양새로.
 
바스타르:...옳지. 꺾여 심어진 꽃인 데에도 열심히 살아주고 있구나. (물을 들고...조심조심...줘 봅니다?)
 
(꽃에 말 거는 비타... 큐트하군요.)
 
메마른 흙에 축축하게 물이 스며듭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꽃이 조금 더 싱그러워보이는 것도 같죠.
 
바스타르:그래, 라이아나. 오늘 날이 참 좋은데...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구나. (고루고루 물을 주고 손가락으로 괜히 한 번 만진다.)
 
주인이 아껴주는 만큼 사랑받는 이도 그리 느낄 테니까요.
 
방 안에 자리한 한 송이의 밀짚꽃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할 테죠.
 
사랑받는 만큼, 사랑하며 하루를 살아갈 겁니다.
 
라이아나와 바스타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듯이.
 
바스타르:그럼...꽃인 라이아나를 봤으니, 혼자 준비 중일 라이아나에게 돌아갈까. (중얼중얼...다시 한번 바라보곤 돌아선다.)
 
바스타르는 꽃에 물을 준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갑니다.
 
바스타르:(저벅저벅...) 라이아나, 다녀왔는데... 음. 뭐 하고 있었어?
 
1층에 도착한 순간, 갑작스럽게 시선이 위아래로 흔들립니다.
 
그리고 양 옆으로 움직입니다.
 
옥상에서 떠밀린 사람 같이,
 
혹은 누군가 세차게 뺨을 갈긴 것처럼 정신이 멍해지고 무릎이 꺾입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 그런데 어딘가 익숙한…
 
위험, 경계신호, 공포, 사건, 이명……
 
예컨대 죽음, 같은, 것……………
 
아,
 
흐린 시야 너머로 라이아나가 무언가 소리치는 모습이 간신히 잡힙니다.
 
처음엔 먹먹하게, 물속에서 바보처럼 비명 지르는 사람인 마냥.
 
그 다음은 긴 이명 사이로 섞이는 소리로, 그 다음은…
 
유리가 깨지는 소리입니다.
 
라이아나:비타, 빨리 이쪽으로 와!
 
어?
 
이제야 당신은 눈치를 챕니다.
 
이건 지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벼운 수준의 진동은 아니란 게 느껴집니다.
 
가벼운 물건이 흔들림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밖으로 대피하기보단 테이블 아래에 숨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이아나는 이미 테이블 아래에서 머리를 감싼 채 당황스러운 얼굴로
 
바스타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스타르:...아. (당혹스러움과 함께 몰려온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라이아나를 보며 정신을 바짝 차린다. 무어라 말하기 이전에 라이아나가 부르는 쪽으로 급하게 걸음을 하고.)
 
빈 손을 이쪽으로 한껏 뻗은 것이 딱 1초만 있으면 그냥 이쪽으로 뛰어들 기세입니다.
 
문득 웃음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라이아나는 처음 봤죠.
 
...그리고 순간,
 
바스타르의 머리 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 민첩 판정 ✷ 
 
바스타르:
민첩
기준치: 85/42/17
굴림: 7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스타르가 라이아나 옆으로 도착하자,
 
순간 거짓말처럼 지진이 멈춥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엎어진 채 가쁜 숨을 정리합니다.
 
라이아나:…갑자기 뭐람, 이게. (고개 빼꼼 내밀었다가 다시 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타, 다친 곳은 없어?
 
바스타르:...지진, 인가... ...(멍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제게 시선 돌리는 라이아나를 느릿하게 바라본다.) ...나는 괜찮아. 너는 다친 곳 없고?
 
라이아나:응, 보다시피. (이리저리 팔 한 번, 몸 한 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지진이라니 진짜 이상하네…) 그나저나… 완전 난리났는데, 어제 청소했는데 말이야.
 
둘러보니 현관과 거실 근처가 엉망입니다.
 
책은 다 튀어 나오고, 화분이 옆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진짜 기껏 어제 청소도 다 했는데…
 
바스타르:그래, 다행이다. (다친 곳이 없다는 말에 안심의 한숨을 내쉰다.)...엉망이 되어버렸네. 청소는 다시 하면 되지만-...(...) 화분..? 아..! 라이아나는 괜찮은 건가? 쓰러진 화분을 보며 떠올리는 것은...아무래도 그것..)
 
라이아나:... ...걱정되면 보고 오던지. 거실은 내가 치우고 있을게. (등 한 번 톡, 밀듯이 두드려준다.)
 
바스타르:...미안. 금방 보고 올게. (톡, 밀듯이 두드려주는 손에 얇게 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곤,) ...내가 소중해하는 이쪽의 라이아나도 무슨 일 있으면 곤란하거든? 여차하면 불러. 금방 내려올게.
 
라이아나:딱히 뭐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얼른 보고 와.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봐? (본인을 먼저 걱정해주고 나서 뒤늦게 떠올린 걸 보고 어느 정도 자각은 했다. 괜찮다는 듯 손 휘적 휘적...) 그리고 나 내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
 
아무튼, 걱정되는 양 쪽 모두 상태는 확인해봐야되겠죠.
 
방금 내려왔지만, 꽃의 상태를 확인하러 급하게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요.
 
분명 엉망이겠지 싶어 침실의 문을 열었는데, 그곳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난리는 커녕 협탁 위의 노란 꽃마저 사뿐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그렇게 심한 흔들림이었는데, 어째서?
 
바스타르:...(눈 비비작...) ...이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군. 다행이긴 하다만...(라이아나라는 이름의 밀짚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정말 멀쩡합니다. 방도, 라이아나 꽃도요.
 
문득 창문 밖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문 너머로는 거리를 걷는 일상적인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 또한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 지능 판정 ✷ 
 
바스타르:
지능
기준치: 85/42/17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집 상태는 운이 좋아서라고 치더라도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분명 꽤 심한 지진이었는데도 아무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밝은 얼굴과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길가에 넘어진 사람조차 없군요. 정말 다들 근사한 하루를 보내려나 봅니다.
 
바스타르:...이건 마치,
우리가 있던 곳에서만 일어난 환상 같잖아.
...허어... .................(일단 생각은 차차 하기로 하고 다시 라이아나가 있는 1층으로 돌아간다.)
 
바스타르는 1층으로 내려와 다시 집안을 둘러봅니다.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흔들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곳은 현관 근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주변으로 이동하는군요.
 
아니, 이동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주변으로 갈수록 빠른 속도로 진동이 경감된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아까 전 바스타르의 머리 위에 떨어질 뻔한 물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동의 중심은…
 
 ✷ 이성 판정 ✷ 
 
바스타르: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감소합니다.
 
바스타르:...내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이게 현실적으로 무언가... ...(라고 중얼 거리며 라이아나를 찾아본다. 상황보고를 하던 이야기를 나눠보던 혼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라이아나는 주방에서 떨어지며 깨진 컵 조각을 치우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움과 불쾌한 두근거림 속에 잠시 빠져 있는데,
 
이번에는 초인종이 올립니다.
 
분명히 집배원은 이미 왔다 갔는데, 누구지?
 
바스타르:...도대체 누가...(당혹스러움에 머리를 살짝 헤집다가 심호흡을 한다. 이내 누구십니까, 하며 문 가까이 다가가곤)
 
문 밖으로 앳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저, 저기… 저, 옆 펜션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인데요....
 
바스타르:... ...옆 펜션...?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문...살짝 열어보며)
 
어쩐지 오며가며 한 번쯤 본 것 같은, 옆 펜션에서 지내는 아이입니다.
 
괴물세계인 만큼, 괴물이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요.
 
옆집 아이: 아,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한다.) 그, 별 건 아닌데… 방금 집이 조금 흔들린 것 같아서, 엄마가 옆집 괜찮으신지 여쭈어보라고… 부탁하셔서… 별 일, 없으신가요…? (물끄럼 인간…인가? 신기하다는 듯 빤히 올려다본다.)
 
바스타르:아...그래, 안녕. (꾸벅...하는 인사에 얼떨떨한 인사를 건네곤) 아주 작은 지진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아마 비슷하게 흔들렸을 거라 생각하니, 이쪽은 괜찮단다. (물끄럼 보는 시선에는 한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다. 이 안에서만 일어난 환상같은 일은 아닌 건가... 복잡한 생각을 끌어안고,) ...너와 어머니는 괜찮으시니?
 
옆집 아이: 네, 네...!! 괜찮아요! 그냥, 조금 흔들린 것 뿐이라서... (고개 마구 끄덕인다.) 그, 조금 자주 보이셨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잘 안 보이셔서, 언니만 있고, 오빠는 어디 간 건가 했거든요… (헤헤, 웃고는 고개 기웃 거리면서 안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같이, 지내시는 언니도... 안색이 별로 안 좋던데… 별 일, 없으신 거죠?
 
바스타르:아, 그건... (순수한 아이같은데... 그런 감상이나 하며 고개를 살짝 젓는다.) 최근에, 조금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방 안에서만 있었거든. 그래서 그럴 거야. (안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따라 안을 바라본다. 안색이 안 좋다는 말에는 어제 보았던 라이아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안색으로 며칠이나...) ...잠을 제대로 못 자던 모양이라, 중요한 일이 끝나서 이제 언니를 챙겨주려고. ...다른 사람도 걱정할 줄 알고, 기특하구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곤 뜸을 들인다.) ...오다가다 언니를 보면, 라이아나 언니라고 불러주겠니? 그 언니의 이름, 라이아나 라고 하거든.
 
옆집 아이: 아하... 오빠도 많이, 바쁘셨구나... 그럼 어쩔 수 없죠... 두 분 다 몸 조심하세요, 가, 갑자기 이렇게 지진이 난 건 처음인 것 같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또 없고.... (고개 끄덕 끄덕. 머리 쓰다듬자 환하게 웃어준다.) 네! 라이아나 언니, 구나... 오빠는요? 오빠 이름은 뭐예요...? (고개 갸웃.) 아, 그리고... 혹시 좋아하시는, 빵 있으세요...? 저 최근에, 엄마랑 같이 만들어보고 있거든요... 좋아하시는 거 있으면, 다음에 만들어드릴게요...! (눈 반짝 반짝.)
 
바스타르:그래, 고마워. 너도 조심하렴. (환하게 웃는 표정에는어릴적의 우리를 떠올린다. 우리도 아이일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름은 바스타르야. 나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 편하게 부르렴. (제게 있는 또 다른 이름을 알려줄까 고민하다, 이내 그만둔다. 반짝이는 눈을 보며 잠시 고민하곤,) ...부드러운 빵이라면, 뭐든 좋을 것 같네. 이런 것도 신경 써주고, 고마워.
 
옆집 아이: (라이아나. 바스타르... 이름을 몇 번 외우려는 듯 곱씹고는, 부드러운 빵! 하고 작게 소리친다.) 네! 참고할게요! 별 일 없으시다니 정말 다행이구... 혹시나 다친 곳 있으시면 꼭 병원 가서 치료하시구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언니랑 오빠, 둘 다 몸조심하세요...! 다음에 뵐게요!
 
바스타르:...그래. 조심히 들어가거라. (가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는다.)
 
아이가 떠나간 자리, 문은 굳게 닫힙니다.
 
라이아나:(대충 깨진 것들을 다 치우고 아침 준비도 마저 하고 있었는지... 잠깐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낸다.) 갔어?
 
바스타르:...음. 그래, 갔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따라 라이아나의 곁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에 다 치웠네. 돕지 못해서 미안. 그리고...(...잠시 뜸을 들인다. 내가 보고 느낀 이 모든 것을...알려줘야 하나 싶어서.)
 
라이아나:어제 네가 청소 다 했으니 이 정도 쯤이야. (괜찮다 말을 덧붙이고는 끊어진 이야기에 고개를 기울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역시 어디 다쳤어?
 
바스타르:(기울이는 고개를 보며 다시 눈을 감고 곰곰...잠시 간극을 두며 생각을 정리한다. 물음에는 고개를 저을 뿐이고...) ...라이아나, 내가 자고 있던 동안에...이런 지진이 일어난 적이 또 있었어?
 
라이아나:지진? (눈 한 번 꿈벅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적어도 내가 깨어있는 동안은 이런 흔들림 같은 건 한 번도 없었는데… 잘 때 내가 못 느꼈을 가능성도 배제는 못하지만, 일단은 내가 알기로는 없어…. 왜? 뭐가 이상해?
 
바스타르:(젓는 고개를 보며 다시 시선을 굴린다. 제 입가를 톡톡 치며 꽤 진중한 고민을 하곤,) ...아니야. 아무것도. 우리가 느낀 지진이 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서. ...밀짚꽃 라이아나가 있던 방은...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라이아나:으음...?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집인데, 그럴 수가 있나. ...본인도 크게 느꼈던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리 이야기했으나, 이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내저었다.) 뭐, 별 일이 없으면 다행인거지. 좋게 생각해. (그릇 두 어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마실 거는?
 
바스타르:...그 말대로. 좀 이상하긴 하지만... 네 말이 맞아, 라이아나. 내가 걱정했던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좋게 생각하면 될 일이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상하게 느끼거나 발견한 것을 언급하진 않는다. 무언가 확실한 것을 알 수 있는 때는...그 상황이 다시 찾아올 때 뿐, 이 될 테니까.) 나는 물이면 충분해. 내가 해주려 했는데 말이지... .
 
라이아나:거실에 화분 쓰러진 거 봤지? 먹고 청소해야되니까 별 걱정 말고 청소 걱정이나 해. (이런다.) ...이게 뭐 얼마나 된다고... 별 걸 다 아쉬워해. 이러다가 내 손에 물 한방울 묻히는 것도 안 된다고 하시겠어요, 아주. (고장된 표현인 것은 맞지만...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틀동안 느껴본 바로는 그랬다. 컵도 하나 더 꺼내 물을 채워놓고. 그럭 저럭 먹기 좋게 썰린 샌드위치를 나누어
물잔과 함께 네 자리 앞으로 내민다.) 먹고... 청소하고 빨래 개고, 마트가자.
 
바스타르:후우...그래, 그렇지 참. (쓰러진 화분이며 난리난 책장이며... 시선을 굴려 바라보다가 쓴 웃음을 짓는다.) 한 일주일 정도 되었으면 몰라, 어제 하루밖에 못 해줬으니 말이야. 뭐...계속 그러면 정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물을 한 모금 마시곤 샌드위치를 본다. 그 사이에 만든 건가... 잘 만들었네, 그런 생각이나 하며) ...그래,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옆집 아이가 네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며 걱정하던데 말이야. 거 봐, 나만 그리 느끼는 게 아니였다니까.
 
라이아나:너라면 진짜 할 것 같으니까 그 생각은 집어넣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굳이 내가 남한테 다 맡기는 성정 아닌 것도 대충 알잖아? (뭐, 결국은 본인도 하겠다는 이야기다. 말은 저렇게 해도 너한테만 맡기는 건 아무래도 미안하니까. 자신 역시도 샌드위치 한 입 베어물고는 우물 우물.) ...아, 진짜? 저번에 나갔다올 때 마주쳤는데 그 새 봤나. (괜히 자기 얼굴 만지작거릳가ㅏ 손 내린다.) 지금은 그 때보다는 나으니까 괜찮겠지 뭐. ...어린 애한테 걱정을 다 받아보네.
 
바스타르:..알고 있긴 하지. 아주...잘. (단순히 할 일 같은 면에서가 아닌, 다른 면에서도 의지만 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괜찮다는 것과 별개로... 샌드위치를 우물 우물 하는 모습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짓다가 저도 한 입 베어 문다.) 어린 애들은 솔직하지만, 둔한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잘 알아챈 것을 보면 네가 여간 무리를 하긴 한 것이지. 며칠 정도 그런 안색이었는지 모르겠다만... (쯧, 몸 좀 챙기라는 뜻에서 혀를 찬다.) 그리고, 뭐랄까. ...어릴 적이 생각나더군. 너도 옛날엔 그렇게 웃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라이아나:그렇지? 알고 있으면 접어두는 게 나을 거야. (이런 면으로는 자신 역시 고집이 여간 센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어 넌지시 건넨 말이다. 물도 한 모금 마셨다가 이어지는 말에 가볍게 테이블을 톡, 두드린다.) …평소에는 잘 챙기는 편이었거든? 근 며칠만 그랬던 거라고. 그리고… 무리하려고 해도 네가 있으면 무리 못할 거 나도 알고 있거든? (너라면 절대 안 시킬 거니까. 아무튼, 자신도 더 무리할 생각은 없다며 덧붙인다.) …아, 그래?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짧게 입꼬리를 올린다.) 그 정도의 어린 애라면, 한참 순수할 시절이네. (옛날의 우리도 그랬지. 순수하게, 원하는 걸 바라보며, 익숙한 일상에 녹아들어 웃고 있던 날들이, 타임캡슐을 묻으며 웃었던 날이... 있었지, 그래.) 비타, 넌 어릴 때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나?
 
바스타르:하여간... .(이따금씩 잊고 있던 것이라면...우리 둘 다 적당한 포인트에서 숙일 줄 알아서 그런 것 뿐이지, 고집은 센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장난이 반 스푼 정도 섞인 말이긴 했으나...) ...네가 이해해. 내가 일어나서 본 모습과, 옆집 아이가 걱정하던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잘 알고 있으니 첨언하겠다만, 무리할 생각도 말고. (물론, 제가 기억하는 라이아나는 그 정도의 걱정을 끼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그렇기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 만큼 수척했던 모습은 분명 하우스를 폭파 시키기 전에... ...아니. 지금 와선 필요없는 생각이기에 그만 둔다. 이내 올리는 입꼬리를 보며 테이블을 한 손가락으로 톡 톡 두드린다.)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는 걸. 음...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그 두 가지로 나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 너는, 어떤데?
 
라이아나:내가 아무리 그래도 물가에 내 놓은 어린 애 같은 감상이 들 정도는 아니거든. ...무리 할 생각도 없으니까 넌 걱정을 말고. (알았지? 그리 덧붙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이 상태가 되기까지 있던 일이 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도 상태가 별로였단느 건 인정하지만, 하루 이틀 정도 충분히 자고 먹는다면 회복될 일인데, 걱정이 과하다니까... ...뭐어, 아무튼. 오늘이라도 일단 잘 챙겨두면 따로 걱정 안하겠지.) 글쎄... 역시 마마랑 다른 애들이랑 다같이 떠들던 날? (아니면...) 타임캡슐 했던 날도 생각나네. 마마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줬던, 다같이 웃으면서 떠들던 때. (난 부정적인 것들이 없거든, 그리 덧붙이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그린다. 행복했어, 무척.) 비록 우리가 있던 곳은 새장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 때는 나한테 그 하우스가 전부였는 걸. (우물 안 개구리라지만 행복했다면 된 거잖아?)
 
바스타르:비유를 해도 그렇게 하다니, 이건 뭐...걱정을 덜어야 할 것만 같게 만드는군. (덧붙이는 말에는 얇게 뜬 눈으로 그저 바라보다 예, 예- 하며 답을 할 뿐이다. 어떻게든 이 걱정을 덜어내려 괜찮다는 답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에도... 이상하게, 계속 걱정하게 된단 말이지. 아침마다 오는 편지 때문인지, 더욱이... 변하는 상황을 살피게 되는 것은. 아니면 그냥 내가 걱정이 많은 것인지... 작은 한숨을 내뱉는다.)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네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말이야. (그 시절, 나 또한 분명 행복했다. 조이풀 하우스 아래, 우리는 모두 다같이 행복 속에서 걱정 없이 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행복하게...걱정 없이.) ...새장이라도,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면 나는 기꺼이 새장에 갇히는 것을 택할 지도 몰라. 그건...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라이아나. 그 때로 돌아간다면 차라리...(...그런 헛짓거리를 해서 진상을 알아내지 않은 채, 그곳에서 끝을 맞이하는 편이 너에겐 더 나은 것이었을까.) ...아니다. 아무것도.
 
라이아나:네가 과한 게 맞으니까 덜어야 하는 게 정상이거든? 괴물 부모들도 너 정도까지는 안 할 걸. (이런 말이나. 걱정 많아 너, 진짜. 다른 가족들 걱정도 많...았던 것 같고, 응.) ... ...아. 그렇네. 이야기할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제 입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웃고 만다. 그래, 어지간히도... 그 시절에 머물고 싶나보다, 나는. 계속해서 그 행복을 좇으려 하는 걸 보니까. 정해진 수명, 1월생인 나에겐 그겋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잘 알고 있네, 역시. 새장이라고 해도 행복하면 그만이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도 따뜻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지낼 수 있는 걸, 그러니까... ...응, 차라리, 맞아. (네가 삼킨 말이 무슨 이야기일 지 알았기 때문에, 가벼운 대답을 더한다. 정말, 가볍고, 단호했으며, 확신에 찬 어투....) ...난 마마와 함께 있기를 택했을 거야. 몇 개월도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이었을 지라도. (혹시 모르지, 정말 사육감이라도 됐을지. 눈을 내리 감은 채 농담 아닌 농담을 뱉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이리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는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원도, 마마도, 우리의 하우스도.)
 
바스타르:어찌보면...그래.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역시 잃거나 놓치고 나서야 후회하는 건 이제 그만 하고 싶어서. 차라리 이 편이 낫지 않을까- ... ...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상하게 쳐다볼 까봐 말을 못하겠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제게 남은 것은 이제 이게 전부이니. 꿈이 많고,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자신의 가치이자 재산으로 삼았던 것은 이제 어릴 적의 이야기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도 좋아. 당장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은 아쉬울 수 있지만, 네가 행복이라는 감정을 잊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 생각하니까. (웃는 표정은 곰곰히 바라본다. 진심, 이겠지. 그 당시를 생각하며 나오는 웃음이던... 어떤 의미로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하여도 기억만은, 그 당시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니 그 이상으로 말을 얹지 않는다.) 그렇게 답할 것 같았어. 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도...그리고, 네가 할 답은 영원히 하나 뿐일 테니까. (나라도 모른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라이아나가 남은 생에서 의미를 찾길 바라는 마음과 별개로, 자신과는...다른 가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진작에 인정했다. 다른 말로 표현해 볼까? 지금 당장은 그 어떤 것에서도 행복의 편린을 발견하기 어려울 사람이라고.) ...네가 사육감이 되겠다 선택했을 때도, 그 선택을 재고해보길 바란다거나... 이해 못하겠다며 막을 생각은 곧 죽어도 없었어. 그것이 너의 행복이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라면 응원해주어 마땅한 것이겠지. (너무나도 쉽게,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하는 것은 라이아나가 이것을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안다. 이건...그래. 말하자면 남은 것이 없기에 농담처럼 흘릴 수 있는 것이겠지. 느릿하게 시선을 굴린다.) ...차라리 연구에 종사하여, 타임머신이나 개발했어야 했나. (괜한 우스갯 소리나 흘리고 만다.)
 
~ 2023-12-09, 02:00 CUT ~
 
라이아나:…나도 너한테 후회로 남는 건 그만하고 싶기는 하거든. 그런데, 만약에라도 그렇게 된다고 해도, 넌 나한테 뭐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결국 네가 한 말들은 모두 자신이 한 번쯤 생각하고, 또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또 같은 결론이 난다. 미련하고 바보같은, 바스타르. 네게 상처나 후회나, 불안이나… 그런 부정적인 감상들 보다는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게 원하는 것이기는 하나, 피치 못할 일이 생기게 된다고 해도 네가 지금껏 한 일에 대해서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늘 최선을 다했고, 나 역시 그를 응원하였으며, 네가 남겨준 것들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잊지 못할, 잊지 않을 이야기.)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데 어떻게 잊겠어. 나에게 최고의 행복이자 사랑이었고, 어쩌면 너보다도 더 오래 기억할 만한 기억인데. (사랑 받은 기억, 사랑한 기억, 무언가를 있는 힘껏 바랬던 기억. 모두가 함께 웃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 현재가 지겨울 정도로 지루하다거나,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재미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과거의 산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상대 역시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누가 갑자기 나한테 와서 내 기억을 지우고 행복하게 해주겠다 해도 개소리하지 말고 가라고 할 정도랄까? (부러 가볍게, 장난기 있는 말투로 웃으며 이야기하곤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해본다. 네 말대로 이것만은 변치 않고 영원할 대답일까, 싶어져서. 내 행복의 기준은 결국 둘 뿐인 것 같지. 너도 아주 잘 알고 있듯이, 가족과 죽음.) 너는 그 때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 비타. …솔직히 욕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 했었고, 실제로도 조금 먹었고, 다들 그 길을 응원해주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너는 달랐지. ...신기해, 여전히. 하지만 동시에 고맙다는 마음이 제일 커. (언제든,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너는 늘 나를 응원해주니까. …결국은, 응. 우리가 하는 건 행복에 관한 이야기지. 나 역시 네가 행복을 이야기하였으면 하니, 언젠가 정말로… 네가 행복을 찾는다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단순히 내 행복을 찾으며 함께하기보다, 네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지가 궁금했을 지도.)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현대 기술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지… 정말 있다면 난 1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마마랑, 가족들이랑 10여년은 살 수 있을 거 아니야. (…) 비타, 넌 과거로 간다면 언제로 가보고 싶어?
 
바스타르:맞아. 뭐라고 할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지. 그 이전에...지금 이것 조차도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인데 네게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싶다만은. (후회. 묵직하고 무거운 그 단어를 되새긴다. 자신에게 남은 후회가 무엇이었더라. 그저 지금은, 더 이상 많은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소중한 사람의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 욕망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무언가가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 미련함을 인정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 생각해왔어. 쓴 미소에 맺히는 것은 슬픔 따위가 아니다. 그래, 이게 과연 내 최선인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충격이 되진 않겠지. 네 말대로, 너는 어쩌면 그곳에서 종장을 맞이하는 것이 더욱 행복했을 것이라는 사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선 그런 네가 과거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이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 ...하지만 너를 그 과거에서 끌어낼 수는 없어. 그러니까 차라리...지금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그때라도 자주 되새겨 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미 그러고 있긴 하겠지만. 짧게 갈무리 한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랑 이전에, 참으로 따스했던 하우스와 마마의 사랑. 우리에게 나누어준 사랑이 진짜였던 가짜였던, 우리가 식용의 목적으로 길러진 무언가라 하여도 너에겐 상관없는 일. 그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주었으면 해, 살아남았으니 앞으로 다른 행복이라도 찾아주었으면 해. ...이건 전부, 내 바람이자 다른 가족들의 몫까지 바람을 실은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 ...네겐 통하지 않을 세뇌라는 것도.) ...과격하군. 하지만, 그 정도로 네겐 과거가 소중한 것이니. 뭐, 이해 못할 반응도 아니긴 하네. 나라면 한 번 즈음은 고민해볼 지도 모르겠는데. (농담이야- 라고 작게 덧붙이는 말에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감정이 실린다. 너희와의 추억을 어떻게 지워내겠어, 라는 진심과... 또 다른 것은...) ...다들 당황해서 너를 막아서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실제로, 나는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어. 물론...충격이라는 것과는 별개이긴 하지. 그들은 정말 너를 욕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만큼 사랑하기에 너를 보낼 수 없었던 것 뿐이야. (...) 지성체들이라 하면 답은 한 가지 뿐이지. 싸움 이전에 꼬드길 수 있는 것은 꼬드길 것이라 예상은 했어. 네 답과 선택은 예상하지 못했지만...그래. 그 말대로 나는 변함없이 너를 응원할 것 같거든. (어릴 적에는 행복 이전에 꿈을 먼저 찾았다. 수없이 많은 꿈을 전부 이루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지. ...그런 환상 속으로 돌아가기엔 나는 너무 철이 들어버린 것인지. 지금 택할 수 있는 나의 행복은 이것 뿐이라서. 그러니- 너의 답이 한결같듯 나 또한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바라는 행복을 너는 찾을 수 없을 테고, 네가 바라는 내 행복 또한 나는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 거야. 서로 알고 있으면서...지독하게도 서로에게 잔인하구나.) ...1살, 이라. 정말 완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다 끝을 맞고 싶은 건가? 주어진 시간은 11년. '12살이 되는 때에는 출하의 고정 대상이 된다'. 그 10여년을 위해 그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도, 참 너답네. 라이아나. (아주 짧은 간극,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에 잠긴다. 이내 제법 가벼운 말투로 고하기를...) ...내가 찾던 꿈이나 세상은 밖에 없었어. 그러니 가능하다면... ...어쩌면 나도, 너와 같은 선택을 할 지도 모르지. 하하, 어릴 적의 내가 들으면 참 미친 소리긴 하군. (어릴 적에는 행복 이전에 꿈을 먼저 찾았다. 수없이 많은 꿈을 전부 이루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지. ...그런 환상 속으로 돌아가기엔 나는 너무 철이 들어버린 것인지. 지금 택할 수 있는 나의 행복은 이것 뿐이라서. 그러니- 너의 답이 한결같듯 나 또한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바라는 행복을 너는 찾을 수 없을 테고, 네가 바라는 내 행복 또한 나는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 거야. 서로 알고 있으면서...지독하게도 서로에게 잔인하구나.) ...1살, 이라. 정말 완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다 끝을 맞고 싶은 건가? 주어진 시간은 11년. '12살이 되는 때에는 출하의 고정 대상이 된다'. 그 10여년을 위해 그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도, 참 너답네. 라이아나. (아주 짧은 간극,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에 잠긴다. 이내 제법 가벼운 말투로 고하기를...) ...내가 찾던 꿈이나 세상은 밖에 없었어. 그러니 가능하다면... ...어쩌면 나도, 너와 같은 선택을 할 지도 모르지. 하하, 어릴 적의 내가 들으면 참 미친 소리긴 하군.
 
라이아나: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정말 혹시 모르잖아? (넌 너무 자신감 넘쳐. 예전에 본인이 다른 말을 하면 뺨이라도 쳐달라고했었지. 그 정도로 자기가 하는 말에 자신이 있다면서. 그렇기에 네가 언젠가 변화하는 것을, 내가 변화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자신 역시 앞으로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선택을 해보고 싶으니, 선택 하나 하나에 신중을 기하며 이 길에 발돋움을 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고 있지. 소중하다, 아낀다, 애정한다… 그 많은 표현들로 자신이 가진 감정을 정리해볼 수 있겠다만, 그 크기는 조금씩 다르겠지. 어제 너보다, 일 지는 모르겠지만 너만큼은 주고 있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직접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은 나도 있어. 하지만 이야기하다보면 그 크기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너와 내가 가진 감정이 같은 단어를 가진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든 의미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 너는 나보다 더 다양한 감정을 지녔으니까,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결이 조금 다른 것 중에 하나를 예로 들자면, '헌신'. …아닐까.) 잘 알고 있구나. 응, 나는 매순간 되새기고 있어. 아마 죽는 순간까지 그럴 거야. 행복을 찾고, 의미를 찾고, 이런 게… 사실 인식하면 할 수록 더 찾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버릴 수가 없어.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정말… 순수하게 기쁨을, 행복을, 안식을, 평온을 느꼈으니까.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동경하는 시절일 거야. 누군가는 식용아의 존재 의미를 안 것에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었으나, 그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겠다 이야기하거나, 도망쳐야되겠다 말하는 것에 당황하게 감회된 것일 지도 모르지. …모두가 가야한다고 이야기하니까, 다들 나가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선택하게 된 거라면, 내가 진짜로 원한 건 역시 잔존이 아니었을까. 살아남는 것보다 식용아로써 남는 것을 원하는 것이, 네 말대로 내게 어울리는 결말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어떤 식으로 자라나고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너희를 사랑할 거라는 이 마음에는 확신이 있어. 마마를, 가족을,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그만큼 행복했어. 내 남은 시간을 모두 바쳐도 좋을 만큼 말이야. (정말 농담인가? 싶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남은 물 한모금까지 모두 마신 뒤, 입을 한 번 달싹였다. 진짜로 바란다고 해서 뭐라고 탓할 생각 같은 건 없지만. 선택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면 궁금하기는 했다.) …가족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거지.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도. (너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쉽게 보내주지 않은 이유도 알고 있다. 그저 무시하며 지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몇 번이고 붙잡아준 게 얼마나 기꺼웠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 더, 나는 너희의 다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 포기할 수 없는 욕망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늘 스스로를 저울질해댔다. 결국 결정도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미움 받더라도 한 번쯤 얻고 싶었는데 별 수 없지. 결국 선택하고, 원망받고 미움 받더라도… 계속 회유하려 드는 거 보면,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명제는 거짓 없는 진실이다. 자신이 그 애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어릴 적에도 하나밖에 없던 꿈을 잃을 나로서는 다시 한 번 꿈 꾸는 일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네가 수없이 바라도 내가 이루어줄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껴서, 이따금씩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너와 내가 걷는 길은 평행선이야. 기찻길처럼, 같은 방향을 걷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그럼 관계인 거지. 잔인하네,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서로가 원하는 건 정작 들어줄 수 없다니.) 응, 근데... 비타 너도 예상 못한 대답은 아니잖아? 내가 이럴 거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작게 웃음 소리 흘리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기억을 잃은 채여도, 기억하는 채여도 좋다. 그저 돌아간다면, 잊지 못할 그 행복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전부다.) 출하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새장에 불과한 곳에 갇힌 11년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긴 15년도 재미 없었는 걸. …결국 내가 원하는 건 과거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심호흡이라도 하듯 차분히, 시선을 테이블에 유지하며 톡, 한 번 건들이고.) 어렸을 때 네가 바란 건 드넓은 곳을 탐험할 수 있는 자유 같았지만, 지금의 너는 나랑 같은 선택을 할 지 모른다는 게… 웃겨, 제법. 싫다는 건 아니지만. (...현재를 느끼며 살아가기엔 과거의 그 때가,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빛났던 모양이야, 비타.)
 
바스타르:혹시 모른다, 라. ...그래,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혹시 모를 그 상황을 고려하고 싶진 않아. 확실하게 해둘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는 '혹시 모른다'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이라는 것을 갖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네가 말했었지. 사람은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변하기 마련이라고. 그래, 그 말대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이 변하였다.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 이 상황,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릴 변화가 찾아올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거둬들이고 싶진 않다. 적어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네가 변한다 하여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같은 곳에 머무르겠다고-... 네게 확신을 주고 싶다. 라이아나,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있나? ...우리의 이 애정마저 빛이 바래버릴 까봐?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당신을 가만 응시한다. 제 앞에 있는 테이블을 한 번, 쓰러진 화분을 한 번...그리고 떠올린다. 바람을 타고 흔들릴 꽃 한 송이를.) ...그럼 지금 한 번만 가정해 볼까. 너는 내가 변했으면 좋겠어? (어떤 답이 돌아올지 예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구태여 속에 담지 않는다. 너를 모르겠어, 라이아나. 네가 진짜 바라는 것이...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죽음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외에 무언가가 있는 건지...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혹여나 이상한 것을 바랄까봐. 거침없이 주고자 하는 이 진실 된 애정이나 감정을.) 아무런 걱정 없이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이 너무나도 컸던 모양이지. 나는, 글쎄. ...그 당시에는 분명 행복했지만 진실을 알고 난 후의 이성적인 판단을 버릴 수가 없어. 그러니 너와는 분명 기억하는 과거에 대한 애정이 다를 지도 몰라.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다. 찬란했던 우리의 그 어린 날을. 매일 새로운 해가 뜨던 따스한 그 날의 햇살을.) ...그렇기에 지금 찾고자 하는 것이...더 어렵게 다가가는 것이겠지. 나는 너를 많이 이해하고 있진 못하지만, 그것 만은 알아. 네가 노력으로 여기까지 도달해준 것이지... 그것이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사람은 원래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긴 시간 동안 해답을 찾지 못하면 반드시 지쳐.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거든. 그러니까 지치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어진 다면, 그때는 그만 두어도 괜찮아. 난 언제나...수고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을 테니까. (우리의 과거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사랑했던 우리의 집도, 우리를 안아주던 마마도... 그리고 이 곳에는 가족들도 남아있지 않아. 그러니, 라이아나가 사뭇치게 그리워하는 그 과거로는 돌아갈 방법이 정말 하나도 없다. ...진심으로 후회했다. 첫 번째, 마마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하였음에도 나는 매정하게 뒤를 돌았던 것을. 두 번째, ...탈출하기 전에 너에게 꿈을 약속한 것을. 혹시나- 아주 혹시나...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얽매여 있으면 어쩌지, 생각이 들어서.) 그럼...지금이라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나 찾아볼까. 그것 또한 너의 꿈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어때? (의문을 담아 기울이는 고개를 가만 바라본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움직이는 손짓은 제안이라도 하듯 가벼운 선을 그린다. 글쎄...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서. 만일 네가 내 답에 대해 궁금증을 품어도 올바른 답을 다시금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편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다시 순수하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너를 좀 더 공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 때문에.) ...내가 있잖아. 물론, 가족들의 몫이나 마마의 몫까지 채우기엔 끝도 없이 모자라겠지만...그래도, 나는 너를 응원하는 걸. 말했지. ...그럼 그냥 같이 죽어주겠다고. 뭐, 다른 가족들이 말리는 것에 적대 하면서까지 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어쩌면,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가족들의 미움을 각오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을 그리워 하며 원하는 너는 참으로 모순적이면서...약하고, 또 강인하기도 하고. 막상 주겠다고 하니 받아주지 않는 것을 보면 또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을 테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런 너와 맞섰고, 또 부딪혔지만...그건 전부 걱정의 표현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아, 이건 좀 고민인걸. 누가 보면 내가 응원한답시고 방치라도 하는 줄 아는 거 아닌가...쓸 때 없는 고민이나 담는다.) 아니, 예상 못 했을 지도 모르지? ...너에게만 내가 예상 외의 답을 내는 건 아니야. 너 또한 내게 예상 외의 답을 내주기도 하거든. (차분히 심호흡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길 한 두번 정도. 계속 바라보던 시선을 허공으로 향한다. 걸려 있는 시계를 보며 우리의 시간을 체감한다. 인세고 이곳이고...그 어디던 우리의 뜻 하나 따라주는 세계가 없구나.) ...그 역시 의외겠지. 하지만, 네 말이 맞아. 그 넓고 넓은 세계로 나왔지만, 그 곳에는 내가 원하던 자유가 없었어. 내 목적이 15년 간의 준비가 아닌 정말 꿈을 이루기 위한 탐험이라 했어도... ...세상은 그렇게 재밌는 곳이 아니더라. 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것은 발견했어. (...혼자 바라보던 드넓은 숲과 공기보다도,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나부끼는 자연보다도...너와 함께 본 꽃 한 송이다 더 아름다웠더라.)
 
