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크:... ...있지, 오늘도 달이 참 밝아. 그렇지 클라시카? (가볍다면 가벼운 발걸음. 약해진 몸의 무게만큼이나 잘은 발걸음은 마냥 조그맣게 울려퍼지기만 합니다.) 날은, 하늘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늘 맑아...
클라시카:그런가... (당신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가)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달이 참 밝아. (그리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달이 아닌 당신을 향한다.) 요즘들어 특히나 날이 맑긴 했지.
비아크:..왜 일까, 하늘도 그 무엇도 내 마음 하나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가볍게 네 옷깃을 살짝 그러쥐었다가 시선을 떨군다.) ...이렇게 예쁜데도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든 것 같아. (환한 달빛을 맞고 있는 너는 분명히 아름답고 무척이나 어여쁠텐데, 지금 당장에 바라본다면 초라한 저 자신과 비교될 것만 같았다.) ...황후궁에서만이라도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랄까..
클라시카:(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어린다. 언제나 그랬지만 최근에는 조금 더. 점점 더 힘들어보이던 당신을 떠올리다 제 옷깃을 쥔 손을 잡는다.) 행복해야 할 너인데 왜 이렇게나 시들어갈까. (이유는 알고 있지만 입에 담기에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일. 한탄하듯 중얼거린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 말아. 널 위하는 사람이 아직 있잖아.
비아크:원해서 온 자리도 아니었는데.. 네 말대로 행복할 수도 없어.. 아주, 아주 조금도.. (손이 맞잡히자 마음이 약해지는 건 왜일까. 황후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지만, 황후라고 하기엔 난 아직도 후작 영애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은 걸. 붉어지는 눈시울에 고개를 떨군 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시선을 네게로 올려본다.) ...네가 날 위해줄 거야? 내 행복을 바라주는 사람은, 이젠 정말 거의 없어.. (잡혔던 손에, 이번에는 저가 힘을 주었다.)
클라시카:이럴걸 알았으면 차라리 가지 말라고 생때라도 부릴걸 그랬지. (이미 지나간 일이라 담을 수 있는 말이었다. 만일 정말 그랬다 한들 당신의 자리는 개인이 걸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너 외에 누굴 위하겠어. (사실이었다. 자신이 궁에 들어온 이유는 오로지 당신의 안위와 행복 뿐이었으니까. 황제를 향한 충성이 아닌 당신만을 위한. 들키게 되거든 내일 당장이라도 목이 달아나겠으나 별 수 있나. 황제란 인물은 영 정감이 가지 않았다.)
비아크:그러게.. 나도 가지 않겠다 이야기라도 해볼 걸 그랬을까. 네게라면 분명 기쁘게 붙잡혔을 거야.. (지금보다 훨씬 더 약했던 그 때, 남의 이야기는 무시하지를 못하는 성정. 거절도 무엇도 하지 못해 그저 정해진 수순처럼, 남들이 정해준 대로 이 곳에 당도했다. 그 결과는, 지금껏 제가 겪었던 무엇보다도 비참했다. 후회했다.) ... ...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황후. 이 궁에 역시, 그 누구도 있지 않겠지. 그러니, 작은 욕심 한 번만 부릴래.. 무엇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그런 생각과 동시에 네게 기대어 허리를 감싸 안았다.) ...클라시카, 나... 최근에 정말, 정말로... 상태가 안 좋아. (그게 어떤 의미로든. 어찌 보일지 모르는 낯을 보이지 않으려 네 품에 가만 제 얼굴을 묻는다.) 괜찮을 지 모르겠어..
