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내려놓곤 두어번 정도 접어서 봉투에 넣습니다. 오늘 갈 때 가져가야지... 하고.)
지능판정
이미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젯밤에 납골당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가는 길을 다시금 확인해보다 잠이 들었었죠.
왜일까요,
불과 하루 전의 일일 텐데.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슬슬 나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죠, 미로.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이미로:(시계 힐긋 확인하고 눈 깜빡...) ... 가야겠다.
다녀와서 모고 풀이하고... 오답하고. (작게 중얼거리곤 미간 꾹, 눌렀다. 이내 편지지와 휴대폰이나 지갑 등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해요..)
참으로 갑갑한 현실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와 함께 놀았던 때에는,
참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 말이죠.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이미로:(그 때는... 자유로울 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눈 살짝 찌풀... 밝아...)
한없이 맑은 깨끗한 여름날의 아침 하늘입니다.
그래,
분명 이런 풍경을 봤었죠.
그때는 그 아이도 함께 있었는데.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던가요.
분명 그때…
미로는 등교 중이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구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과
지면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소리.
그 아찔한 푸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던 것도 같습니다.
듣기 판정
이미로: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란한 매미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를 듣습니다.
이미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뒤를 돌아보면 천오가 팔을 크게 흔들며
미로에게 뛰어옵니다.
미로의 눈앞까지 달려온 천오는 헐떡이며 숨을 고릅니다.
땀방울이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이미로:(눈 깜빡...) 왜 이렇게 뛰어왔어. 지각도 아닌데.
천오:미로보고 뛰었죠! 몇 번이나 불렀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그래서 따라 잡으려고 엄~청 뛰어왔는 걸요. 잘 안 들렸어요?
이미로:아...? (그랬었나...? 일단 고개 끄덕.) 미안, 또 다른 거에 정신 팔렸었나봐. 천오가 부르는 줄 알았다면 진작에 돌아봤을 걸.
천오:말은 또 잘해요, 멍 때렸어요?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곤 언젠가처럼 등굣길을 걷습니다. 먼저 앞으로 가 뒤로 걷습니다. 너를 보면서.) 벌써 더위 먹으면 남은 여름 못 버틸텐데~
이미로:멍까지는 아니고... 그냥 오늘 해야할 거 생각. (자연스레 네 속도에 따라 발을 내딛었다. 말은 잘한다는 대목에서 작게 어깰 으쓱이기도 했고, 슬쩍 널 따라 바라보며) 글쎄, 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니까. 천오 너야말로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방금 땀 엄청 흘렸으면서..)
천오:하긴, 미로는 할 거 많기는 하겠다. (공부를 자주 안 하는 입장에서.. 미로를 보면 하루 일과가 공부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해서. 반대로 여유로운 제 모습은.. 미로한테 들키면 안 되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웃습니다.) ..저야 뛰어왔으니까 그렇죠! 안 뛰었으면 이렇게까지는 땀 안 난다구요. (대충 손등으로 땀 슬쩍 닦고..) 걱정마요, 최근에 아픈 적은 없으니까!
이미로:(공부도 그냥 해야해서 하는 편, 뭐든 그냥 흘러가는대로 순응해서 지나가는 편. 그런 마인드로 살아온 것이 바로 자신인지라, 그저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이 쯤에서 너는 왜 하지 않냐, 라고 잔소리를 해도 될만한 대목이긴 했지만... 어색하게 웃는 모습을 보곤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곤) ... 안 아프다니 다행이네. 더위를 안 타서도 다행이고.
... 그렇다면 공부하기 딱 좋은 상태 아냐, 천오? (넘어가는게 아니었다. 그럴리가 없지.)
천오:걱정마요, 예전만큼 그렇게 몸이 약하지는 않다니까요? (헤헤 웃더니 다시 뒤를 돌아 앞을 보고, 조금은 뒤에서 오고 있던 너와 나란히 걸으려 속도를 조금 늦춥니다.) ...윽, (결국 이렇게 되나.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뭐, 이게 미로다운 걸. 그래도 공부는 좀.. 괜히 제 머리카락만 손으로 베베 꼬며 만지작거리다가 발걸음을 조금 빨리합니다. 도망만이 살 길일지도..) 빨리 안 오면 두고 갈 거예요!