라이아나:… (결국은 사랑했고, 사랑해서, 미워하는 방법도 몰랐던 우리는 그저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가고 있다. 너 뿐만 아니라, 아마 인세에 있는 모두도 그렇겠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위로받고, 또 어느 때에는 힘들어하면서… …주어준 삶이 언젠가 끝이 날 때까지.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누가 그래. 나는, 15년도, 헤어진 이후에도 그들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는데. …네 말대로 모든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을 거다. 30명 남짓한 사람들의 애정을 어떻게 네가 다 채우겠어. 그럼에도… 네가 주는 애정이 부족하다 느껴본 적은 없어. 그저, 나에게 쏟아주고 있는 그 애정이 고맙고, 기껍고… 가끔은 안타까울 뿐이야. 채워지지 않는 곳에 쏟아지는 그 마음들이.) 우리에게 다시 15년이 주어진다고 해도 별반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떨어져 지낸다면 비슷하게 살아가겠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만약 인세로 다시 간다면, 한번쯤 다시 보고 싶은 곳은 있어? 재미는 없더라도, 아름답다고 생각될 정도의 광경이라면 다시 보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 (음, 생각해보니 굳이 인세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겠네. 지금 이곳에서도 있으려나…. 밤하늘이라던가, 겨울의 눈밭이라던가, 짙은 녹음이 깔린 숲이라던가. 우리가 본 곳들은 수없이 많으니 그 중 하나쯤은 너의 마음에 든 곳이 있지 않을까.)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얘기했지? 굳이 따지자면 좋은 쪽에 속한다고. 하지만 늘 그렇듯 와닿는 곳은 없었거든, 그래서 네 생각이 궁금해. (죽는다면 겨울, 죽어준다면 겨울, 기다리는 것도 겨울. 우리는… 계절의 끝에서 함께 질 운명인가보지. …봄도 나쁘지는 않으려나. 겨울과 봄, 그 사이의 경계도.)
 
바스타르:다시 15년이 주어진다면... ...(다른 이들에게 들어온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렇게까지 여럿을 고민에 빠트리는 단어가 아니었는데. 우리에게 사랑이란 어찌 이렇게도 어려운 단어인지... 그럼에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회는 남아있었으나 그리움은 그리 크지 않았고, 생각은 많았으나 결정은 뭐든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도 쭉... . 그러니 네가 가진 그리움의 자리를, 아마 평생을 넘어 그 이후까지 채우며 살아간다 하여도 그건 어렵겠지.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가 없네, 라이아나. 네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같은 것을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저 허락만 해주면 돼.) ...하지만 역시, 다시 주어진다면 그때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그 15년이...가장 뼈아픈 후회로 남았거든. 나는 말이지, 분명 모두를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그러니 이건 그때를 위한 투자이자 노력의 증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게 남은 것은 없었어. 오히려, ...놓친 게 너무나도 많아서.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닌 곁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조용히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추측을 더하여 본다. 특히, 너에 대해 몰랐던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그런 이유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혼자였던 인세에는 없어. 모든 생명이 아름다웠고, 모든 풍경이 새로운 울림을 주었지만...다시 돌아간다면 그것을 본다고 시간을 쓸 것 같지는 않아. 음, 그럼 역시... ...(...) 마지막 겨울. 언젠가 너와 수북이 쌓인 새하얀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며 또 하나의 약속을 더한 날. 그때 보았던 풍경이라면... ...다시 보고 싶은 것 같네.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이야기. 흩날리는 눈과 색채 없이 온통 하얀 그곳에서 흐릿한 바람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던 고요한 백의 세계. 온 세상의 생명이 피어나고, 새로운 생들이 태어나는 봄을 가장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겨울을 그만큼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네가 그 모든 것에 하나하나 새로운 감상을 새기며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느끼지 못하는 만큼 내가 느끼고, 네가 담지 못하는 만큼 내가 담아서... 언제고 너를 위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언젠가는... ...(먼 과거의 일도. 그리 작게 속삭인다. 봄은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색채 가득한 계절. 겨울은 모든 생명이 지는 색채 없는 흑백의 계절. 우리의 끝은 겨울을 향하며, 그때를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봄을 걷고 있다. ...우리에게, 봄이 찾아왔다.)
 
라이아나:…뭐, 너한테 후회가 됐다고 했지. (싸웠던 날에, 어렴풋이 들었던 말로는. 편지에 적힌, 나도 모르게 적어내린 그 짧은 단어 하나가 너에게는 후회로 남았다니 참 야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너의 노력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해. 네가 놓친 건 많겠지만, 그 시간 동안 네가, 다시 돌아올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해온 것들이 많으니까. 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며, 그것들은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었고, 결국,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기는 했잖아. ...우리가 말다툼한 그 때를 제외하면. 이건 본인이기 때문에 일어난 갈등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리움에만 사로잡혔고, 너는 한 가지 목표에만 몰두했지. 응, 우리는 그냥, 각자가 원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해서,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던 거 뿐이니까, 놓친 게 많다고 하더라도 남은 게 없다 여기지는 마. 네가 자주 하던 말이 있잖아. 마음은, 남아. 네가 그리 노력했던 시절이 지워지지는 않고, 다른 가족들은... 분명 그걸 알아줄 테지. ...곁에 있어주는 네가 기껍고, 함께 죽어주겠다 답해준 네게 고맙고,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모습이 동경스러우며, 너라는 존재 자체가 소중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아끼게 되었다. 라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숨기고 있어 네가 모르는 게 많을 텐데도 늘 남아있어주지. ...보통 사람이었더라면 분명 답답하다며 그냥 버리고 가버렸을 텐데. 네 의지며, 바람이며, 선택은… 이제 날 외롭게 만들지 않으니,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해. 깊게 고민하지도 말고.)
…그건 너무 비교적 최근인 것 같지 않아? 그 때가, 좋았구나. (눈이 내리는 겨울, 찬기가 몸을 얼려버릴 것 같은 날이었지만, 주고 받았던 대화에는, 닿았던 네 손에는 늘 온기가 서려있었다. 확신을 버리지 말라던가, 온기를 기억해달라던가. 그런 말들은... 여전히 기억한다. 진중해던 네 모습을 쉽게 지워낼 수 있을 리가 없지. 무사히 그 겨울을 넘기고 닿은 봄이… 너를 닮아 따스하지, 참으로. 생이 필어나는 계절이 달갑지 않다 여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큰 감상이 들지 않으나, 부정적인 감정 또한 들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다. 생명을 사랑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늘 그렇듯 생을 억지로 지게 만드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건, 내가 닮은 것은 겨울이니. …그 차가운 계절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 응, 네 이야기를 듣는 거라면 그건 나에게 충분해. 내가 할 이야기보다는... 역시 네가 나에게 해줄 이야기들이 더 많을 것 같거든. 없는 감상을 만들어내려고 오래 보지는 않아, 최근에는... 특히. 그냥, 보면 보는대로, 느끼면 느끼는 대로... ...이게 편하기도 하고. 네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하니까 의무감도 없고. (단순히 보았던 것을 읊는 나보다는, 조금 더 세세하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네 모습을 보는 게, 나는 더 즐거울 것 같아. 그리 덧붙인다. 과거의 이야기든, 내가 모르는 이야기든, 함께 보았던 것에 관한 것이든. 어느 것이든 들려줘, 겨울의 끝에서 나지막히 울릴 봄의 속삭임을.)
 
바스타르:...인간은 누구나 후회를 해. 모든 선택에는 언제나 후회가 따르고, 저마다 최선을 택할 뿐이다. 그리고, 그 때는...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지. (당연한 이야기. 누구나 지금 자신에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길을 택하지, 그것이 어떠한 길일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이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 아닐지는 말이야. 그리고 그걸 알아채는 타이밍은 또 사람마다 달라서, 나 또한 다시 너희를...너를 만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발전을 이루고, 좋은 대책도 세웠는데... 마음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져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면서 그 사람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이 얼마나...웃기고 우스꽝스러운지. 그런 네게 어떠한 말을 해도 닿지 않을 것이라 체념하던 때, 새로운 기회를 내게 준 거야. 죽음? 그런 게 그렇게 무겁고 중요한 건가? ...적어도 내겐 아니었던 것을. 내게 있어 죽음이라 하여도, 그건 네가 나에게 준... 너를 다시 알아가며 곁에 남을 기회였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그 죽음조차 기꺼워. 텅 빈 공허 속의 너를 채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은 할 수 없어도... 언제까지고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할 수 있다. 함께 웃기도 하였고...그래, 싸우기도 하였지. 울기도 하고...그저 고요하게 곁을 지키기도 하고. 그리고...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나는 거기에 안도를 해. 내가 후회를 고해도, 너라면 그렇게 여기지는 말라고- 그리 이야기 해줄까. 오히려 내게 이런 저런 좋은 말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줄까. ...바보. 누구보다 복잡한 것은 본인일 텐데, 너는 꼭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힘이 있는 거물도 아니고, 이 곳에서 끝까지 너를 지켜낼 정도의 강자도 아닌...그런 녹음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 삶에 선선히 그늘 진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감싸줄게. ...더욱 소중해졌고, 더욱...특별해진 것만 같아. 내게 있어 너라는 사람은.) ...하지만 확실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어. 인간은 후회를 남기는 동물이며,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뒤 따르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나는, 너와 함께 하는 길에 있어 후회라는 것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피식, 가볍게 털어낸 말을 끝으로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낸다. 그 겨울이 좋다는 말에 들려온 답은 또 어딘가 순수해 보이기만 해서...정말 왜 그때가 더 특별히 좋았는지 설명이라도 해줘여 하나 아주 잠시 고민을 하고.) 그 전까지는 그것만큼 마음에 남은 게 있었나 싶어서. 너는 행복했던 과거의 일부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전의 삶에 '아름답다'는 감상만 남겨왔거든. 행복했고, 소중했지만...역시 다시 보고 싶은 것으로 택할 만큼 소중한 건지는 모르겠어.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네가 있기에 지금 행복해. (그러니까, 너무 먼 곳에서 내 행복을 바라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짧게 갈무리 한다. 참으로 시린 계절이며, 눈 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꽃잎 한 장 남아있지 않은 나무와 풀 하나 없는 눈...그리고 구름조차 잘 보이지 않는 새하얀 하늘 뿐이었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니. 겨울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온도 까지도 너를 닮은 바로 그 계절. 찾아올 봄을 달가워 하지 않더라도, 그 계절의 곁에는 네가 있을 것만 같아서.) 다양한 것을 느껴주길 바라는 건...그래. 아무래도 네가 너의 감정을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네가 편한대로 해도 상관 없을 일이잖아. ...방금 약속한 대로, 내가 그만큼 대신 해도 될 일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느끼는 폭이 아주 아주 조금은 더 넓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괜한 바람 실는 건 아니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 라며 작게 덧붙인다. 직접 느끼고 감상을 남기는 것 보다야 훨씬 아쉽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상관없을 일이니. 어떤 이야기던 담고 담아서...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작게 속삭여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것을. ...어느 것이든 들어줄래? 또 다른 봄이 찾아오기 전에, 들려오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해는 어느 덧 기울어 우뚝 솟아있습니다.
 
아침 먹으면서 이야기하느라 조금 늦장을 부린 감이 있죠, 벌써 낮입니다.
 
자, 오늘도 가볍게 하루를 보내봐요. 라이아나와 함께.
 
아침 먹은 그릇과 컵들을 천천히 정리하고,
 
쓰러진 화분을 세우고, 떨어진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고…
 
어제 널어둔 빨래까지 다 개고 정리를 마치면, 문득 라이아나가 이야기를 꺼냅니다.
 
라이아나:(아까 깨진 유리 조각들을 묶어서 밖에 내놓고 들어온다.) 비타, 오늘 저녁에 술 마시기로 한 거. (잠시 입 달싹.) …마시고 밤에 잠깐 같이 나갈래? 근처에 들판이 있거든.
 
바스타르:(다시 깨끗해진 주변을 보며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질문에는 눈을 한 두번 깜빡이더니 꽤 밝게 대답하는 모양새...) 그래, 좋아. 마시고 잠시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하네. ...그런데 들판이라니, 이 주변은 꽤 평화로운 환경이군.
 
라이아나:(기분 좋아보이는 걸 보니 제안하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음, 뭐 아무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너무 평화롭지 못한 환경에서 있던 거지. (어깨를 으쓱댄다.) 아무튼... 술도 깰 겸, 바람도 쐴 겸... 나가는 걸로. (그러면 청소도 다 했겠다...) 마트 가야되겠네. 술이랑 안주 사러. (술 사는 건 또 처음이라서 인세랑 많이 다르려나...? 아님 비슷하려나 하는 가벼운 생각이나 하면서 고민하고...)
 
바스타르:...갑자기 아픈 구석을 찌르네. 그래도 순간이 평화가 아니었던 적은 그리 없지? (아무튼 지금까지도 나쁘지 않았다며 가볍게 웃는다.) 그러게. 아무래도 여기엔 없는 것 같으니까... 직접 사러 다녀와야 겠어. 식재료를 사러 다닐 때 술이나 안주가 있는 쪽은 눈여겨 본 적이 딱히 없는데, 이상한 것만 없었으면 좋겠군. (주변에 마트가... 라고 생각해보며 곰곰...)
 
아무래도 있겠죠. 괴물 세계도 문명이 꽤나 발달했으니까요.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라이아나:찔렀다기보다는 내 얘기이기도 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상황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 과거가 지워지지 않는 만큼 결국 우리는 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존재하지 않는 미래와 현재를 비교하며 살 테니까. ...지금까지 평화롭지 못한 일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네 말대로 순간의 평화는 즐길 법하다. ...불안 보다는 안정을, 긴장보다는 평온을 느끼는 요즘이니까….) 그래도 자기들이 먹는 건데 이상한 걸로 하지는 않았겠지. 인간 먹는 애들도 이단자 뿐이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뭐, 어느 정도는... 비슷한 거라도 있지 않을까. (특히 귀족 사회기도 하니까 와인이라던가... 아무튼, 고급 술 정도는 몇개 있겠지.) 마셔보고 싶었던 건 없어? 달달한 것도 있고, 도수 센 것도 있고... 과일맛 나는 거나... 아무튼 뭐가 조금 많으니까. (...) 넌 처음 마시는 거니까, 도수 높은 것보다는 낮은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어쩐지 혼자만의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중얼대면서 이것 저것 한 번 추려보기라도 하는 듯... 그야, 처음 마신다니까 이러는 거다. 지금까지 숫하게 자기 옆에서 사람들이 취해서 엎어지는 것을 많이 봤다보니까... 가능한 무리시키고 싶지는 않은, 그런 정도.) ...어떤 식으로 분류 되어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해서 세 병 정도만 살까. 괜찮으면 조금씩 높혀가는 쪽으로, 어때? 생긴 게 마음에 들거나 설명이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걸로 하나 골라도 좋고.... (안주는... ...네가 끌리는 걸로 고르기만 해도 꽤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진다.)
 
바스타르:하여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하하 웃으며 농담 마냥 넘길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웃픈 것 아닐까. 확실히, 우리는 그간 평화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는 일도, 목표로 삼는 것도...이 기약없이 걷는 길의 무게도 너무나도 무거웠을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평화는 존재했다. 우리는 순간순간 그것을 느끼고...함께 봐 왔지. 언제나 이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라는 것은... . 그러니 웃음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그렇길 바라고 있다만...뭐어. 확실히 지금까지 이상한 것을 봤다거나, 너무 안 맞아서 종족의 다름을 체감하는 경우는 그리 없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인식인 모양이지. (마셔보고 싶었던 건 없냐는 질문에 잠시 팔짱을 끼고 혼자 곰곰이 고민한다. 술이라는 것을 마시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딱히 없는 지라... 종류는 물론이오, 무언가 관심 가진 적도... ...) ...그래도 역시 고르자면, 술 향만 강한 것 보다는 과일향이 나는 쪽이려나. 처음이라면 익숙한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과일 종류라면 뭐든 상관 없을 것 같긴 하다만, 예를 들면 포도나 복숭아 같은... (똑같이 따라 중얼거리며 찬찬히 나열해 본다. 아는 것이라고는 맥주, 정도인가. 아무튼 본인은 처음이기도 하고... 혼자 고르려 하는 것 보단 경험이 있을 라이아나가 고르는 편이 좋다 생각하여 그 정도만 말한다.) 세 병 정도면...음. 충분할 것 같네. 다 마실 생각보단...역시 새로운 경험한다 생각하고 시작하는 느낌으로 말이지. (그나저나...그렇게 이야기하니 진짜 인세의 다른 사회인들 같네. 피식 웃으며 그런 혼잣말이나 늘여놓는다.)
 
라이아나:(이 세계로 돌아온 그 날부터 일주일 가량은 분명, 우리에게 큰 위기이자 사건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니까. 인세에서 살았다면 절대 겪어볼 일 없을 일들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그것이 당연해져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식용아의 신분으르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나는 그마저도 익숙해져 있었다. 인간보다, 식용아라는 위치가… 오롯 내 자리라고 여겼을 지도. 식용아가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은 지금은, 딱히 의미가 없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느낄 수 있는 평화다. 우리는 인세보다 괴물의 세계에서 식용아로서 사는 것이 익숙하며, 인세를 거부하고 이곳에 남은 자들이니까. ...되려 인세로 넘어갔다면, 이렇게 평화롭다거나, 평온한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을 지도.) 그럼 양주보다는 와인이 좋으려나... 맥주는 난 별로...긴하지만, 과일 맛만 나는 맥주도 있으니까 그것도 한 두캔 정도는 사갈까.... (나머지는 특유 향이 너무 강하고 떫어.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원하는대로 고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뭐, 맛은 복불복이나 다름 없게 되겠지만.) 응, 술은 다 먹을 생각 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못 마실 것 같을 때 버리는 게 나아. (속 버릴 바엔 그냥 버려. 돈 아깝단 생각 안 들게...) 처음 마시는 게 괜찮으면 나중에 시간 될 때 더 마실 지도 모르겠네. (이거 저거 골라서 먹고 마시는 재미도 있으려나. ...인세에서는 잘 못 느꼈었는데 너랑 마시는 건 다를지, 이것도 한 번 기대해봐도 좋으려나.)
 
바스타르:(분명...가장 정신없이 흘러가던 때가 우리가 다시 만나고 난 그 직후부터... . 확실히, 평화라고 느낄만한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한 번 빤히 시선 굴리고 다시 앞을 바라본다. 어찌되었던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 만큼 찾아서 다시 살아가고 있으니. 식용아라느니 그에 준하는 취급과 호칭들이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으나, 그 정체정을 부정하며 제 몸에 남긴 흔적도 딱히 없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필시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비슷하리라, 그리 생각하고. 지금의 평화를 어색하게 느끼면서도, 온전히 즐기고 받아들이려 하는 것 또한... 같을 것 같고.)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선택에 직접적인 첨언을 하기가 좀...스스로 할 수 없게 된다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래, 좋아. 려나...? (아무래도 술의 종류고 양주니 와인이니... 각각의 특징이나 들어가는 게 뭔지 정도는 간단하게 알고 있으나, 먹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속을 버리는 건 둘째 치고, 너한테 인사불성한 모습을 보이긴 싫거든. 더 깎아 먹을 이미지도 없어서 느낌이 이상해지면 정말로 버릴 거다. (자신과는 반대로 이런 자리를 여럿 경험해 봤을 라이아나를 되려 걱정하는 건...조금 웃겨질 것 같아서. 지금은 넣어두었다.) 안주는...그래. 너무 딱딱하고 짠맛이 강한 것만 아니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군. (그 마저도 종류가 따로 있을까 싶지만... 중얼중얼 혼잣말로 의문을 남긴다. 이왕이면 인세에서 가졌던 자리들과는 다른 경험으로서 남겨주고 싶은데. ...헛짓이나 안 하면 다행일까, 역시.)
 
마트로 가기 위해 옷을 챙겨입고, 펜션 밖으로 나섭니다.
 
무얼 사면 좋을지, 또, 처음 하는 음주가 괜찮을 지 이런 저런 걱정도 들지만....
 
뭐든 처음 해보는 경험인 걸요. 새로울 것이 분명합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흑역사가 되어) 안 좋을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즐거울 것 같지 않나요.
 
밖으로 나와 마주하는 햇볕은 따사롭습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근처 나무가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종종 괴물들이 지나가며 하는 이야기소리도 들려옵니다.
 
평화롭네요.
 
정말, 지독하게 평화로운 하루입니다.
 
모두 오늘 좋은 날을 보내려나봐요.
 
평소보다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마트에 도착하면,
 
음... ...넓네요.
 
주류 코너는 어디있을까요?
 
바스타르:확실히 있을 건 다 있는 모양인데... (두리번 두리번... 주류 코너를 찾아 돌아다닌다.) 이왕이면 종류가 많았으면 좋겠군.
 
라이아나와 함께 돌아다니다보면, 아! 한 쪽에 있는 주류 코너를 발견합니다.
 
★세계의 맥주★ 라는... 화려한 판넬이 걸려 있네요.
 
바스타르:(오...음... ...) 신기한데? (다가가서 막 살피며) 라이아나, 정말 세계의 맥주가 다 있는 것 같아? 아니면 그런 뜻이 아닌가...
 
라이아나:으음 뭐… 그냥 이런 저런 종류가 많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 (괴물 세계는 나도 모른다... 하는 눈빛...) 여기랑, 옆에 와인 코너도 있는 거 같아. 여기 보고 보러 가자. 일단...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봐. (본인도 이리 저리 뒤적...)
 
바스타르:세계의 맥주라더니...이 세계만 있는 건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긴 해서 조용히 맥주나 뒤적인다.) ... (하나같이 맛은 모르겠는 디자인의 캔들을 뒤적이고 뒤적이다가 하나를 스윽 꺼내들곤,) ...음. 코코넛 맥주? 이런 걸로도 맥주를 만드나? 참 희한하군.
 
라이아나:으음. 아무래도... ...근데 맥주는 정말 별 게 다 있기는 하더라. (...그런데 코코넛 맥주? 본인도 안 먹어봤다, 저건. 무난하게 아까 네가 이야기한 복숭아맛 맥주나 두 캔 집어 카트에 넣고...) 살 거면 넣어둬. 먹어봐서 나쁠 건 없지. (아마?)
 
바스타르: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도 다 어떻게든 녹여서 만드는 모양인데... 소비가 있으니 파는 것이긴 하겠다만...(괴물들 입맛도 별 다를 건 없군. 그런 생각이나 하다가 복숭아맛 맥주를 카트에 넣는 모습을 본다. ...음. 라이아나도 이건 안 먹어본 모양이지.) ...괜한 벌칙을 만들고 싶진 않아서. 다음에 도전해보지 뭐.
 
라이아나:(오히려 수요가 없어서 여기 쌓여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 의외로 입맛에 맞을 지도 모르잖아? (확신은 나도 없지만. 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일단 이건 아까 네가 이야기한 복숭아맛. 도수도 낮아서 그냥 음료수 마시는 기분일 거야. (네 주량이 약하다면 금방 취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괜찮을 것 같다고 하니까? 그냥 그 쪽을 믿어보기로 한다.)
 
바스타르:...그런가. 궁금한 건 사실이니 그럼 하나만 담아둘까. (이럴 때는 또 팔랑귀처럼 그런갑다 하고 받아들이는 게 여전했다.) 너무 술향이 강한 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이건 괜한 허세인가. 뭐, 아무튼. (확신의 근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또 자연의 어쩌고라며 뜬구름 잡는 답 밖에 못 해주겠지만...아무튼 이상한 확신을 갖고 손을 탈탈 턴다.) 그리고...와인? 그것을 사러 가면 되겠군.
 
라이아나:허세일 수도 있고, 진짜로 잘 마시면 근거 있는 자신감이 되는 거고. 뭐 어떻든... 너랑 술 마시는 건 처음이잖아? 재밌는 경험이 되지 않겠어, 어느 쪽이든. 나도 많이 안 마셔봤으니까, 네가 주량이 꽤 된다면 오래 마셔볼 수도 있고. (와인 이야기에 고개 끄덕 끄덕. 알겠다는 듯 카트 쭈욱 밀고 바로 옆에 있는 와인 코너로 간다.) 드라이보다는 스위트 쪽으로... 오래 숙성된 게 좋으려나... ... (본인도 많이 마셔봤던 건 아닌지라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다.)
 
바스타르:이왕이면 후자가 되길 바라는데... 나도 이런 식으로 첫 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사실 거기에 의미가 큰 것 같긴 해. 너한테 새로운 경험으로서 남겨줄 수 있을 지...아니면 내가 흑역사라는 것이나 만들게 될 지는 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그렇네. (카트를 끌고 가는 중에도 느끼는 감상은 색다르다. 글쎄...무언가를 사고 둘러보는 건 완전 처음이 아닌데에도 말이지.) ...이젠 하나도 못 알아 듣겠군. 맥주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한계였나.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 아는 건 술의 성분이나 정의 따위였으니...) 네가 마셔보았던 건 뭔데?
 
라이아나:뭐, 나도 솔직히는 몰랐지. 그래도... ...한 번쯤은 가족들이랑 마셔보고 싶었으니까 난 좋아. (흑역사 만들고 내일 일어나서 후회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술 잘못 마시면 머리 잡고 일어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숙취가 없다면 그건 행운아겠지. 회식 다음 날 출근하고 좀비마냥 있는 사람들을 한 두번 본 게 아닌지라.) 내가 마셔본 거? 음... 그러니까 이름이... (잠깐 생각하다가 아. 하는 탄식음.) 아이스와인... 이었는데... 그랜드 리... 뭐였더라. 아무튼...? (고개 기울인다.) 단 편이었어서 꽤 괜찮았거든. 인간 세계에서 먹었던 거라 여기 있는 지는 한 번 찾아봐야될 것 같네... (찬찬히 진열대를 둘러본다.) 생김새는 대충 기억 나니까.
관찰력
기준치: 45/22/9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음. 못찾겠군.)
 
바스타르:하긴, 어른이 된 후에 술파티나 열며 만끽할 여유나 타이밍은 없었으니. (설마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빤히 쳐다보다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린다. 뭔가 보면 볼 수록 라이아나는 잘 마실 것 같단 말이야... 그런 생각이나 하며 다시 기울이는 고개로 시선이 향한다.) 인세의 물건이 이곳에 있다면 그것도 특별한...(...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찾지 못한 모양이라.) 역시 없나 보군. 어쩔 수 없지 같은 술 문화가 있다 해도 생산하는 곳이 다를 테니. (흠...) 그럼 이왕 사는 거, 좀 멋진 걸로. (삐까뻔쩍하게 포장된 와인 몇 개를 가리킨다. 선택은 네 마음대로.)
 
라이아나:진짜 열렸으면 그건 그거대로 사실 많~이... 시끌벅적하고 개판났을 것 같긴 한데... (우리 가족들은 다시 만난 첫 날부터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는 실없는 생각. 그리고 네 예상은 아마 들어맞을 거다. 아무래도 실제로 잘 마시는 편인지라. 본인 취한 것보다 남들 취한 거 보고 돌려보내기 일쑤였으니...) 없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다른 곳에 있을 지도 모르고... ...오늘은 그냥 아무거나 마시지 뭐. 음... 좋아. 그럼 이걸로. (어떤 맛일지 제대로 가늠은 안 되지만, 네가 고른 것들 중에서 과일 맛이 어느 정도 날 것 같은 걸로... 겉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 걸 하나 집어온다.)
 
라이아나가 고른 와인의 도수는~
 
12도입니다.
 
라이아나:(음. 그다지 높지는 않네. 이 정도면 무난... ...무난하겠지? 힐끗 비타 바라봄...)
(알쓰면 어떡하지...)
 
바스타르:술을 마시겠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시게 된다면 첫 술은 가족과 하길 소망했어. 뭐...그런 시끌벅적한 이벤트는 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네가 받아주네. 내 첫술은. (확실히, 가족과 다같이 했으면 다른 의미로 색달랐겠지만...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더 체감하게 되었으려나 싶고. 사실 지금 와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했다. 본인보다 라이아나가 더 잘 마시면 조금 다른 걱정을 더해야 하긴 했기에...) 음...? (슥 살펴보다가 고르는 것을 보며 다가가 와인병을 좀 더 자세히 본다. 12도...? 높은 건지 낮은 건지도 크게 모르겠지만...괜찮다니 괜찮은 거겠지? 따라 힐끗 바라보기나 한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그래, 그럼. 이걸로 결정.
 
라이아나:정말 그런 홈파티 같은 게 열렸다면 재밌었을까? 각자 먹고 싶은 거 사오고, 술 잘 못 마시는 애들은 금방 취해서 쓰러지고... 잘 마시는 애들은 취한 애들 놀리고... 그랬으려나. (별 의미 없는 상상이기는 했다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해서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그린다. 너도 그 가족 중 한 명이니, 지금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해보도록 하려고.) 어어, 많이 높은 편은 아니긴 해. 응, 이걸로 하나 하고... (맥주 두 캔에 와인 한 병이니까... 양주나 위스키도 하나 사갈까... 하는 생각으로 진열대 빤히...) 비타, 이건 좀 센 거긴 한데… (예쁘게 반짝이는 주황색 40도짜리 위스키 가르킴. 오랜만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서.) 너 못 마시면 내가 마실게.
 
바스타르:아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만 있었다면 재밌었겠지. 잘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 마시는 사람도 있을 테고...주사라고 하던가? 깽판을 치는 자식도 있었을 것이다. (똑같이...별 의미를 담은 상상은 아니었으나 웃는 모습은 닮아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실없는 상상이라도, 생각했을 때 즐거워지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 비록 둘이라 하여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아서...그래, 설렌다고 표현을 해볼까.) 하나 하고...? (뒷말을 따라가다가 빤히 보는 진열대를 따라 바라본다. 40도라는 말에 척 보아도 방금 와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것을 알 수 있었으나? 의외로 빠르게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해보인다.) 색부터 남다르긴 하네. 이왕이니 괜찮지 않아? (그나저나 저런 것도 아무렇지 않게 마시겠다 하니... 역시 직감이 적중했나, 그런 생각이나 한다.)
 
라이아나:(재밌었을 것 같다. 하는 생각. 이미 지나간 거니 상상을 그리 오래 끌지는 않았다. 당장 오늘, 작긴 해도 파티 비슷한 분위기는 낼 수 있지 않나? 둘이라고 해도 일단 처음 하는 거고, 술도 있고,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지, 싶으니까.) 응, 괜찮겠지? 그래도 너한테 초장부터 마시라고는 안 할 거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고. (본인이 고른 거긴 하지만 40도짜리 위스키를 술 처음 먹는 애한테 이런 걸 먹일 수 있을 리가... ...하는 생각. 먹이더라도 한 잔 정도밖에 안 먹일 것 같은데... 우선 그대로 카트에 담아둔다.) 자, 그럼... 안주. 뭐 먹지. 아까 이야기하긴 해지만 과일이나 케이크나... 아니면 국물있는 것도 많이 먹고... 고기나.... (음.) 난 일단 이왕이니 케이크 당기는데. 먹고 싶은 거 없어? 돌아다니면서 한 번 봐봐.
 
바스타르:당연히 괜찮지. 일단 오늘은... 가볍게 마셔보는 첫술이기도 하지만, 둘이 하는 작은 파티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 이렇게 기회가 생겼을 때 해야지, 하는 게 내 생각이다만. (물론, 그 말대로 초장부터 자신을 먹이진 않을 것 같으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만일 라이아나가 누구 한 명 골로 보내고 놀리길 좋아하는 악덕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답을 하지 못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한 잔 정도는 흥미가 생기는 것도 있었고.) ...음. 우선 지금까지 말해준 예시 중에는 딱히 싫어하는 게 없어. 비리거나 짠 맛이 강하다거나...아무튼 그런 것만 아니면 상관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케이크도 괜찮은 것 같고. 생각해보니 케이크는 분위기 내기에도 좋으니 말이야. (거기에 추가로 먹을 거 생각해서 국물류나 과일 조금. 어때?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에서 제법 즐기는 티가 잘도 난다.)
 
라이아나:응, 나도 너랑 비슷해. 기회가 생겼을 때 하는 게 좋지. (오늘은 날도 좋고, 기분도 괜찮고, 우리 둘도 날선 이야기, 서로 불안할 만한 이야기 하나 꺼내놓지 않고 있으니까. 밤까지 이렇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뭐... ...술 마시다 필름 끊기는 것만 아니라면야 괜찮겠지...) 비리거나 짠 맛... ...으음, 그럼 생선류 같은 건 빼놓는 게 좋을 것 같고... ( 고민하다가 이어지는 말에 고개 끄덕인다.) 케이크에는 국물보다는 과일류가 더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아니면 아침에 못 먹은 스프라도? (이런 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희미하게 미소를 그리고 만다.) 치즈케이크 어때?
 
바스타르:그렇지? (좋은 날에...끊임 없이 이어지는 이 평화로움. 어제 있었던 일은 전부 다 잊은 것처럼 좋은 이 분위기가. 서로에게 복잡한 생각이 들 만한 이야기는 건네지 않으며 이어지는 지금의 이 순간이. 정말 오늘의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영원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하게 된다면...뭐. 조금 아쉬울 것 같긴 하지만. 그 또한 추억이 되긴 하겠지.) ...또 나왔군. 스프. (...) 사두는 건 괜찮을 것 같긴 해. 그렇게 찾으니 내일 아침엔 진짜로 스프를 해줘야 겠어. (희미하게나마 그리는 미소를 보곤 보지 못한 척 따라 웃기나 한다. 실은 기쁘지만.) 좋아, 치즈케이크. 멋진 선택이 될 것 같네. 그럼 치즈케이크에 과일 조금, 그리고 스프까지. 이렇게 어때?
 
라이아나:(결국 스쳐지나갈 하루임에도 영원을 바라게 된다는 건, 지금 순간이 그만큼 의미 있다는 뜻이겠지. 네 마음에 든다는 뜻일 거고, 어떤 식으로든.... 지금 상황이, 좋다는 거니까. 자신 역시도 가벼운 마음으로, 깊은 생각 없이 마시며 놀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도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도록 입 조심하는 게 좋겠지만. 괜히 제 입가를 만지작거린다.) 왜, 스프 싫어? 난 아침에 먹으면 속 따뜻해서 좋던데. (가볍게 만들 수도 있고 괜찮잖아. 그리 덧붙였다. 옥수수 크림 스프 꽤 맛있던데.) 응, 괜찮아. (고개 끄덕.) 이 정도면... ...많이 과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니까. (술이나 케이크나, 남으면 뒀다가 나중에 먹어도 되고....) 뭔가 이 정도면 오늘 말고 내일까지 먹어도 될 것 같은 양으로 보이기도 하고 (...)
 
바스타르:(이따금씩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많이도 부딪혔다. 다른 말로는...걱정이나 안타까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결같이 찾아오는 순간의 즐거움은, 역시 너와 함께이기에 즐거울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만큼은 무거운 생각, 무거운 이야기...전부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즐길 수 있기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지만, 역시 조금만 조심하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 싫은 건 아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좀 짓궂어 보일까 싶다만, 그냥 조금 놀리고 싶었을 뿐이지. (장난스러운 어투가 조금 묻어난다. 옥수수 크림 스프라는 말에 스프 칸을 찾아 조금 뒤적이며) 그렇지. 당장 막 먹어치워야 한다는 그런 음식은 없는 모양이니까. 남은 건 잘 뒀다가 다음에 먹으면 되고... (아,) 초 하나도 살까. 숫자 같은 건 말고, 그냥 기분내기로. 작은 리본 모양도 좋고. (귀엽잖아,)
 
라이아나:으음. 이럴 때 보면 진짜, 나 놀리는 거 좋아해. 꽃 이름 짓는 것도 그렇고, 이제 하다 하다 스프로까지... ...뭐, 장난인 거 알아서 뭐라고 크게 제재를 가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말이지, 자주 놀림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자주 하면 이마에 딱밤 한 번 날릴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조심해? 하는, 장난기 어린 말투. 그나저나... ...연말도 생일도, 정말 뭣도 아닌데 파티 분위기 나네. 이런 식으로 스스로 준비하며 해본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우스에서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세에서는 즐기기보다는 그냥 예의상 몇 분 자리만 지키다가 나왔으니...) 뭐, 언제 또 할 지 모르니까 해봐도 괜찮겠지. 초는 저 쪽에 있으려나... (아무래도 먹는 거 쪽엔 없을 것 같으니까. 그리 이야기하며 카드 옆 부분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뭔가 정말 파티같네. 소규모 파티. (싫다는 어투는 절대 아니고, 픽 웃음 소리 흘리는 걸 보니 좋다는 얘기.) 초까지만 준비하면 대충 다 고른 것 같지
 
바스타르:아아,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꽃 이름을 라이아나라고 지은 것은 정말 소중해서 그런 것 뿐이라고? 소중한 것에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잖아. (라고 조목조목 따지다가도 결국 할 말 없이 웃는 것은, 아무래도 그 외에는 전부 놀릴 목적이 맞아서 그런 것이겠지. 맞아도 할 말이 없으니 그냥 때리라고 내어주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나 하곤,) 뭔가 의미를 두는 건 아니지만...역시 이왕이니까, 정도의 이유려나. 다시 강조하지만, 미관상으로도 나쁘지 않고.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꽤나 오랜만이지. 마지막이라고 해봐야... 아마도 하우스에 있을 적인가.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자신과는 다르게, 이런 자리는 많았겠지만 준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을 것 같은 네가 더욱 오랜만으로 느낄까 싶기도 하고.) 겨울이었다면 눈사람으로 가족들을 빚어서 옆에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좀 아쉽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도 조금 설레는 것 같다, 라이아나. (옮기는 걸음을 따라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어간다. 자신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지만, 당신이 웃는 소리를 들으니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고...) 하나씩 늘어나다보니 여기까지 왔지만...그래. 그 정도면 정말로 끝.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가 있는 코너를 발견한다. 모양 여러개를 보며 마음에 드는 것이 있냐고 몇 개 들이밀어 보여주기도 하고...)
 