클라시카:(이래도 괜찮은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으나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황제란 자는 자신의 부인이 무얼 해도 관심조차 없을테니. 그러니 잘못한 것도 원인을 제공한 것도 그쪽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마주 안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였을까. 오늘따라 작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문득 슬퍼온다.) ...많이 안 좋아보여. 안 괜찮을 것 같아. ...비아크. 필요한 거나 해줬으면 하는게 있어? (어쩐지 당신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해낼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아크:... ...당장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행복해져.. 아주 조금이라도, 그게 너라서.. (도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무엇이더라도. 하지만 제가 무얼 한다고 해도 바뀔 수 있을 리 없다는 생각 역시도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를 않는다. 내 유일한 도피처, 무엇보다 소중한 이.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아껴서...)..이대로라면 정말... 언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작은 중얼거림을 남긴채 네게서 조금 떨어진다. 애써 웃어보이는 낯이 조금은 처연해보였을지도 모른다. 황제, 황제 폐하. 차라리 황제에게 사랑받지 않아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그리 생각한다. 정말로, 진심으로 사모하는 당신에게만 나를 내비출 수 있으니까. 거짓된 사랑을 뱉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클라시카:네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작게 미소지었으나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는 당신에 미소에 착잡함이 섞인다. 왜 당신은 행복할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왜 당신은. 어째서. 그리고 이 물음은 결국 황제를 향한 원망으로 끝난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 말... (안 하면 안 되느냐고. 하지 말아달라고. 뒷말을 삼키곤 당신의 뺨을 쓰담아본다. 어째서 당신은 이런 상황에도 웃는걸까. 차라리 웃지 않는다면, 눈물을 보인다면 도피라도 할까, 하는 말을 입에 담아버릴텐데.) ... 죽는다면. 그 날엔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비아크:네 덕분이니까,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그래도 괜찮을 걸. (황후의 행복이잖아. 네가 나의 유일한 행복이자 이유잖아. 어떻게 해서든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쥐고 싶어한다. 나는, 이 나라의 황제도, 권력도, 그 무엇도 원하지 않았는데.. 원하는 것은 제게 안겨주지 않았고, 되려 원치 않았던 것은 제 곁으로 하나 둘 흘러 들어온다. 모든 게 원망스럽다. 황제도, 이 나라도..) ...그러게, 조금이라도 내렸으면.. 그런다면 죽어서나마 조금은 기쁘게 웃을 수 있을까, 내가.. (하늘에 내리는 비보다는, 네가 울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기적인 마음은 접어두기로 한다. 네가 운다면, 나는 죽음에서 회피하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제 뺨을 쓰다듬는 네 손길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내리감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뜨며 너를 올려다본다.) ..주고 싶은 게 있어, 클라시카.
비아크:응, 갑자기...라도. 옛날부터 주고 싶었던 건데.. 줄 기회를 매번 놓쳤거든. (네가 받아들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봅니다.) 분명.. 너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
클라시카:너한테도 잘 어울릴텐데, 이렇게 줘버려도 괜찮아? (아름다운 노란 빛이라. 당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비아크:지금은 나보다는 너와 더 어울려, 나한테는 네가 무엇보다도 빛나게 느껴지니까.. (소중하고, 또 애정해서. 그래서 네가 가져주었으면 한다. 사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심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친구로서 한 번쯤은 네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클라시카:(어울린다는 말이 잘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당신이 그렇다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납득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은 자신보단 당신이 더 잘 알테니까.) 이렇게 선물받아버리고 나면 나중에 볼 때마다 너 생각날거같은데. (오래오래 볼 수 있는 선물은 이런 단점이자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 물론 이걸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수 있다면 자신에게는 장점이었지만.) 평소에 쓰진 못하겠다. 잃어버리면 속상할 것 같아서.
비아크:(네가 나를 생각해준다면, 그건 나에겐 좋은 일이야. 언제나 말갛게 달이 하늘 위로 떠오를 때면 저는 언제든 너를 떠올렸다. 작은 창 밖으로 바라보는 달이 너와 닮았어서.) ...그럼 소중히라도 간직해줘,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 깊으니까.. 난 네가 날 오래, 많이 생각해준다면.. 좋아. (잘 넣어두었다가 보고 싶을 때 꺼내보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
...이제 슬슬 들어갈까, 역시 밤이라 조금은 쌀쌀한 것 같아..
클라시카, 침실까지만 데려다주지 않겠어?
클라시카:건강해야해... (쌀쌀하단 말에 걱정이 되어 당신을 바라보다 이어지난 말을 듣곤 정중히 한 손을 건낸다. 에스코트의 정석이 아닐까.) 물론이죠. 안전히 모셔드릴테니 좋은 꿈 꿔야 해요. 따뜻하게 이불 꼭 덮고.
비아크:(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에 말갛게 웃음을 짓고는 네 손 위로 제 손을 올린다.) 잘 부탁해..
시녀장:그러니까, 저와 저기 있는 하녀 두 명, 그리고 시녀 한 명.. 저희 네 명이 황후 폐하의 목욕 시중을 들었습니다. 분명 그때까지 별 문제가 없었는데…. 폐하께서 물에 몸을 담근 채 잠시 잠에 드셨어요. 한 시간 정도 목욕을 한 후 침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으셨고요.