이미로:어딜. (턱, 하곤 앞질러가는 네 가방 윗걸이를 잡았다. (ㅍ_ㅍ...) 평소와 같은 걸음 속도로 가자는 듯 다시 발을 내딛고) 그래, 그래서 다행이라고. 공부에 좀 더 전념할 수 있잖아? (빠안...) 저번에 가르쳐준 공식은 외웠겠지. (잔소리 장전 중.)
천오:아! (잡히자 멈추고.. 괜히 미로 돌아보며 입 한 번 내밉니다. 미로 발걸음에 맞춰, 평소와 같이 걸으면서도, 시선은 조금 피하고..) ..넵.. 외웠습니다.. (물론 아마도..) 알았어요! 공부 할게요..! 열심히 할게요! (며칠이나 갈 지는 모르겠다만.)
이미로:(내밀어진 입 한 번,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한 번. 번갈아서 보더니, 눈썹을 슬쩍 올린채 널 내려다 보며 말해) 하기 싫어도... 약속한 거잖아? 무리는 안 시킬테니까 어느 정도까지만은 해봐.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작게 덧붙이곤 여전히 가방을 잡은채 걸었다. 놓을 생각이 없는건지 까먹은건지...)
천오:응, 그쵸.. 어렵긴 한데 혼자하는 것보다는 미로가 알려주는 게 훨씬 좋기는 한데.. (끄응, 한 번 앓는 소리 내고 자기 볼 한 번 챱, 손으로 해보고.) 미로가 무리 안 시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진짜 할게요!) 근데 미로.. 가방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곧 학교 도착하는데..?
이미로:(그런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긴 한데. 고갤 한 번 끄덕이더니 빤히 보며) ... 아, 맞다. (자각 못하고 있었는 듯, 눈 깜빡이곤) (...)
(눈썹 한 쪽 슬쩍 올리고) 의욕 떨어진 벌이야. 도착할 때까지만 잡고 가는 걸로.
천오:... (미로 말 듣고 얼굴 손으로 가립니다.) 애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상상도 안 되네요.. 누가보면 도망가다가 잡혀오는 줄 알 거 아니에요..!
진짜, 누가 벌을 이렇게 줘요.. 문제집보다는 낫긴 한데..
이미로:... (슬쩍 보곤 입꼬리 1mm 정도 올림) 그러려나? 그것도 나름 맞는 것 같은데.
그럼 앞으로 벌은 이런 종류로 해야겠네. 난 불만사항은 적극 반영해주거든. (농담..)
천오:도망가지는 않거든요, 등교도 제 발로 했는데..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며 조금 뚱한 표정으로 미로 돌아봅니다. 이어지는 말에 동공지진) ..농담이죠? 미로는 농담이 농담같지가 않아요.. 그리고 적극 반영은 이럴 때 하지 말아달란 말이에요..!!
햇빛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 아래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땀이 맺힙니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아요.
그래,
분명 너는 이렇게 나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올해의 여름에도 나의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너는 어째서,
…
…
눈을 깜빡이는 순간, 풍경이 뒤바뀝니다.
미로가 있는 곳은 집 앞.
여전히 푸른 하늘에
아무렇지 않게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요란한 매미소리와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줄지어 선 가로수의 잎들.
평화롭게 흘러가는 여름의 풍경입니다.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요?
이미로:...아.(눈을 느릿하게 한 번 깜빡, 이내 빠르게 두어번 깜빡였다. 무언가 정신이라도 차린 것마냥 주변을 둘러보고, 이내 제 미간을 잠시 꾹 눌렀다 떼어내곤)
... ... (정신 차려야지. 혼자 그리 생각하곤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미로가 어느 정도 걸어가면,
빠르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이미로:(그러니까... 내가 타야하는게 뭐였더라. 노선표가 있다면 확인해봅니다.)
주위를 살피면..
벤치와 버스노선표가 보입니다.
이미로:(슬쩍버스 노선표를 읽어봅니다.)
이곳에 오는 버스들이 적혀 있는 노선표입니다.