라이아나:앞에서 듣는 사람 황당할 거 생각 못했다는 점에서 감점이다. (이런 말. 대체 누가 눈 앞에 사람을 두고 같은 이름을 꽃에 붙여주는데... 하는 작은 중얼거림도. 나머지는 놀리는 것 맞단 거잖아. ...딱히 그렇게 자주 놀림받거나 했던 적은 없어서 그런지 네가 이따금 놀릴 때마다 한 번씩 당황하거나 욱해서 목소리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근데 진짜 황당한 걸.) 어차피 우리 둘 뿐이지만... 네 마음에 들면 됐다, 뭐. (어깨를 살짝 으쓱인다. 뭔가를 꾸미고, 놀고 하는 기억도 이젠 조금은 빛이 바랜 모양이다. 하우스에서 있던 기억이, 지금의 새로운 기억으로 한 번 이어지는 걸 보니까.) ...아, 그 때 눈도 왔었지. 애들 다 만들어서 한 줄로 세워놨었던데. ...귀여웠지. (응, 특징도 잘 따줘서.... 마마도 있고, 없는 애들 한 명 없이 가족 모두가 있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하얀 눈.) 설렌다면 다행이네. 기대하는 만큼 술 마시는 것도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술이 취향이 아니면... ...입맛만 버리게 되니까.) 초는... 여러 개 꽂으면 오히려 복잡해보이니까... 그냥 리본 모양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파티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무슨 기념일 같은 것도 아니여서 그런지 딱히 무언가 화려하게.... 장식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여간에 감성 딱딱한 것 하고는... 아까 네가 이야기하면 리본 모양 초 하나를 골라서 네게 보여준다.) 이걸로, 괜찮지? 계산하고 가면 되겠다.
 
술, 안주, 초까지... 무언가 가득 든 카드를 이끌고,
 
계산대로 가 계산을 마칩니다.
 
펜션이라 집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이 묵직하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 있을, 둘만의 작은 파티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겠죠.
 
와인, 위스키, 케이크…
 
사온 것들을 차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둬봅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왕에 처음 해보는 즐거운 파티니까요.
 
부족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잔을 두 개 꺼내놓고, 앞접시, 포크도 두 개씩.
 
펜션 안에 있는 불들을 끄고,
 
케이크 위에 꽂은 작은 초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둘의 소규모 파티 준비는 끝이려나요.
 
라이아나:…일단 대충 구색은 갖춘 것 같은데... 네가 끌래? (초 가르킴.) 촛농 떨어지기 전에.
 
바스타르:음...나는 네가 끄는 걸 볼래. 이런 건 오랜만일 테니까, 네가 껐으면 좋겠어. (그리 말하며 케이크 앞의 의자를 잡아 뺀다. 앉으라는 의미~)
 
라이아나:아니, 너도 오랜만 아니냐고... 누가 보면 나 생일인 줄 알겠어. (그런 말을 하면서 일단 빼내준 의자에 죔히 앉는다.) 너도 앉아. (먼저 앉은 김에 와인 따는 중.)
 
바스타르:생일이라고 한다면...그리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지. (농담, 근데 진심이기도 해. 작게 덧붙이며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난 원래 그렇거든. 직접 하는 것 보단, 그 순간을 바라보는 게 더 좋아. (그나저나 케이크에 와인 까지... 정말 제대로긴 하네.)
 
라이아나:너무 오래 지난 거 아니야? 못해도 3개월은 됐는데. (아무래도 생일이 새해 첫 날이고, 지금은 봄이니…. 딱히 신경쓰거나 챙기고 지나갈 생각은 아니었어서 굳이 얘기 꺼내진 않겠다만.) …그래. 그랬지. (생각해보니 너는 늘 그랬던가. 늘 행동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때는... ...둘 다 생각이 많아질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채 잡으며, 가볍게 후, 불어 초에 붙은 불을 껐다. 조금 어둑해졌지만 해가 다 진 시간은 아닌지라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와인 마개를 내려두고, 네 잔에 와인을 천천히 따른다.) 별로면 꼭 얘기하고, 알았지?
 
바스타르:...흠. 어쩐지 초를 하나 고르고 싶더라니, 제법 늦었지만 네 생일 기념 파티로 삼는 것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인세의 인간들은 이런 인사를 건네던가... Happy Birthday- 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무미건조한 어투와는 다르게 입가는 웃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생일 이라는 거, 진작 제대로 좀 챙겨줬어야 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작은 아쉬움을 남길 뿐이고. ...다음 생일에는 꼭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추가로 더한다. ...그때까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 ...(그러한 생각을 할 때, 꺼지는 초의 불빛을 가만 바라본다. 신기한 기분...새로운 느낌.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며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글쎄, 이것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것. 곧 들려오는 물음에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조금 치켜 든다. 제법 거만한 자세 하곤...) 이 누님은 별의 별 당부를 다 하는군. 걱정 마, 술이라는 것도 결국 마실 것에 불과할 뿐이지.
 
라이아나:너무 늦었다니까. 내 생일보다는 네 생일파티가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지났던가? 안 챙긴지 조금 오래 되어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생일 축하 같은 거, 안 받은지도 15년. ...그놈의 15년은 정말 인생에서 도저히 떨어지지를 않네. ...살아온 날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못 챙겨뒀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고. 이미 안 챙긴지도 한참 돼서 그런지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꽂아둔 초를 조심스레 뽑고는 옆에 둔다. 칼로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조각 내고, 네 앞으로 가져다 주기까지... 하고 나서, 이어지는 말에 눈 가늘게 뜬다. 거만한 태도까지. 동생이 뭘 모르네. ...저러다 훅 가는 애들 많던데.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픽 웃는다.) 그래, 그럼. 얼마나 잘 마시는지 기대 한 번 해볼게. (본인 잔에도 와인 마저 따르고는 잔을 네 앞으로 내민다. 자, 짠.)
 
~ 2023-12-10, 12:30 CUT ~
 
바스타르:늦은 게 어디 있어? 물론, 진짜 생일 때보다야 기분은 덜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쉬운 김에 하는 거지. (생일이라는 것의 존재를 잊고 있었으나,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다음 생일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아닐지… 그것도 지금은 알 수 없은
니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생각난 김에- 대충 이런저런 의미를 담아서 한 번, 그런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거만함이나 뽐낼 때 즈음, 저를 쳐다보는 눈빛을 보곤 잔이나 앞으로 내민다.) …왜 그렇게 봐? 혹시 모르지. 내가 끝까지 남아서 취한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경험이 전무한 본인으로서는 도발이나 가까워지만… 아무튼 이런 허세라도 부려야 뭐든 남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 기대, 잔뜩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뭐…내기라도 해볼까? (그리 말하면서 잔이나 부딪힌다. 그래, 짠.)
 
라이아나:뭐… 그럼 내 생일 파티 겸, 네 생일 파티로 하지 뭐. 네 말대로 아쉬운 김에. (그간 못 챙긴 것도 있고, 다음 생일이 올 때까지… 함께있을 지가 미지수인 게 우리 여정이니까. 어떤 의미로든 처음 해보는 파티도 기분 내기엔 적당히 괜찮은 편이겠지.) 이런 말 해도 웃길 거 알기는 하지만 말이지…. 비타, 괜히 허세 부리는 게 어려보인다 생각될 지경이네. (그러니까, 애 같다고. 또 한 번 작게 바람 빠진 웃음 흘리고는 어깨를 으쓱대며 맞닿았던 잔을 거둔다.) 자… 그래서, 뭐로 할 건데? 내기 말이야.
네가 취하게 되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하긴 하고, 솔직히 네 주량도 내 주량도 서로 잘 모르는 편이잖아? 네가 이길 확률도 있기는 있지. 그러니 한 번 걸고 싶은 거 이야기해봐.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고는 깍지 낀 손을 턱 아래 두곤 기대며 고갤 기울인다.) 바라는 거라도 있나?
 
바스타르:허세라... 이왕이면 허세가 아니라 진짜이길 바라고 있지만 말이야. 조금 봐달라고- 괜한 허세라도 부려두어야 내가 어떻게든 이겨먹지 않겠어? (하하, 가볍게 웃는 뜻에는 당신이 기울이는 잔을 응시한다. 뒤이은 질문에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 톡 치더라.)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데. 벌써 한 모금 했잖아? 흐음, 바라는 것이라-... ...(괜히 이상한 말은 할 생각 없고...뭐 진중한 것을 바랄 생각은 더욱이 없고. 짧고 깊은 고민이 이어진다.) 그럼 이건 어때.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이 원하는 날에 하고 싶은 걸 전부 같이 해주는 거야. 일일 요정 같은 거. 이 정도면 꽤 가볍고 괜찮지 않아?
 
2023-12-30. 14:00 ~
 
라이아나:…그렇지만 나도 이왕이면 이기고 싶어서 말이지. 허세인 쪽이 조금 더 재미있기도 하고. (너 술 마시는 거 보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오래 즐기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리 나지막히 덧붙이고는 고민하듯 두들기는 테이블을 바라본다.) 한 모금가지고 뭘. 이 정도는 여유 부려야지. 못 하는 편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잖아?(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겨도 딱히 바랄 건 없을 것 같은데… 뭐, 동생 놀아주는 정도로는 적당하려나. 게다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기는 했다. 사람들이 술 마실 때 가장 흔하게 하는 내기 같으니까.) 그래, 그럼 그걸로 할까? 일단 난, 네가 제대로 봤다시피, 자신 있으니까.
 
바스타르:이상한 승부욕이네. 뭐, 나도 마찬가지인가? 빠르게 취해서 자리를 어지럽히는 인간들도 많은 모양이던데, 그런 추태는 별로 보이고 싶지 않네. 취했을 때 하는 행동도 제각각이겠다만. (그러곤 술이 반 정도 찬 잔을 바라본다. 이런 곳에서, 이런 느낌으로 술을 접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으로선 가장 편한 사람과 첫 잔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질 수 없겠는데? (이내 술잔을 기울여 살짝, 한 모금 들이킨다. 당연하지만...가장 처음 느낀 맛의 감상은 '이게 무슨 맛이지' 정도일까. 여튼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맛이더라.) 이게 무슨 술이라고 했더라... 확실히 맛을 섞지 않은 술들은 먹기 힘들겠는데? 이건 다른 향이 강해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인세의 인간들은 이런 걸 질리도록 즐기고 있단 말이지. (동시에, 겨우 이 정도로 뭘...같은 생각도 드는 듯 하다. 조금 먹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것도 같아서.) 이런 조건이라면 승낙해줄 줄 알았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어느 쪽이 지더라도 그리 부담될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예를 들면, '시키는 대로 전부 하기' 같은 조건보다 훨씬 괜찮잖아.
 
라이아나:아주 제각기인 만큼 궁금해. (가족들이랑은 못 마실 줄 알았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한 명이랑 마시는 것도 나름 좋으니, 그 생각은 뒤로 미뤄두고 일단 지금 마시는 걸 어느 정도 즐겨보기로. 동생으로 봐서 그런지… 아니면 첫 술이라고 해서 그런지… 딱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부리는 여유이려나. 마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척 보기에도 그다지 맛있다는 감상은 아니네. 키득, 짧게 웃는 소리를 내었다.) …뭐, 그렇지. 알코올 맛만 나는 술도 있고, 잘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대부분 단 거 잘 먹는 사람들이 술 맛 잘 느낀다더라. (듣기로는 그래. 정확하게 검증된 걸 지는 모르겠고. 그리 덧붙이고는 한 모금 천천히 더 마신다. 목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시원해서 그런지… 제법 괜찮다. 인세에서 먹었을 때보다도 더. …그래, 나도 너처럼 편한 상대가 앞에 있어 그럴 지도.) 응, 뭐. 솔직히 그게 그거 같기는 한데… 서로 딱히 무리한 요구 같은 건 안 할 것 같아서 받아주는 거니까. (어느 정도의 신뢰.) …게다가 넌 의외로 이런 데서 소박하니까.
 
바스타르:그냥 하는 말이지만, 만약 내가 먼저 취해서 추태라도 부리면 그냥 한 대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괜한 흑역사 만드는 것보단 아프게 먹는 쪽이 훨씬 나아. 네가 취한다면... ...(괜히 좋은 말을 하진 않는다. 알아서 잘 해줄게, 라는 말 보단... 나 혼자 실컷 봐둬야지, 같은 짓궂은 생각이 들어서. 물론 제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니 어째 쉬운 대결이 될 것 같진 않지만. 나를 여전히 허세 부리는 꼬맹이 정도로 보는 건가? 그런 이미지는 정말 곤란한데 말이지.) ...하? 방금 웃은 거지, 라이아나. 무슨 의미야 그거...마치 내 감상이 어떤지 알겠다는 듯 반응하네. 사람 다 똑같다, 이건가. (그러곤 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첫술이니까 익숙한 맛이 느껴지는 걸로 골라보는 편이 좋다고 했던 건가. 확실히, 알코올 향만 나는 것이라면 굳이 그런 걸 사서 먹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잘 마시는 걸 보니...확실히 어른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하면 조금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려나. 그래도 표정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인세에서 먹던 술 맛 보단 조금 더 괜찮나봐? (따라 한 모금 더 마신다. 먹다보니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무리한 요구? 너에게 있어 무리한 요구의 기준이 무엇인데? (실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건 딱히 요구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하기도 했으니 상관없을까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고.)
 
라이아나:왜? 넌 구경할 것 같은데, 나라고 하지 말라지는 법은 없지. (가볍게 또 한 모금 마시며 눈 내리 감곤 입꼬리나 올려 웃는다. 져줄 생각, 없다. 최소한 정신은 붙잡고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니까. 괜히 마셔본 적 없는 한계까지 마시고 쓸데 없는 소리 같은 건 안 하는 게 좋기도 하고.) 응~ 뭐. 술 처음 마시는 사람은 보통 두 부류거든. 쓰다는 표정이랑,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 라는 표정. 굳이 왜 마시는 거지~ 하는 애들도 꽤 있지. (아닌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과일향 들어간 걸로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응, 뭐… 어른 맞지. 내가 벌서 20대 중반인데. 옛날에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나이보다 두 배는 더 먹었다고? (표정이 나빠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가볍게 잔을 돌리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치즈 케이크 포크로 조각 내어 한 입 먹는다.) 그 때는 내가 원해서 먹는 것보다는 주변에서 마셔라, 마셔라 해서 마신 거였으니까. 분위기 때문에 빠지기는 쉽지도 않지, 여러 모로 귀찮은 기억이 더 강했달까… (마시는 걸 보니 못 마시지는 않을 것 같네. 하는 가벼운 감상. 얼굴도 쉽게 빨개지진 않는 것 같고…) 글쎄… 지금 말하면 재미없잖아.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거 같이 해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어깨만 가볍게 으쓱거린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듯.)
 
바스타르:이래서 너무 오래 함께하는 것도 단점이 있다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파악해 버렸잖아. 재미없게 말이지. (자신이 하기엔 조금 웃긴 말일지도 모르지만. 저 역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리란 것도. 웃는 표정을 보면서는 감히 짐작한다. 저쪽도 져줄 생각은 없는 것 같네, 하고.) 장담한다만, 이런 맛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지' 하며 의문을 던졌을 지도 모르지. 적당한 알코올은 몸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으나, 역시 술은 좀 논외인 것 같기도 하고. (조곤 조곤 이야기하며 두 모금을 더 마신다. 마시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마시게 되더라지.) 허어...네가 벌써 20대 중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세월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말이야. 나이라는 거, 정말 부질없고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딱히 생각하며 살지 않았지만...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네. 괜히 드는 생각이지만, 11살 시절의 너를 데려와서 지금의 네 옆에 두면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네. (성장이라고도 하지만, 사람이 품은 분위기는 변하기도 하고 여전하기도 하다지. 적어도 제가 보는 당신은 그래도 예전의 느낌을 완전 잃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래서 사회 생활이라는 건 부질없다니까. 적당한 생활은 필요할지 몰라도 그런 분위기라면 나도 사절이야. 실제로, 나는 그런 자리에 참석해본 적이 없지만. 그냥 든 궁금증이라면, 이 세계에서도 그런 모임 문화가 구축되어 있는 무리나 사회가 있을 지는 조금 궁금하네. (가끔 생각해보면...괴물이나 인간이나 별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단 말이지. 저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며 피식, 가볍게 웃는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말이지.) 그래, 그래. 그럼 다음에 같이 쿠키나 구워보자고. 옆집에서 찾아왔던 아이가 생각나서 그래. 우리도 가벼운 선물을 주면 좋지 않겠어? 답례로 말이야.
 
라이아나:그걸 네가 이야기하면 어떡하니. 너도 그만큼 날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한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재미 없으면 조금 새로운 모습이라도 이번 기회에 보여주면 되겠네. 안 그래, 비타?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듯, 한 모금 마신 술잔에 따 놓았던 와인을 조금 더 채워놓는다. 비게 둘 생각은… 아무래도 전혀 없는 듯. 그건 본인도… 예외는 아닌지 마찬가지였고. 나름 공평하게 따르고 있다.) 그래서 그걸로 골랐지. 처음 마시는 애들한테는 이런 맛이 좋거든. (갑자기 자존심 부린다고 도수 센 거 마셔봐. 훅 가던 애들 많아.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랑 마시게 되면 도수 잘 확인해보고 마시고.) 으음, 뭐. 그렇지… 옛날의 나였어도 별 생각 없을 걸. 키가 큰 거라던가, 분위기라던가… 이런 것들은 조금 바뀌긴 했지. 그리고 나였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면 물어볼 것들이야 뻔하지. 가족들이랑 잘 지내고 있느냐, 마마는 여전히 빛나느냐, 꿈은 찾았나… 그런 것들이나 물어보지 않겠어.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해줄 수 없는 것들밖에 없지만. (쓴 웃음 짧게 짓는다. 정말 무엇 하나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제대로 웃으며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족과 마마에 대해서는 특히, 더욱. 곁에 남은 것이 한 사람 뿐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때의 내가 웃어줄지, 나도 확신은 들지 않거든.) 반대로, 너는 어때. 어린 시절의 너 만나면… 어떨 것 같니? 해주고 싶은 말이나, 그런 건 없어?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경험이다. 그러다보니, 너는 과거의 너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무얼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있지 않을까. 생각보다 인간 세계랑 발전 수준도 비슷한 것 같고, 괴물들도 유대감 같은 건 있어보였잖아. 예전에 골디폰드 근처에 있던 마을에서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있었고. 그리 덧붙인다. 문화는 잘 모르겠지만.) 흐음, 역시 소박하네. 만들 줄은 알고? …모른다면 곤란할 것 같은데. 선물할 쿠키가 장황하게 망해버릴 수도 있잖아. (우리가 먹는 거라면 망해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리 이야기하며 또 한 모금.)
 
바스타르:그거, 무슨 뜻이야? 설마 나한테 보여달라는 거야? 네가 어떤 상황을 재밌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하는 행동들은 그닥 재밌지는 않을걸? 태어나서 한 번도 재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무래도 조용하게 할 일 하며 살아온 것이 전부...그나마 어릴 때 질질 짜던 것이 남들을 웃게 했던가. 윽, 그건 흑역사잖아. 혼자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다. 쉴틈 없이 채워지는 술잔을 보면서는 당신을 흘긋 응시하고.) 누가 빠른 사람 아니랄까봐? 싸울 때만 빠른 게 아니라 술 따르는 손짓까지 빠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래도 보란듯이 술잔을 들어 조금 더 들이킨다. 이렇게 마시면 위험한가? 그래도 아직은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센 것부터 도전해서 업보를 맞는 거지. 뭐, 너랑 마시는 게 아니었다면 술은 거절했을 거다. 내 주량도, 주사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추태 보일 일 있어? 그 정도까지 막 살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네 앞에서는 추태고 뭐고 다 보여줄 자신 있어~ 하는 뜻도 당연히! 아니지만. 뭐...더러운 짓거리가 아니라면 조금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일 뿐이지.) 그래? 어린 라이아나는 지금의 네게 그런 질문을 할 것 같단 말이지? (하긴,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워낙에 하우스를 사랑하고, 마마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아이니까.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면 그것부터 묻고 싶은 건 당연한 어린이의 마음이겠지. 문제라면...) ...그럴 때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야. 물론, 완전한 거짓말은 되려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 피해야 겠지만. 애써 웃으면서 '당연하지.'라는 네 글자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물론, 이것이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당시에만 좋은 말이 될 뿐, 현실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잔혹하거든. 그래도...자신이 어린 라이아나를 만난다면, 자신은 그런 답을 해줄 것만 같아서. 그냥 그런 거지.) 어린 시절의 나.? ...글쎄. 오히려 매정한 답을 해줄 것 같아 겁나는데. 예를 들면, 세상은 네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단다- 라던지. (저 역시 그때의 자신이 질문해오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대답해주기 어려운 것들 뿐일 것이라. 생각하다보니 결국 너와 다를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어린 라이아나와, 어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건 분명 '마마와 같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지. 제법 가볍게 말하곤 한 모금을 더한다.) 그 말에는 동의해. 여기, 생각 이상으로 발전이 되어 있더군. 괴물의 세계, 괴물의 마을 등등으로 칭하기엔 외관만 다르지 인간과 다를 게 없어. (쿠키에 대한 말에는 괜히 시선을 돌린다. 당연하게도, 만들어 본 적 없지.) 레시피라는 게 괜히 존재하는 줄 알아? 요즘 요리 책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그런 경험에 의존을 해. 가져다 주기 전에 너한테 먼저 만들어 줘야 겠군. 그래, 뭘 좋아하지? 케이크? 빵? 쿠키? 타르트?
 
라이아나:잘 아네. 눈치 빠르단 말이지.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고. 술 취한 사람 구경은 언제봐도 꽤 재밌어. 너도 그래서 나 구경하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 응? (바로 잠드는 애들은 제외해보도록 할까… 술 싫어하던 자신도 너무 추태 부리고 질척거리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몇 분 정도는 구경하다가 보내주곤 했으니… 그러니 평소에 크게 재미 없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술 취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 갑자기 누워서 울 수도, 엎어질 수도, 시끄러워질수도… 이런 저런 가능성이야 있지. 그건 지금부터 천천히 구경하면 되는 거고. 흑역사든 뭐든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두고 두고 기억해봐야지, 안 그런가?) 네가 마시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보통 상사 먼저 보내야돼서 술잔에 빨리 따르긴 했지… 뭐, 버릇이라고 봐도 되겠네. 무리해서 마시지는 마. 속 버린다. (술만 마시지 말고 케이크랑 과일도 같이 먹어. 그리 덧붙여준다. 괜힌 안주라고 산 게 아니라고. 비워지는 잔 빤히 바라보며… 저게 오기인지 허세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길 것 같다는 무언가의 확신도 조금 든다.) …흐음, 뭐. 그래, 그만큼 내가 편하다는 거지? 고마운 일이네. 나도 너랑 마시는 거 아니었으면 이 세계에서 술 마시 입에 댈 일 없었을 거야. 근데 너도 지금 꽤 막 마시고 있는 편이니까 속도 낮춰. 진짜 훅 간다. (그러면서도 무슨 모습을 보여줄지… 새로운 모습이든, 지금까지 봤던 모습이든… 뭐든 당장 즐겁다는 감상이 우선이었다.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것 같은 건 아니고.) 거짓말이라면 지긋지긋한데. 난… 괜한 희망은 안겨주고 싶지 않아.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린 채 가볍게 탁자에 손가락으로 집 모양을 그린다. 모래라던가, 눈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아니라 지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겠지만.) …11살이라면 조금 있으면 진실을 알게 될 나이니까. (하우스를 두고 나왔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알잖아. 그 때의 난 가족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을 거야. 굳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쟁이로 남을 필요는 없지. (뭐, 만날 일은 없으니 괜한 걱정이기는 하다만. 피식 웃으며 술 한 모금을 다시 입 안에 넘긴다.) 뭐야. 너도 나랑 비슷하면서 무슨 그런 말을 해.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며? 너도 매정하게 답할 거라면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뭐… 그 때의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고, 세상 밖의 모습을 머릿 속으로 그렸으며, 늘 가족들과 함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 나라도 그 믿음을 깨부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역시, 진실이 주는 충격은 어느 방식으로든 가릴 수 없을 테지. 응, 우린 결국 똑같네, 서로의 어린 시절에게 매정해….) …그래, 그런 말은… 해줄 거라는 말이구나. (나는 못할 것 같지만. 목 뒤로 삼킨 말이었다. 네가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스스로가 좋은 어른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포크로 케이크만 대충 휘적인다.) 시설도, 사람들도… 식인은 결국 이단자들만 하는 것이었으니. 이곳에 지내면서 큰 위험같은 것도 없었고. (생각보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잘 만들어봐, 베이킹이 쉬운 건 아니지만. (이어지는 말에 멈칫한다.) …딱히 좋아하는 건 없어. 네가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봐. 내가 뭔갈 많이 가리지는 않는 편이니까. (이왕이면 선택지는 주고 싶지만, 별 달리 생각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되묻는 말이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거면 너도 잘 먹을 테니까.)
 
:자,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생각보다 빠르게 마신 것 같은데… 과연 두 사람 정신은 취하지 않고 멀쩡할까요? 가볍게 정신력 판정 한 번씩 굴리고 이어갑시다.
 
바스타르: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라이아나: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스타르:그건...역시 그렇긴 하지. 어느쪽이던 내가 모르던 일면이라던지,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특히 네가... ...(한 모금 더 들이키려다 말고 살짝 주춤, 열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은 그래도 멀쩡한 것 같은데...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제 뺨에 손등을 대었다가 잔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마셔겠군, 하는 생각.) 뭐...뭐어. 가장 좋은 주사나 술 버릇은 바로 자는 사람이라고 하던가. 그래, 나도 이왕이면 그 쪽이라면 좋을 것 같은데... . 그나저나 네 페이스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빨랐나? 네가 그렇다면 뭐...그런 거겠지. (조금 열이 올라오는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마지막 남은 가오일지도. 여기서 그걸 말해버리면 승기는 라이아나에게 더 다가가는 걸.) 그 상사는 그런 네 속을 알긴 했을지...모르겠군. 그나저나 너는 취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건가? 보아하니 남들 취하게 하는데에는 선수 같은데, 본인 취한 이야기는 영 들어보질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취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거나...? 그런 가능성은 없는 건가?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과일이나 집어 먹는다.) 그래, 그래...그만큼 네가 편하다는 말...맞지. 나랑은 마셔준다는 점이 고마우면서도, 영광인데. 그보다도 내가 꽤 막 마시던 편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니까 겁나긴 하네. 아직 정신은 멀쩡한 것 같은...아니, 멀쩡하다.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군. (괜히 오기나 부리며 손을 젓는다. 물론 다른 표정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 여전히 미소는 머금고 있을까. 여유에 더해 즐거워 보이기도 하는 당신을 보다보면...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조금은 이러다 내가 지겠는데? 하는 걱정도 앞서고.) 하긴, 선의의 거짓말이던 나쁜 거짓말이던 결국 전부 다 거짓말이지. 그래도 뭐랄까...대상이 어릴 적의 너라고 생각하면, 나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할 것 같거든. 내가 한다는 배려이자 약한 마음이, 되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황이 닥친다면 그럴 것 같았어. (하지만, 결국 너는 그러지 않겠지. 역시 침묵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리 생각하며 당신의 손가락이 지나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탁자를 바라본다. 무얼 그리는 걸까... ...분명 추억에 존재하는 무언가일 것이라.) 그러니까...그 말이군. 진실을 입에 담지도 않겠지만, 거짓된 희망을 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거. 네가 그 아이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 하여도, 너를 안아줄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라이아나는 상냥하거든. 그거 아나? 너의 그런 면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당신이 술을 한 모금 더 들이키는 동안, 자신은 과일 하나를 더 집어먹는다. 이어진 말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길-) ...남이사. 불공평하다 생각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어릴 적의 나는 너무 나약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였기에, 가족들에게 토닥임만 받던 꼬맹이에 불과했지. 선의의 거짓말 이전에, 충격 요법도 필요한 법이야. 사람은 그래야 강해지더군. (결국은 그 말대로, 지금의 우리는 어린 시절에게 한없이 매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눈을 한 번 느릿하게 깜박, 휘적이는 케이크를 보며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너는 스스로 멋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이런 말 조차도...해줄 수 없다는 것이겠지. 참 어렵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담기기도 한다.) 이젠 이단자들도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생각하는데. 그리고 가장 맛있을 뇌의 나이를 우리는 이미 훌쩍 넘겼어. 어느쪽이던, 이곳에 남아있는 식인귀들에게 우리가 노려지거나 위협당할 가짓수는 많이 줄었지. 생각하면 할 수록...(남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더 들고. 그 말은 살짝 삼킨다. 할 수 없어서, 보다는...취기에 삼킨 말인지. 말 끝을 흐리는 모양새가 퍽이나 멀쩡해 보이겠다.) 그래, 그래... 그럼...쿠키나 만들지 뭐. 사람 모양으로 쿠키를 만들고, 그 위에 가족 얼굴이랑 마마 얼굴을 그리는 거다. 옳지,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말이야... 가끔 보면 나도 참 똑똑하다니까. (피식...)
 
라이아나:응, 나야… 익숙하니까. (주춤하는 걸 보고 눈 한 번 깜박, 그러게 빠르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잔을 가볍게 흔든다. 자신이야 가끔 회식 자리도 있었고, 대학생 때도 이래저래 마실 이이 꽤 있었으니 익숙하다만… 처음부터 저렇게 마시면 훅 가기 쉽지. 그런 생각을 하면 픽 웃을 뿐이다. 굳이 얘길 안 하는 걸 보면 오기라도 부리는 건지.) 내 모습 보려면 꽤 오래 버텨야 될 거야, 비타. 내 술 취한 모습은 아무도 본 적이 없거든. (물론 나도. 그러니까, 아직까지 자신이 마신 선에서는 주량 안쪽이었다는 것. 가볍게 입꼬리 올리며 웃는 낯으로 턱괸 채 너를 바라본다.) 상사도 몰랐겠지. 빨리 마시고 보내 버려야 남은 직원들이라도 편하게 마시니까… 뭐, 부탁 받은 이유도 있었고, 상사가 좀 귀찮게 굴기도 했어서….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 알든 몰랐든 먼저 취해서 갔으니 기억도 잘 못할 걸. 어깨를 으쓱인다. 포크로 치즈 케이크나 한 번 더 먹는다. 아무래도 역시 난 과일보단 이 쪽이 취향이네….) 벌써 긴가민가 하면 큰일인데, 아직 시간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 술도 아직 몇 명 더 남았잖아? (서로 편한 사이라는 건… 역시 생각보다 좋지. 안심하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도 좋고, 처음 보이는 모습 터놓는 것에도 크게 겁내지 않아도 되고. 가벼운 장난도 입에 담아보고. 음… 평화롭네, 정말 지나치고, 지독하게…. 여기서 머문지도 꽤 오래 돼서 그런지 슬슬 여관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고, 독인데도 결국 그 말을 하게 된다는 게, 나는 너답다고 생각해.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줄 걸 안다고 해도… 넌, 그 때의 기분을 생각해주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랄 테니까. (말을 마치고 잔을 기울여 한 모금 더. 깔끔하게 지워진 잔에 다시 한 번 와인을 따른다.) 너는 내가 상냥하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네가 더 다정해, 비타. 결국 독이 될 배려라도 네가 해주는 건 결국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잖니. (미래에 좋은 사람이 되어있다는 말은, 과거의 내가 듣는 다면 분명 도움이 될 말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도, 그 때의 내가 너를, 나를 만난다면…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로, 좋은 사람이 된다는 너의 말 하나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그렸을 지도 모르지….) 응, 안아주고 싶을 거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이니까. 가족과, 마마와, 하우스와, 그리고… 나마저도. (어린 시절의 우리는 행복했잖아. 턱을 괸 채 와인 잔만 손으로 빙글 돌린다. 흔들리는 술, 잔 너머로 보이는 너를 눈에 담았다. 네 말대로 라이아나는 스스로에게 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비관적이며, 또, 너무 어렵게 살아가고 있어서… 쉽고, 단순하고, 자비롭게 구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늘 순간의 충동과 어설픈 계획을 세우며 살아갈 뿐.) …이미 세상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서 맛도 없겠고, 이단자들은 만나도 금방 죽일 수 있으니까. 약점도 알고 있고, 옛날보다 요령이 생겨서 처리하기도 쉽고…. (먹으면서 할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묵묵히 넘긴다.) 뭐, 누가 우리가 여기 있다고 정보를 넘긴다 해서 질 거란 생각도 안 들어. (생각하면 할수록? 끊긴 말에 고개를 슬쩍 기울인다. …취했나? 아니, 벌써?) ……오, 자만아니야?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첫 도전 치고는 욕심이 과하지 않나…? (아이싱이 얼마나 어려운데 망하면 어떡하려고?)
 
바스타르:...이렇게보면... 역시 경험은 무시 못하겠네. 하여간... ...(가볍게 흔들리는 잔을 바라본다. 그래도 어지럽다거나, 속이 안 좋다거나 한 것은 아닌 걸 보면...템포만 조절하면 될 일이지. 픽 웃는 모습을 보곤 따라 픽 웃는다. 무리하게 덤빌 만큼 바보는 아니거든, 나.) 그거 알아? 아무도 본 적 없다던가,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보고 싶어지는 거. 슬슬...그 정도는 거뜬히 버틴다는 걸 증명해볼까. (너무 안 마시면 내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계속 놓고 있던 술잔을 들어 작게 한 모금 더한다. 턱괸 채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니... 여유로움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 하고.) ...하긴. 그런 사실을 안다면 그 어떤 상사라도 곱게 마셔줄 것 같지 않으니 말이야. 직원들 사이에서는 영웅이나 다름 없었겠는데? 그런 사소한 행동도 결국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거라고 본다만...뭐, 너는 애당초 그런 것에 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해. 그나저나 부탁을 한 사람도 있었나 봐? 누굴까, 용기가 없어서 네게 부탁을 한 사람은. (아니면 뭐...다른 사정이라도 있었나. 어느쪽이던 그 사회에서 벗어난 너와, 애당초 뛰어들어본 적도 없는 자신과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재밌지 않은가. 라이아나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싶었던 바스타르에겐, 사소한 회식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는 것이니까.) ...술이라는 건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닥 맛있다, 는 감상은 아니라서 천천히 뜸 들이며 마시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들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마시게 되는 게... 아무래도 네 말대로 속도 조절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왜? 걱정되나? 저 술병이 다 비워지기도 전에 게임이 시시하게 끝날까 봐? (괜히 도발이라도 하듯 장난을 더한다. 이것도 결국 친하고, 편한 사이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간 그런 사이에서 벗어날 정도로 멀어진 적이 있었다고...바스타르 본인은 그리 생각한 적이 없다. 라이아나의 입장은 또 모르겠지만. 물론 이런저런 위기도 있었고, 멀어지려는 것을 잡아 세운 아슬아슬한 상황도 여럿 있었던 것 같지만...결국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함께 보내며, 이곳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을. 크게 숨겨야 할 것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울이는 술잔과 이 소소한 평화가... 영원할 수는 없어도 너의 마음에는 남기를.) 당연하잖아. 어린 아이던, 어른이던... 난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나 절망보단 희망을 안고 살아가길 바란다. 내게 있어 그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난 희망조차 될 수 없는 현실만을 일깨워주고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걸. 네가 보는 나도, 그리고 네 속의 내가 다정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것도...결국 네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반대로...네가 내게 베푸는 다정 또한 같은 결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평소에도 지겹도록 했을 듯한 말을 더하며, 비워지고 채워지는 당신의 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신도 따라 한 모금 더 마시려다 말고, 그냥 과일이나 집어 먹곤,) 사실 난, 네 생각 이상으로 단순한 사람일지도 몰라.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그런 것까지 고려하기엔 나는 그 당시 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런 내 행동을 그리 좋은 의미로 해석해주고 있다는 건, 너 또한 어떤 면으로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고 봐도 되는 건가? (예를 들면...너는 하지 않을 말이라 하여도, 내가 어린 너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말을 해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될지, 그런 이야기. 어린 네가 그 말 한 마디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될 수도 있다는...그런 가능성의 이야기.) ...허...그런 말을 하려거든 지금의 너부터 아끼는 걸 추천한다. 조금 박하게 말하자면...너도 알듯이 그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좋게 말하자면...지금의 너는 그 시절의 온기를 온전히 담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스스로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 말아라. (어린 시절만큼 행복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그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그 시절 조이풀의 가족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 ...하, 머리 아파. 괜히 자신도 모르게 어려운 소리를 해버린 것 같아 술 한 모금을 더한다. 아주 조금이지만.) 나는 너만큼의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니 그리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뭐...맞는 말이지. 어린 시절에는 아예 상대할 자신조차 들지 않았다면, 골디펀드로 돌아갔을 때는 적어도 그것들이 두렵진 않았고... 지금은 딱히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울이는 고개에는 잠시 미간을 짚는다. 내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싶어서. 상대가 기울인 고개는 그런 의미가 아님은 전혀 모른 채...) ...라이아나, 뭐든 도전을 해야 성공이고 실패고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들어본 적 없나? 꿈은 크게 가져라, 들어본 적 있을 것 아니야. (아이싱이고 뭐고...물론 하나도 모르지만. 비교적 단순한 사람이 거기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리 없지 않은가.)
 