황후 폐하의 머리카락을 말려드리기 위해 타올을 든 순간, 갑작스럽게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쓰러지셨고요. 하녀 하나가 월도프 자작님을 부르기 위해 급하게 나갔다가 돌아왔으나,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텐데.. 그 사이에 폐하께서는 이미….
월도프 자작:제가 지금껏 황후 폐하를 모셨을 때 특별한 질병은 없었습니다. 최근에 진찰을 받으셨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음이 분명 한데….
클라시카:(제 얼굴을 문지르며 시신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의사-자작에게 묻습니다.)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월도프 자작:글쎄... 무어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네만,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전하께서도 승하하신 후였지... 당장 검시한 바로는 눈에 띄는 상처도 없고 말이야..
지금으로써는 쉽게 원인이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소. 어느 의사를 불러다 놓아도 비슷하게 말할 거요. 이거 참…….
클라시카: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 그렇다면 독살의 가능성이 있습니까? ...병으로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월도프 자작:나도 마찬가지요. 저런 병은 듣도 보도 못했지.. 의사인 나조차도 전혀 들은 바가 없는 일이외다. 독살이라고 한들 저렇게까지 저렇게 칠공에서 피를 쏟으실 정도라면... 그래, 차라리 갑자기 외부에서 큰 충격.. 공격 같은 것을 받아 내장이 크게 손상되는 급의 상처를 입어야하니 말이오. 멀쩡하시던 분이 갑작스럽게 저렇게 되셨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
클라시카: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군요... 외상은 없으나 내상만으로 이런 상황이 되는 것은 어렵고... 병도 아니고 외상도 아니라면 남은 방법은 적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시신을 살펴봅니다.)
클라시카:(언제나 사람 대하는 건 쉽지가 않았지... 약간 가는 눈으로 보석함 보고있다가... 말재주를 한 번 더 써보기로 하고...)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나 평소 아끼시던 것이 사라졌습니까? 귀중품이 사라졌다면 조금 문제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로 누명을 쓰기에...)
말재주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녀장:값비싼 보석들이 여러 개 사라져서 말이네. 악세사리들 중에서도... 화려한 보석 몇 개만 뚝 떼어져나가 사라진 게 많아. 찾아봤는데도 보이지를 않네.
클라시카:그게... 왜 사라졌답니까...? 활후 폐하께서 직접 나누어주신 것은 아닌가요? (요 근래 귀중품을 나누어주는 일이 있진 않았을까. 하지만 시녀장이라면 바로 최근까지도 보석함을 확인했을텐데 눈에 띌 많큼의 변화가 있었을까...)
시녀장:아, 그러고보니.. 확실히 최근에 모시는 아랫사람들에게 자꾸 선물 같은 걸 주고 그러지 않으셨다고들 하던데. 갓 들어온 시녀 아이가 갖기엔 과한 귀품을 내리시거나, 하녀에게 금화를 쥐여 주시거나… 자네도 들은 적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그런 말씀도 하신 적이 있지.‘내가 이런 상태로 오래 살지는 못할 테지. 언제고 나쁜 일이 생기면 자네들은 내 친정에 추천서를 부탁해 좋은 곳으로 옮겨 가도록 해. 그 정도는 도와주시겠지…….’
클라시카:(같이 표정 어두워지고...) 그래도.. 황후 폐하께서 궁의 사람들은 많이 아끼셨나봅니다. (그러고보니...) 그러고보니 황후 폐하께서 최근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가 봅니다. 그만큼 근래 상태가 나빠지셨던 겁니까?
시녀장:그래, 그 때문에 놀란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어. (뜸) 전하께서 최근 심하게 아팠던 적은 없네, 늘 두통을 호소하고 소화를 힘들어하시긴 하셨지만.. 그건 아마 만성적인 질환일게야.
클라시카:음.... ...시녀장을 믿어서 꺼내는 말입니다만... 혹시 음독 가능성이 있습니까? 방금 윌도프 자작과 대화를 해보았는데 외상도 마땅히 없기에 가능성이 있다면 음독이 아닌가 하고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수상한 자가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시녀장이라면 알지 않습니까.
시녀장:목소리를 낮추게. 암살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생각해 보게. 만일 이 사건이… 자네나 내가 생각하듯'우연히' '운이 나빠서'벌어진 일은 아니라 쳐도 말일세.
사교계에든 황궁에든 전하를 시기하거나 음해하던 세력은 넘쳐난다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전하께선 목숨만은 안전하셨던 게야.
어떤 집단이 한 사람을 겨냥하여 싫어하다 보면 그 자체로 일종의 결속력을 갖기 마련이지.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두가 ‘쉽게 물고 뜯을’ 대상으로.. 전하를 남겨 놓은 것이 수 년째이지 않은가?
폐하마저도 전하를 크게 홀대하셨지만.., 마음에서 멀어져 있는 것과 전하께서 그 자리에 계셔야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
…지금까지의 상황이 그랬다는 것이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무슨 음모가 꾸며졌는지 모르니 무어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무엇을 먼저 고려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구나. 다만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하께서 드시는 음식은 모두 몇 차례 기미를 거친다네. 그렇기 때문에 독살이라면 아무리 가까운 측근이라고 한들 시도가 쉽지는 않았겠군.
클라시카:어찌된게 점점 이야기가 미궁으로 빠지는군요... 혹시 오늘따라- 라고 말이 붙을법한 이상 증세나 낌새는 없었습니까?
시녀장:전하께서 최근 급격히 용태가 나빠지시기는 했다네.. 몸이 아프신 게 아니라 마음이… 큰 소리가 나면 지나치게 놀라시거나… 또 사람 앞에 나서야 하는 행사를 피하시거나. (목소리가 점점 떨려갔다.) 식사도 자주 거르시고….
클라시카:(같이 근심에 빠짐...) 마지막까지도 많이 힘드셨을까 걱정입니다... ...혹시 유언이라도 남기신 게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함께한 것은 시녀장일테니 유언이 있다면 시녀장이 들었을 것.)
시녀장:(잠시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는 듯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나도 혼비백산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 유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정말.
그러니까.. 목욕하실 때부터 차근차근 말해 보겠네.
저기 테이블에 있는 마들렌을 드시다 남기시고, 주무시기 전에 반신욕을 하고 싶으시다 하셔서 물을 준비했네. 욕실에는 1시간 반 정도 계셨던 것 같군. 원래 길게 목욕하시는 습관이 있으시네.
욕실이라 해도 혼자 들어가시는 건 아니고, 곁에서 나와 시녀 아이들이 쭉 시중을 들었고. 중간에 와인을 한 잔 드시고 잠이 드셨는데, 손발이 좀 차신 듯해 물을 더 데우고 내가 마사지를 해드렸다네.
그러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 깨워 드려 침실로 모셨는데… 내 기억엔 잠드셨다 깨신 후부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군..
시녀장:그리고 저기에……. (목이 메는 것을 참았다.) 화장대 앞에 앉혀 드리고, 하녀가 수건을 가져왔지. 막내 시녀 아이가 머리카락을 말려 드리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네.
그때에는 너무 놀라서 무엇이 이상한 줄도 몰랐는데,비명을…… 안 지르셨군. 숨소리 하나 안 내셨어.
클라시카:목욕 중에도 큰 이상은 없었나 보군요. ...음... (외상은 없으며 평소와 큰 차이는 없었다. 요 근래 상태가 나빠지기는 했으나 이는 정신적인 것. 그리고 보석의 일부가 사라졌고 독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거 진짜 정말로 독살인 게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 문제다. 황제라면 이를 빌미로 친황후파의 인물에게 누명을 씌우고 황권을 강화하려 할테니까. 그럼... 일단은 이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하고...) 다른 하녀들도 이상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진 않은겁니까?
시녀장:그래,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아이들은 없었네. 전하께서도 아이들에게 잘 해주셨으니 말이야. 자기가... (...) 죽게 된다면, 친정에 이야기를 해 추천서를 써준다고도 이야기했다고, 아까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런 분에게 악한 마음을 먹은 하녀는 황후궁에 없을 걸세.
클라시카:아무래도 그렇겠죠... ...상냥한 분이셨으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그리워지는 기분이 든다. 왜 좋은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나.)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히 알려준 시녀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이제 뭘 살펴보나 보다가 벽시계를 슬 봅니다..)