라이아나:누구 하나 취할 때까지 마셔도 재미있지만… 나 이기겠다고 무리해서 버티지는 말고. 굳이 속 안 좋을 때까지 마시면 안 된다? 술 마시고 산책 가기로 했던 거 잊은 거 아니지? (너무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다. 음… 뭐, 적당히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거니까…. 몸 못 가눌 정도만 아니라면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못 보게 될까봐 잠깐 걱정했을까. 바보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오기라던가, 그런 건 있는 것 같으니까. 애같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지만, 노력은 해봐. 나도 너랑 비슷하게 마셔주기는 할 거니까?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과일 한 조각 집어 먹는다. 몇 번 우물 우물…. 맛있나.) 응, 뭐. 같이 일하는 애들 중에 상사 욕 엄청 한 사람 있어서… 한 귀로 듣고 흘리긴 했는데, 오래 있으면 꼰대같은 말이나 엄청 해대니까 빨리 먹여서 보내주면 안 되냐고… 음, 그러더라. 귀찮았나봐. (나도 귀찮았으니 겸사 겸사 도와준 거고. 그리 덧붙이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근데 어차피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이라며 가볍게 와인잔만 톡, 친다. 갑자기 사라졌으니 실종신고라도 됐으려나, 하는 사소한 생각도 들었으나 가볍게 넘긴다. 더 이상 인세에서의 삶이 알 바는 아니니까.) 그렇지? 그냥… 채워져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시게 되고 그러더라고. 몇 번 마신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대부분 계속 채워버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마시고 있던데. (내가 이러고 있는 걸 보니 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군 그래. 입꼬리 짧게 끌어 올려 웃더니 와인 병을 바라본다. 한 병…? 대충 다 마셔가는 것 같기는 하군. 시간이 꽤 지났던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즘, 들려오는 질문에 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야. 굳이 따지자면 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날 때 쯤을 걱정하는 거지. 숙취라는 것도 있으니까… 게임은 어떻게 끝나도 상관은 없지만. (물론 내가 이상한 행동만 안 한다면.) 흑역사 만드는 건 단순히 재밌는 추억 정도로 끝낼 수 있지만 속 쓰린 건 쉽게 안 가라앉을 수도 있거든. 숙취해소제를 사올 걸 그랬나…. (…물끄러미. 애초 당시에 지금 마시는 걸 보아하니 인세에서 술 먹고 쓰러진 애들에 비하면 시시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은 있다는 거겠지.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였던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늘 긴장 속에, 불안 속에 살아서…. 사실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간 만큼은 별 다른 생각 없이 편안해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원이라는 말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네게 이런 날이 가득하기를 바라.) 이런 걸 보면… 참 사랑이 뭔가 싶어, 나는. 인세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아주 흔한 거 알아, 비타? (케이크를 조각내 한 입 먹고는 천천히 말을 잇는다.) 연인들 사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게 말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느끼는 것은 늘 우리랑 동 떨어진 감정인 것 같아. (이렇게까지 소중하고, 다정하고, 신뢰하는 것. 인세의 사람들을 대체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금방 헤어지고, 싸우고, 미워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았던 라이아나는,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종종, 네가 이러는 것이 신기해. 그 정도까지 소중하다는 감정을 품어줄 수 있다는 것에,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마음을 자신할 수 있다는 게…. 네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받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는 말이야. (고맙게 생각하지만, 늘 갚아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드는 생각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도, 다정도, 희망도…. 네게 쉬이 되돌려 줄 수는 없는 것들. 언젠간 미워하거나 부정적이게 되는 날을 상상하는 게, 내가 하는 전부라. 그래서 더욱.) 그래. 순간의 선택을 할 뿐이라고 해도 너는 네가 하는 일을 대체로 후회하지 않잖아, 비타. 그렇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에 자신할 수 있으며, 올곧게 나아갈 수 있는 게… 나는, 좋다고 생각해. (정확히 말하자면 대단하다,가 맞겠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어느 방식으로든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애정을 바랐고, 변치않을 가족들과 함께할 미래를 그렸으니… 네가 해주는 말들을 나를, 변화시키기엔 충분한 것일 거라 확신한다.) 으음, 그러니까 말이지… 스스로한테 되 묻는 건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하고 있는지, 그 선택이 정말 최선인지 묻는 일인 걸. 던지지 말라고 해서 던질 수 없는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끼기엔 좀 그래서. 정확히는 좀 많이. 과거와 그 시절의 온기, 네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모두 나한테서 없어질 수 없는 것들이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박하게 대하고 싶은 게 사실이라. (어린 시절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만… 지금까지, 아니,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가족들에게 몇 번이나 상처 입혔던가.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가…를 생각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가 미워서. 그저 쓴 웃음만 짧게 그리며 와인잔을 매만질 뿐이다.) 응, 비타 약하지. 공격하는 쪽으로만. (굳이 얘기해준다. 장난스러운 투.) 골디펀드… 아직도 남아있으려나. 또 다른 귀족 나으리들이 만들었을 지도 모르잖아. (이단자들이 요새는 잘 안 보이는 게 그 쪽으로 몰려서 일 지도 모르겠네, 하는 가벼운 투. 꽤 나쁘지 않았는데, 거기. 안 좋은 추억이 더 많지만.) 음… 그래, 화이팅. 응원은 해줄게. (뭐… 저번에 처음 보는 요리도 그럭 저럭 잘해낸 것 같으니 어떻게든 잘 해쳐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저번에 온 건 어린 괴물이었지? 이왕이면 예쁘게 포장해서 주도록 해.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겠지…. 그리고… 비슷하다고 막 아무거나 쓰지 말고. 다 다르니까 잘 보고 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접시와 너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케이크는 안 먹어? 하고 물었다. 과일만 먹는 것 같은 기분인데… 별로 안 좋아하나.)
 
바스타르:나 참... 이상한 걱정도 많아. 물론, 점점 더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긴 하지만- 그래도 다음 약속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속을 망칠 생각은 없다. (하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걱정을 살 만하기도..한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꼴이, 혼자 속으로 떠드는 게 아니었다면 꽤 웃길 법 하다.) 혹시 애 취급 하는 거,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네 앞에서 망가질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라. 물론, 목표를 묻는다면 네가 취하는 순간까지 버티는 것이 되겠다만... ...쯧, 괜히 아무도 본 적 없다는 말을 해서 더 오기가 생기는 것 아냐. (과일을 집어 먹는 모습을 빤히... 아직도 한참 멀쩡한 것 같다며 작게 중얼거리곤 혀를 찬다.) 상사라는 게 원래 다 아니꼽다지만...유독 싫어한 동료가 있었나 봐? 그걸 또 해달라고 해준 너도 참...보통은 아닌 것 같다만. 나라면 굳이 엮여서 좋을 게 없어보이니 알아서 하라며 내쳤을 것 같기도 한데, 결국 도와준 것을 보면 너도 별로 상사를 달가워하진 않았던 모양인가 싶고. (인세의 사회 구조는 다 그런 식인가... 그도 그럴게, 인간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들 하나같이 상사 욕 하기 바쁜 어른들이 태반인 것을, 들을 가치도 없다 생각하여 그 누구와도 어울린 적이 없었지만. 그 말대로, 어차피... 인생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인,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그게 인세에서의 삶 이야기였다면, 더욱이.) ...허어. 그렇게까지 마셨는데 취한 적이 없다고? 지금 든 생각이지만, 이거 대결이 되는 승부이긴 한지 조금 의심이 드는데. (그러곤 저도 모르게 또 다시 한 모금 마신다. 그닥 맛있다고 할 만한 것도,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계속 야금야금 마시게 되는 게...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는 첫 번째 병을 바라보며 잔을 내려놓기를,) ...숙취? 잘못 마시면 다음 날까지 영향이 간다는 게 참 재밌는 물건인데, 이거. ...그래도 뭐, 이미 시작한 거 어쩌겠나. 원래 나는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니, 너라도 이겨먹고 기어다녀야지.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승부욕이 있는 성격일 줄은... ...아니, 이것도 술의 영향인가? 하... 전혀 모르겠군. (누가 보아도 처음 마시는 사람처럼 굴기를, 당신에겐 애송이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취해가는 건지, 제정신인데 그냥 가볍게 던지는 말들인지...그 사이를 오가며 저도 모르게 구구절절 늘여놓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딱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도 없잖아 있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둘만이 남아 이곳 저곳에 발자취를 남기기도 꽤 되었는데...이토록 달가운 평화를 맞은 적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둘 다 머뭇거릴 것만 같아서. 서로와 함께한 순간에 드리운 평화는 늘 있었으나, 그 나날을 가볍게 즐겼냐고 묻는다면 또 아니라는 답을 해버릴 것만 같아서. ...무엇보다, 지금 제 앞에 있는...당신의...너의. 그러한 표정과 분위기가 다른 때와 다르게 조금 더 안정되어 보여서. 그것만은 술로도 얻을 수 없을 만큼 달달한 사실이었음을. 늘 그렇게 있어준다면 좋을 텐데, 하고 또 다른 욕심을 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허. 사람들에겐 사랑이라는 감정이 퍽이나 가벼운가 보군. 내 생각으론, 그리 흔히 나올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인세에서 사람들이 흔히 입에 올리던 그 단어는, 바스타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째, 그렇게 쉽게 나올 리가 없는 단어라는 것. 둘째, 사랑한다면서 전부도 주지 못하는 모습 자체가 그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셋째, 어찌되었던 자신이 정의한 단어와는 다른 것 같아서. 그 뿐이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나는 그들이 언급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근본적으로...내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거든. 그런 의미로... 나는 너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라이아나.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은,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네가 날 신기하게 생각한다거나, 뭐...그런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진 않아. 내가 나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을,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방식에 신기함을...때로는 의문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해도 단 하나, 의심만은 하지 말아. 내게 있어 너는 나의 많은 것을 주어 마땅한...아니, 그것이 당연한 사람일 뿐이니까. (다른 말로는, 똑같은 것이 돌아오길 바란 적은 없으니 그런 생각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라? ...만일 네가 품은 것이 부정적인 것들 뿐이라 해도, 이왕이면 그것이 내게로 향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부디 스스로를 향하지만 않길 바라는 것. 이런 말 조차도 내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 너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평소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게 되는 것은, 술기운 탓일까.) 사람의 선택은 언제나 후회를 만들어. 어떤 길을 가던...그건 변하지 않지. 하지만, 네 말대로- 지금의 난 후회할 선택을 아예 만들고 있지 않아. 너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순간이 그렇듯, ...(좋다고 생각한다, 그 말에는 답지 않게 침묵을 지킨다.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너라면 나의 모든 생각을 알아줄 것 같으니까. 그리고, 너는 어떤 순간에도 나와 같은 선택은 하지 못할 것만 같으니까.) ...쯧. 자신이 없는 건지, 어떤 건지... 난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의 마음 까지는 들여다 볼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네가 너 스스로를 박하게 대하는 것을 막진 않는다 해도- 그만큼 내가 너를 더 소중히 할 뿐이다. (이런 영역에 있어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의미로 괜히 한 번 바라본다. 네가 무얼 신경쓰고 있는지 알면서도...나는 평생 알아들은 척 할 생각이 없거든, 라이아나. 평생... 평생 모른 척 하려고.) 꼭 그렇게 정곡을 찔러야 하나? 나는 지식을 쌓고 똑똑해지면 좋은 작전으로 그것들을 날릴 생각으로 단련해 왔는데, 대뜸 그런 싸움의 장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 (결국 맞는 말인지라... 장난 섞인 투에 맞추어 툴툴거릴 뿐이다.) ...악취미도 그런 악취미가 없었지. 사냥터라니, 잡아먹을 거면 곱게 잡아먹어주는 하우스가 100배는 봐줄만 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가고 싶기라도 해? (꽤 가벼운 투에서 이어지는 말이 썩 나쁜 기억을 말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괜히 그런 질문이나 하곤...) 라이아나, 너도 디자인이라던가...센스라던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었나? 뭐든 마음으로 전해지고 마음으로 남는 것이지. 막말로, 신문지에 포장해줘도 내 마음은 명품인 것이라고. (이런다... 이어진 질문에는 고개를 기울인다. 생각해보니 계속 과일만 먹고 있었던가. ...자연물에 더 이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건지. 그제서야 말 없이 케이크 한 입을 먹곤 어깨를 으쓱한다.)
 
라이아나:…… (사실, 지금 대화하면서 많은 감상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 사랑한다는 말을 저렇게 직설적으로 들은 건 또 처음이라 잠시 눈만 몇 번 깜박거릴 뿐 별 다른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애정과 사랑은 자신에게 기꺼운 것이 당연했기에…. 희미하게 미소만 지어그려볼 뿐이다. 스스로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으면, 어차피 또 탐욕에 한 번 휩쓸려버릴 뿐이니. 지금의 여정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스스로를 조금씩 배제시키고 있어서 라는 걸 네가 할까. 그러니 모른 척 해줘, 그냥,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오늘까지라도. 흐음, 다시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많이 죽을 것 같은 곳이니까… (당연하게도 이런 이유. 다른 애들이 들었으면 엄청 뭐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라이아나는 당연하게도, 가족들을 제외한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심한 것이 당연했다. 케이크 먹는 모습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아까 사온 위스키 꺼낸다. 40도짜리…랑 와인 한 병도 같이. 둘 중에 뭐 마실래? 하고 묻는 듯.)
 
바스타르:...역시 그런가. 뭐,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가고 싶어해도 상관 없거든. 남아 있으면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지금은...뭐. 남아있는 게 아예 없으려나 싶긴 하지만. (아무 말 않고 가만 미소 짓는 표정을 보다가도, 들려온 답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죽음을 아름답게 여기는 이가 어딘가를 가고 싶어한다던가, 무언가를 떠올린다면 필시 그런 것이겠지. 이젠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라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잠시 후에 꺼내오는 위스키와 와인을 보곤 헛웃음을 치기도 했지만.) 쉬지 않고 바로 가는 게, 마치 고수 같네. ...흠. 뭘 더 마시고 싶은데? 네가 땡기는 걸로 까자. (아직은 여유 있다는 듯 괜히 살짝 허세나 부려보고.)
 
라이아나:없을 확률이 높겠지. 안 가도 상관은 없어. (가고 싶다, 라기보다는… 역시 자신은 '보고싶다'의 쪽에 가까웠으니까. 토달지 않는 모습조차도 이제는 익숙했다. 자신과 함께 지내며 익숙해진 것 같기도 했고, 너는… 언제나 늘 자신을 이해해줬기에, 늘 감사하고 있지만 구태여 티내지는 않는다. 너는 당연하다 대답할 게 뻔하기 때문에.) 으음, 나야 뭐… 말했다시피 괜찮으니까. (멀쩡한 낯으로 어깨를 으쓱거린다.) 자신 있어? 그럼 난 위스키. (허세 부리는 모습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랄까… 하지만 그래도 역시 도수가 도수인지라, 이건 조금 천천히 마시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천천히 위스키 뚜껑 연다.) 속 버리니까.
 
바스타르:그래? 뭐, 어느쪽이던 상관 없겠지. (저 역시 딱히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웬만하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해야 할까... 그야, 딱히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지. 조금이라도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주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생겨버렸으니.) 그래, 그래. 더 강한 놈을 선택할 것 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 으쓱이며 아랑곳 하지 않는 티를 낸다. 본인이 어디까지 취했고, 어느정도 더 마실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생각한 것처럼, 속도 조절만 잘 한다면 문제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에.) 걱정 마. 이제 술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 다 잡았으니까. (피식) 그나저나... 나는 너한테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있긴 했었는지가 의문인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한 건데...좀 봐줄 생각은 없고?
 
라이아나:(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떠올려봐도 쉽게 생각나지 않았던 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네가 늘 내 의견에 귀기울여주는 거겠지. 정말로 간절히 바라는 게 생긴다면 들어주겠지만… 그것도, 안 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알고는 있으니까….) 나는 이 쪽이 더 맛있단 말이야. 감 잡았다는 말은… 솔직히 잘은 못 믿겠지만. (처음 마시는 사람들은 늘 언제 갑자기 머리 박을 지 모르겠어서… 다소 조금 불안하긴 했다. 다른 사람이면 그냥 보내도 그만이지만, 너는 남이 아니라…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하다 이어지는 말에 눈 꿈벅 꿈벅. 고민이라도 하듯이 잠시 이어지는 으음, 소리.) …글쎄, 그건 네가 잘 조절해봐야지. (찬장으로 가서 컵 두 개 새로 꺼내며,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며 짧게 웃는다.) 나도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서 열심히 하는 거니까? (나름 말이지. 냉장고에서 얼음 큰 걸로 하나씩 컵에 넣어서 가져왔다. 온더락.) 보고 싶으면 조절 잘 하고 마시고. (나도 내 주량 몰라서 얼마나 더 마셔야 되는지 잘 감이 안 잡히거든.)
 
바스타르:도수 높은 게 더 맛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만, 최대 몇 도까지 마셔본 거지? 아직도 여유가 넘쳐보이는데. (크흠, 뒷말에는 괜히 헛기침을 한다. 모른 척 눈 굴리다가 하는 말이라곤...) 내 감은 칼보다 날카롭고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기대해 봐. (결국 좀 전에 했던 말이나 그대로 하곤 컵을 꺼내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시 말하지만, 네 앞에서 인사불성이 될 생각은 곧 죽어도 없으니까. 허세만 부리는 어중간한 인간들과는 다르다고. 아니면, 역시 네가 좀...(조금 봐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려다가 속으로 삼킨다. 뭐야? 이것까지 말하면 정말 내기고 뭐고 가오가 없잖아. 그래도 아직 정신은 멀쩡한데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 혼자 그리 생각을 다잡곤 얼음을 넣어온 컵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훑는다.) ...뭔가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군. ... 아까와 같은 실수는 없을 테니 진짜로 각오하도록 해. 이렇게 된 거, 단순히 네 또 다른 모습을 넘어서 재밌는 장면까지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으니 말이야. (술은...이번엔 내가 따라야 할까, 그리 생각하며 위스키를 가만 바라본다.)
 
라이아나:응? 도수가 높아서가 아니라… 그냥 위스키가 취향인 거야. 최대는 40도. (병 톡톡 건들인다.) 이 정도까지밖에 안 마셔봤어. 더 높은 건 거의 본 적도 없는 걸. (어깨를 으쓱거린다. 아마 있기야 하겠지만 흔하게 팔지는 않으니까… 기대하라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만 끄덕인다. 당장도 평소랑 다르게 조금 가오 챙기는 게 조금 취한 것 같기도 한데… 저 모습이 얼마나 갈지…) 응, 나도 네 앞에서 그런 모습 별로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예 맛 갈 것 같으면 더 마시진 않을 거야. 밖에 산책 나가야 하는 것도 있고… 내가 좀… 뭐? 봐줘? (허세 부리는 모습이랑은 영 딴판이네. 그리 이야기하며 키득이며 웃는다. 뭐, 딱히 실수한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바라보는 걸 보다 고개를 기울이고, 네 앞으로 병을 내민다.) 일단 네가 각오하라고 하니 나도 봐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네가 보고 싶어하는 만큼 나도 보고 싶어하면 될 것 같네. 따라볼래?
 
바스타르:40도... 40도 말이지. (아까 마시던 와인 병을 흘긋 본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이것보단 훨 낮았을 텐데. 상대가 자신 있어하는 이유의 원인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끄덕 끄덕 하기를...) 그래, 그래. 도수가 뭐가 중요하겠어. 그냥 맛만 있으면 됐지. 얘는 아까 것보다 더 맛있기를 바란다. (그런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며 위스키 병을 제 앞으로 가져와 딴다. 조심히 들어서 얼음이 담긴 잔에 적당히 따르고...) 그건 조금 아쉬운 말이지만...그렇지. 산책 가기로 했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먼저 제안한 건 또 새로워서 여기서 힘 쏟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단 말이지. 별 것 아닌 산책이라 해도, 조금 기대된다고 한다면 웃기려나. (조곤 조곤 이야기 하다가도 키득이는 모습에 눈을 얇게 뜨고 바라본다.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줄 거면서. 쯧...) ...됐어. 첫 잔은 양보해 줄 테니 먼저 마셔봐.
 
라이아나:아까 와인는 12도짜리. (궁금해하는 것 같길래. 하며 덧붙여 알려준다. 그래도 너도 못 마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못 마시는 애들은 와인 한 잔 먹고 바로 열 올라오니까. 맛만 있으면 되기는 하지… 응. 천천히 차오르는 잔을 바라보다가 이어지는 말에 눈 깜박.) 그냥…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힘 쏟아도 상관은 없으니까 정신 잃지만 않으면 돼. (웃기지는 않고, 오히려 실망할까봐 걱정스러운 거지… 안 봐줄 건 또 어떻게 알았대. 아무래도 나도 내가 어떨지 걱정이 되는 편이다 보니까.) 응, 잘 마실게.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 한 번 돌리며 바라보다가… 먼저 한 모금 마셔본다. 음. 달달하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자, 여기. (위스키 병 들어서 제 잔에 들은 것보다는 조금 적은 양을 따르곤, 네 앞으로 밀어준다. 과일 하나 콕, 집어서 먹고 있고.)
 
바스타르:12도. (괜히 따라 말하며 피식, 웃는다. 그래도 첫 도전에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생각했는지, 되도 않는 자신감만 더 생기는 듯 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는 어리석은 짓을 내가 할 리가 없지. (혼자 가볍게 웃는 동안, 인사와 함께 고민없이 들이키는 모습을 본다. 멀쩡한 걸 넘어서 술을 즐기고 있군,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제 앞에 놓인 잔을 바라보곤...) ...그래. 그럼, 나도...(잔을 살짝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셔본다. 맛은...있는 것 같네.)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딱 한 모금. 그 정도만 마시고 잔을 내려둔다. 따라 과일이나 집어먹으며 딱히 나쁘지 않은 맛이라는 생각, 그 정도 일까...) ...새삼 든 생각이지만, 인세에선 꽤 비싼 술 아니었던가.
 
라이아나:으음, 스스로한테 자신 있는 것 같네… 나도 처음 마실 때는 상당히 조심했는데 말이지… (오기 때문인 건지, 아님 그냥 내가 편해서 그러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구경하기에 좋았다. 여러 의미로. 너도 마시다 괜찮아지면 즐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싶은 마음으로.) 맛은 있지? (위스키 쪽도 괜찮다니까. 그리 덧붙이곤 치즈 케이크도 다시 한 입.) 으음... 뭐 어때. 비싸든 말든 딱히 상관 없잖아? (어깨를 으쓱댄다. 마시고 싶은 거 마시면 되는 거지. 언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술은… 자주 마실 건 아닐 테니까. 작게 중얼대듯 덧붙이고는 다시 한 모금 천천히 들이킨다.) 있지, 비타. 옛날에 같이 밤하늘 구경했던 거 기억나?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8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스타르:...자신, 이라. ...(...생각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긴 하다. 진짜 조금 취하기라도 했나? 원래 자신은 자신이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앞세우는 편이 아닌데...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본인도 모를 노릇이었다. 나, 조금 냉정을 잃었나.) ...그러게, 맛은 있네. 조금 달달한 것 같기도 하고... 술향도 술향이지만 쓴맛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 (그래도 역시 술만 먹는 건 맛이 좀 신기하다니깐. 저 역시 포크를 들어 치즈 케이크를 한입 먹는다. 가격은 상관 없다는 말에 또 그런가 싶어 고개만 가만 끄덕이다 보니... 질문 하나를 더 받고 나서야 고개를 기울이더라.) ...당연하지. 유독, 조금 더 많은 것을 나누었던 날이 있었지. 그러고보니 새삼, 참 많은 밤하늘을 함께 봐온 것 같네. (잠시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언제나 같은 밤하늘이었는데...그럼에도 늘 새로운 것 같았지. 저도 모르게 이것저것 떠올리며 위스키 한 모금을 더한다.)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하, (문득 어지러움이 살짝. 열이 올라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한 번에...조금 많이 마셨나? 잔을 조심히 내려두고 제 미간을 한 번 짚는다.)
 
라이아나:응, 아무래도… 이렇게 다닌지도 꽤 오래 지났으니까. 슬슬 봄이 다 지나가고 있어서 밤이 짧아지던데… (좋았…던 편인 거겠지, 아무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부정적인 답변은 거의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뭐, 아무튼….) 왜 그래, 어지러워? (미간 짚는 거 보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무래도… 너무 초장부터 많이 먹였나? 봐줄 생각이 없긴 했는데 너무… …큼큼, 작게 헛기침 한 번 하고는 턱 괴고 물끄러미…) 괜찮은 거 맞지?
 
바스타르:... ...괜찮아. (별 다른 미동 없이 미간만 짚다가 천천히 고개 든다. 한 손으로 살짝 턱을 괴고 시선을 마주치나... 눈가가 살짝 붉어진 것이 아예 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보긴 어려울 지도.) ...듣고 있어. (느릿하게 눈 깜빡이곤 과일이나 하나 집어먹는다. 약간 헛손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래. 아니, 아니지. 봄이 다 지나가고 있다고.? 우리- 봄의 하늘은 그렇게 봤던 적이 있, 던가... ... 지금 볼까.? 하하- (기분 좋다는 듯 웃는 것 하고는...묘하게 평소와 웃음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나, 정말 즐거운데, 지금.
 
라이아나:괜찮… (은 거 맞냐고 물으려다가 시야에 들어온 얼굴이… 생각보다 붉다. 역시 위스키는 좀 위험했나?! 하는 생각이… 헛손질까지? …이거 제정신으로 데려갈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들리는 말에…) …… (취했군. 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어째 너무 잘 마신다 했더니 이럴 줄 알았지.…) 음, 그래… 지금 가봐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좀 진정하고 가자. 물 마실래? (웃음 참으려는 듯 괜히 가슴께 두드린다.) 물 마실래?
 
바스타르:...괜찮, 다니까. 겨우 이 정도로 무얼... ...(당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혼자 짐작해서 괜찮다고 말하길 한 두번, 조금 더 고개를 들어 앞머리를 걷고 손등을 이마에 댄다. 조금, 뜨거운가... 그런 생각이나 하며.) ...진정..? 취하지 않았, 다니까...자꾸 무슨 말을- ... ...(당신을 빤히 바라보는 분홍빛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탁한 듯 하고. 손 하나를 들어 가로로 젓는다.) ...자꾸 물을 물어보고 말이야. 라이아나, 물 마시고 싶나? ...아직 괜찮으니까, 마저 해도 상관없어.
 
라이아나:… …아무래도 본인 상태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것 같은데.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남이었으면 딱히 걱정 안 하겠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조금 걱정스럽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하는 모습이니 눈에 좀 담으려는 듯 턱 괴고 바라보고.) 으응~ 그래, 비타 안 취했구나. 진짜 더 마시게? 나야 상관은 없는데… 넌 그러다가 인사불성될 것 같은데. (눈 가늘게 뜨면서 위스키 병 제 쪽으로 가져온다. 일단 본인 잔은 비었으니, 마저 채우려는 듯…)
 
바스타르:...하, 하하. 그럴 리가. 내가 그랬잖나. 괜한 걱정, 하지 않아도...괜찮다고. ...응? (딱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의 모습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네 앞에서 인사불성이고 추태고...그럴 생각, 절대 없으니까. ...하. 아직,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지. 그저...그래. 이유는 몰라도 기분이 조금 좋은 것 같아서 말이야. (완전 제정신이고 뭐고, 떠들 정신까진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고?) ...계속 해. 이제 진짜로, 감 잡았으니까. 나는 네가... ...(...글쎄. 뭐가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이렇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을 고민할 것 같지만.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한 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계속 도전해보게 된단 말이지... .)
 
라이아나:으음. 뭐, 그래. 네가 괜찮다는데 내가 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대신에 뻗지만 말아. 알았지?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팔 뻗어 머리 한 번 슥슥 쓰다듬어주곤 손을 내린다. 술에 취하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까 분명 이야기한 것 같은데 말이지. 너는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나. 술 취한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이 제어하는 것도 못할 것 같으니까…) 기분 좋아보여서 다행이네, 응. 울거나 하면 어떻게 달래주면 좋을 지 고민 좀 하고 있었는데. (대화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고, 나도 아직 한창인 편이니… 계속하자면 마다하지는 않을게. 그리 덧붙이며 잔에 천천히 위스키를 채워나간다. 앞에 있는 네 잔에도. 그러다 들리는 말에 응? 하고 되묻는다.) 내가, 뭐. 계속 얘기해볼래? 하다 말면 궁금하잖아.
 
바스타르:...술 마시다 길 바닥에서 자는 사람들을, 제일 이해 못 하는 편이라고, 나는. ...걱정 마. (손을 느리게 휘적, 휘적...거리다가 쓰다듬는 감각에 당신을 빤히 쳐다본다. 지금 설마, 애 취급...뭐 그런 건 아니겠지? 미묘한 기분에 눈썹이 반대로 기울어진다.) ...그래..그건 참, ...다행이네, 그래. 어렸을 때 하도 지겹게도 울어서 이젠 나올 눈물도 없는 모양이지. ...과연 너는 어떨까, 라이아나. 웃음을 보여주려나... 눈물을 보여주려나. 둘 다 아니면..., 쯧. 재미없을 것 같은데. (다시금 채워지는 위스키 잔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다.) ...왜, 궁금해? ...너의...네가. 보고 싶다고. (어째 부자연스럽게 이룬 단어의 조합이 참 미묘하기도 하다.)
 
라이아나:으응, 그래. 내가 보기엔 네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 비타… (쳐다보다 같이 빤히 쳐다보다가 입가에 호선 그린다. 아무래도, 누가봐도 그거 맞다.) 흐음, 그래? 나는 우는 것도 괜찮은데. 나올 눈물이 없다는 건… 아닌 것 같거든. 어느 순간에는 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왕이면 없는 게 좋겠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 …별 걸 다 보고 싶어하네. 둘 다 이미 봐봤으면서 뭘 더 보고 싶어하는 거람…. 이상하네, 참. (병을 옆에 내려놓고는 다시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너의… 네가?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군 그래… 뭐, 일단 내가 잘 안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것만은 잘 알겠다. 네가 술 취한 모습에서 찾을 정도라면… 아무래도….) 뭔진 몰라도 보고 싶으면 열심히 버텨봐야되겠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바스타르:...아까부터 자꾸, 너무한 소리만 하네. ...그렇게 못 믿겠다면, 그래. 보여줘야지. (조금 더 정신을 차리려고 허리를 세운다. 열이 올라와서 그런가 묘하게 더운 것 같기도 하고...옷깃을 내려 조금 걷어내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상에 눈물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 ... ...굳이 말하자면, 네 앞에서는 눈물 한 번 보일 일이 있을 지도 모르지. 적어도, 내가 네 앞에서 가장 나로서 솔직하게 존재를...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다른 가족들 앞에서는 그저 정신적으로 의지되는, 강한 사람으로서만 존재하면 상관없다. 굳이 솔직하게 감정을, 아쉬움을...내비칠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이젠 만날 일도 없을 것을. 그러니- 만일 눈물을 보이거든... ...) ...아무런 표정 없이, 변화 없이 그대로인 것 보다는 역시...그쪽이 재밌잖아. 하하- ... 네가 웃어주면...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기쁘고. 눈물을 보인다면...미처 흘리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도가, 되고. ...그런 거지. (결국 어느 쪽이던 네가 무언갈 드러내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거라고. 그리 생각하며 과일 하나를 집어먹고 잔을 살짝 든다. 빙글 빙글, 턱을 괸 채로 잔을 돌려보기도 하고...)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지도... 참 궁금한 노릇이고. 알잖아, 라이아나. 나의 유일한 장점이나 자신하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한 모금 마신다.)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라이아나:그러니까, 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런 애들이 술 먹고 제일 먼저 쓰러진다니까! (저 오기 어떡할 거야? 못 마시는 거에 비해 (본인이 잘 마시는 거다.) 자존심만 센데… 다른 사람이랑 안 마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어지는 말에 멈칫한다.) …그래? 어떤 거든 이런 표정 말고 다른 게 보고 싶다는 얘기네. …비타, 내가 표현은 안 해도 충분히 감정은 느끼고 있어. 당장은… 그냥, 겉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러는 거였던 거고…. (그런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너한테는 숨기는 걸로 보였으려나. 사실 숨겼다, 라기보다는… 표현하는 방식을 제대로 모르겠다. 이래도 되는지 늘 저울질 하다보니 자기 전에서야 그럴 걸, 한 번씩 되새겨보다보니, 네 앞에서는 잘 표현할 일이 없었던 거지….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너랑 있던 거… 꽤 즐겁다고. 이렇게 여행했던 것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만 입안에서 맴돈다. 결국 나는 또 말을 삼키고 말아.) …잠시만, 얘 괜찮은 거 맞나? 잠시만, 비타. 좀 포기하는 쪽이…!! (점점 정신 놓는 것 같은 기분인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려 아래서 위로 네 얼굴을 슬쩍 쳐다본다… …작게 한숨 한 번 내쉬고는, 남은 잔 비우고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네 앞으로 가서 들고있는 잔 뺏어온다. 이제 진짜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이제 그만 마셔, 비타.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바스타르:... ...하하. (아주 조금 마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또 조절이라도 실패한 건지 아주 그냥 정신을 놓아버린 꼴이 되어버린다. 평소와는 다른 소리로 웃다가 제가 들고 있던 잔을 빼앗긴 후에서야 제 앞의 상대를 바라보곤,) ...라이,아나? (초첨이 없는 건지, 안광이 없어 더 탁해보이는 것인지...제법 멍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딱히 잔을 도로 빼앗을 생각은 없는지 탁자를 짚고 일어나선 가까운 거리가 되도록 다가간다.) ...왜 그러지? ...안될, 것 같나? (...) 그런 표정, 짓지 마. ... ...당황하지도 말고. (느릿하게 말하는 어조와는 다르게 제법 즐거운 낯으로 당신을 가만 바라본다. 굳이 표현하자면... 오히려 텐션이 올라간 쪽에 가깝다고 봐야 할까.) ...하하, 너를 위해 재밌는 걸 보여줄게. 그래, 그래...옳지. 어떤 걸 보여줘야 할까... . 무얼하면 즐거울 것 같나? 라이아나- . (이름을 한 두번 부르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더니 이내 창문이 있는 벽으로 걸어가 기댄다. 걸음걸이가...영 정상인 답진 않은 모양새로 보일 지도.) ...아까 네가 뭐라고, 했더라...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 제대로 못 들었거든. (...) 다시, 말해줄래? 나는...너의 이야기는 하나도- 흘려듣고 싶지 않거든. 하하-
 
라이아나:(…웃는 걸 보니 더는 정말 마시게 두면 안 될 것 같다. 평소랑 너무 다르잖아…. 물론 신기하기는 하다만, 그거랑 별개로… 숙취도 걱정되고, 어디 엎어질까봐 걱정되고…. 그런 생각을 하다 이름 부르는 소리에 시선 맞추곤 고개를 갸웃인다.) …가까워. (그대로 이마 손으로 꾹, 누르며 밀어낸다. 안 될 확률이 높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들어진 표정을 네가 보고 싶은 건 아닐 것 같아서, 어깨만 가볍게 으쓱일 뿐, 별 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 행동… 가만 들어보다보니 정말로 제대로 취했군… 하는 감상도 덤이었다.) 이미 네가 취해서 충분히 즐거운 것 같으니까 더 뭘 안 해줘도 될 것 같아. (따라가지는 않는다. 조금만 더 마실 생각으로 남은 위스키를 잔에 따르고, 테이블에 기대 서서 너를 바라볼 뿐이다.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질 지도 모르니 예의주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응? 흘려들어도 될 것 같으니까 신경쓰지마. 별 말 안했어, 비타.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고…. 그냥 네가 얘기했던 거 다시 한 번 생각해본 것 뿐이니까.
 
바스타르:...대단하네. 그래, 조금 더 술을, 즐기려고? 하하- 인정해야겠어, 이제는.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네... 이길 자신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했는데 말이지. (가만 고개를 끄덕이며 채워지는 잔을 바라보다, 시선을 옆으로 굴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의 하늘을 응시한다. 그래도 아직은 꽤 멀쩡한 것 같지 않아? 라는 말은 덤.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지, 장난 아닌 진심으로.) ...아름답네. 아주...아주... ...아름다워. 라이아나, 밤의 색은 역시 너를 닮았어. 너를 보고 있다보면...밤의 세상이 떠오르곤 한다고. ...그렇지 않아? (올라간 텐션을 조절하는 게 생각보다 힘든지 잠시 느릿한 간극을 두고 숨을 몰아 쉰다. 그럼에도 문제점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내가, 한 이야기...? ...허.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나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흘려도 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뿐 아니라 언제라도 내가 듣지 못한 너의,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줄래? (너무 어려운 부탁인가... . 여전히 중얼거리며 별 다른 행동은 없이 창 밖을 응시할 뿐이다.)
 