선배:(퀭한 낯 보고 움찔합니다.) 그, 그래 못 잤구나.... (아,) 어제 일 때문에 장난 아니게 시끄럽더라? 황후의 시신은 수습되어 관으로 들어갔어. 피를 토한 것 외에는 상한 부분이 없어 처리가 쉬웠다고 이야기가 돌기도 하고~…
황후의 아버지인 후작이 새벽같이 황궁을 방문해 엎드려 읍소했는데.. 폐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더라? 에잉, 무심하기도 하시지..
클라시카:하... 제 목이 언젠가 제 몸이랑 떨어지고싶어하거든 그날 제가 황제 친겁니다. 아시겠죠?
선배:...야야!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어!
아무튼 국장은 일주일 뒤래. 그렇게 천시하던 것 치고는 최소한의 예우는 해줄 모양이지~
클라시카:진짜 못난 사람입니다.. 황제는...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독살 가능성은 나왔답니까? 아. 혹시 안 알려졌나...
선배:음독인지, 중병인지 의사들이 밤을 새서 살폈지만 어느 쪽이라고도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던데? 근데 황후가 체력적으로 약하긴 했어도 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니까..,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아도 의사들의 말을 모아 보면! 음, 아무래도 행간에서 독살당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것 같더라고~
문제는 독살일 경우에는 황제가 책임소지를 피하기 위해 이 죽음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드러낼 의사가 없으리란 것 정도지?
정확히 어떤 의도로 살해한 것인지 모르니 다음 타겟이 황제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는 진행하겠지만.., 결과는 황제 폐하의 입맛에 따라 고쳐 발표될 게 분명하지~
가령 아무 상관 없는 황제의 정적 가문을 범인으로 몰아 처형한다거나, 반대로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 황제의 측근이라면 병사로 덮어 버린다거나?
클라시카:역시 황제를 쳐버려야....
아이고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하.... 선배님.. 혁명 일어나기 참 좋은 날씨네요. 그렇죠?
선배:에이~ 너 그런 이야기 함부로 하다가 혁명 일어나기도 전에 모가지 되는 수가 있어, 말은 좀 아껴라!
(주변 휙휙) 이건 정말 비밀인데.., 황제는 오늘 오전에도 업무 들어가기 전 정부와 만났다고 하더라? 진짜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부채질?)
클라시카:(눈 가늘게 뜨고 봄....) ...선배 사실은 저항군이죠?
선배:글쎄~ (큭큭 웃다가 어깰 으쓱거린다.) 솔직히 이런 소문들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잖아? 난 듣고 내 입 밖으로 내뱉은 죄밖에 없다!
사서 노인:음? (꿈벅 꿈벅.. 느릿하게 눈을 뜬 채 인자하게 웃어보입니다.) 허허~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책이라도 빌리러 왔는가?
클라시카:그게 아니라, 순찰 돌러 왔는데 검은 형체가 이쪽으로 가는 걸 봐서요. 다른 증언이랑 어느정도 겹치는 것도 있고~ 해서, 혹시 보셨나 하고. 수상한 사람 보셨습니까? 누가 지나가는 소리나 인기척이라도.
사서 노인:글쎄 말이야... 으음.. 소리는 못 들었고, 누가 지나가는 것 같기는 했는데 잘 모르겠네. 검은 옷은 모르겠고.., 어젯밤에 황후 전하를 뵙기는 했어. (가볍게 웃음 소리도 흘린다.) 잘 모르겠구만 그래~...
클라시카:...예? 그, 실례인 것은 알지만 혹시 잠이 덜 깨신 게....
사서 노인:그래, 내가 일어난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 (하품이나 쩍 해댄다.) 전하가 죽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꿈인가 생신가 잘 모르겠구만..
아마 늙어서 헛것을 본 거라곤 생각하지만, 꿈결이든 환각이든 어제 잠결에 뵌 기억은 있어. 나는 가시는 길도 못 챙겨 드렸으니, 귀신으로라도 한 번 더 뵈면 좋겠다고 생각하네만.. (저번에 본 게 진짜 황후 전하였다면 얼마나 좋을고...)
클라시카:저도 다시 뵐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련....) 하.... 수상한 사람을 봤지만 찾지 못했으니 큰일이네요. 혹시 누가 물어보거든 그런 사람 없었다고 발뺌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왕 못 잡은거 모른 척이라도 하게요. (어차피 황제를 위해 강화된 경비, 조금 빈틈이 있어도 상관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못된 생각)
사서 노인: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자네가 그래도 황후 전하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상심에 잠시 멍을 때린 것 정도는 이해해주어야지.)
사서노인:아, 혹시 괜찮으면부탁하나만 해도 되겠나?
클라시카:부탁이요? 네, 물론이죠. (생글..)
사서 노인:생각해 보니 황후 전하께서 책을 몇 권 빌려 가셨는데 그게 아직 안 돌아왔거든...
자네는 황후궁에 출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걸 좀 전해줄 수 있겠어?
클라시카:아하, 책을... (전에 방을 찾아봤을 때는 책같은 건 없었는데... 어디 숨겨져있나?) 어떤 책입니까? 제목이나 표지 생김새를 알면 찾기에 쉬울 것 같은데.
사서 노인:내 기억으로는 제목이 쓰여져 있지 않은 책이었어서 어떤 책인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래도 제목이 없다는 게 특징 아니겠나, 아마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
클라시카:제목이 없는 책이라... 알겠습니다. 상당히 특이한 책을 가져다 놓았네요. (비교적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도서관에 제목 없는 책이라니.) 그럼... 책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는 담요라도 두르고 졸고 계세요, 감기 안 걸리게~ (꾸벅 인사하고 책 찾으러 황후궁으로 향합니다)
클라시카:(바닥에 낭자한 고결한 피와 창밖에 내리치는 벼락. 그리고 당신. 당장을 감정을 어찌할 새도 없이 벼락으로 순간 밝아진 방안을 달려. 피로 얼룩진 바닥을 밟고. 당신에게로 향해 말 없이 강하게 끌어안는다.) .....살아있었어..? (목소리에 담긴 것은 오로지 안도감. 죽은 사람이 살아있단 것에 대한 충격도, 황제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혐오나 거부감도 아닌 단순한 애정과 우려였다.)
죽은 것들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아. 왜 그랬느냐고 원망하는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 잠깐이나마 멈칫하게 돼. 하지만 계속해서 발은, 몸은 움직였어. 마지막, 내가 죽도록 원망하고 미워하는 이 황제라는 작자를 죽일 때까지 항상, 한 번씩 몸이 굳었어. 그런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너 때문인 것 같아. 네가 언젠가 내가 이런 짓을 하면 나를 미워할까봐. 그래서, 모든 행동에 망설임이 어렸다. 네가, 나를...
비아크:(제 앞으로 향해오는 눈을 꾹 내리감는다. 어쩌면 회피, 또 어쩌면, 우려. 그와 동시에 제게 닿는 온기에 반사적으로 눈이 띄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갈 곳을 잃은 손에서 칼이 떨어진다. 짧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애정에, 안도에, 자연스럽게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는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네가 자신에게 하는 것이 원망이 아니라, 미움이 아니라, 안도를 했다. 네 목에 팔을 둘러 세게 끌어안으며 제게 닿은 몸에 온기를 더한다.) ...클라시카, (짧게 부른 것은 네 이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뱉는 첫 한 마디. 이름 하나에 애정이 담기고, 사랑이 담기고, 마침내 네게 닿은 그 목소리를 처연했던가, 아님 처절했던가.) 살아, 있어... 미안해, 내가 미안해... (무엇보다도 네게 못할 짓을 했다. 제 격노에 이기지 못해 네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언질도 없이 죽음을 모방하는 이런 짓을 저질렀다. 용서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클라시카:(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오지만 그 미안함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너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느낀 감정은 무력감에서 오는 절망이었고. 황궁에서의 살인사건을 목격했을 때 느낀 감정은 우스움이었으니. 네가 미안하다 한다면 저 또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준 네가.) 네가.... 살아있으면 다른건 뭐래도 상관 없어.. (자의 없이 밖으로 나온 말. 과거도, 현재도. 그래, 단지 당신이 살아있다는 하나만으로 현재를 맹신하게 되는데.) ... (네가 행복하길 바랐다. 네가 살아 행복하길 바랐고... ...그리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축복이라 느껴져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두번째 삶을 부여받은 기분까지 들었다.)