라이아나:나야… 아직 취하지는 않았으니까…. 덤빌 생각 말고 차라리 나만 먹였다면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 이번 내기는 네가 졌어. (역시 애같다는 생각…을 지우지는 못한다. 픽 웃으면서 잔을 살짝 흔들더니, 한 모금 마신다.) 갑자기? 뭐… 자주 해주던 이야기기는 하지. 밤하늘이라던가, 어둠이라던가… 예쁘다니 다행이네. 머리색이 붉은 색이었으면 노을을 닮았다고 할 텐가? (장난스레 짧게 덧붙이며 잔을 비워낸다. 조금의 취기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마시고 있기는 하다만, 역시 생각보다 잘 안 취하는 체질인가보다. 저 쪽은 취한 거 버티느라 난리인 것 같지만….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느끼고는 있어서 빈 컵에 얼음을 채우고 물을 담는다. 이 정도면 정신 차릴 수 있을 런지… 하는 생각을 하다, 이어지는 말에 잠시 멈칫하고는 눈을 깜박인다.) …노력은 해볼게. 잘 될 지는 모르겠지만… (늘 숨겨오기만 한 사람. 그게 자신이었기 때문에 네 말에 노력하겠노라 대답할 뿐, 그럴게. 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 있다가, 내가 마음의 준비가 조금이라도 되면… 그 때는 이야기해줄게. 그런 생각을 하며 네 쪽을 바라보며 짧게 미소 지었다. 너는… 늘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나 역시 가끔… 내가 모르는, 네 이야기가 있을 지 궁금하곤 해. 천천히 네 앞으로 다가가 얼음물이 담긴 잔을 내민다.) 자, 이거 마셔. 술 좀 깰 거야.
 
바스타르:...내빼는 건...조금, 불공평하잖아? 하- 그래도 다음엔 역시...그렇게 할까봐. 그 정도는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믿는다고. (멀찍이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한 번, 다시 창가로 시선을 옮겨 창문을 살짝 연다.) ...뭐어... 그랬을 수도 있지. 붉은색이면 붉은 노을을... 옅은 하늘색이면 새벽 하늘이라고 할 수도 있고 뭐... ...하지만 역시, 한 순간 모든 것을 덮는 밤이 나는, 제일 좋은 것 같아서. 너는 무얼 가장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술잔을 비워내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멀쩡하다고? 라는 의문이 살짝 들 뿐, 그 이상의 것은 신경 쓸 정신이 없는 모양인지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는다.) ...확답까진 바라지도 않으니까, 괜찮아. ..그저. 그저, 네가...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는 것이겠지. ...뭐, 물론. 그게 확답이 되고, 현실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답지않게 평소보다 직설적인 답을 내놓으며 다가오는 너의 모습을 바라본다. 내미는 잔을 몇 초 정도 바라보았을까. 이내 받아들곤 조금씩 마신다.)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얼음물을 마시다보니 정신이 좀 드는지... 아까보단 뚜렷해진 눈으로 라이아나를 응시한다.) ... ...괜찮아. 이상한 감각이 좀...가시는 것 같네. 아마도, 말이지.
 
라이아나:(아무 말 없이 그냥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다. 창문을 여니 들어오는 바람에 시원한 느낌이 들어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하며 귀 뒤로 넘겨본다.) 나도 밤하늘이 좋아. (대부분의 하늘은 전부 예쁘지만 말이지… 그래도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나도 밤하늘. 술 마시니까 역시 좀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네. 예상 외의 모습까지 봐서인지… 웃음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닥에 앉는 거 보다 다리 힘 풀린 거야? 하고 넌지시 묻기도 했다.) ……정말 별 걸 다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노력은 하고 있어. …너한테 어떻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조금 더…. (너에게 숨기는 게 없다는 게 완전히 진실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드러내려 노력하고 있고, 이왕이면 나도 네게 더 거짓을 고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대답 않고 무마하는 경우가 더 많을 뿐이지. 확답은, 내가 자신이 있을 때만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니, 쉽게 주지 못해. 나는… 늘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엔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래? 다행이네. (머리 슥슥 쓰다듬어주고는 웃는다. 이 정도면 제 입장에서는 충분히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나가자. 바깥 바람 쐬면 술 조금 더 깰 거야.
 
바스타르:...다행이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시선 굴려 바라본다. 뭔가 자꾸 애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단 말이지... 작게 중얼거리곤.) ...진짜 위험한 물건이네, 술이라는 건. 뭐...나도 모르게 내가 이상한 짓 하진 않았지..? (좀 전까지 묘하게 들뜬 기분이 심했단 말이지. 물론, 지금도 평소보단 텐션이 높은 것 같지만...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 이번엔 제대로 들었어, 라이아나.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으니까... 좀 전에 내가 한 말은 잊을 수 있을 만큼 잊어. (이번엔 이쪽에서 살짝 쓰다듬고 벽을 짚어 일어난다.) ...역시 아직은 좀...덥네. 열이 올라와서 그런가. 네 말대로...나가는 게 좋겠다.
 
라이아나:음, 뭐… 좀 신나보이는 것 빼고는 괜찮았어. (헬렐레 거렸다고 굳이 짚어주고 부끄러워하려나… 싶지만. 첫 술이었으니 과하게 많이 놀리지는 않기로 한다. 그래도 정말 정신 차린 모양이네, 싶었고.) …글쎄, 별로 잊고 싶지는 않은데. (나라고 잊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너도 두고 두고 기억할 것 같은데. 그리 이야기하고는 머리를 정리해 한 쪽으로 내려 묶고는 앞서 가다 뒤를 돌아 너를 바라보며 가벼히 눈꼬리 휘며 웃는다.) 그러니까 기억할래. 네가 바라는 건데 하나쯤 들어줘도 좋지 않아?
 
밤이 되고 라이아나와의 약속대로 집에서 나와 뒷뜰로 향합니다.
 
딱히 누구의 사유지도 아닌 들판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짙은 원색계통의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색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꽃입니다.
 
라이아나가 꺾어온 바로 그 꽃이죠. 적색, 청색, 주황색과 청록…
 
하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역시 노란 빛입니다.
 
밤 속에서도 노란 꽃은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가로등이 드리운 빛만으로도 마치 태양 아래의 이슬처럼 환히 반짝입니다.
 
라이아나도 분명 그래서 특별히 노란 색을 꺾어온 걸지도 몰라요.
 
꽃들의 바다에 잠시 취해 있었더니 라이아나는 돗자리까지 가져와 판을 까네요.
 
조금 귀엽(지는 않은 것 같고) 하고 어이없기도 합니다.
 
벌렁 누워 옆을 두드리는 라이아나를 보고 있어도…
 
들판 한가운데에 드러눕는 건 영 기분이 이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이아나가 정말정말 하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그냥 못 이긴 척 들어줄까요?
 
바스타르:(상관없지 않나...) ...밤하늘 보며 눕는 것도 오늘의 특별함으로 남을 테지. 그렇지?
 
라이아나:…응, 그렇지. (짧게 대답하고는 옆에 누우라는 듯 톡톡, 옆자리 두들긴다.)
 
바스타르:...그럼. (두들기는 옆자리에 눕는다. 꼭...동화속에 있는 것 같네, 그런 생각도 하고.)
 
돗자리에 누웠더니, 라이아나는 그제서야 이렇게 우긴 이유를 알려줍니다.
 
라이아나:사실은…
오늘 유성우가 내린대.
 
바스타르:...유성우?
 
라이아나:응, 유성우.
 
라이아나는 바스타르와 함께 별이 보고 싶어 그토록 나오고자 했나 봅니다.
 
라이아나의 말에 푸른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으면
 
시야의 어딘가에서 빛이 선을 그립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걸 보고 있자면 라이아나가 편지에 적어주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자신도 잊지 못하는 추억들을,
 
그 역시 한 자 한 자 종이에 담아 제게 다시 전해주었습니다.
 
그 때의 일들에 대해, 또 함께 지내오며 못다한 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요.
 
어쩌면, 그래요.
 
오늘은 그런 것을 쏟아내야만 하는 밤입니다.
 
실은 별이 아니라 그저 작은 모래알일 뿐인 유성체가 지구의 하늘에 스치며
 
기적적으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밤.
 
실제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 극한의 거리에서
 
우리가 우주의 먼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
 
살면서 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살면서 그가 나를 얼마나 야속하게 했는지.
 
또 살면서 얼마나 그를 아꼈고, 그가 때로는 얼마나 미웠는지.
 
너무나 사랑해서, 도통 한 면 만을 바라볼 수 없어서,
 
그를 대할 때면 도무지 얄팍할 수가 없어서 느껴야만 했던…
 
그 수많은 감정들, 마음들, 대화들…….
 
어쩌면…
 
죽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라이아나:…어때, 마음에 들어?
 
바스타르:...언젠가 네가 그랬지. 나는 항상 너의 예상이나 예측과는 다르게 행동한다고. ...너 또한 나에게 그런 사람인 거...알고 있어, 라이아나? (그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순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역시- ...역시 네가 데려와주었기 때문일까.) ... ...그래, 마음에 들어. 정말로...진심이야.
 
라이아나:으음, 사실 이야기하고 데려올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것보다는 모르는 채로 오는 게, 조금 더… 놀라지 않을까 해서. 술 취해서 얘기할까봐 조금 걱정이기도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네가 먼저 취해줘서. (예쁘다. 응, 이번 만큼은 자신 역시 잠시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별들이 추락하는 밤하늘, 빛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이 풍경이 아름다워서…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렸다.) 정말 다행이야, 비타. 조금 많이 늦은 생일 선물…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말이지. 그런 걸로 받아줬으면 좋겠네.
 
바스타르:...처음에는, 가벼운 산책을 뜻하는 줄 알았지. 사실 그것만으로도 네가 먼저 제안해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이어진 말에는 피식, 가벼운 웃음을 흘린다. 그래, 오늘 정말...굉장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루구나. 고개를 돌려 당신의 표정을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번진 웃음에, 이토록 기쁜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어떤 마음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떨어지는 빛들을 바라보며 꽃들이 나부끼는 바로 이 곳에서. 우리는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짓고 있다.) ...살면서 받았던 그 어떠한 선물보다도 가장 마음에 드네. 그래, 내가 열심히 부탁해서 마마에게 선물을 받았던 순간보다 더욱이 말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이런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네.) ...라이아나, 지금...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 ...오늘은, 네게 어떤 하루였어?
 
라이아나:뭐… 비슷하기는 하지. 네가 유성우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면 그냥 평범하게 들판만 조금 거닐다가 들어갔을 테니까. 음… 뭐, 내가 뭘 먼저 하자고 하는 일은 드문 편이니까 이해하기는 하는데… (어제와는 다르게 정말 평화롭지. 어제도 사실 말싸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라서 뭐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네. 괜히 옆으로 퍼지는 머리카락 끝만 몇 번 매만지다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본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거의 동시에마주친 것 같아서 짧게 웃는 소리도 내어보았고. 이렇게 잘 맞았다는 것도 웃기지만, 네 표정이 정말로 좋아보여서… 별 아래서, 흔들리는 꽃들과 어우려져 있는 너는… 여전히, 나무이자 숲이지. 음, 잘 어울리네. 하는 가벼운 감상이 더해졌다.) …응? 그것보다는 과장 아니야? 진담이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기쁘기는 하지만 말이야. (예전에 함께 보았던 밤하늘도 이런 감상은 남기지 못했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유성우까지 내리는 날이니, 조금이나마… 평소와 다른 감상이 들게 만들었다.) ……글쎄. 평화롭고, 안온했지. 아무런 일도 없이 흘러갔는데도… …그래, 별 다른 생각은 안 들었어. 그러니까… 안 좋은 쪽으로의 생각은, 안 들었다고. (하늘로 손을 뻗어서 몇 번 주먹을 쥐었다가 피다가, 다시금 내렸다.) …예쁘다는 생각. 그리고… 자주 볼 수 없었던 게 아쉽다는 것 정도. 너는?
 
바스타르:만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빠져들걸. 유성우가 내린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한 것도 있지만... 그래, 역시 나는- 이 순간을 선물해준 사람이 너이기에, 너에게 받은 선물이기에 더 마음에 남는 것 같네.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하며... 남들이 누린다는 평범한 일상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던, 그러한 하루. 평범하게...행복하게...그런 삶만을 꿈꾸던 사람이 아닌데에도, 오늘 이토록 행복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곁에 있는 사람 덕이라고. 계속 계속...줄곧 알고 있었다 ... ... 고개를 돌리고 마주친 시선 사이로, 진심으로 웃어주는 모습을 마주하고, 웃음소리가 교차하고. 이 순간만큼은 정말 별을 한가득 품은 밤하늘 같아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이 광활한 별빛의 바다가...라이아나, 너를 꼭 닮은 것 같아서. 저 역시 즐거운 소리를 낼 뿐이다.) ...굳이 과장을 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그래. 믿어도 된다는 뜻이야. 진심이라는 의미. (우리는 분명 참 많은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았고, 우리가 봐온 수많은 하늘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이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별을 보여주었는데...어째서일까. 지금까지의 하늘도 분명 아름다웠는데... 이 하늘보단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 알고 있다. 모든 자연과 생명을 전부 동등하게 사랑하는 자신이, 지금을 더욱 특별히 여기는 이유를, 실은 알고 있다. 그건 분명...) 듣던 중에 반가운 감상이네. 뭐라고 해야 할까. ...너는 이런 것에 큰 감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네가 오늘 하루를 그렇게 생각했다니까...기쁘기도 하고.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정말 행복하게 보냈거든.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그랬지만, 지극히 평화로운 이 순간이... 너와 내겐 또 다른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가 되어주었으니까. 사소한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내기를 하다 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감정을 표현하라면 행복을. 마음을 표현하라면... ...영원을 바라고 싶다고 하게 되네. (...그건 분명 우리의 마음을 이루는 조각들이 이만큼 더욱 견고해졌기에, 같은 하늘을 보아도 지금 보는 하늘이 더욱이 아름다운 거야.) ...라이아나, 소원이라도 빌어보는 거 어때? 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라이아나:…그런가. 그냥, 주변에서 얘기하는 거 주워들은 거지. 그냥, 예전에 같이 봤을 때도 늘 좋아해줬던 것 같고, 특별하게 유성우도 내리는 날이라고 하니 같이 보러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어지는 말에 괜히 큼, 짧게 입가를 가리며 헛기침이나 하곤.) …그, 너무 호평으로 얘기해주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라는 말은 진심이야. 너는 늘 나한테, 많은 걸 주는 편이니까…. (바스타르는 늘 라이아나의 말에 '좋다' 라는 말을 대체로 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어떤 것이든 비슷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게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연하게도… 너에게 무언가의 선물을 준다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왕이면 내가 주어서 그런 것이 아닌 새로운 진심으로 그게 내비쳐지기를 기도했을 지도 모르지. 평범하고 안온한 하루. 정말 지독할 만큼 평화로워서… 행복이라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라이아나가 이렇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는 늘 바스타르가 함께였다. 그러니, 작더라도 어둠 속에서 하늘을 밝히며 한 줄기씩 내리는 유성우의 빛들이 너를 닮았다고 생각해버리게 되는 거야.) …응, 믿어. 너는 늘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잖아, 비타. 나 역시 알고 있어. (라이아나는 눈을 살며시 내리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빛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수많은 하늘과는 한결같지만 조금은 다른, 특별한 하루의 마무리에… 평소와 다른 감상이 드는 것은 당연했지.) ……응, 네가 부탁한 것도 있고. (아까 술 마시면서 한 이야기에 대한 것인 듯 했다.) 내가 표현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잖아, 비타 네가. 그리고… 즐거웠어.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도 해보고, 새로운 네 모습도 보고, 평범하고 소소하고, 평화롭고 불안할 거 하나 없는… 정말 이상적인 하루였지, 아마. (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않아? 네가 바라던 일상은 이런 거였을까, 하는 생각을, 라이아나는 하고 있었다. 행복은 결국 주관적인 것이기에, 누군가가 행복을 느끼는 기준도 제각기지.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너에게 행복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을까? 라이아나는 바스타르에게 묻지 않은 질문을 삼키며 웃음으로 무마한다. 그도 그럴게, 표정에서 보이는 것 같고,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안 건지, 아니면 모르는데 생각이 통한 건지 바스타르는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기쁘고, 행복하다고.) 행복과, 영원이라… (작게 중얼거리던 라이아나는 말없이 눈만 몇 번 꿈벅였다. 소원 이야기에, 양 손을 모으며 침묵이 이어진 간극에 무언가 입 모양으로 비는가 싶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앉아서 바스타르를 내려다본다.) 비타, 너는… 영원을 바라?
 
바스타르:듣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결국 이곳으로 우리의 밤을 인도해주었다는 게 참 고마운걸. ...단 한번도,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어. (네가 함께해준 나날은 언제나.) 단 한번도, 지금의 삶이 어렵다고 느꼈던 적 또한 없었지. (오히려, 진짜 삶이라는 것이 그날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그렇기에 오늘의 하루, 그 끝의 밤이...더욱 특별하게 다가와. (헛기침 하는 모습을 보며 뚜렷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시선은 여전히 너를 향한다. 네가 그랬지. 사람은 작은 것이던, 큰 것이던...어떠한 면으로든 변화를 겪게 된다고. 라이아나, 우리는 지금. ...그날로부터, 어느 만큼의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해? 입 밖으론 내지 않을 질문을 가슴 속으로 삼키며...스스로 생각해보기를 반복하고.)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 넌 늘 내가 너에게 많은 것을 준다고 생각하지만...나 또한 너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는 거. 아니, 여전히...받고 있다는 걸 말이지. (라이아나는 늘 자신의 호불호를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알 수 없어서...모르기에 드러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바스타르는 라이아나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려 했다. 원하는 것이 있거든, 그것만은 꼭 이루어 주리라고. ...하지만 이미 뚜렷하게 준 답이 있었다면, 내가 너의 곁에 남도록 허락해준 것. 너의 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허락해준 것. 그것만으로도 바스타르는 라이아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받았음을, 라이아나는 여전히 모를 테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나마 의미를 부여하고, 더욱 견고한 마음을 세우고 쌓아올 수 있었던 것은...바스타르 또한 라이아나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임을. 라이아나가 그토록 원해주는 바스타르의 행복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라이아나의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너에게 거짓을 고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네가 나를 믿어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솔직하게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지금처럼, 말이지. (하나 둘, 하늘에 뜬 별은 너무나도 찬란한 빛을 머금은채 우리의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비록, 같았던 적이 없었을 지라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리,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색채 속에서 살아있는 걸까. 하늘의 빛이 담겨서 일까, 빛이 없던 그 회색빛 눈에 빛이 드리우는 걸 보고 있자니... 참, 뭐라 정의 할 수 없는 마음이나 감정 같은 것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그러게. 참, 이상적이고...꿈 같은...그런 하루. 그렇지? 무언가 고민하거나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가볍게 마음을 터놓고, 순간의 평화를 함께 하며... 새로운 것도 같이 해보고, 그간 만들지 못한 무언가의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그런 추억 말이야. (오늘의 기억은 분명 우리의 삶이 끝난 후에도 이 하늘의 일부가 되어 빛나줄 것만 같다고, 그런 생각을 더한다. 덧없이 아름다웠고, 덧없이 평화로웠으며...서로의 웃음만이 교차하는 그런 행복한 하루.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하루는, 단순한 행복 이상으로 평생 마음에 남을 만큼 아주 커다란 행복. 만일 내게 네가 '행복했느냐'고 질문을 한다면...나는 언제나처럼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테지.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그랬으니 더욱 특별하게 답하진 않을 테야. 그저, 오늘의 하루는 너에게 있어서도 행복한 하루였기를, 평소보다 더욱 간절하게 바랄 뿐이지.) 별 만큼이나 빛나지만, 동시에 아주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지. (나지막히 답을 전하고, 다시 한 번 너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소원을 비는 걸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무엇을 비는 걸까. 평생 남을 궁금증을 품고, 이내 몸을 일으켜 자신을 내려다보는 너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한다. 흐트러지지 않은, 곧은 시선을.) ...영원이라. (...) 라이아나, 나에게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나는 정말로 너에게 모든 진실을 고하게 되는 걸지도 몰라. 내가 만일 영원을 바란다면, 그것이 어딜 향하는 영원의 별인지... ...너는 궁금해 할 건가?
 
라이아나:…나도 그거면 됐어. 그래, 네게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것도, 나와 함께한 날들이… 너에게 좋은 나날들이었다는 것도. 나한테는 늘 삶은 어려운, 동 떨어진 것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래도… 네 말대로 오늘은 특별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지금까지는 이끌리듯 행동한 것들이 더 많았다면, 오늘은 조금 더 무언가를 하나씩 시도해보는 느낌이었으니까. 새로운 날이었고, 그래서 걱정도 많은 날이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와 함께 지낸 오늘이, 지금까지의 날들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조금 특별한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는 했어서, 기억에 더욱 잘 남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을까. 눈이 내리던 한 겨울의 날도, 밤하늘의 별이 가득했던 날도, 유성우가 쏟아지는 오늘도… 잊지 못할 풍경들과 너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잊을 수 없을 만큼 뇌리에 박혀있다. 스스로 조금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너는 늘 함께했지. 변화의 원인은 늘 바스타르에게 있었다. 라이아나는 그 변화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으나, 그렇기에 늘 회피하려 해왔으나, 그럼에도 바스타르를 내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이끌어주고 있는 게 너라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저, 네가 웃는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다고 바랐던 거였을까. 아니면, 네게는 죽음보다 삶이 더 어울린다는 걸, 느껴버린 걸까. 어둠보다는 빛에 어울리는 아이…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충동이었을지도.) 엊그제도 네가 이야기해줬었지, 그런데… …응, 역시 잘 모르겠어서 자꾸 이런 얘기를 하게 되네. 그래도… 너한테, 내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자신이 아는 바스타르는 늘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어둠을 밝혀줄 빛이자, 언젠가는 제게 삼켜질 유약한 이…였을까. 그 크고 어두운 심연을 두려워할 법도 하지만 다가오며 함께 나아가주는 용기, 얼어붙은 것을 녹여주는 따스함, 사람을 감싸주는 애정, 사랑… 그 모든 것을 가진… 그래,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래서, 나는 네게 미움 받을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믿는 이에게 불신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고, 사랑해주는 이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지. 해서… 네가 바라는 것을 나도 이루어주고 싶다는 아주 치기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곁에 남아있어주어, 함께해주어, 한 번은 나를 위해 죽어주어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동시에, 미안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가 없다. 네가 스스로의 의지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해도… …나에게는, 자책감이 쉬이 사라지질 않아서. 그럼에도 행복을 이야기해주는 네게, 쓴 웃음을 그리는 것 외에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네가 나를 믿는 만큼, 나도 너에게 믿음을… 주고 싶을 뿐이야. 가능한 너한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기도 하고… …숨기는 게 있으면 무작정 입을 다물어버리는 버릇도 있으니까. (…함께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길었고, 언제 끝을 맺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를 우리는 써내려가고 있지. 그래, 마침표가 될 곳은… 예전에 네가 했던 말을 빌려보자면, 아주 오랜 뒤였으면 해. 이왕이면, 우리가 약속한 겨울에.)
빛나는 하루였어. (짧게 줄이자면, 응,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너와 한 새로운 일들로 가득했으며, 새로운 모습들도 볼 수 있었고, 우리가 잠들기 전 바라보는 하늘은 이렇게까지 빛나며 아름다우니… 빛난다. 라고, 이야기하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순간의 평화나 아름다움이라고 할 지라도 이러한 감상이 드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지라, 조금은… 기뻤다. 이게 내가 언젠가 죽기 전에 느낄 수 있는 풍경이라니. 살아 숨 쉬고 있을 동안 느낄 수 있는 하늘이라니… 그래, 조금은, 벅찼을 지도 몰라. 행복일 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는 특별했고, 함께하여 즐겁다는 감상은 늘 그렇듯 망설임 없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너와 내가 마주보며 웃을 수 있음에… 소소한 기쁨을 보태며, 짧게 돗자리 끝자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정말 이상적이고, 꿈같다. 이 날은… 그래, 어쩌면… 아름답고도, 후회없이 보낼 수 있는 하루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어.) ……네가 이야기하는 진실이 뭔지, 나는 몰라. 이야기했잖아, 나는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고. 모든 진실까지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 없이… 응, 아니, 로만 대답해도 괜찮지 않아? (고개를 기울인다. 네가 바라는 영원, 무엇을 바라는, 어디를 향하는 영원인가. …알 턱이 있나. 이런 방면으로는 눈치가 영 꽝이었으니. 제게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하나다.) 궁금해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기에, 열면 되돌릴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라면… 이야기하지마. (앞으로는 더 후회할 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너.)
 
~ 2023-12-31, 02:00 CUT ~
 
바스타르:…그래. 그거면 된 거야. 참 신기하기도 하지, 지나치게 특별하다던가 무언가 평소와 완전 다른 삶을 지낸 것도 아닌데 이것 또한 하나의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잊지 못할 마음으로 남아. 너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된 것이겠지. (오늘은 그 중에서도… 무언가 함께 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직접 해본 날. 특별한 시간을 갖고, 평소에 우리가 걷는 무거운 무게 속에서 벗어나 정말 일상다운 일상을 함께 적립한 날. 그간의 나날도 더없이 즐겁고 의미 있었으나, 지금 보여주는 그 미소만큼 값어치가 있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 앞에 펼쳐진 지 넓고 넓은 별의 바다도, 지면으로 떨어지는 빛나는 파동도.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것이 아닐 새까만 하늘임에도 지금의 하늘은 또 다른 아름다운 색을 띄고 있어서. …변하고 있는 것일까. 변하고 있는 것이겠지.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우리는 변하고 새롭게 나아가 전과는 다른 길을 걷고, 새로운 앞을 바라보고 있어서. 마침내 다다를 끝이 결국 다르지 않은 미래라 하여도 ‘우리 참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렇지?’라며 뒤돌아보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은 참으로 기쁜 변화라지.) …나쁜 일..? 이상한 걱정이나 생각은 할 필요 없잖아. 네가 내게 나쁜 일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워봤고…다투기도 다투어보았고… 서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혼자 고민하거나 망설인 적도 여러 번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역시 그건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일 뿐인 것을. 죽음을 바라보고, 그 커다란 심연에서 사는 이라 하여도 제가 바라보고 있는 라이아나 라는 사람은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이였던가. 그러니 나는 이렇게 생각해. 사랑이라는 건 사람마다 표현하는 법이 다를 뿐이라고. 그것 하나로 너의 다정이나 친절, 그 진실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 부디 망설이지 말라고. 네가 모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은 그것일 뿐이고,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법은 네가 느끼고 있을 그 모든 것이니… 미움 받을까 망설이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나는 이미 그것 또한 너의 사랑이라고 기껍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오히려, 고마울 뿐이라는 그러한 말을.) …그건…딱히 강요하고 싶진 않거든. 네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도,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 해도… 그건 결국 네가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 나를 불신하거나 믿지 못해서, 라는 게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힘쓰지 않아도 상관 없다. (주위에서 흩날리는 꽃이 저마다의 색을 띄고 별 아래서 빛난다. 약속한 겨울은 아직 멀게 되었지만,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 봄이로구나. 언제던 마침표가 되어도 사실 상관 없지만…그래. 이왕이면, 어 또한 미련없이 끝낼 수 있는 어느 눈송이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사라질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거야.)
…너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굳이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이라면 있을 지도 모르겠거든. 실은 진실이라거나 거짓이라거나…그런 단어로 말할 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말하는 영원은 개념적인 무언가와는 다를 지도 몰라.
…그러니 네게도 묻고 싶네. 영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삶 속에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라이아나:(세상에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 혹은 기억. 매 순간을 되새기고 미래로 나아가며, 현재를 그리는 지금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감정일 지 몰라도 지금은 변화를 느낀다. 이게 ――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달라져버린 건지 알 수는 없어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법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를 잊지는 않으나 현재에 집중할 수도 있었더라지. 평소와 달랐던 조금 새로운 하루가 나름 만족스러웠던 탓일까.)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궁금하네. (하늘은 푸르고 별이 떨어지는 궤적은 아름다웠지. 숲은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음율을 만들어내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짧게 침묵한다. 잠시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걸으며 말을 이었다.) 비타, 예전에 우리가 했던 얘기 중에 하나인데… (시선을 잠시 허공으로 돌리나 싶더니, 옆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나의 사랑은, 나의 다정은… 보편적이지 못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누군가의 생을, 숨을, 일상을, 모든 것을 앗아가야 성립하게 된다. 너는 나에게 받고 있는 것이 많다 이야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으며, 이미 저질러버린 모순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 혹시나 내가 하는 행동이 네게 실망을, 부정을 안겨주면 어떡할지… 최근들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다. 너라면 이 모든 걱정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말했다시피 나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나는 여전히 사랑을 부정당하는 것이 두렵다.) …네가 따를 수 없는 나의 뜻이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해. 정확하게 이야기해준 적은 없었지, 아마. (그 때 남은 것은 나의 예상 뿐이었지. 혹시나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싶어져 던진 질문이다. 그저, 그런 것 뿐….)
……너는, 여전히 나를 믿는 구나. 고맙게 생각해. (늘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했던 나였기에, 지금까지 머뭇거리는 일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도, 지금 역시도 너를 신뢰하고 있다. 불신하지 않았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저 너에게 주고픈 것은 애정과 사랑이며, 내가 할 수 있는 다정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너의 삶을, 숨을 되돌려준 것 역시 그런 것이었고. 겨울은 이미 지났으며, 봄이 지나가고 있고, 이제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조금 늦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 당장은…) …그래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이지, 비타. 나를 너무 믿지마. 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선택을 할 지… 나도 잘 모르겠어. 가늠이 되지 않아. 요즘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부탁해도 안 들어줄 걸 사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네게 신뢰받고 싶어 노력한 적은 없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연결되어있으니.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네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것은… … 또 다시 생각의 반복. 눈을 내리감고 자신의 옷소매를 손으로 잡았다.) 너를 믿어. 네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더 걱정이 될 뿐인 거지. (제 손에서로 느껴지는 것은 온기 아닌 시체의 냉기였기에 조금 세게 부는 바람에 몸을 한 번 떨었다. …어쩌면 불안이었을까.)
비타, 나에게 영원이라는 건… …이야기했었던 것 같아.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내가 생각한 것은 당연하게도 삶에 귀속된 것. 나는 '끝'을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영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노라 대답한 것이었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것. 사람들이 바라는 욕심, 허상, 그리고… 간절함. …누군가는 제 부유하거나 만족스러운 삶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음이, 이어짐이 영원하기를 바라. 그리고 제 노력의, 삶의, 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간절하게 영원을 바라고 있을 지도. 삶의 다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존재한다면 영원이라는 게 생길 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세상에 나지. 모든 사람이 똑같아. 죽음을 겪을 때 비로소 이야기는 끝이 나고, 나는 그 끝을 바라고 있어.
그러니… 이번엔 내가 물어볼까, 비타.
네가 바라는, 네가 생각하는 영원이라는 건 뭐야? 나에게 있어 영원은 내 근본을 흔드는 부정의 것이나 다름 없어. 삶의 끝을… 누군가의 끝을 이루어내지 못하게 하는, 욕심이자 허상일 뿐이야.
 
바스타르:…무엇이길래 뜸을 들이는가 했더니. (꽃을 만지는 소리, 그 끝을 가만 바라보다가 저 역시 옆에 있는 꽃 하나를 꺾어 바라본다. 이 또한 생명, 그리고 지금 우리의 곁에서 숨쉬는 드넓은 조각 중에 하나.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모두 피어나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소리. 그 가운데에서 우린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삐걱이는 톱니바퀴처럼 잘못 맞물린 것도 아닌데. 우리의 소리는 참으로 달라서- 그것이 너를 더 깊은 고민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아쉽게도 알 수가 없어서.) …내가 따를 수 없는 너의 뜻. …그렇게 말하면 더 깊게 생각할 것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다른 말로는, 직접 전하기엔 역시 그만큼 가벼운 무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랬을 지도 모르지. 너에게 전할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쪽이, 더 걸맞는 그러한 답변. 사랑을, 다정을… 누군가의 생을, 숨을, 일상을, 모든 것을 앗아가야 너의 사랑이 성립된다는 것을 더 이상 모르지 않는 나이기에 따를 수 있는 ‘너의 뜻’. 그리고, 그 와중에도 네가 점점 다른 것을 바라기에 내가 따를 수 없는 ‘너의 뜻’. 우리는 어느 길을…아니, 내가 너의 어느 뜻에 따라야 네가 만족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따를 수 있는 뜻이 있는가 하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어도 따를 수 없는 뜻이 존재하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한 번 더 트인 시야에서 보이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광활한 나의 우주와, 살아 있는 하나 뿐인 밤하늘. 싣는 말의 무게와는 다르게 가벼운 미소로, 제 앞의 밤하늘을 응시한다.) … …네가 나의 ‘영원’을 바라는 것. 다른 말로는… 네가 정의하는 생을 내게 되돌려주는 것. 더 이상 너와 내가 존재하는 경계선이 같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따를 수 없는 너의 뜻이야, 라이아나.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그저 가만히 생각을 반복한다. 최근에 네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이상 전과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건 얼마나 되었던가. 혹여나 나의 행동을 희생이라던가, 그러한 단어로 치환하여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건 더더욱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니면 다른 불안이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해보던 날도 있었다. 내가 나는 그 불안이 아닌, 또 다른…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때때로-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는 것을.) …네가 품은 두려움의 근원을 알고 싶어.(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잘 듣지 않으면 바람에 묻혀버릴 정도로 고요하면서도…뚜렷한 울림으로.)
너에게 불신을 가할 필요는 없잖아. 넌 어떤 순간이 와도 내가 너를 불신하게 만들 수 없을 걸. (그러니까 딱히 고마울 일은…아마도 아니라고. 작게 덧붙인다. 물론 나 역시 알고 있다. 네가 나를 믿어주고 있는 것을. 나를 믿고 이 길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와준 것, 나를 믿고 지금까지 나를 따라준 것,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부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신뢰하기에 있을 수 있는 찰나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답은 주지 않아도 걷기를 멈추지 않아주었고, 머뭇거려도 내게 거짓을 고하진 않았음을. 너의 입장에서 최선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해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겠지.) …극단적으로 답하자면… 차라리 배신을 당하려고. (장난스럽게 웃는 낯이 꽤 미울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고 소매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는 아주 짧게 생각했을까, 가벼운 생각 정도로…’담요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라고. 그러니까, 아무리 진지한 물음이 온다 하여도 이미 정해진 마음이나 생각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확신, 그리고…가벼운 행동. 그런 부탁을 받는다 해도, 진지하게 답할 수 없다는 그런 답.) …네가 배신이라 말하는 것들도, 난 배신이라거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 잘은…모르겠네. 하지만, 만약 그리 생각할 일이 생긴다 해도 차라리 너를 믿고 싶어. …부담 가지라는 뜻은 아니야. 그저, 너를 믿지 않는 나는 아직 스스로와 합의 된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 뿐이지. 앞으로도…합의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곤 피식, 또 다시 가벼운 소리를 낸다. 생각 만큼은 진중할 지라도… .)
…알아. 그렇게 답해줄 것 같았어. (라이아나는 늘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리 이야기 했던 것을 바스타르가 잊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저, 그 정의를 다시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삶에만 귀속되는 것이느냐고- 그것은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어려운 단어인지…그런 것을. 사실 알고 있다. 죽음이라 불리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 없음을. …어쩌면 ‘부정당하는 것’이라던가… .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던 영원을 바라고 그렇게까지 갈망한다던데, 우리는 그 존재에서 논외인지라 이토록 이해를 못하는 건지- 알 턱은 없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가기 시작해. 그런 말이 있지. 살아간다는 말과, 죽어간다는 말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삶’이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영원이란 두 가지라고 생각해. 삶에 귀속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귀속되지 않는 것도 있으리라고 말이야.
…라이아나. 너에게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언제 열려도 상관 없을 진심이니 너에게 또 한 번 진실을 고할게. …나는 영원을 바라. 동시에, 네가 내 영원을 바란다면 그 뜻은 따를 수 없다고 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생각하는 영원이야. …내가 정의하는 ‘영원’. 삶에 귀속되지 않는 ‘영원’. …나의 영원은 이미 너의 것이야.
 
라이아나:(눈을 한 번 깜박. 머리카락 끝을 손으로 꼬아낸다. 수많은 말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네가 하는 말은 거의 대부분, 나, 혹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려나… 행복과 영원, 삶… 그것들은 나에게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라 쉽게 알았다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이해하기 어렵네. 너의 영원을 바라지는 않으나, 내가 이미 가진 게 너의 영원…이라는 것 자체가. (작게 숨을 한 번 내뱉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광활한 하늘은 저리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데, 자신은 있어서 안 될 곳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고, 동시에 죽어간다. 틀린 말이 아니지. 삶에 귀속되지 않는 영원이 있다면…) …죽음, 이구나. (짧게 입에 올린 후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후회하나. 하지 않는다. 망설였나. 조금은 그럴 지도. 부담이 되던가. 단지 불안이 함께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그래. 눈을 한 번 내리감고, 뜨는 찰나에 많은 생각과 답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무릎을 세워 그 위로 고개를 올린 채 멍을 때리기라도 하듯 흐린 시야로 그저 앞만 응시했다.) …그러니까, 네가 영원히 사는 것을 바라지는 않되,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다는… …한결같고 다정한 이야기네, 참. (짧게 웃음을 흘린 채 손을 몇 번 쥐었다 핀다. 그래서 네가 살기를 바랐나봐. 이런 이야기들을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어쩌면 너 뿐이라서. 하지만 나는…) 확신은 못하겠네, 역시. 네가 준다고 해도, 이제는 내가 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 망설임의 문제겠지.
 