비아크:...내가, 밉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아? 황제를, 사람을.. 그렇게나 죽였는데? (네 어깨에 결국은 어깨를 묻는다.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자꾸만 시야를 가려서, 분명 빠르게 일을 끝마쳐야함이 분명한대도 단지 지금 순간을 조금만 더 느끼고 싶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껏 한 일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데. 나는, 나는...) 클라시카,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차마 입 밖으로 내비추지 못한 말이 꾹 다문 입가에 머무른다. 결국 눈을 꾹 내리 감았다가 천천히 너의 온기를 밀어낸다. 차갑게 얼어버린 손이 제 온기를 찾지만, 안 된다는 듯 제 반댓손으로 짓누른다.) ... ...여기 있지 마, 황궁 밖으로 나가, 해야할 게 있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 네가 이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까... 여기서 벗어나줄래? 난, 난... 너와 다시 만나게 된 게 너무 기뻐.. 이게 마지막이라도 해도,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죽은 황제 따위가 아니라, 나를 멸시하던 황제 따위가 아니라 너여서.. 그래서, 난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클라시카:(이어지는 잔인한 말에 파묻혀버리듯 끌어안다가도 당신의 손길에 저항없이 밀려난다. 그리고 제 손을 누르는 당신을 눈에 담으며 당신의 모든 말을 들었고.) 같이 가면 안 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말을 입에 담으며 당신의 옷가락을 약하게 잡는 것 뿐이었다.) 여기 있으면... 분명 널 잡으러 사람들이 올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자 하지도 않은 손으로 구속하려들테고... ....난... 네가 그따위 결말에 만족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문득 이전의 밤이 떠오른다. 맑은 밤하늘과 달빛, 선물... 당신이 약한 소리를 했다면 자신이 어찌 했을까에 대한 답... 어쩐지 이제껏 들은 어떤 말보다도 이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이 사무치듯 외롭게 느껴진다. 외롭고, 슬픈 말처럼.) ..같이 도망가자. 응...? (오해라도 상관 없었다. 자신이 느낀 모든 것이 거짓이고 오해라 할 지라도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테니까.)
비아크:...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중얼거림. 입 밖으로 내어서는, 너의 귀에서는 들리면 안 되는 말. 하지만 무의식 중에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말. 제 얼굴을 손에 묻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가, 다시 붉어진 눈가로 너를 바라본다.) ..도망칠 수 없어, 치고 싶지 않아. 난..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건 뭐가 돼...? 너를 사랑해, 네가 소중해,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이 나라를, 아니... 황가를 멸망시킬 거야. 다른 누가 왕이 되던 상관 없어, 그 뿐이면 돼, 그거면... (말을 그리 하면서도 몸이 네게로 한 두 발자국 다가서는 것은, 모순임에 틀림이 없다. 제 모순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동시에 너와 멀어지고 싶지도 않아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어지럽게 얽힌다. 제 옷깃을 잡은 손을 제 손으로 감싸쥔다. 너와는 다르게 온기따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창백한 손.) ...클라시카, 나는... 이 저주를 완성하고 싶어, 황가가 미치도록 싫어, 모두가 내게 조금이라도 미안해했으면 좋겠어,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원망하며 두고 두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혼백이 황궁을 언제 또 저주할 지 모른다며 두려워라도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한 손을 제 가슴 부근에 손을 얹었다.)마지막으로는 내가 필요해.(외롭고 슬펐던 황궁에 내린 유일한 햇살이자 저의 기쁨, 언제나 제게 행복만을 안겨주던 너에게 고한다.)이 저주의 마지막 제물은나야. 그러니까 나는.. 도망치지 않고 싶어.
클라시카:(몇 마디 중얼거림이 머리 속을 지나가고 입술이 떼어졌다 다시 붙기를 반복한다. 당신의 분노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에,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다 하여 무언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건내지 못하는 말들이... 어째서 당신은 상관 없다며. 두려운 말들을 입에 담으며 자신을 보면서도... 그 끝에 이게 자신의 행복이란 말은 하지 않는지. 왜 복수의 끝에 당신은 행복하지 않은 채로 죽고. ...저주가 내릴 것이다. 분명히 아주 어둡고 질척한 저주가 황궁을, 나라를 좀먹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확실하게 파멸을 향해 나아가겠지.) ....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당신의 한쪽 손을 놓지 못해 하염없이 그러쥐고 생각들을 떠나보내고.. 아, 역시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상하다고. 어째서 지금까지 고통받은 사람이... 그럼에도 당장에 그러지 말라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것은 분명 당신이 이토록 강렬히 원한 것은 이것이 처음인지라. ...그래도. 그럼에도 권유는.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도 전할 수 있는 탓에.) 난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비아크... (이딴 것들에게. 겨우 이런 하잘것없는 것들을 위해서...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서. 아니, 그저 너를 잃고싶지 않다는 이기심에. 미안함과 이기심으로 혼란한 감정을 억누르며 당신의 이름을 담는다.)