바스타르:...얼핏 들으면 말장난 같기도 하지. (그도 그럴 것이, 영원을 바라지 말라 하면서 이미 너에게 있다고 하면 좀처럼 웃긴 이야기가 아닌가. 끄덕일 수 없는 고개를 보면 이제는 알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에게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확답을 내놓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나 역시 아직은 모르는 너의 마음이 더 많을 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어. 죽음이란 것을, 어째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더 많은지 말이야. (어투에서 묻어나는 것은, 의문보단 부정이었다. 당신이 바라보는 하늘을 함께 바라본다.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가슴이 먹먹해지는 하늘이...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고 떨어지는 한 줌의 빛이. 때때로의 우리를 닮은 것도 같아서. 그저 손을 조금 더 뻗어 흩날리고 있는 무수한 꽃을 어루만질 뿐이다.) ...나는 생명을 사랑해. 모든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피어나는 순간을 좋아하지. 하지만, 삶 또한 죽음이 존재하기에 있을 수 있는 거다. 그 어떠한 것도, 영원한 아름다움을 품을 수는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 더 나아가서는... ...그 순간을 아름답다고 하는 너를 이해 못한 적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농원이 선사하는 죽음, 사냥터와 식인귀들이 선사하는 죽음. 이 세계에서 돌아가는 순리를 부정했던 것은 죽음이라는 것보단 그 행동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지. 그렇기에 죽음의 피를 머금고 피어나는 그 꽃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 또한 같은 이유일 지도 모른다. 가볍게 생각을 마치곤 시선만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다시 돌고 돌아, 정착한 그 곳은 망설임으로 물들어 있는 걸까. 불안이 넘치는 곳일까. 네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어디인 걸까. 이만큼 함께 걷고, 이해해보려 노력했는데에도, 그 안에 있는 것만큼은 좀처럼 보이지가 않아서.) ...다정한 이야기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만, 내 논리와 주장을 따라가면 알 수 있잖아. 애당초, 그런 영원을 얻어서 무엇이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과는 달라서 그런 건지, 알 턱도 없고. 굳이...굳이 굳이 생각을 거듭해보자면 '삶' 속에서 영원을 반복하는 것보단 죽음으로서 내 생은 막을 내리고, 그 이후에 남은 나의 무언가가 영원으로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것 뿐이겠지. 이건, 조금 오컬트적인가. 괜히 따라 웃음을 흘리곤 속으로 삼켰다.) 그걸 알았다면, 나름 나쁘지 않은 발전이지. 애당초, 우리 사이에서의 문제는 신뢰가 발단이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망설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이라고 해야 할까.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너에게 바라는 영원은 삶의 영원이길 바라. 네가 먼저 져버리는 꽃이 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참으로... 복잡한 이야기.)
 
라이아나:그래, 비타 너는 늘 그렇게 이야기해왔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다고, 져줄 거라고, 내 행복을 바란다고… (고개만 살짝 돌려 너를 바라보다가 짧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린다.) 어제도 예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희생이라던가, 누굴 지킨다는 건 별로 안 좋아해. (보통 사람들을 자신의 의지나 신념, 행복, 혹은 복수, 미련 따위를 위해 살아가지. 그렇다면 너와 나는 어떨까. 왜 각자의 인생에는 그리도 박하면서 서로의 인생에는 관여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둘, 또 셋. 어쩌면 너를 향한 의문들은 이 하늘에 피어난 빛무리만큼 아름답거나 많은 것들이 아니어서… 동시에,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나 애정이라는 형태로 귀결되지. 그리고 라이아나는 늘 그 가운데서 모순을 품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날 때 나오는, 행동을 다시 생각할 때 나오는 모순들. 그 모순들은 라이아나 그 자신 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며, 당신에게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했고, 너는 늘 진실된 답을 내어주지만 파악할 수 없는, 결론 지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답을 내어줄 수가 없었다. 네가 답답해한다거나 무언가를 자신에게 독촉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조금은… 네게 늘 기약없는 기다림만을 안겨주는 것 같다는 사실이 미안할 뿐이었지. 죽음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생이 꺼져갈 때 느껴지는 기분은 무엇일까, 자신은 내릴 수 없는 답이었다. 알 지 못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저 역시도 그 순간을 부정하진 않는다. 흐트러지는 숨, 느려지는 심장박동, 핏기가 사라지는 피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가는 생명이라는 것은… 그저, 끝을, 마지막을 맞이할 뿐이다. 그간 살아온 삶의, 종막.)
나는 너의 영원을 바라진 않아. 그런 걸 바라고 살린 게 아니야.
…단지 네가 조금 더 살았으면 할 뿐이었지.
 
바스타르:…딱히 이상할 것 없으니까. 일단 나는 그래. (소중한 사람, 아끼는 사람. 곁에 남아있다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저로서는 그게 당연한 생각이고 논리이기에 딱히 깊게 생각할 여지가 없을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를 하고, 어려운 건 노력해서 알아가고… 정말 소중한 이라면 이겨먹으려고 하기 전에 무엇이든 져줄 수 있는 것이고, 진심으로 행복을 바라는 건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대화 하나가 있다면, 그건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막상 당신이 제 행복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나도 모순적일 지도 모르지.) …소설이나 이야기 속에도 많이 나오잖아? 희생을 한다느니, 제 목숨을 바쳐 무언가를 구해낸다느니. 반복해서 강조하겠다만, 나 역시 그런 흔한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아. 딱히 선호하지도 않고. 나는 언제나처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뿐이야. 난 희생정신이 뚜렷할 정도로 마음 곱고 선한 어느 인물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으니, 너도 알고 있겠지만. 짧게 갈무리한다. 그럼에도 결국 그 인물들과 공통되는 점이 하나 있다면, 뭐… 사랑이라던가 애정이라던가.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결국 네가 함께해주는 이 길의 시작도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이고, 나 역시 너를 애정하기에 네가 원하는 건 무어든 해두고 싶은 것 뿐인데. 결국 그런 감정을 두고 생각하면 우리 역시… …그런 이야기 속 인물과 다를 것 없을 지도 모르지. 아무리 모순을 품은 사람이라 해도 지니고 있는 마음에 변치 않는 진실 한 개즈음은 있는 법이다. 너라고 다를까. 너도 어찌되었던 생각을 하고, 마음을 갖고, 감정을 느끼고, 모든 것을 뼈가 저릴 정도로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인데.)
…말했잖아. 네가 바란다 하여도 이뤄줄 수 없을 유일한 뜻이라고. 그러니까, 그건 오히려 내겐 다행일지도 모를 이야기지. 하지만,
역시 조금이라 하여도 그건 궁금했거든. 네가, 나를 살렸다는 걸 안 순간부터 말이야.
…네가 바란 건 내 죽음 뿐이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라이아나.
 
라이아나:글쎄. 궁금하다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어제와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비타. (가볍게 먼지를 털며 일어나서는 아까 꺾어둔 꽃이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가볍게 두어발자국 걸어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잘 모르겠거든. 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싫다거나, 불만족이라거나,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게 아니고… …살아있는 네가 조금 더 보고 싶었다는 게 맞을까.
너무 깊이 이해하려고 해도 너만 답답해질 걸? 이건 솔직하게 대답한 게 이 정도인 거거든. ……잘 모르겠어, 나도. 그래서… 네가 원하는 정도의 구체적인 답은 들려주기 어려울 것 같네.
 
바스타르:우리가 바라보던 길과 달랐으니 생긴 의문 중 하나일 뿐이야. 역시 이런 일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캐묻고 싶지도 않고. ...네게 구체적인 답을 원한다는 건, 아마 너를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이 요구할 법한 이야기지. (그러니까, 그렇게까지는 묻지 않는다고. 몇 발자국 앞으로 나가 서 있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 꼭 예전 일이 생각이 나서.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작은 헛기침을 한다. 사실 궁금한 것이라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더 궁금하지. 예를 들면... 좀 전에 빈 소원이라던가-.) ...라이아나. 우리,
타임캡슐을 묻을까.
 
라이아나:너라면 그럴 것 같긴 했지만…. 혹시나했거든. 네가 방금 한 게 세 네번째 하는 말 같아서. (물론, 우리야 늘 그랬지만.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과거의 잔재를 따랐으며, 뒤를 돌아보고, 몇 번을 되새기면서 같은 말을 해보고. 그럼에도 결론은 잘 변하지 않는 게 딱, 우리 사이의 관계였지.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할 생각없이 물끄러미 지평선 너머까지 바라본다. 드넓은 들판, 광활한 하늘. 한없이 작은 우리. 나에게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나는 너에게 늘 빛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하늘에 아주 작은 모래알일 뿐인 유성체가 스칠 뿐인 것처럼… 너와 나 역시, 그져 세상에 스칠 뿐인 존재일 지도. 신발을 고쳐신기라도 하듯이 가볍게 발끝으로 가볍게 땅을 톡톡 두드리다가,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돌리곤 기울였다.) ……타임캡슐?정말 뜬금없긴 한데… …왜, 넣고 싶은 거라도 있어?
 
바스타르:무슨 질문을 하던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라는 뜻. (...) 내가 묻는 것에는 굳이 구체적인 이유가 따를 필요는 없어. 물론, 네가 바라는 건 죽음으로 충분했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네가 만들어준 다음이 있기에 지금 같이 보는 하늘이 존재하는 것이겠지. 어느 쪽이던 상관없잖아. (여러 번 반복해서 묻는 질문도, 짧고 확실한 답을 받았음에도 다음에 또 다시 질문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리라. 또는, 너에게서 무언가가 변했다면 알아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지. 그래, 어제 오늘 받은 그 편지의 내용처럼.) 다른 건 아니고. 이야기하다 보니...역시 시간은 참 찰나와 같고, 내일이면 지금 순간 또한 과거가 되겠지 싶어서. (흘러가는 시간을 부정할 생각은 더욱이 없지만, 그렇기에 떠오른 가장 오랜 추억이기도 하다. 우리 기억에 남은 아주 큰 추억의 파편. 어린 날의 우리가 모두 모여 바라보았던 아주 큰 나무를, 지금은 저 하늘로 삼아서- 다시 한 번 그때로 돌아가는 거야.) ...추억이라면 뭐든 좋잖아. 소중한 걸 넣어두기도 하고, 뭐...나는 미래의 우리에게 보낸다는 편지를 썼었지. 다시 찾으러 오는 건... 정확한 기한 없이- 언젠가 둘 중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이 생각났을 때. (나쁘지 않지? 고개를 기울인 시선을 마주치고 가볍게 웃었다.)
 
라이아나:…네가 지금 살아서 후회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는 상관 없어. 나도 오늘까지 같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든. (이렇게 아름다웠던 하늘을 본 적이 있던가. 어릴 적 건물 안에서 자라온 인공적인 풍경, 인세에서 보낸 15년은 풍경은 커녕 내 주위 환경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니, 26년을 통틀어 처음 아름답다 느낀 풍경. 아무 흔적이 없던 밤하늘에 빛이 스치는 밤. 고개를 살짝 돌려 네 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감는다. 생각 정리라도 하듯이 또 한 번 잠시간의 침묵.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그래, 그 때는 그랬지….) 나도 비슷했어. 어릴 때에는 너희에게 주는 편지를 넣었지. 언젠가가 될 미래를 기약했고, 그 때의 나는… 늘 너희와 함께 있는 미래를 확신했을 거야. (편지마다 늘 사랑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지. 나의 가족, 나의 형제, 나의 미래…. 나에게 너희는 그런 존재였으므로.) …언제 열든 나는 특별히 상관 없으니 네가 얘기한 대로 해. (다시 네 앞으로 걸어오는 동안 무거운 굽 소리가 자연이 흔드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다. 네 앞으로 가볍게 손을 내밀곤 짧게 웃어봤을까.) 또 하려고 하니까 뭘 넣어볼지는 고민은 좀 해야되겠지만, 좋아. 그럼 오늘 마지막 일정은 타임캡슐이려나…. 너는 뭐 넣을지 정했어?
 
바스타르:...글쎄. 오히려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일 지도 모르지.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죽음의 순간. 두려움은 원래부터 없었으니 그 순간에도 분명...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그저, 네게 그 순간이라도 진정한 즐거움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지. 한 번 더 그리 해줄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닐까. 제법 가벼운 생각을 싣는다.) 그 때 기약했던 미래는 결국 찾아오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아니, 분명 그렇겠지. (어쩌면, 그간 잊은 것이 더 많을 너에게. 과거에 머무르는 너에게. 그 잔재를 더욱이 사랑하는 ...너에게. 그런 너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깊게 고민했던 때도 있었다. 새로운 행복을 찾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었지. 하지만 답은 하나인 거야. 그때로 돌아가면 될 일. 그게 아니라면, 내가 생각을 멈추면 될 일이지. ...지금의 하늘은 어떨까. 그간 바라본 하늘과 다르게, 너는 정말로 오늘을 기억해 줄까. 그렇다면 나 역시 참 기쁘겠지.)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언젠가 생각난다면 그때 찾으면 될 일이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다가와 손을 내밀어 줄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넓은 꽃밭에 단 둘 뿐인 이 순간에서. 바라보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손을 잡는다.) 거창한 건 필요없잖아. 너만 정하면 되겠네.
 
라이아나:…그런 거려나. (어쩐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삶에 대한 기회가 아닌 죽음의 대한,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잠시 입을 달싹인다. 만일 이게 맞다면, 이라는 가정에 오묘한 기분을 남겼다. 네가 이렇게까지 할 때마다, 나는 신기하니까. 너는 또 별 거 아니라거나, 당연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할 테지만.) 잊은 사람은 거의 없겠지. 다들 가족들을 그렇게나 아껴주었는 걸. 다시 만났을 때, 금방 예전 생각이 날만큼 변했는데도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으니까. (잊지 못해서 늘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일생을 살게 될 만큼 너희와 함께하고 다시 만난 그 순간은 내게 가장 큰 빛이었을 지도. 내가 가장 행복해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 행복을 바라는 건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었고, 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만들어낼 행복은 어떤 형태로 빚어질까.) 까먹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잡아오는 손에서 스치듯 온기를 느끼고, 그대로 네 손을 당기며 가볍게 일으킨다.) 네 말대로 타임캡슐에 넣을 거로는 거창한 게 필요 없는 건 맞지만… 가진 게 별로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눈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기울인다.) 아니면, 안 보고 있을 테니까 네가 먼저 넣을래? 나는 생각나면 새벽 중에 넣어둘게. 봐도 상관 없으면 구경이나 하고. (어떻게 할래? 라며 덧붙여 물었다.)
 
바스타르:끝났던 무언가를 한 번 더 부여받은 셈이라고 생각하면, 이득이지. (이 즈음 되니 자신이 지나치게 단순한 건지, 아니면 제 앞에서 입을 달싹이는 이가 지나치게 복잡한 건지...아니,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를 일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몰라도,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에 자신하고 있다면... 그것이 맞을 지도 모를 일이지.) 다들 연락이 안 되고, 만나지 않고... 잊은 듯이 살았어도 결국 잊을 리가 없으니까. 상처 받은 형제도 있었고, 마음이 무너진 형제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건 우리의 집인걸. ...그래도 이왕이면 다들 두루두루 잘 좀 지내지 그랬어?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야기 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싶어 말을 그만 둔다. 그래도 네 말이 맞지. 변했는데에도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서로를 떠올리고, 그 시절을 함께 회상할 수 있었던 것. 그것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네가 과거를 바라보며 살듯, 나 역시...과거에서 살지는 않지만 그때의 하늘을 때때로 그리워 한다. 이건, 우리에게 남은 평생의 숙제일 지도...모르지.) 계속 기억해서 나쁠 일이 있나? 그만큼 오늘의 추억과 새로운 타임캡슐이 기억에 남았다는 증거가 되는 거지. 먼 여행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거든 그때 열면 되겠지. (장난스럽게 대꾸하곤 잡아 일으켜주는 손에 조심히 일어난다. 풀이 밟히는 소리, 자연의 소리. 모든 게 어우러지는 순간.) 내가 넣으려던 걸 말하면 네가 민망해질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니까, 너의 말을 빌리자면 말이다. (...) 네 편지에 답장이나 써서 넣어볼까 했어. 직접 보고 말하는 것보다, 편지로 전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많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거든.
 
라이아나:잘 지내지 그랬냐는 말을 하면 내가 할 말이 없거든. (어찌보면 제일 사이 안 좋은 상태로 지냈던 것도 같아서... 가볍게 이야기하고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늘 가족들을 사랑한 이야기하면서 모순된 행동으로 상처를 준 이만 몇이나 되는지. 직접 이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여러 번 말로 상처주고, 그래… 말 뿐인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법한 사람이지 않은가. 너처럼 제 모든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내가 미안해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몰아붙여 거리를 둘 명분만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지금 만난다면 또 다르려나. 잘 모르겠다. 나는 변화했다면…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한없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는 너희를 만나게 될 때마다 그렇게 격해질까. 나의 지금 이 자비는… 너에게로 한정될까.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나 가정으로 끝날 뿐, 명확한 답을 내어주지는 못했다. 깊은 생각, 오랜 고민, 습관처럼 굳어진 것들인지라… 너처럼 단순히 생각하는 건 나에게는 무리인 모양이지. 너의 솔직하며, 확고하고, 후회없는 선택을 하는 점이, 보기 좋고, 편했다. 나는 그러지 못하더라도 넌 숨기는 게 없었으면 해서. 적어도 네가 속이 곪을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나쁠 건 없지만… 아무래도 궁금하긴 할 것 같잖…아아. 편지 답장. (…이러면 더 궁금하지.) 그럼 여관으로 돌아가면 종이랑 펜을 준비해야 되려나. (그리 생각하고는 머리를 하나로 모아 가볍게 묶는다. 몇 번 머리 끝을 매만지다,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서, 자기 전에 넣고 묻자, 그럼.
 
바스타르:...신경쓰고 있는 거야? 줄곧, 계속... 다시 만난 이후의 일을. (질문은 하면서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려나...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너와 하던 대화를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착잡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속상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가족 모두의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때. 지금은 다 털었지만... 너만은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모르진 않는다. 문득,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 원하는 꿈과....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이 반대라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야. (어찌되었든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느껴본 적 없는 영역의 무언가라면 나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안되겠지. 그러지 않아도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물고 늘어져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는 네게, 더욱 복잡한 생각이 될 뿐이니까. 그렇기에 조금은 단순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고, 조금 더 멋대로 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면 좋을 텐데. 결국, 네가 하는 모든 고민과 망설임은 네가 그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기에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 ...오히려 궁금하다는 눈빛인데, 틀려? (후우- 짧은 한숨을 내뱉고,) 편지라는 건 오가야 편지라고 할 수 있겠지. 다른 걸 넣을까 고민도 했지만. (이왕이면 그 타임캡슐을 발견한 네가 편지를 읽어주었으면 해서. 딱 그 정도의 이유다.) ...그러지 뭐. 오늘 참...다양한 일을 하네. 이것도 좋지.
 
라이아나:… … (후회하냐 물으면 아니라 답할 것. 되돌아간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냐 묻는다면 그 역시도 아닐 것 같다 답할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잠시 유지한 침묵, 그 끝에는 무게감 실린 숨을 내뱉고 만다.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선택한 건 가족들을 향한 배신이나 다름 없었고, 나에겐 그 때의 출하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던 건 삶의 끝, 죽음이라는 것 뿐이었으니까. 안 좋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느냐, 우리가 당했던 것을 똑같이 당하는데 아무렇지 않느냐… 이런 저런 질문들은 많이 받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건… 너희였고, 너희의 끝이었으니, 처음 내비쳐본 탐욕은 분란이었다. 그러니 그 이후 조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혼잣말이라는 이야기에 저 역시 그저 웃는 걸로 답을 무마한다. 어차피 내가 내리는 답은 네가 알고 있을 테니. 모르지 않을 테니까. 깊어질 수록 내가 해줄 수 없는 답은 없고, 이어지는 것은 침묵 뿐일 테지. 나는 선한 이는 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지지 않을 거야.) 응, 맞지. 아무래도… 너도 내가 편지 쓴다고 하면 궁금할 거잖아. (당연하지 않냐는 듯 되묻고. 나는 일단… …고민을 좀 해보긴 해야되겠지만… 천천히 여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시선을 굴리며 어떤 것이 좋을지 여전히 고민하는 듯.) 오늘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 안 그래?
 
바스타르:(무어라 대답하면 오히려 고민 될 것 같았는데, 되돌아온 것은 침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한다. 그 복잡하고 깊은 생각은 내가 알 턱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라면 분명 알고 있다. 늘 이야기 하잖아. 네가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이유라면, 그건 네가 우리가 생각하는 다정의 범주에 있는...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기에 알 수 있는 거라고. ...특히나 품고 있는 그 사랑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당연하다고 해야겠지. 타인이 쓰는 편지나 이야기 따윈 관심 없지만, 네가 쓰는 거라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 본다. 대화에는 분명 집중하고 있으나, 시선만은 그곳을 향하여 계속 밤하늘만을 눈에 담고.) 그런 건 왜 하느냐는 질문이 날아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긍정적인 답이 오니 기쁘네. ... ...마지막일 지도 모르니까. 과거로 보내는 것도 쓸까. 마마..., 카밀라한테도. (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우리가 넣었던 마지막 타임캡슐이 9살 11살 시절인 것을 생각하면,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까. 그 뿐.)
 
라이아나:너나 나나 가족들 제외하곤 관심 없는 것까지 똑같다니까. 이런 점 하나는 닮았지, 하여간에. (픽 웃고는 앞장서 걷는 동안 한 번, 너를 한 번, 하늘을 한 번… 반복적으로 몇 번 주변을 돌아보다가 양 손을 뒤로 모은 채 걸음을 내딛는다.) 사실 물을까도 했는데… 네가 나한테 편지 썼다고 한다면, 나도 답장해주고 싶을 것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어. ……과거로, 보내는 거라…. 신박하네. (하지만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때의 우리는 미래를 그리며 타임캡슐에 각자의 물건들을 넣어 묻었으니, 이번엔 우리가 아득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다. 특히 마마에 대해서라면, 그 때의, 11살의 라이아나가 된 기분으로 쓸 수 있을 지도. …어릴 적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서.) … …오늘 네가 즐거워보였어서 다행이야. (새로 한 것들도 많고, 직접 제안해본 것도 있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평화로웠고, 새로운 것들도 해보고, 마지막에는 어여쁘게 핀 하늘의 별들도 바라보았으니… 즐거웠다. 그러니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웃어보는 거지. 문을 열기 전, 잠시 멈칫하고 네 쪽을 돌아본다.)
비타. 아까 이야기했듯이 나는 그렇게 선한 사람은 아니지만…,
역시 너에게는, 가족들에게는 늘 좋은 사람이고 싶나봐.
 
바스타르: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면을 닮아 다행이네. (무심하게 툭, 던지는 투로 답한다. 하지만 거짓은 아니니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만큼, 소중한 것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니까. (앞장서 걷는 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닿으려 손을 뻗지도, 걸음의 속도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간격으로- 무언가의 생각을 더하며 한 걸음, 한 걸음... .) 글쓰기의 참 기능이지. 서로 직접 마주 보곤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글로 전한다면 그 이상의 이야기까지 적어 내려가곤 해. 모두가 그렇듯, 너도 나도 예외는 아니겠지.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반복해왔지만, 그럼에도 글로만 전할 수 있을 무언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 (너도 그렇지? 짧게 덧붙인다. 과거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아무래도 네가 생각나서 제안한 것인걸. 분명 미래의 너 자신에게 보내고 싶은 이야기보단, 사랑했던 과거의 파편에게 보낼 이야기가 더욱 많을 사람이니까. 그 순간 만큼은 이런 생각을 하며 즐거운 편지를 쓸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해.) ...오늘의 추억과 즐거움은 네가 내게 선물해준 거야. 이 기억은 평생 남겠지. 어떠한 순간에도 잊지 않을 만큼. (그만큼 각별했고, 소중했어. 또 다시 과거가 되어버린 조금 전의 들판에게 인사를, 그 자리에서 소원을 빌던 우리에게 인사를 고한다. 나 뿐 아니라 너도 즐거워했기에, 더욱이 특별했던 추억을.)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옅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이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그 짧은 간격,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충분하잖아, 라이아나.
 
라이아나: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 같기는 했어. …너는 늘 날 좋은 사람으로 봐주고 있기는 하지만. (픽 웃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네가 글로 적어주는 것 역시 평소에 네가 하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너는 늘 하고 싶은 말은 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니. 언제나 그렇듯, 진실된 것들을 입에 담는 사람이니까.) 그러고보니 술은 다 깼나보네. 아까는 꽤 신나 보였는데 말이야.
 
바스타르:허울좋은 소리는 아니지. 난 지나치게 솔직하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무언가를 숨긴다거나, 기분 좋으라고 무언가를 감춰 포장해 말해주려고 한다거나... 괜히 그런 거짓을 해서 서로 피곤할 일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으니까.) ...잊어라. 오늘의 경험을 통해 술은 역시 내 인생에서 필요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으니까. (...) 그 만큼 마시고 멀쩡한 게 이상한 거라고.
 
라이아나:응, 맞긴 해. 꾸밈없는 사람이지,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늘 의심하거나 한 번에 믿지 못하는 게 미안할 만큼. …과거의 날 세우며 화를 냈던 것들까지도. 눈을 꾹, 감았다가 이어지는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갑자기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서랍장에서 쓰던 편지지 두 장을 꺼내어 네 앞으로 건네준다.) 아무튼 그럼 앞으로는 마시지마. 그리고 너 정도면 잘 마시는 거기는 해…. 어차피 너한테 술 제안할 사람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워낙에 거리를 두고 살다보니….)
 
바스타르:...원한다면 거짓말도 좀 쳐줄 수는 있겠지만. (의외로 농담 아닌 진심. 어깨를 살짝 으쓱인다. 알면 좀 믿어달라느니, 그런 뻔한 말은 이제 얹지 않는다. 네가 믿음이 안 가서 망설이고 의심하는 게 아닐 테니까. 뭐, 상관없나. 가만 생각하는 사이, 앞으로 건네준 편지지를 보곤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인세 사람들의 주량 기준을 전혀 모르겠군. 너랑은... 글쎄. 내기에서 이기려면 한 번 즈음은 더 도전해볼 지도 모르지. 다른 이들과는 마실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겠지만. (서걱 서걱..., 짧고 굵은 소리를 내며 이름을 적어낸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편지를 보니 그때가 떠오르네. 우리, 전에도 편지 주고 받은 적 있잖아.
 
라이아나:굳이 안 그래도 돼. 나도 거짓말보다는 진심어린 말들이 더 편하기는 하거든. (…물론, 가끔 거짓으로라도 다른 말을 하길 바란 적이 있기는 하다. 어제라던가, 그 때라던가. …그래도 너는 늘 스스로가 바라는 것에는… 줏대가 강했으니까. 저 역시도 네게 강요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는 듯 한 투로 이야기하고는 자리 잡는 걸 바라본다.) 음... 글쎄, 나도 같이 마신 사람이 많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위스키는 많이 못 마셔. 두세 명이서 한 병은 겨우 마시는 정도… 일 걸. 아마. (적당히 봐가면서 마셨기 때문에 본인 주량도 몰라 적당한 대답만 내놓아본다. 들리는 펜 소리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러네. 그 때도 내가 먼저 보냈었지, 아마? (테이블 앞에 앉아서아까 마시던 와인잔을 가볍게 손으로 훑는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 편지 답장은 좀 띄엄 띄엄 오기는 했지만. 열심히 돌아다녔나보던데.
 
바스타르:...풋. 알아, 장난이야. 그 누구던 제 앞의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진실을 말하는 쪽이 편할걸? (당장 너도 그렇다 하고. 나는...뭐, 그리 신경쓰는 편은 아니지만. 물론 때때로 네가 했던 물음 중에 거짓으로 답했어야 하나 싶은 것도 있긴 하지만, 역시 그건...내가 너를 속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거든. 속으로 답하는 모양새가 퍽이나 시원스럽다.) 괜히 도수를 써 두는 게 아닌 모양이지. 역시 높은 건 좀 조심할걸 그랬어. 너만 마시게 뒀어도 내가 이겼을 지 모를 일인데...쯧. (아쉽다는 둥 짧게 한탄을 더하곤 한 문장을 더 적어내려간다. 누구나 쓰는, 그리고...네가 써준 편지에도 쓰여있는 보편적인 첫 인삿말을.) 오는 편지에는 늦더라도 전부 답을 했지만, 내가 먼저 보낸 적은 없거든. ...그래도, 네게 편지를 받았을 때는 '내가 먼저 보내볼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꿈을 같이 찾아주겠다 하곤 그러고 있었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
 
라이아나:너가 하는 장난이랑 진담은 가끔 구분이 안 된다니까. (그럼 됐어. 하고 일단락했다. 몇몇 이들에게는 숨기는 것이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늘 숨김없이 대답해줬던 것 같다. 왜냐면, 언제, 어디서, 어떤 것을 똑같이 물어도… 같이 대답이 나오니까. 조금 바뀌더라도 본질은 바뀌지 않아. ) 별 걸 다 아쉬워하네. 나도 네가 취하는 건 처음 보는 거였거든. 난 아쉽지는 않네. (보고 싶은 거 봤으니까. 너는 못 봐서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걸로 족했다. 혹시나 쓸데없는 말실수라도 할까봐 걱정 됐던 것도 사실이고. 제 입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턱을 괸 채 편지를 써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용은 나중에 읽어보라 했으니, 그저 쓰는 모습만.) 뭐… 괜찮았어. 결론적으로는 찾기도 했으니까. 네가 응원해준다고 했던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도움이 됐거든. (그러니 미안해하진 않아도 괜찮았어. 너도 너대로 해야 할 일들이 있었을 테니. 그리고 그걸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꿈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더라도 결국 마지막까지 바라게 되는 거니까. (어릴 적 꿈은, 이제 일궈낼 수 없는 것이 되었어도 이따끔 꿈에서 보는 어릴 적 풍경들로 만족할 때도 있었다.)
 
바스타르:스스로 할 말인가 싶지만... 단순해서 그래, 단순해서. (그냥 그렇게 말하는 쪽이 너도 더 이해하기 쉬워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이유로, 그 정도에서 갈무리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숨기기 이전에 관심이 없으니 굳이 말을 섞지 않았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꽤 숨긴 것도 있는 것 같다. 결국 이것 마저 너에게만 향하는 특별인 걸까. 하지만 말이지. ...네 앞에선 거짓을 말하는 게 더 속이 썩거든.) 내 인생 첫 술이니, 취하는 걸 처음 본 적도 당연하지. 아, 이런 말이 아닌가? 어느 쪽이던 나는 아직 인정할 수 없는 결과라고. (도대체 무엇을? 이라고 묻는다면...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했다는 이유를 대야겠지. 잘 쓰던 글씨를 한 번 머뭇거려 작은 잉크 웅덩이를 만든다. 시선 만큼은 편지를 쓰는데 집중하고 있으니, 당신의 행동은 보이지 않지만...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라지.) ...당시에는 그게 새로운 다짐이자 목표라 생각하고 달려들었는데, 네게서 온 편지를 보곤 한 동안 다른 생각도 들었어. 한 편으론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작은 걱정도 더했었고. (너에게 약속했던 꿈. 함께 찾자 약속했던 우리의 '꿈'은 이젠 어릴적의 기억으로 남아버렸지.) 어렸을 때는 꿈이 하도 많아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라는 건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참...아득하게 높은 것 같다. 네 말대로,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고...어쩌면 놓치기 쉬운 것. ...지금 우리가 걷는 길도 꿈이라면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고. (아니면, 그저 종착지에 불과한 것인지.)
 
라이아나:응, 뭐. 너 말고 다른 가족들이랑도 안 마셔봤으니까. 이래저래 다른 애들도 궁금했지만… 넌 처음이라고 하니까 더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난 딱히 취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취할 걱정은 따로 안 했지만. (혹시라는 게 있어서 잠깐 멈칫하긴 했으나… …빨리 마시는 걸 보고 이미 안심했다. 아무튼… 술은 자주 마시면 건강 안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으니 이왕이면 마시지 않는 쪽으로.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다. 오늘도 한참 일찍 취했으면서, 그것보다 더 확실하지도 않은 제 주량에 덤비려는 생각을 하는 것 부터… 이미 걱정이다, 걱정. 괜한 생각에 찰나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까맣게 물드는 편지지를 보고 눈을 한 번 깜박. 너무 빤히 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도 늘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봤잖아, 너. 편지에는 늘 솔직하게 답장했으니 걱정말아. 어릴 때였긴 했어도… 꾸며 쓰는 것보다는 너에게 꿈을 찾았다 자랑하기도, 외로운 것 같다 푸념하기도 해봤잖아. (그럭저럭 괜찮게 지냈다, 정도로 이야기했었지만…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잘 지냈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응, 그렇지. 꿈이라는 건… …꿈이기 때문에 꿀 수 있는 것 같아. 이뤄내려는 건 꿈보다는 목표라는 단어가 정확하려나. 뭐… … 사람은 원래 욕심이 많다잖아. 하나를 바라면, 더 큰 꿈이 생겨버리는 법이니까…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식기, 접시, 그리고 잔들까지 싱크대로 옮긴다. 쓰는 동안은 신경 안 쓰이도록 하는 게 낫겠지.)
 
바스타르:애당초 걱정도 안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전 욕구가 더 생긴다고. (추태를 보이고 만 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 아닌가. 추태를 보여도 되겠거니~ 싶은 상대에게 보여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정작 본인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했으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또 덤비겠다고 하면 나를 어떤 눈빛으로 볼지는 안 봐도 뻔하지만.) ...궁금했으니까. 아직 너를, 너희를...만나러 갈 수는 없어도 잘 지내고는 있는지, 어디 어려운 건 없는지. ...안 궁금할 리가 없잖아. 사정상 편지도 뜸하게 보내고, 먼저 보내거나 소식을 알리는 법도 없었지만, 역시 늘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외로운 것 같기도 하다는 말에는 더욱이. 그때라도 너를 찾아갔다면, 다른 형제들과 만나 너와 함께했다면. 너는 조금이라도 덜 외로울 수 있었을까- 조금이라도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을까. ...후회로 남은 과거는 어쩔 수 없이 기억에 고이고이 남는 것을. 이따금씩 생각나는 이 생각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지.) ...그래도, 꿈을 찾은 것 같다고 했을 때는 나도 그만큼 기뻤어. 그래, 어쩌면... ...내가 내 꿈을 찾았다고 생각이 될 때보다 더욱이. (그것이 어떤 꿈이라고 하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던. 그런 건 상관없는 일이니까.) 반대로, 꿈은 크게 꿀 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 어차피 이뤄질까 말까 한 허상이라면, 목표라도 크고 넓게 가지라는 것이다. 평생을 이루지 못한다 하여도, 말이지. 나는 어느정도 이해해. 나도 그런 꿈들이 참 많았거든. (어른이 되면 꿈도 잊는다더니, 잊진 않아도 참 소박해지더라. 너에게 꿈을 묻는 건 또 다시 고뇌에 빠지게 할 거라는 걸 알아서 더욱 그럴까. 질문은 따로 남기지 않는다. 그저, 아래에 차례 차례 문장을 써 내려갈 뿐.)
 
라이아나:오늘은 안 받아줄 거니까 고이 잠이나 자는 게 어때. 도전 하는 건 나쁘게 생각은 안 하지만… 적당히 포기하는 것도 좋아. 네가 포기 안 하는 편인 건 알지만, 그래도. 네 상태 안 좋을 정도로… …혹시나 마실까봐. (픽웃고는 천천히 물로 씻어낸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컵 하나를 꺼내 물을 따라서 네 옆에 올려두고, 다시 뒷정리를 찬찬히 해나간다. 쓸데없이 꼼꼼하게….) 아마, 다들 그거면 됐다고 할 걸. 네가 걱정했다는 마음 하나로 그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풀릴 거야. 다들 가족 일이라면 바보가 되는 편이니까. (너도, 나도, 그 외에 다른 가족들도… 가족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제대로 상상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아끼고 소중히 대하고 있었으니까. 네가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아껴주는지, 걱정하는지, 기뻐해주는지. 그러니 나는 그 때, 너희와 주고 받는 편지에서 조금씩 위로를 받았던 것이고. 이미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그 때의 감각은 언젠가 떠오르게 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일상이, 그 때와는 다르게 부족함없다 여기게 된다.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일상.) 이루지 못할 거라면 크게 가지라… 라니. 으음, 역시 나는 꿈보다는 목표를 설계하는 쪽이 잘 맞는 걸 지도 모르겠네……. (헛된 꿈이라면 금방 접어버릴 것 같은 자신이었기에, 허공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하며 되지 않을 일을 상상하기보다는… 역시 스스로 정한 것을 설계하고 이행하는 쪽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럼 그 편지에 네 꿈 얘기도 몇 개 적어줄래? 얘기하기 민망하면. (괜찮으면 그냥 지금 얘기해줘도 괜찮고.)
 
바스타르:좀 전에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벽에 찌그러졌는데, 설마 오늘 하자고 하겠어? 그러니까 다음번에 도전한다. 진짜로, 감 잡았으니까. (뒷말에는 괜히 모른 척 한다. 상태가 안 좋을 정도로... ...오늘도 이미 온갖 모습을 다 보여준 것 같은데 말이지. 걱정해주는 것이 고맙다는 마음과 별개로, 언제 한 번은 꼭..! 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지. 아니면, 내기에서 졌지만 그럼에도 오늘이 그만큼 즐거웠던 건지.) ...그걸 숨겼었어. 라이아나, 네게는 무엇 하나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게 모든 걸 말해주었지만- 다른 가족들에겐 숨긴 것도 꽤 많았거든. 그리고, 결국 그 때문에 싸우기도 했었지. (실은 걱정했다, 보고 싶었다...그런 말은 하나도 하지 않고 이성적으로만 움직였던 재회의 순간부터 쭈욱... ...지금은 감성팔이를 할 때가 아니라 생각해서 미뤄두었던 감정이 오히려 독이 된 그 순간을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네 말이 맞아. 모든 것을 다 드러냈을 때,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형제는 하나도 없었지. 결국 다 같았던 거야. 어리석은 건, 나였던 것이고. (다들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런 말을 네게 듣고 있자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흐르고 만다. 결국 우리는 이토록 같은 사람이라서. 지금의 대화, 그때 우리의 편지. 그 모든 것도 담아 한 줄 더 적어본다. 이렇게 편지를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 기분이 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지.) 사람마다 다른 법이지. 나는 꿈을 꾸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목표를 갖고 정확하게 설계하며 나아가는 사람. 하지만 말이야, 멀리서 보면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아.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마음먹고 나아가는 건 똑같거든. (물론 그 꿈의 무게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지만. 너라면 이루지 못할 정도로 허황된 꿈은 아예 꾸지 않을 것 같아서 더욱이 그럴 지도 모른다. 꿈을 꾸고 거기에 눈을 반짝이기 보단, 역시 나아가면서 찾아가는 쪽이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지.) ...꿈...? 그러지 뭐. 어릴 적의 꿈이야 탐험가라던지, 세상에서 가장 자연을 많이 다녀본 학자라던지, 그런 것 뿐이니 이야기로도 충분하지만. (...역시 지금의 꿈은, 적어두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아주 작게 덧붙인다.)
 
라이아나:아, 싸우기도 했구나…. 그래도 네가 이성적으로 생각해주는 거에 도움 받은 애들도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나는… 네가 도움이 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고 생각해. 방관한 것도 아니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잠시 감정을 미뤄둔 것 뿐이니까. (네가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잘 예상이 가지 않았어서 인지 고개를 기울인다. 그러고보니까 빨간머리 누구씨랑 싸운 것 같기도 하고... ... 당장은 잘 기억 나지는 않으니 가물가물한 기억은 잠시 뒤로 미뤄둔다. 중요한 건… 너나 나나, 결국 그 애들한테는 가족이었다는 거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거나, 사랑받는 사람이라거나… 그런 말들은 의심치 않고 할 수 있을 정도이지 않나. …나는 그 사랑이 과분하다 여길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니 어리석었다고는 하지 말아. 모두가 감정에 휩싸일 때 잣대를 잡아준 게 너라고 생각하면… …나는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 때는 대치 상황이었으니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다만… 마음은 남는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네 마음 역시 남아있으니 그렇게 이야기하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 다르지는 않지. 누군가는 목표를 꿈이라고, 누군가는 목표를 꿈이라고 이야기하니까. 본질적으로는 네 말대로 같지만… 난 헛소리를 하느냐 안 하느냐 정도로 판별하려나. (가벼운 농담을 더하곤 손에 물기를 탁탁 털었다. 다 써가려나? 괜히 뒤를 돌아 힐끗 한 번 바라보다가 남은 위스키는 넣어두고… …대충 이 정도면 다 치웠던가? 두리번, 아까 깨진 것들도 치웠고… 책장도 정리 다 했고…) 둘 다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못 된 건 아쉽기도 하네, 난. 안경쓰고 가운 것 같은 거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뒷말은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농담 반, 진담 반.) 어릴 때는… 네가 정말 자연에 파묻혀 살 것 같았는데 말이야. (귀여웠지.)
 
바스타르:오늘따라, 위로되는 말을 더 해주는걸. 당시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어. 어린 나는 워낙 감정적이었으니까.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상황을 바로잡아서 모두 살아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고조되는 상황에 이게 답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었고. ...그랬지만. 네 말을 듣고 보니 역시 그랬던 걸까 싶어서 안심도 되네. (형제들과 싸웠다고...말을 해도. 역시 생각해보면 너보다는 훨씬 덜 싸운 편이려나 싶어서 말을 아낀다. 내게 이만큼 좋은 말을 해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지금. 어느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것은 아닐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하고... .) ...지금 해주는 말들, 정말 하나 하나 힘이 되는 거 알아? 그래, 어쩌면 네 말도 맞지. 어떤 것이던 내가 노력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너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욱 기뻤을 텐데. 딱 그 정도의 아쉬움. 그때까지도 나는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네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전혀 몰랐으니까. 결과적으로 나와 같은 뜻을 가진 형제들에겐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네겐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게 조금...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네가 지금 말해주는 것은 틀림없는 진심이라 믿으니까, 적어도 마음 만큼은... 전해진 것인지.) ...그러니까, 너도 한 가지 잘 알고 있도록 해. 너 또한 우리의 적이었던 적 없고, 우리를 아프게 한 적은 없었다고. 그때의 일은 작은 상처고, 작은 시련이었을 뿐이야. ...사람은, 육체로 남는 상처보다 마음에 남는 상처가 더욱 깊어. 너는- 우리를 부정한 적은 없잖아. 우리를 힘들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걱정이라면 끼쳤을지 몰라도. 살짝 덧붙인다. 너 역시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 마땅하고, 이 사랑을 전부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뭐, 그 말도...맞는 말이려나. 꿈이라는 단어를 빌려 정말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너와 내가 정의했던 꿈은 그런 게 아니었잖아? (싱긋, 어느새 편지 한 바탕을 가득 채우고 두 번째 장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네가 하나하나 일을 마칠 동안, 한 문장 한 문장 채워나가면서...) ...글쎄. 직업적으로는 택하지 않았어. 그 정도 되니 내가 원하는 건 직업이나 그런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 그래도 학자로 착각하고 불러주는 사람은 꽤 있었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장난스럽게 맞장구를 친다. 잠시 시선을 돌려 너를 바라보곤,) 어릴 때는 너도 귀여웠어, 라이아나. 지금 생각해보면 형제 중에서는 네가 성공한 케이스라는 생각도 드네. 부검의라- 생각치도 못했던 놀라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
 
라이아나:이야기했고, 너도 알고 있잖아. 좋아하니까 그런 말 해주고 싶은 건 당연하고. (아끼고, 소중하며, 사랑한다면… 말 뿐이라더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선하지 않은, 너희에게만 '좋은'사람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야기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장황하게 계획를 짜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있겠으나… 너희에게는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싶어져서. 비관적인 태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만 한정된 것이었으며, 나에게 있어 가족은 삶의 이유니까.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나 역시 그걸로 족해. 사실 고맙다는 말도 좋지만, 나는 사랑한다는 말에 한결같이 흔들리기에… …너희가 해준 말들은 모두, 나에게 있어 위로이자 불안이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불안. 그럼에도 사랑한다 이야기해주는 너희에게서 받는 위로. …홀로 나아가는 것 같았으나 길을 밝혀주는 이 한 명쯤은 반드시 존재했고, 지금에서는 그게 네가 되었지. 그러니 괜히 아쉬워하거나, 후회하거나 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나는 네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해도 모자라니까. 구태여 입 밖으로 이 이야기를 내지 않는 이유라면, 너 역시 같은 말을 나에게 해줄 것 같았으니까.) …아니야. 일부러 상처준 적이 있어. 너라서… 상처받지 않은 거야, 비타. 나는, 그 때 가족들이랑 같이 있고 싶으면서도… 거리를 둬야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 거라고 하면서… …네가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어진 게 지금, 이 상태이긴 하지만. (네 뒤에서 어깨를 가볍게 붙잡고는 짧게 숨을 뱉는다.) 그러니 난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를 미워하거나, 죽이고 싶어해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손을 떼면서 다시 느릿하게 몇 발자국 움직인다. 하지만 언제나 사랑은 기꺼웠어. 받지 못해 미안했지. 받아도, 모두 쏟아져버리는 걸.)
……잘 어울리나. 그냥,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거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기는 했어. 가장 성공했다기엔 다른 애들도 만만치 않던 걸. (픽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을, 다시 만날 날을 위해 노력한 아이들이 더 대견해, 나는. 너를 포함해서.) 이러니 저러니해도… 어릴 때 생각하면 다들 귀엽게 놀았던 것 같기도 하고. 타임캡슐에, 함께 식사에, 술래잡기, 테스트… 전부 말이야. 언제 떠올려도 나쁜 기억은 하나 없다는 게 나는… 그게 가장 꿈만 같다고 해야하나.
편지는… 생각보다 길게 쓰네.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봐?
 
바스타르:...그래, 알아.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지. 그것 또한 너의 마음이니까. (마음을 나누는 것 또한 당연한 건 아니니까. 네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 또한 네게 같은 답을 해주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게 당연시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고마운 것이겠지. 결과적으로 너의 말은 새로운 용기가, 위로가...그리고 안도가 된다. 다른 이에게는 베풀지 않는 그 마음이, 적어도 우리에게는...나에게는 향해주는 것이니에. 우리에게 너는 한없이 다정하고 선하며, 고마운 사람인 것이겠지. 내가 한 말 중에는 설탕 바른 듯이 겉만 좋은 말은 없지만...나 역시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건넸던 말은 많다. 힘이 되고 싶어서, 조금 더 자신을 가졌으면 해서. 조금 더... 사랑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너에겐 도움이 되었을까. 새로이 발목을 잡는 덩쿨같은 말이 아닌, 네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망원경이 될 수 있을까.)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상처 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모두를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는 사실을. 네가 가족 모두를 잘 알듯, 가족들도...따뜻한 너를 잘 알고 있어. 과연 그게, 상처가 되었을까- 아니면, 너를 향한 걱정이 되었을까. (그렇기에 나는 상처 받지 않은 거야. 마음이 약한 것도 아니지만,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해서 상처를 받는 쪽은, 라이아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걸 알았기에 상처 받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길을 이끌어주고 싶었다. 적어도, 곁에 남고 싶었다. 그 어둠을 밝힐 태양은 될 수 없어도, 외롭지 않을 등불은 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하지만 결코 이 모든 것이 일방적인 건 아닌걸.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이젠... 네가 없다면 외로울 것 같으니까. ...나약하게도... .) 그러니까. ...그러니 너도 이 사랑을 받아들여, 라이아나.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더욱이 그런 생각은 떨쳐도 되는 거잖아. (제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가 떼고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쓰던 편지의 한 문단에서 멈추긴 하였으나 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잠시 감은 눈은 무엇을 생각하던가.) ...적어도, 내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테니까. (정 생각하기 힘들다면- 지금은 이것으로라도, 부디.)
…분명, 처음에는 조금 놀랐어. 네가 어떠한 직업을 갖겠구나, 하고 짐작한 적도 없었지만…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 라는 의문 정도는 들 만큼. 다른 애들도, 너도… 성공했다 할 만큼 참 열심히 살았잖아. (결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열심히 살기는 했지. 가벼운 생각을 덧대고,) 그때는 동심의 시절이야. 모두 꿈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시기. 행복한 매일매일의 순간 속에서, 다같이 즐거운 나날을 보냈으니 그때가 여전히 꿈만 같은 거지. 정말 재밌는 사실이지 않나? 가장 꿈이 넘쳐날 시기가, 지금 보면 가장 꿈에 가까운 순간이었다는 것이.
(질문과 거의 맞아 떨어질 때 즈음, 문장을 끝맺고 펜을 옆에 내려둔다. 잉크가 마르도록 허공에 편지지를 한 두번 흔들곤 살짝 접어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오랜만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너에겐 하고 싶은 말이 늘 많지.
 
라이아나:(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 입술을 한 번 꾹 깨물며 닫는다.) …아직은 안돼. 거짓으로도 떨쳐낼 수 있겠다 이야기할 만한 것이 아니거든. (쓴 웃음 한 번. 상처받은 표정들이, 의심하는 눈빛이, 간절함을 담은 표정이… 눈 앞을 스쳐갈 때면 몇 번이고 죄의식이 올라와서. 미안하다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이 곳에 남아버렸으니, 더이상 사과를 할 수 있는 대상도, 용서해줄 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속죄하는 수밖에 없어, 비타. 이건 아마… 네가 나에게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을 거야. 네가 예외가 되는 것은, 너는 애초부터… 나를 온전히 믿어 상처 받지 않았으니까. 내 진심을, 꿈을, 의지를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는 언젠가의 네가 걱정이 되기도 해. 차라리, 네가… …외롭지 않으면 좋을 것을. 네가 나 하나에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외로움이 주는 그 큰 공허를 알고 있기에, 네가 느끼지 못했으면 하는데.) … …가장 꿈이 많았으니, 가장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된 거겠지. 아무 걱정없이, 불안 없이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줬잖아. 하우스의 모두가, 마마가. …사랑이 넘쳐나는 곳이었어, 우리 하우스는. (편지 접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그런가…하고 작게 중얼댄다. 늘 이야기했던 것 같으면서도,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사실 자신 역시도 오랜만에 적는 편지에 이런 저런 말들을 담아보았으니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미리 편지를 적는 걸 봐서 그런 지 궁금증이 조금씩 피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려나.) …오늘 좀 무리해서 마셨으니까 물 마시고 자러 가. 아까 네 옆에 떠놨어.
 
바스타르:...라이아나. ... ...아니.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제 눈에 비치고 만 쓴 웃음에 말을 갈무리 한다. 이건,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다는 직감이 들고 만다. 자신은 후회를 남겨본 적은 있으나, 속죄를 하겠다 할 만큼의 무게를 짊어본 적은 없다. 제 앞에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지닌 마음의 무게는 감히 자신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겠지. 특히... 이곳에서는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닿을 수 없는 사과만을 남길 뿐이니까. 사과하라고, 속죄하라고 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것을 잘못이라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무게이기에 이 이상으로 떨쳐내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같이 짊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라도 덜 아플 것을.) 그래, 가장 걱정 없던 시절은 반드시 과거가 되고- 그 시절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며 커다란 꿈을 꾸지. 우리는 사랑 속에서 자랐고, 모자란 것...부족한 것 없이 자랐어. (지금 와서 하우스의 목적이나 진실 같은 것이 무엇 의미 있겠나. 우리가 받았던 사랑과 애정은 진실이라는 것을 더 이상 모르지 않는데. 작게 중얼대는 모습을 보면서는 가벼운 웃음으로 화답한다. 옆에 떠다 놓아준 물을 마시곤) 그래, 고마워. 진짜 고생은 네가 더 많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 참 괜찮은 하루였네.
 
라이아나:(눈치 빠르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면 됐어. 이해해줘, 나를. 지금까지처럼. 그것이면 족하고, 이것들은 네게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야.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영역이니까.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도망치듯, 혹은 가족들을 위해 이곳에 남은 선택지는 결국 내가 만든 것이니까. 내가 나아가는 길을 네가 함께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다. 그러니, 너에게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아. 아프고, 답답하고, 불안한 것은… …지금껏 아이들이 느꼈을, 내가 준 상처에 대한 반응이었을 테니. 금세 표정을 바꾸고는 차분히 네 이야기를 들어나갈 뿐이다. 네가 입을 다물어준 건, 배려이자 이해일 테니, 나 역시 더 말을 얹지 않는다.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내가 미련한 인간일 뿐이니.) 응, 많은 사랑을 받았지…. 마마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걸, 가족들이 소중하다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잖아. 하우스가 전부였고, 그곳에서 행복했어. (꿈속의 모빌같이, 늘, 그 이상향을 가기 위해 영원히 맴돌 뿐이지… 그 진실된 애정과 사랑은 우리가 미련을 갖기에 충분했으니.) 응? 딱히 고생은 안했어. 나도 나름대로… 네 덕분에 즐거웠으니까. 괜찮았다니 다행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짧은 웃음으로 답하고는 아까 묶어두었던 머리를 풀고 방을 바라본다.) 올라가자.
 
바스타르:(역시 아직은 내가 알 수 없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참으로 많아서. 그런 표정을, 복잡한 표정을 보고 나면 다시 깨닫기를 반복한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신뢰하고- 그렇기에 이 길을 함께 하며 나아가는 것과 별개로... 서로에게 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것이,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 가장 쓰리다면 쓰린 것일 지도 모르고. 구태여 묻지 않아도, 네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생각 또한 변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지독하게 미련한 사람들인 걸까.) ...그거면 충분해.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의 시절이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영원히 한 순간에 남을 수는 없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걸. ...하지만, 기억하는 건 자유지. 추억하는 건 자유야. 그렇지? (꿈이 없다시피 한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꿈 가득했던 어린날은 존재하니- 과거의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가볍고도 추억 서린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올곧은 시선으로 너와 눈을 마주친다.) 그래, 가자. 오늘 하루도 이제 정리해야지.
 
라이아나:응,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건 자유지. (그래서 더욱 과거로 가고 싶은 것일 지도. 미래는 노력하면 나아갈 수 있지만, 과거는 이제 영원히 되돌릴 수 없고, 우리 마음 속에만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은 늘 흘러만 가고, 되돌아가지도, 멈추어주지도 않는다. 원치 않아도 나아가기만 해야하는 현실은 야속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우리의 과거가 빛나며, 내가 잊지 않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길지 않는 날들의 매일을, 과거로 되새긴다는 행동이.) ……제법 길었네, 오늘 하루도 어제만큼. 한 게 많아서 그런가.
 
하늘에는 이제 빛이 지나간 푸른 길만이 남아있습니다.
 
새로운 것들로, 추억들로 가득한 하루였죠.
 
술 때문인지 묘하게 졸린 기분도 드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즐거웠다는 기분이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까요.
 
빛났던 오늘의 밤하늘 만큼 당신도 빛날 수 있을까요.
 
또, 원하는 만큼 길잡이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요.
 
...
 
그는 당신의 삶을 바라며,
 
당신 역시 그의 삶을 바라고,
 
서로에게는 더없이 다정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박한 우리는,
 
이 봄을 어떻게 끝맺을 수 있을까요.
 
협탁 위에 놓인 밀짚꽃은 창 밖의 달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또 다시 해가 뜨고, 눈을 뜨기 전까지…
 
편안히, 좋은 꿈 꿔요, 바스타르.
 
~ 2024-01-09, 01:03 CUT ~
 
~2024-01-16, 15:02 ~
 
5일차
 
반짝, 눈을 뜨니 벌써 아침입니다.
 
밤새도록 별을 보고, 새벽에 돌아와 편지를 썼던 것 같은데,
 
어느 새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와 깊이 잠든 모양입니다.
 
시계를 보니 확실히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나고 말았네요.
 
라이아나는 자리에 없는 걸 보아하니 먼저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분명 새벽까지 뭔갈 쓰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모르긴 몰라도 바스타르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타임캡슐에 넣은 편지겠죠.
 
며칠 부쩍 무리하는 게 느껴져 마음이 쓰이고 맙니다.
 
어쩌면 아침이라도 만들고 있을지도요.
 
바스타르:(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이불을 정리한다. 또 어딜 갔는지... 옆에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라이아나. 어디 있어?
 
무리를 해서인지, 아니면 술을 마셔서 인지,
 
이상하게 찌뿌둥하고 졸린 몸을 억지로 일으켜 거실에 나갑니다.
 
그런데, 라이아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거실 테이블 위에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집배원이 올 시간을 넘겨서까지 자고 말았으니, 그가 대신 받았겠죠.
 
자기가 쓴 편지를 자기가 다시 받았을 라이아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조금 나오고 맙니다.
 
바스타르:...또 온 건가. 이거. (테이블 위에 있는 편지를 집어 든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며...)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났나 보지? 본인이 쓴 걸 본인이 다시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재밌기도 하네... .
 
편지를 뜯고 살짝 남은 귀퉁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집에서 못보던 종이곽이 보입니다. 이건…
 
수면제입니다.
 
몸의 이 기묘한 감각.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른하고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
 
이건 수면제를 먹었을 때 일어나는 사이드이펙트입니다.
 
바스타르 기억에 제 손으로 이걸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이걸 버린 기억 또한 없습니다.
 
지난 밤, 자기 전에…
 
라이아나가 주는 물을 한 잔 마시긴 했지만요.
 
그리고…… 그리고, 어쨌더라?
 
뭔가 조리가 맞지 않는 발상,
 
앞뒤가 없는 불안이 치밀어 오릅니다.
 
라이아나는 어디 있는 걸까요?
 
집안 어디를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급한 마음이 들어, 다짜고짜 밖에 나가 찾아보자는 생각도 밀려 옵니다.
 
혹은 옆집 사람, 혹은 빵, 넘어져서 깨진 화분을 사러…
 
아무튼 모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가능성을 머리가 멋대로 뽑아내는 걸 멈추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만 합니다.
 
바스타르:... ...(몰려오는 불안감, 본능이 평소와는 뭔가 다름을 알려주는 듯 하다. 이내 침착하고자 심호흡하는 것은, 이것이 그저 그러한 느낌에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믿으려 하기 때문인지. 겨우 떠올린 일이라면, '라이아나'라 이름을 붙여준 꽃에 물을 주러 가는 일 정도일까.) ...그래. 할일을 하고 있다보면 돌아오겠지.
 
2층의 방으로 돌아가 라이아나 꽃에 물을 줍니다.
 
침착하게 머리를 굴려보아도 본능이 이야기하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오겠죠.
 
어디를 갔는지도, 언제 나간 건지도 알 수는 없지만…
 
라이아나는, 당신의 믿음에 보답하는 사람이었던가요.
 
하지만 몇 분, 몇 십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나도,
 
라이아나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바스타르의 인기척, 혹은 숨소리. 그것을 제외하고선 무엇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입니다.
 
바스타르:...역시 이대로는 안되겠는데. (기다린다고 무언가가 달라지진 않을 거라,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현관문 쪽으로 간다.)
 
바스타르가 현관문을 열자,
 
바닥에 라이아나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 이성 판정 ✷ 
 
바스타르: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4 감소합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치지도 않고, 표정도 온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경직조차 거의 오지 않은 차갑고 차가운 몸.
 
현실이 붕괴됩니다.
 
삶이 붕괴됩니다.
 
세상이 붕괴됩니다.
 
라이아나가 죽어 버렸습니다.
 
어떤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단지 '죽었다'는 결과로만 덩그러니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만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히 느껴집니다.
 
이 기가 막힌 현실이 이다지도 강렬하게 와닿는 건,
 
필시 당신이 이미 '죽음의 감각'이 무엇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명료한 감각.
 
죽음, 그 확고한 존재.
 
도저히 곁을 떠나지 않는…….
 
어쩌면 함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망상이 느껴집니다.
 
기껏 라이아나를 보고 안도한 본 자신이 멍청하게만 느껴집니다.
 
손 안에서 그가 쓴 편지가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거립니다.
 
아, 아까 레터 오프너를 썼었죠.
 
종이를 베는 칼은 의외로 날카롭고 또 가느다랗습니다.
 
수면제는 한 알만 쓰고는 몽땅 버렸더군요.
 
고작 위에서 떨어지는 책에도 다칠 수 있는 몸.
 
부엌에 있는 식기들은 또 어떻고요.
 
가장 확실한 건 중력입니다.
 
유성처럼. 우리는 그저 아주 작은 먼지.
 
순간에만 반짝이는, 내일이면 시들, 노란 빛…
 
라이아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요?
 
어째서 이런 모든 글자를 남기고, 이런 모든 행동을 남기고,
 
이런 모든, 그의 모든, 모든 그를 바스타르에게 떠맡기고 떠난 걸까요?
 
차라리 언젠가 한 약속처럼 죽으란 건 아니었을까요?
 
어떤 정교한 악의처럼.
 
뭐가 됐건, 라이아나의 마음을 지금의 바스타르가 생각해 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가 그 마음대로 행동한 거서럼,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될 일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스타르?
 
바스타르:... ...하. (무언가 생각이라는 것에 닿기도 전에, 차가운 온도만을 품고 있는 그 시체를, 사랑하는 이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이성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기 전에 심장 소리를 들어보기를, 그럼에도 들리지 않는 생체 신호에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 눈을 감는다.) ...이기적이야, 라이아나. 제멋대로야. ...네가 무슨 생각을 했던, 내가 납득할 수 없으리란 거... 잘 알잖아. (평소보다 더 낮은 어조로 꼭 끌어안은 채 조용히 속삭인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차가운 이 체온이 거짓이기를 빌고...또 빌면서. 쓴 웃음을 지으며 이내 그 위로 가벼운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말했지? 내가 바라는 영원은, 내가 믿는 영원은... 삶에 귀속되지 않는다고. ...절대로. 외롭게, 홀로 두지 않아. (무언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 레터 오프너를 떠올린다. 죽음..? 기꺼이, 다시 한 번...아니, 몇 번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죽음 따위 아무래도 좋은 것을.) ...네가 무언가에 몰려 있었던 건지. 네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그걸, 알아내고 따라가야 할까. (복잡한 심경에 그저 끌어안은 힘이 조금 더 강해진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네가 나라면... 넌 어떻게 할까. (죽음에 대한 욕망이 강해짐에도, 쉽게 칼에 손을 뻗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는 슬픔이 무엇보다도 큰 것인지.)
 
죽음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낌에도,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는 죽었고,
 
어째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남겼으며,
 
어째서 그는 편지를 썼을까요?
 
어떻게 그는 자신에게 닥칠 모든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굴었던 걸까요?
 
이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가 무언가를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
 
정신차리고 보니 당신은 바닥에 엎드린 채 심호흡만 들이키고 있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하게 찾아 왔습니다.
 
누군가 머리를 꼬챙이로 찔러 마구잡이로 휘젓는 것만 같습니다.
 
이건 기분일까요, 아니면 통증일까요.
 
시야에 집중하려는 찰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사람의 그림자가… …
 
라이아나가 일어나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나친 혼란…이, 당신을 강타합니다.
 
쓰러진 그를 보고 죽었다고 착각한 걸까요?
 
왜냐면 당신은 죽음과 너무나 가까운 존재니까.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라이아나는 말을 이어갑니다.
 
라이아나:당신은 정말 그를 사랑하는군. 그의 죽음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이해할 수 없는 말.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신.
 
문득 시야가 이지러집니다.
 
기이한 수면욕이 당신을 휘감습니다.
 
가물거리는 눈 사이로 라이아나가 뚜벅 뚜벅,
 
복도 너머로 떠나는 것이 간신히 보입니다.
 
지금은 잠들어선 안 됩니다.
 
안 되는데, 분명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의식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라이아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습니다.
 
라이아나:꽃을 소중히 하는 게 좋을 거야.
 
...
 
...
 
...
 
시간과 꿈과 우주와 로켓
 
느닷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간은 절대적인 간격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긴 꿈을 꿀 때면,
 
뇌는 실제로 시간의 흐름을 보다 길게 인지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있는 힘껏 달리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흐른답니다.
 
로켓을 타고 멀리 우주 너머로 떠난 자가 딱 4년 후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
 
그립던 그 사람이…….
 
...
 
이런 얘기를 갑자기 왜 하냐고요?
 
그야 바스타르, 당신이……
 
...
 
...
 
0일째
 
선혈 가운데 라이아나는 멍하니 서 있고,
 
바닥에는 바스타르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차갑고 차가운 몸.
 
현실이 붕괴됩니다.
 
삶이 붕괴됩니다.
 
세상이 붕괴됩니다.
 
바스타르를 죽였습니다.
 
바스타르가 죽어 버렸습니다.
 
단지 '죽었다'는 결과로만 덩그러니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만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히 느껴집니다.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명료한 감각. 죽음, 그 확고한 존재.
 
라이아나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습니다.
 
피묻은 손이 바스타르의 맥을 하염없이 짚고 손을 무작정 주무릅니다.
 
라이아나는 '아무런 온기가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열이야말로 생명력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음이 춥게 느껴지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단순한 비유격이 아니라는 것 또한요.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던 라이아나는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거리며 문 밖을 나섭니다.
 
마치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처럼.
 
바스타르가 자신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
 
...
 
한참 후 돌아온 라이아나의 손에는,
 
뿌리까지 캐인 밀짚꽃 한 송이가 들려 있습니다.
 
라이아나는 꽃을 꽃병에 담고 손을 씻은 후
 
바스타르를 안아올려 침대까지 가 눕힙니다.
 
그 일련의 행동에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어서,
 
그저 바닥에 잠든 이를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1일째
 
그래요.
 
그날, 당신은 분명 그의 손에 죽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잘 됐는데……
 
당신은 살아있군요.
 
2일째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 펜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꺼풀을 가물가물 꿈벅이면 어둠의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빛이 흔들립니다.
 
촛불처럼요. 촛불처럼 흔들리는…
 
…라이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라이아나:…조금 더 쉬어도 괜찮아.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펜 소리.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가 무언갈 쓰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더 자세히 묻기엔 너무나 졸려와요.
 
몸은 물 속에 잠긴 듯이 무겁습니다.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몸.
 
곧장 기운을 차리기엔 힘도 시간도, 그리고 마음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라이아나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바스타르:...나는, 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나 봐. 너의 모든 것을, 그 마음을...감정을...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지금 네가 한 모든 선택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너의 모습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그 곁에 다다르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려줄래? ...부디...부디.
 
라이아나:…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비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가서는 침대 옆에 기대어 앉는다.)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뭘 했다고.
 
바스타르:(가까이 다가온 그를 잡고 싶어서 힘을 쓰지만, 이내 몸을 일으키진 못한 채 소매만을 잡는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던. 그 모든 것이... . (...) 왜...어떻게. 어째서. ...나를 살린 거야..? 내가 본 모든 것이, 정녕 꿈에 지나치지 않는 거야..? 차라리, 그렇게 말해줄래? 너는... ...(혼란 속에서 뒤섞인 물음을 갈피를 잃고 번잡하게 나올 뿐이다.) ...죽지 않을 거지..? 라이아나.
 
라이아나:…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비타. 이미 결론을 내고 나에게 물어보고 있는 거야? 거짓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거니? (시선을 스치듯 마주한 채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바스타르는 언제든 라이아나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어. 그 노력은, 너도…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고.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해. 네가 아는 내가, 그 라이아나가, 숨기는 게 많잖아. 네가 지금 바라는 건… 단순히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이야? (네가 늘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 이야기했던 것처럼. 상냥하고 다정한 웃음을 그려낸다.) 다정하기는.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살았으면 해서.
 
바스타르:(정말 시간이 되돌아와, 과거에 다시 도착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보았던 그 생생한 모든 것들이 꿈에 불과했던 것인지. ...어느쪽일까. 아니면, 이 마저도... ...나의 애절함이 일으킨 상상이자 환상인 것인지.) ...네가 내게 솔직해주길 바랐어. 홀로 지니고 있는 짐이 무겁지 않도록... . ...네가 내게 자유와 꿈을 바라지 않길 바랐어. 너를 홀로 두는 가정 조차 할 수 없도록... . ...네가 내 마음을 아까워하지 않길 바랐어. 내 모든 감정과 다정은 너를 위한 것이니까... . 하지만, 지금은... 그저 네가 살아주었으면 해. (심연으로 들어가다 결국 손을 놓치는 상상에 닿아 버린다. 생생했던 그 아린 기억이, 바로 좀 전에 있었던 것 같은 그 끔찍한 현실이. 뇌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 다정한 웃음에 답하기 어려워, 그만 모순적인 표정을 짓고 말지.) ...내가 살았으면 해..? 나 역시, 네가 살았으면 해. ...내게 확신을 줘. ... ...내게, 불안함을 남기지 말아줘.
 
라이아나:나에게 바랐던 것이 사실 아주 많았지, 너는. 어느 쪽인 것 같아? 과거일지, 현실일지, 상상이자 환상에 불과할지. (마주하는 시선은 네가 보던 그 애정어린 눈빛 그대로일 테다, 분명.) ……비타, 너는 나의 대답이 거짓이 되어도 좋아? 나는 네가 이야기한 현실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모순적인 표정에도 여전한, 어쩌면 어릴 때와 비슷한… 그런 웃음을 그렸다.) …말 뿐이라면 뭔들 못할까. 어렵지 않아. 그저 생각하고, 소리를 내면 될 뿐이니까. 하지만 그건 네가 듣고 싶은 답은 아니잖아. (일어서서는 잡혔던 소매를 빼낸다.) 나는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대답을 내어줄 수 있어. 확신을 주는 것도, 불안함을 지울 수 있는 말을 하는 것도,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도.
…자, 바스타르. 이야기해봐,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해?
 
바스타르:...어느 쪽일까. 내가 바라는 것조차, 어느 쪽일지 모르겠는데. (거짓. 우리는 서로에게 진실을 고하고자 하였지만 그건,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했을 터. 그러니 네가 나에게 거짓을 고하여도 나는 할 말이 없고, 우습게도... 지금은 거짓이라도 좋으니 확신을 주었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버리는 것을.)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이 너에겐 거짓이라면- 네 말대로 그것으론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부탁을 할게.
...죽지마, 라이아나.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너와 이야기하면서 알았어. 지금 네가,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 지. ...그래, 아마도.
그러니까...네가 생각하는 현실로 나를 데려가 줄래.
...이것이 나의 환상이자 미련이라면, 네가 나를 이끌어줄래.
 
라이아나:나도 모르지. 그건 네 마음이니까. 나 역시 네가 그렇다 답한다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 무엇도 없으니…. (이어지는 말에 희미하게 웃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죽지마. 곁을 떠나지마. 어쩌면… 라이아나 역시 알고 있었을, 너의 바람.)
응, 그래… 데려다줄게.
환상이든, 미련이든, 꿈이든, 과거든… 모두 너의 것이나 다름 없어. 언제든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니까.
 
...
 
...
 
6일차
 
누군가 당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집니다.
 
일어나보니 당신은 현관 앞에 쓰러져 있고,
 
당신을 깨우는 것은 놀란 표정의 옆집 아이입니다.
 
일어난 당신은 무의식 속에서 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꿈 속의 대화.
 
과거의 반향.
 
그 모든 것을.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라이아나가 쓰러져 있던 것만큼은 기억납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라이아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옆집 아이: 저, 저기 오빠…? 괜찮으세요…?
 
바스타르:...아. (시야가 점차 뚜렷해짐과 동시에, 미간을 짚으며 일어난다. 전에 만났던 아이인가..?) ...또 만났구나. 고마워, 난 괜찮아. (주변을 둘러보곤 쉼 없이 질문을 하나 던진다. 급한 어조가 묻어났을 지도.) ...여기 사는 언니를 오늘 만난 적 있니?
 
옆집 아이: 네에,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밝게 웃고는 손 꼼질 꼼질…) 쓰러져 계신 것 같,아서… 어머니 모셔와야 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다행이에요…!! (이어지는 질문에 고개를 도리도리.) 아, 아니요… 언니 어디 갔어요…?
 
바스타르:...잠깐... 아니야, 괜찮아. (애써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 ...잠시, 말 없이 외출을 한 모양이라. 조금 걱정이 되어서. 만일 만나면 좀 알려주겠니? (아이에게 본 것을 다 알려줄 이유 따윈 없으니 대충 얼버무린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것이...) ...편지. ...맞아, 편지가 있었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곤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찾는다.)
 
옆집 아이: 네, 네…! 알려드릴게요!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기분 좋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빈 손에 쿠키 두 개를 쥐어주고 간다.) 이건 만든 거예요! 언니 오면, 나중에 나눠드세요…!! 그럼…! (고개 꾸벅!)
 
손에는 여전히 편지가 남아있습니다.
 
바스타르:... ...하아. (아이가 있어 삼키고 삼키던 한숨이 이내 터져나온다. 자신이 본 것이 적어도 착각 따위가 아니라면. ...라이아나가 멀쩡하게 아무 일도 없이 떠났다는 건 아니라는 점이, 직감으로 뚜렷하게 전해져 와서.) ...결국, 더 어려운 숙제를 남기고 가 버렸잖아. 너는. ...끝까지, 짓궂네.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곤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당초, 죽은 건지...어찌된 건지... ...그걸 알아야 내가 너를 따라가지, 라이아나. 힌트 하나도 없이, 잔인하게.
 
라이아나가 죽기는 한 건지,
 
죽었으면 어떻게 된 건지,
 
어디로 간 건지.
 
대체 이게 다 뭘까요? 무슨 일일까요?
 
여전히 혼란이 머릿속에 몰려옵니다.
 
 ✷ 이성 판정 ✷ 
 
바스타르: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대체 뭘 하면 좋을까요?
 
사라진, 혹은 죽은 라이아나는
 
느닷없이 밀짚꽃을 돌봐달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습니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채, 어려운 숙제만이 남아버립니다.
 
라이아나가 이야기한 것은 협탁 위의 그 꽃이 밀짚꽃이겠죠.
 
래 기를 자신이 있다 호언장담했지만,
 
익숙한 꽃은 아니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
 
아니, 이럴 때 그런 걸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라이아나의 말이니 꽃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보다 정확한 돌보는 법을 찾아 도서관이라도 가보는 게 좋을까요?
 
혹은 이곳에서 계속 라이아나를 기다릴 수도 있겠죠.
 
바스타르:(이대로 있어서는 해결 될 일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걸음을 옮겨 2층으로 간다.) ...이럴 때 보면, 이름을 참 잘 지어준 것 같단 말이지. 다녀올게, 라이아나. (꽃에게 하는 인사인지, 혹은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하는 인사인지. 가벼운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곤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으로 향하기 위해 현관에서 걸음을 돌리던 때,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척 보기에도 익숙한 모양새…의, 우체부 집배원입니다.
 
그러고보니 방금 읽은 편지는 어제 것이었던가요.
 