비아크:...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지 않았으면... 찰나에 담긴 말이 제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죽어버리려 칼을 들 순간에조차 나를 멈추게 만들어버릴 그 말이 그이어 들리고 말았다. 듣고 싶지 않았던 말,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 모순은 언제나 반복된다. 정 반대의 것들은 언제나 가장 다르면서도 가장 비슷했으니까. 자정과 정오가 같은 시침을 가르키는 것처럼, 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처럼.) 클라시카.. 난, 그럼 난...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해..? (네 이름을 입에 담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시선을 내린다. 한껏 풀어진 머리는 과거의 단정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황제도, 귀족도, 그의 측근들은 모두 죽였어...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죽음 뿐일텐데.. (이번에는 제가 네게 매달리듯이 옷깃을 꾹 눌러잡는다. 절박해서, 간절해서, 자신에게 해결책을 쥐어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너 하나 뿐이라서. 모든 걸 추락시키게 되더라도 너만은 추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제 추한 면모를 너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혼란의 연속. 자신은 무엇보다 분노했으며 무엇보다 간절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이라는 사람 앞에서,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무용지물인지라 결국엔 주저 앉아 무릎을 꿇는다.) 예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황후도, 후작 영애도 아닌... 나는, 무얼 할 수 있어..?
클라시카:...도망치자. (황궁 안에서 두 사람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이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설령 있다고 한들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무엇보다 이런 장소에서 더욱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니까.)같이 도망치자.황궁에서, 시선에서, 널 괴롭히는 것들에게서. (웃깃을 눌러잡은 손 위에 제 손을 겹치곤 당신과 손을 맞잡는다. 이 손이 붙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황후가, 후작 영애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아직 못해본 게 많잖아. 황후가 아닌, 후작 영애가 아닌 네가 되면 돼. 그러니까... 같이 도망가자. (그리고 다음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행복하다면. 후회하지 않는다면 평온한 죽음을.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자유와 도주를. 이대로 평생을 도망다니며 산다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비아크:네 삶을 내가 빼앗아버릴까 두려워.. (나 때문에,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혹여 네가 피해를 입게 될까봐. 아까도 너를 도망가도록 만들려던 건 그런 이유였지. 너는 황후의 측근이었다. 황제까지 죽이게 되었으니, 측근인 네가 죽은 황제의 곁에 있는다면 고문이나 문초를 받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도망친다고 해결되지는 않으나, 적어도 당장의 화는 면해야할 거라고 생각했다. 알리바이라도 있어야했다. 그러기 위해 내보내고 싶었다. 멀리, 어딘가로 가서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면 했다.) 이런 내가 너와 함께 있어도 괜찮아..? 네게, 무엇도 해줄 수 없어. 너를 도망자로 만들어버릴 뿐일텐데도, 괜찮은 거야? (온기, 그것은 명백한 사람의 것. 보통 사람보다 차가운 저의 온기를 언제나 따스하게 비춰준 것은 너였다. 내 온기에는 늘 너라는 사람이 섞여들어있었다.) 나... 역시, 저 사람들의 영혼보다는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네 손을 잡은 손에 약간은 힘이 들어갔다.) 곁에 있어줘.. 내 손을 잡고 여기서, 이곳에서 도망쳐줘.
클라시카:빼앗아가. 그래도 괜찮다고. 정말로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한 선택인걸. 내 삶을 지키는 대신 네가 사라진다면 그냥 뺏겨버리는 편이 훨씬 행복하니까. (마지막까지도 당신이 저를 걱정했다는 것이 슬펐다. 걱정받아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위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당신의 상냥함이 오늘따라 아팠다.) 괜찮아. 그 옆에 네가 있어줄 거잖아. 같이 있을거잖아. ...그렇지? (손에서 전해지는 압력에 조금의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며 잡은 손을 약하게 끌어당겼다. 이대로 도망치자. 황궁을 지나 빗속을 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