라이나아가 편지에서 이야기하는 '내일'은, 오늘입니다.
 
집배원: 아, 안녕하세요! 어떻게, 나와계시네요. (허허.) 마침 오늘도 편지가 와서요. 어디 가시나본데, 그 전에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우체부 집배원은 그렇게 편지 한장을 건네줄 뿐입니다.
 
바스타르:...아. (얼떨결에 만난 참이라, 편지를 받곤 어색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예. 감사합니다. (사실 그것보다도, 편지의 내용이 조금 더 중요한 지라. 편지를 조심히 뜯어본다.)
 
바스타르는 오늘 온 편지를 열어봅니다.
 
바스타르:... ...(몇 분이 지났을까. 그저, 하염없이 편지를 몇 번이고 바라보았다. 어딘가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보고, 또 보기를... ...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편지를 소중하게 접어 쥐었다.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것도, 해줬어야 했는데...싶은 무언가도. 너무너무 많지만, 지금은 전할 수 없으니 꾹 담아둬야만 한다. 딱 한 가지. 기약없는 기다림은 아니리라고, 그리 믿을 수 있게 된 확신 하나는 존재하게 되었으니... . 제게 어떠한 확신도 남겨주지 않았던 이가, 마지막 편지에는 확신을 남겨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 그것으로. (하려던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제게 남은 또 다른 라이아나를 위해 도서관으로 걸음한다.)
 
결국 바스타르는 미련하게도 도서관에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뒤져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건 식물학개론, 꽃말사전, 봄꽃에 대하여, 당신도 할 수 있다! 꽃 기르기, 이 네 권입니다.
각각의 책은 모두 자료조사 판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바스타르:...네 권 정도면 금방 볼 것 같은데. (식물학개론 책을 펼쳐본다.)
 
 ✷ 자료조사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음... ... 잘 모르겠군. (우선 내려두고...꽃말사전을 펼쳐본다.) 이런 데에 꽃을 기르는데 필요한 지식이 있을 것 같진 않다만.
 
 ✷ 자료조사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래요, 딱히 필요한 지식은 없을 것 같지만…
 
문득 생각난 김에 밀짚꽃의 꽃말을 찾아보았습니다.
 
밀짚꽃의 꽃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픔은 끝없이.’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 줘요.’
 
바스타르:... ...생각이 복잡해질 이야기만 써 있기는. (책을 바로 덮는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던가... . 잡생각은 내쫓고, '봄꽃에 대하여' 라는 책을 펼친다.)
 
 ✷ 자료조사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50
판정결과: 실패
...흠... ...(가만 보다가...별 도움 될 정보는 찾지 못한다. 본인이 순전히 못 찾은 것인지...아니면 적혀있지 않은 건지. 가장 뭔가 적혀있을 법한 '당신도 할 수 있다! 꽃 기르기' 책을 펼쳐든다.) ...생각해보니, 꽃 기르기는 나도 자신이 꽤 있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식물학 쪽으로는 능통한 편이니까요.
 
아니지, 세상 모든 지식 쪽으로도…
 
 ✷ 자료조사 판정 ✷ 
 
바스타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하지만 잘 모르겠군... ...책 뒤적이며 짜게 식은 표정으로 책과 눈싸움만 한다.)
 
:재도전? 원하시면? 한 번 해보셔도 됩니다
 
바스타르:(좀 더 인내를 갖고! 좀 더 차근차근 읽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천천히 읽어봤어야 됐구나.
 
바스타르:(역시 책은...)
 
꽃을 기르는 법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밀짚꽃과 비슷한 꽃을 기르는 법은 어디있나 페이지를 넘기던 중,
 
누군가 해놓은 묘한 낙서를 발견합니다.
 
휘갈겨 써서 알아보기가 힘들군요.
 
 ✷ 모국어 판정 ✷ 
 
바스타르:
언어(모국어)
기준치: 40/20/8
굴림: 2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꽃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면, 꽃을 완전히 가루를 내어 부숴라."
 
"그 앞에서 이 아래 적힌 것을 읽어라. 언어 속에서 당신의 꽃은 다시 피어오르고, 영원토록 세상에 남을 것이다."
 
다정이 두려움을 꽃 피우면 두려움이 영원을 꿈꾸네. 영원을 도모해도 나 이것에 물 주는 것 감히 잊지 못할 테니, 그것이 다정의 두려움이다.
 
…라고 적혀있네요.
 
바스타르:... ...주문 같기도 하고... ...(꽃을 키우는 법을 찾았으나, 여기에는 수상한 말과 부수라는 말이 적혀 있으니. 영 시원찮은 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얻은 것들이 있으니 이것으로 괜찮으려나. 꽃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역시 곁에 두고 돌보는 것이지. (오래 자리를 비울 생각은 없는지, 다시 돌아간다. '라이아나'가 있는 곳으로.)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피곤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식은땀이 납니다.
 
아픈 건 아니지만, 온몸에 들어가 있는 긴장감을 쉬이 풀 수가 없는 탓입니다.
 
현관 앞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흔적도. 그리고 집 안에도. 그 어디에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야속함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룻 밤만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된 라이아나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저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면 어디로 간 거야?
 
꽃이 나보다 중요해?
 
꽃이 너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막연한 슬픔, 혹은 원망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밀짚꽃만이 어제보다, 그저께보다,
 
더 풀 죽은 모습으로 거의 시든 채 협탁 위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라면 가꾼다 해도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애당초 꽃을 살려두고 싶다면 꺾어와서는 안 되지 않았을까요.
 
모든 건 이 꽃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밀려옵니다.
 
과연 이 일은 '라이아나'의 탓일까요, 아니면 '라이아나'의 탓일까요.
 
...
 
사는 게 뭐라고.
 
…분명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신이 위로, 그리고 옆으로 흔들리던 순간 그런 실소를 앞세웠습니다.
 
막상 소중한 이가 떠나가니 화염 속에 잠긴 기분입니다.
 
당신이 죽은 듯이 잠든 모습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신이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아마도 시간이 쏜살 같이 사라졌겠죠.
 
곧 죽게 될 자신의 미래를 기다리며, 당신이 또 얼른 깨어나길 기다리며.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떠났던 건 누구일까요?
 
그, 혹은 당신.
 
어쨌든, 당신은 살아 있으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지요.
 
그게 무엇이 됐든.
 
바스타르:... ...(열심히 물을 주고 가꾸었다고 생각했는데. 잊지 않고 좋은 말만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생명이든, 그 끝은 존재하는 법이다. 이 밀짚꽃 역시, 끝은 존재하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아끼는, 소중한 이가 남겨주고 간 꽃.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있는 한, 이 꽃의 끝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 ...그래, 나는 이 꽃을 너 만큼이나 사랑하고자 그 이름을 붙여주었는걸.) ...라이아나. 나는, 너를 믿어. 너도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걸 알아. ...나는 너의 영원을 원해. ...언제까지나. 나의 영원이 닿는 순간까지. (세상의 진리는 믿거나 말거나. 조금은 제정신이 아닌 건지, 아니면 제정신임에도 책에서 본 내용을 진짜라 믿는 동심이라도 돌아온 것인지. 꽃의, 라이아나의 '영원'을 위해 제 앞의 밀짚꽃을 잘게 부순다. 가루가 될 때까지...멈추지 않고.)
'다정이 두려움을 꽃 피우면 두려움이 영원을 꿈꾸네. 영원을 도모해도 나 이것에 물 주는 것 감히 잊지 못할 테니, 그것이 다정의 두려움이다.'
...그래. 내 다정은 너를 위한 것이니.
 
...
 
주문이 끝나자 한 번 산산조각이 난 꽃의 미세한 가루들이 움찔움찔 바람도 없이 움직이더니,
 
마법처럼 빛을 내며 다시 하나의 꽃으로 모여 들어갑니다.
 
창 밖의 햇빛에 반사된 조각들은 마치 별가루처럼 반짝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음악처럼 성한 모습으로 돌아간 밀짚꽃은
 
상처 하나 없이 생생하고 본 적도 없는 모습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단연코 지금까지 바스타르가 만나 본 모든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띠고 있습니다.
 
눈 앞에 명백히 일어난 마법,
 
혹은 기적을 믿을 수 없습니다.
 
 ✷ 이성 판정 ✷ 
 
바스타르: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감소합니다.
 
그러나… 또한,
 
당신의 작달막한 세상에 찾아온 어떤 벼락 같은 아름다움에.
 
마치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위로감에 4의 이성이 차오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끔찍한 순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완전히 침잠되면 삶이 고요할 텐데도
 
사는 한 도무지 멈추질 못하고 흔들리는 땅은 어째서 이다지도 애달픈 걸까요?
 
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고작 꽃 한 송이가 마치 그 사람 같아서.
 
영문도 모르고 사라진 라이아나가 남기고 간 단 하나의 유산이,
 
이제 영원히 바스타르의 곁에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곳에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차오릅니다.
 
그리움이 차오릅니다.
 
서럽디 서러운 사랑.
 
슬픔은 끝이 없으니 기억 또한 영원할 수 밖에…….
 
…이제 잠들도록 해요. 바스타르.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하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 째 날까지 안식하세요.
 
...
 
...
 
7일차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입니다.
 
아니,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입니다.
 
당신은 밀짚꽃 들판에 누워 있습니다.
 
등 아래에는 돗자리가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마냥 고즈넉합니다.
 
당신은 곁에 누가 함께 있을지 알고 있습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라이아나:안녕, 비타.
 
…라이아나가 부드러운 미소로 당신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침대에 멋대로 들어와 당신의 손을 붙들고 속삭였던 때처럼.
 
그 때 라이아나는 말했었죠.
 
"내일도 나와 같이 있어 줘."
 
하늘에선 빛이 내리쬐고 별이 쏟아지지만,
 
당신과 그에게 그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서로가 이렇게 존재하니까요.
 
라이아나:내일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죽음의 감각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한 번 죽었었다는 걸.
 
일주일 전 그 날.
 
라이아나:… …돌아올게. 기다려 줘.
 
당신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라이아나가 자기 자신을 바쳤을 거라는 사실을.
 
속죄, 혹은 불안, 그리고 사랑.
 
당신은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것도 라이아나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리고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밤에 헤어졌습니다.
 
편지 네 장 만을 남긴 채,
 
마지막까지 당신만을 위한 채.
 
라이아나:내가 돌아올 때까지 네가 앞으로도 살아갔으면 좋겠어. 안 될까?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지… 꿈이라는 걸.
 
그런데도 어찌도 이렇게 생생할까요?
 
마치 싱그러운 꽃잎처럼 라이아나는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희망이 차오릅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런 것을 쏟아내야만 하는 밤입니다.
 
세상의 작은 모래알일 뿐인 우리가 지구의 하늘에 스치며,
 
기적적으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밤.
 
실제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 극한의 거리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
 
우리는 먼지 중의 먼지라고.
 
그리고 살면서 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살면서 그가 나를 얼마나 야속하게 했는지.
 
또 살면서 얼마나 그를 아꼈고, 그가 때로는 얼마나 미웠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앞으로 또 얼마나 무수히,
 
별처럼 수많게,
 
꽃처럼 바스라지며 그를 그리워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또한 끝없이 기억하며 또 기다릴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가 또한 얼마나 당신을 끝없이 애정하며 또 헌신하는지에 대해.
 
그런 것들을 유성우처럼 쏟아내야 하는 순간입니다.
 
바스타르:...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도 참, 네가 많이 그리웠나봐. (잡고 있는 손으로는 무엇이 느껴질까. 차가운 체온? 몽롱한 환상 속에서 느꼈던 것만 같은 그 슬픈 온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이 틀림없는 라이아나라는 사실에 그 무엇도 상관없게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전부, 전부 괜찮다고... .) ...너무하다고 생각했어.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었으면서, 이렇게 편지를 남긴 채 떠나버린 너를 생각하고 있자니 속이 쓰렸어. ...하지만, 알아. 알고 있어, 라이아나. 이젠 전부 알 것 같아. 나는 한 번 죽었었다는 사실도, 네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 것 같다는 사실도. (...)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이제는, 네가 내게 이야기해줄 차례야.
 
라이아나:미안,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어. 이상한 얘기밖에 더 되나 싶기도 하고. (짧게 픽, 웃는 소리 흘리고는 잡은 손을 비틀어 깍지 껴 잡고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너무하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 원망도, 미움도, 슬픔도 다 받을 각오로 있었거든, 나는.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너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납득하지 않을 테니까. 이해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나도 나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모순만을 품어버리는데 너에게 무슨 말을 쉬이 내뱉을 수 있을까.) …어디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싶지만… 죽었다는 건, 사실…이야. (잡았던 손을 조심스레 놓는다. 아무래도, 완전히 죄책감은 없애기는 무리라. 아직도 선혈 가득했던 그 때가 눈 앞에 선한데.) …기쁨과 희열, 만족감들이 순간…, 그리고 그 뒤에 몰려오는 건 공허함이었어. 곁에 있던 네 목소리가 이제는 더 들려오지 않고, 닿을 때면 온기가 느껴졌던 피부는 나처럼 차가워졌고. …그래서 그 느낌이, 견디기 싫었어. 바라고 바랐던 것인데도… 내게 남는 건 불안정, 뿐이었거든.
… …홀로 살아갈 수야 있었겠지. 그런데도, 한 순간의 충동으로 잃은 네가 그리웠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가 느껴져서… …함께 여행했던 날들을 되돌리고 싶어져서. 그래서, 널 살리고 싶었어.
사실, 돌아온다고,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확신하지는 못해. 가능성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나도 이런 건 처음이고, 도저히 예상이 잘 되질 않아서. 그래도, 괜찮아?
 
바스타르:...어느 날부터 너한테 온 편지. 그리고, 그 내용. ...의식적으로는 너의 변심 같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론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었거든. 이렇게 거창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 적어도, 네 진심에 더 닿을 수 있었지. 그간의 날들보다 더욱이. (그리고 이어진 평화는 얼마나 달았던가. 당장 어제...아니. 이제 엊그제인지, 며칠 전인지. 이렇게 밤하늘을 보며, 떨어지는 유성우를 향해 소원을 빌고.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까지만 해도 이 모든 평화가 자리를 잡은 것만 같아 안도를 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너의 그 미소에.)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 짓궂다고 생각했지만, 미워하지 않았다. 너에게 향하는 내 감정 중에, 그런 것은 애당초 자리잡은 적 없으니까. ...그저, 슬픔만은 존재하더라. (납득하지 못했다. 돌연 다가온 갑작스런 상황에, 이별에. 인사라곤 그간 해주지 않았던 진심이 담긴 편지 뿐이라는 사실에서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쌓아온 모든 시간들이, 한 순간에 너의 모습과 함께 흐릿해져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환상. 그 간극 속에서 만난 너를 따라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나치게 잔혹했던 현실이라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잖아. 우리의 약속은, 처음부터 나의 죽음을 가정하고 시작한 거였어. ...알고 있잖아? (하지만 너는 나를 살려냈고, 지금의 현실에는 오히려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입맛이 쓰다. 놓은 손을 구태여 잡지 않는다. 그 생각이, 얼마나 복잡할지 알 것만 같아서.) ...나는, 너에게 한 순간이라도 기쁨을, 만족을, 즐거움을, 행복을... 그러한 모든 감정을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다고 생각했어. 그걸로 된 거라고. ...하지만, 역시 이것도 완전한 답은 아니었던 걸까. 죽음 이후에, 너를 기다리며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잊기라도 한 듯...나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췄으니까. (네가 없어 불안정해지는 것은,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일 지 몰라.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 ...그래서, 너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당장 너를 따라가고 싶은데, 네가 죽은 건지 아닌 지도 알 수 없으니 무작정 일을 벌일 수도 없었어. 내게 남은 건 네가 남겨준 선물이자, 내가 너라고 생각하는 '라이아나'. 그 꽃 뿐이니까. ...그것만을 생각하며 몇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결국 모든 생각의 끝은, 늘 변함없이 너 뿐이었지만. 그 외로움도, 쓸쓸함도, 그리움도... ...무엇 하나 그 짧은 시간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리는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나 역시...이제는 너 없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하고.)
...너를 만나면, 가장 먼저 왜 그랬느냐고 화를 낼까 했는데. ...역시, 그건 조금 무리려나. 이해할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네.
...라이아나. 거짓말이라도 좋아. 돌아오겠다고, 내게 확신을 남겨줄래..? 다시 이 밤하늘을 같이 봐주겠다고, 내게 약속 해줄래..?
 
라이아나:응, 평화로웠지? 아무것도 안 해도,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진심을 담을 수 있었고, 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는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굳이 꾸며낼 필요 없이 모두 해봤으니까. 힘든 일도 없었고, 아픈 일도 없었고, 그냥, 정말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하루, 이틀, 사흘…이었을까. (있잖아, 네가 알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어. 작게 중얼거리면서 눈을 내리감은 채 고개를 기울인다. 밤 하늘에 대고 무슨 소원을 빌었냐면, 이번 생에, 죽음 이후에는 다시 만나도 좋지만… 우리가 모든 기억이 사라져 그 이후의 생을 살게 된다면, 다시 만나지는 않기를. 네가 네 삶을 온전히 누리며 즐기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소원이지만.) 슬퍼하게 만들었네, 미안. 몰랐다고는 하지 않을게. 그래도, 편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적어도 네가 아무렇지 않았으면 했어. (그럼 살아갈 날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래도 결국 너에게 난 그런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렇지, 비타. 네 말대로 달콤했던 나날들 이후에 온 것이 인사조차 하지 못한 이별이라니 씁쓸했지.) 원래라면… 그냥, 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자꾸 네가 했던 말이 걸려서, 발이 안 떨어지는 탓에 결국 거기 쓰러져버린 거거든. …갑자기 내 몸까지 사라져버리면, 넌 분명 날 찾으러 올 테니까. 만날 수도 없을 텐데 계속해서 찾으러 다닐 널 생각하니까, 마음에 걸려서. (쓴웃음을 지으며 진실을 고한다. 응, 나는 라이아나야. 너도 알겠지만, 진실을 숨길지언정 거짓따위는 입에 담지 않아.) ……비타, 나아가주겠니. 이제 그 시간에 멈추어있어야 할 건 나니까. 그 약속은 나한테는… 미래에 대한 기약이었지. 어쩌면 황홀하다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함께할 수 있는 날을 그렸어. 앞으로의, 미래의, 사후의, 모든 날들에. 그래도… 역시, 인간은 누구든 끝이 있기에 아름답지 않겠어. (너의 끝도, 나의 끝도… 모두 겪어내봤다. 네게 남은 것은 삶이요, 나에게 남은 것은 죽음이다.) 응, 그 꽃… 나야. 나라고 생각해, 비타. 생명은 결국 끝이 있어 시들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소중히 대해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을 테지. (내 빈자리가 조금이라도 그 꽃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름, 잘 지어줬네, 라는 생각도… 조금은.)
……거짓말 못하는 거 알면서, 무리한 부탁 하기는. (잠시간의 침묵, 그래도 마지막일 지 모르는데… 거짓 하나 입에 담는 것이 어려울까. …사실 어려워, 숨기는 건 쉬워도….) ……다시 이 하늘을 같이 볼 수 있도록, 돌아올게. 오래토록 혼자 두지 않을게. (언젠가 네가 했던 약속처럼. 진심으로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입에 담는 말이다. 네 손을 붙잡아 올려 그 끝에 짧게 입술을 대었다 뗀다.) …네가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까, 나도 널 홀로 두고 싶지 않아.
우리 여행이, 아직 끝이 아니길 바라고 있어.
 
바스타르:...조금 더 각별하고 평화로웠을 뿐이야. 너와 함께 한 나날들은, 전부 하루하루 새로운 평화와 의미를 지니고 있었어. 적어도, 내겐 정말로. (하지만, 지난 사흘이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역시 우리가 그간 여유가 너무 없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다가올 겨울의 죽음을 생각하고, 기다리며...그 시간을 되풀이할 뿐이었으니까. 새로운 의미를, 행복을, 삶을 찾아. ...아주 멀리도 걸어왔으니. 그렇기에 지난 사흘, 너와 함께한 시간이 더욱 소중했다. 진짜로 이 시간 속에 멈춰 살아가고 싶을 만큼...하지만 그런 것을 바라선 안되니 소원을 남기지 않은 것처럼. ...가능하다면, 모든 걸 잃어도 너에 대한, 우리의 지난 날에 대한 것은 잊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만이 남아있었으니까.)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 네가 남긴 편지를 보고 슬펐지만, 그만큼 내겐 네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다시 되새겼고- 다시 일어섰어. 네가 돌아오리라 믿으면서... .(그러니까, 내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달라는 것만큼 무리한 부탁도 없을 거야. 나는 네 빈자리를 앞으로도 느낄 테고, 그 자리를 끊임없이 그리워 하겠지. 하지만, 다른 것도 똑같이 변하지 않아. 네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것 만큼은...절대로 변하지 않겠지.) 그리 잘 알면서 이런 선택을 하고. 그리 잘 알기에, 이런 선택을 한 거겠지. ...알아. ...알고 있어, 라이아나.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내게 주었다는 것 만큼은 나도 이해하고 있어. (그런 배려를 해주는 지나치게 다정한 너이기에. 그 말대로, 나는 네가 그냥 사라진다면 언제까지고 찾아다닐 테니까. 쓴웃음을 보며 같은 쓴웃음을 짓지만. 이내 짓는 표정은 더없이 순수한 미소이다.) ... ...언젠가 돌아올 너를 위해, 나아갈게.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갈게. 너에게 했던 약속, 네가 나에게 해주었던 약속- 아직 무효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너와 나는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인간'이지만, 아직 그 끝에는 도달하지 않은 '생명'이니까. (그러니, 네게 남은 죽음을 내가 함께 하게 될 날까지. ...영원토록.) 네가 남겨준 라이아나와 함께,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
(제 손에 닿는 감각을, 그러한 순간을 가만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눈을 감곤 웃는다. 양손을 뻗어 당신의 왼손을 가만히 꼬옥 잡고 있길 짧고도 긴 간극... 밀짚꽃 사이의 작은 꽃을 꺾어내 당신의 손가락에 엮어 작은 꽃반지를 만든다.) ...내게 영원을 바라냐고 했었지. 나는 여전히, 영원을 바라. 그러니까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괜찮아. (이내 이번에는 이쪽에서, 당신의 손을 붙잡아 올려 그 끝에 짧게 입맞춤한다.) ...영원토록 기다릴게. 그리고, 영원토록 사랑할게. 네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깊은 밤엔 네가 있는 밤하늘로 찾아갈게. (나 역시, 우리의 길이 끝이 아니길 바라며...끝이 아니리라 믿고 있으니까.)
 
라이아나:응. (짧은 대답. 알고 있다, 이미 말해준 적이 있었으니까. 네가 자신과의 여행을 의미있게 생각해준다는 것도, 함께하는 날들에 힘써주는 것도, 소중히 여겨주는 것, 다정을 내어주는 것, 애정과 사랑으로 바라봐주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네 시선, 네 말, 네 행동 하나 하나에 모두 담아 전해주는데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꿈같던 평화였으며, 안정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외에 사랑을 하는 방법을 몰라, 그래서 네가 하는 것을 따라 배울 수밖에 없었어. …너와 있을 때만 드는 그 기분이, 나빴을 지도 몰라. 소중함의 크기가 커질수록 두려움도, 불쾌함도 커져서, 알 지 못하는 감각에 속이 쓰려왔다. 속이 울렁거린다.) 함께한 날들에, 나도 후회는 없어. 전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 어릴 적도, 그 때도, 그 이후의 지금도. 그리고… 이 꿈도. (나 역시 너를 소중하게 생각해.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마음 써본 사람이 처음이라, 진심을, 심연을 알고도 곁에 남아있겠다, 함께하겠다 이야기해준 사람의 말이 너무 기꺼워서. 되지 않을 꿈을 꿔버린 건가 싶기도 했다. 순간의 충동조차 견디지 못하는… 불쾌감과 불안정. 그걸 가진 게 나이기 때문에, 결국 상처입히고, 돌아서고, 후회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해서까지 거스르고, 거슬러서, 결국 죽음까지 간 너를 되살려 돌아오고.) …나는, 네 말대로 최선이었어. 너를 살리고 싶었어. (소중한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할 지 몰랐다. 내가 네게 부탁한 것은 죽음이었으며, 나는 이후의 소유를 바랐고, 결국 일련의 행동을 후회한 나는 되돌아온 지금에서야 소중한 이에게 대해야 할 행동을 안다.) 그러니 조금 더, 보다 너를 닮은 다정을 내어주고 싶었어. ('진짜' 다정, 따스함, 배려, 상냥함,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의… 소중함. 네가 나에게 주었던 그 사랑을, 그대로.) 부탁해. 이기적인 것 같아도 나는… 네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게 맞거든. 어디로 가도 좋아. 꼭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잖니. (우리가 예정했던 대로 많은 곳을 가고, 보고, 느끼며, 다시 돌아와… 정말 종착지라 여겨질 곳에 도착한다면, 그 때는 많은 것을 들려주었으면 해.) 보고 싶은 걸 잔뜩 보고, 천천히, 오래토록 이야기해줘. 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수 있게…….
…그래, 기다려줘. 만일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네가 나에게 돌아와. 나 역시 기다리고 있을게. (서로를 기다리며, 서로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지도.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하는 것은 기약없는 기다림. 서로가 없는 곳에서 서로를 그리는 일. 영원이라. 바라지 않고, 바라지도 않았으면 했지만… …결국 우린 영원을 이야기하는 구나.) …네 사랑은 늘 벅찼어. ……종종 내 생각해주면 꿈에서라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제 왼손에 끼워진 꽃반지를 한참 바라본다. 어릴 때도 꽃반지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과거의 잔재. 혹은, 현재의 증명.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 역시 꽃반지 하나를 만들어낸다.) …현실로 돌아가면 나도, 이 반지도 아마 없던 것이 되겠지. 그래도 , 나쁘지는 않지? 어떤 느낌인지만 기억해줘. (제게 끼워진 것과 같은 손가락에 마저 끼워준 후 천천히 손을 내린다. 그 뒤엔, 결국 웃음.) …나중에 진짜 만들어봐도 괜찮겠네. (픽 웃는 소리를 가볍게 흘리고는 눈을 내리감았다.) 영원토록 사랑하며 기다린다는 건, 생각보다 와닿는 말이네…. 그래도 있지, 만약 언젠가 지친다면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포기하고 싶다면 언제든 내려놓으렴. 그런다 해서 너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아. 내가 내린 이기심의 결과이며, 너의 다정의 결과이니까. 나를 위해 노력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쁠 거야. (불어온 바람에 가볍게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꽃내음을 맡는다.) 가장 아름다웠던 밤하늘을 너와 함께 볼 수 있어 기뻤어. 언젠가 너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볼게.
 
바스타르:...너에게 덧없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랐어. 우리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너에게 행복이라 할 만한 것을 남겨주고 싶었어. 하지만, 이젠 내가 먼저 깨달았어. 내 행복 또한 너로 하여금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아주, 아주 예전부터. 진작부터, 실은 알고 있었지. (고민없고, 꿈 많던 어린 시절. 사람의 세상은 나이를 먹을 수록, 성장이라는 것을 할 수록 회색빛으로 물든다고들 하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상은 회색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 네가 있었기에. 꿈을 찾으라 격려 하면서도, 확실한 것조차 없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네가 바라는 것이 내 죽음이라 생각하여, 나는 그 역할을 다 하려고 했어. 하지만, 지금 이 목숨 또한 네가 내게 다시 부여해준 거야. ...너를 기다리며, 나는 살아가게 되겠지. 너의 자리를 늘 곁에 두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우리의 지난 시간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 마치,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도 되듯... 아주 아주 멀게 느껴져서. 어린 날에 했던 약속도, 멀리 떨어져 지내며 주고 받았던 편지도, 다시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도, 서로의 지향점이 달라 반대편에 서게 되었을 때도, 그 이후에 새로운 약속과 미래를 적립하며 나아가던 모든 순간이... 저 밤하늘의 별처럼 멀게 느껴져서. 새삼, 우리 참...각별한 이야기를 써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너의 다정은 언제나 나에게 닿았어. 너의 다정은, 그 마음은...너만의 것이잖아. 너는 그런 소중한 것을, 몇 번이고...몇십 번이고. 나에게 내어준 거야. (너무도 소중하기에 모든 걸 내어주고 싶었다. 행복하길 바랐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것이 남들과 다름을 알았을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이유라면 나에겐 남들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죽음을 부탁 받아도, 그것이 너의 행복이라면 족했으니까. 그런데 너는 이제...내게 삶을 부탁하고 있구나. 우리가, 나아가는 언젠가를 바라봐주고 있구나.) ...언제나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너를 위한 이정표를 준비할게. 다시 밤새도록 함께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며, 그때는 각자의 시간에서 쌓아온 것을 서로에게 터놓을 수 있는...그런 순간을 위해서. (처음에는 네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것을 돕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네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그저, 너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도록... ... .)
...그럴게. 네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너에게 보여줄 많은 것을 쌓아가다가...네가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면 내가 너를 찾아갈게. 너 역시 나를 기다려준다면, 나는 언제고 너의 소리를 찾아 따라갈 거야. ...그때, 내 이름을 불러줄래? (언젠가 했던 약속. 서로 길을 잃지 않도록, 이름을 불러주자 했던 그 약속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맺는다. 둘 중 하나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순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그 섭리를 부정할 테니까. 그것이 닿지 않는 영원, 존재하지 않을 무한정의 세계라 하여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기다리며 다시 한 번 밤하늘에 손을 뻗는 거야.) ...몇 시간 보지 않았다고 금세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아마 내일 밤에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꿈이라 해도 괜찮잖아? 세상에 마법도 존재하는 모양인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것은, 이곳에 다다르기 전에 보았던 꽃의 생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 또한, 더 이상 죽음의 그림자는 머금지 않은 하나의 꽃과 같지. 제게 끼워주는 반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남긴 것이 이렇게 하나 더 늘었구나, 생각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고, 생각하지 않을래야 생각하게 되는, 우리의 미소를 닮은 이 순간을 더욱이 사랑하게 되겠지.) ...마음은 남고, 기억은 영혼에 새겨지는 것이지. 지금은 서로의 기억에, 마음에 새기는 반지지만- 나중에 돌아오면 더욱 근사한 것을 준비해 볼까. (현실에 남지 않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건 필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지금의 이 공간처럼. 마지막으로 웃는 웃음은 슬픔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은 하나도 서려있지 않은, 언젠가의 우리를 닮은 미소로 당신을 바라본다. ...어쩌면 마지막. 그런 생각을 품은 순간엔, 이미 당신을 깊게 포옹하며 끌어 안는다. 차가운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너를.) ... ...변함없이 빛나는 밤하늘, 그를 닮은 너에게 나는 언제까지고 너만을 위한 쉼터로 존재할 거야. (그러니까-) ...사랑해, 라이아나. 언제까지고 너를 기다릴게. 나 역시, 네가 있었기에 다행이야. (내 삶에 드리운 밤하늘은, 이토록 빛나는 것이었음을.)
 
라이아나:…응. 네 이름 하나 부르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불러줄게, 비타. 몇 번이고, 어디에서든, 불러줄게. 누가 먼저 돌아와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나. (하나 둘 들리는 작은 소리들. 지난 밤처럼 바람에 숲이 흔들리는, 꽃이 닿으며 바스락거리는, 너에게 몇 번이고 흔들리던, 내가 듣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너의 한 마디. 함께 돌려줘봐도 될까. 한 번쯤 입 밖으로 이야기해봐도 되는 걸까. 눈 접어 웃으며 너를 바라본다. 원한다면 몇 번이고 네 꿈에 나타나볼게. 내 마음대로 될 지는 모르겠다만…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네가 나를 기다리는 날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다정한 꿈을 내어줄 수 있기를…. 이 순간처럼 행복 가득한 순간을 너에게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세상에 빛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름답지는 못하였으며, 나는 어둠 속에 잠겨 있기를 택한 이상… 그 빛이 마음에 찰 리가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엔, 이건 내 마음의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단절된 생활, 모순된 사고, 내 모든 것들은 앞뒤로 꽉 막혀버려있었으니, 불안정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었으니… …그저, 그 빛까지 받아들일 여유가 되지 않았던 것일 지도. 반지를 바라보는 눈에 애정이 서린다. 손으로 몇 번 쓸어보다가, 시선을 올려 너를 바라본다.)
부디 기다려줘. 네가 있어서… 내 삶이 다시 빛날 수 있었어. (나는 사랑을 바랐어. 늘 과분하다 밀어냈고, 채워지지 않을 거라 여겼으나, 결국 네가 준 다정은 깨진 내 마음을 넘어, 나 자체를 채우기 시작했으니.) …너를 위한 밤하늘이 될게. 언젠가 삶이 벅차 힘이 든다면, 나를 보며 쉬어줘. 한껏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며, 네가 살아있음을 몇 번이고 되새겨줘. (품에 드리운 온기가 기꺼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함께 끌어안으며 몇 번,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이든, 재회를 위한 잠시간의 이별이든, 무엇이든 상관 없으니… 차분히 숨을 고르며 나지막히 네 이름을 불렀을까.) 비타.
나도 사랑해.
너와 함께한 과거를, 지금의 이 순간을, 앞으로 너와 만날 수 있을 그 미래를… 그리고, 너를. 함께해줘서 고마워. 응원해줘서 고마웠어. 사랑해줘서… …고마워. 그러니 기다려줘, 너와 함께하기 위해서… 돌아올 날을 나 역시 기대하고 있을 테니.
 
바스타르:고마워.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 역시 길을 잃지 않고 너를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그러니...네가 늦는다면 내가 너를 데리러 올게. (다시 한 번 더, 끊어지지 않을 약속을 맺으며 낮게 속삭인다. 너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하는 말 한 마디, 나는 여전히 너의 것이니까. 나의 영원은 너에게, 나의 마음도 너를 위한 것. 그리고 그런 너로 하여금 얻는 행복과 삶의 의미는 내가 얻고 있으니,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한 마디를 속삭여주는 네게 이 마음을. 역시 웃음이 가장 잘 어울리는 네게, 앞으로도 웃음을 주고 싶다.) ...네가 남겨준 마음이, 흔적이 있으니까. 나는 그것들을 지키며 너를 기다릴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 내게 들려준 그 진심이 너무나도 기꺼워서. 내 영혼의 끝자락까지 너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구나. ...빛이 가득한 별의 요람으로 가자, 라이아나. 너 또한, 어둠이 아닌 빛에 있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빛나는 밤하늘이니까. 너의 남은 불안정은 내가 받아갈 테니, 너는 부디 이 빛을 기억해줘. 너의 마음 속에 서린 빛, 나의 마음 속에 서린 빛. 그 어떤 빛과 비교해도 지지않을 만큼 밝게 빛나는...가장 영롱한 것을. 그 소중한 의지를.)
...천만에. 나 역시, 네가 있기에 아름다운 밤하늘을 거닐 수 있었어. (끝이라는 듯 말하지 않아, 유일한 사랑이여.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네 곁에 머물 거야. 너는 알고 있을까. 너의 사랑 또한, 내겐 과분하고...따뜻하고...너무나도 소중하여 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생명이 피어난다고 하는 숲은, 햇빛을 보며 살아가지만 드넓은 밤하늘을 통해 쉬어가곤 하지. ...라이아나. 난 너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 그리고 그런 나 역시, 살아있는 너의 온기를 느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밤하늘을. (더욱 더...큰 온기를 전하기 위해 힘을 주었다 풀기를... 등을 토닥이고, 그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주기를 몇 번. 우리는 지금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잠시 이곳에서 쉬어갈 뿐이야. 잠시간의 이별이라 해도, 우리는 결코 서로를 잊지 않고 그 곁에서 만나게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 불러주는 이 이름...잘 기억해둘게.)
...잊지 말아줘.
나의 다정은 너를 위한 것.
나의 마음은 너를 위한 것.
...나의 사랑은, 너를 위한 것.
 
바스타르:네가 이곳에 존재하는 한, 나는 반드시 그 곁에 남아. 그러니까, 새로운 내일을 위해 오늘 아낌없이 전부 털어낼게. 사랑한다고, 아낀다고, ...정말 보고 싶을 거라고.
너만을 위한 내가,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오리라고.
...약속이야.
 
라이아나:응, 약속할게.
너를 위한 미래를 그릴 거라고, 너와 함께할 미래를 놓지 않을 거라고. 다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네 마음을 나에게 한껏 이야기해줘.
잊지마, 비타.
나의 다정 역시 너를 위한 것.
나의 마음 역시, 너를 위한 것이며,
내 사랑도, 결국에는 너를 위해 존재해.
 
라이아나: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평소보다 조금은 길어질 두 번째 헤어짐.
 
한없이 그리워할 것이며, 조금은 외로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괜찮을 겁니다.
 
처음 그 이별보다는 짧을 것이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드니까요.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자 했으며,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고자 했고,
 
조금은 솔직해주기를,
 
주는 애정을 한껏 받아주기를,
 
함께, 살아가기를 빌었습니다.
 
소중하다는 말의 무게를 모르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의 무게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않겠다 약속한 한 마디가 기꺼워서.
 
품 안에 드리운 온기가 기꺼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달빛 아래 함께 나눈 반지가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죽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울어도 좋아요.
 
당신이 울고, 뒤이어 웃을 수 있다면.
 
...
 
...
 
…아,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입니다.
 
새로운 아침입니다.
 
분명히 돌아올 라이아나를 기다리며,
 
바스타르는 살아갈 것입니다.
 
...
 
...
 
라이아나는 밀짚꽃 속에서 살아가며,
 
바스타르는 남은 생을 살아갑니다.
 
:라이아나, 2년 후 생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