미로가 타야 하는 버스도 있네요.
그걸 타면 천오의 납골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래 기둥 쪽에
주인 없는 자전거가 묶여 있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묶여 있었는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녹이 슨 부분도 보이네요.
아,
그러고보니,
그 아이도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죠.
주인이 사라진 너의 자전거도
저렇게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오와 같이 그 자전거를 탄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죠.
그때, 천오는…
천오는 갑자기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서툴지만 들뜬 듯 자전거를 끌고
미로에게 조잘거리며 자랑을 합니다.
천오:미로! 저 자전거 샀어요. 부모님이 뒤늦게지만? 퇴원 선물로 사주셨는데.. 혹시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천오:(..뭐지? 방금 엄청나게 뭔가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던 거 같은.. 기분탓이겠지?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이내 웃습니다.) 어, 잘됐다. 알면, 알려줄래요? 나 진-짜 어릴 때 한 번 타보고 안타서.. 잘 모르거든요~
이미로:(이 외에도 많은 생각을 가만히... 하다가, 눈을 깜빡거리곤 바라봐) ... 그럴까. 대신 조심해서 타는 걸로.
천오:아, 좋아요! 조심 할게요. (고개 끄덕 끄덕!) 그러면.. 미로가 먼저 시범 보여줄래요? (자전거 한 번 봤다가, 미로 바라봄..)
이미로:시범... (천오 한 번 봤다가, 자전거 바라봄...)
그래, 그러지 뭐.
천오:오예~ (ヾ(≧▽≦*)o)
뭔가 여러모로.. 미로한테 뭔가 많이 배우는 거 같네요
이미로:... 나도 잘 타는 편은 아냐. (...─_─)
그러게. ... 진로를 이 쪽으로 잡아볼까 싶기도 하고. (장난임.)
천오:저보다는 잘 타잖아요~ (그럼 된 거 아녜요?)
(작게 웃다가) 미로라면 잘할지도? 물론~.. 하나 끝낼때까지 집에 안 보내주는 선생님이 될 것 같긴 한데..
이미로:(그런가? 그럴 수도... 그렇다고 치자. 이내 잠시 곰곰 생각해보더니...) ...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하네.
차라리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나보다 천오 쪽이 어울릴지도. 애들이 좋아할 것 같으니까.
천오:음? (눈깜박이다가 갸웃..) ..하기엔 제가 못하는 게 너무 많은데.. (머리 긁적..) 아, 어린이집 봉사활동 같은 건 잘할 자신 있어요! 사촌 동생들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귀엽잖아요. (조잘 조잘)
이미로:oO(완전 선생님 타입인데...)
그렇다면 뭐... 나중에 정하면 되겠지. 아직 고민해볼 시간은 많으니까. (슬쩍 자전거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밉니다.)
천오:(고개 끄덕) 그렇긴 하죠, 저 아직 1학년이기도 하고..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미로 앞으로 자전거 살짝 기울입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앉고나서 출발하지 말고 있어요, 먼저 가버리면 안돼요!
이미로:(1학년... 좋을 때지. ... 라기엔 자신은 저 때도 공부만 했음. (...) 조용히 기울여진 자전거를 받았다. 느릿하게 다리를 넘겨 타는 도중) ... 응? (왜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 끄덕.)
천오:왜긴요~ (미로가 타는 거 보고.. 슬쩍 뒤에 앉아요.ㅎ) 미로가 혼자 자전거 타면 쩌어~기까지 가버릴까봐요! 저 뛰기 싫어요 (핑계 맞음) 알려주는 겸.. 태워줘요!
이미로:(슬쩍 타다가 뒤에 인기척이 느껴지자(?)고개 슥 돌려 보고...) ... ... ...
하아... 그래, 천오 네가 그렇다면야. 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 (작게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곧장 페달을 밟고 출발합니다.)
미로는 천오를 뒤에 태우고 페달을 밟습니다.
갑자기 출발한 반동 때문일까요,
허리를 감싼 천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바람.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
페달이 돌아가고,
작은 자갈들이 바퀴에 짓눌리는 소리.
그 사이로 천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너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겠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
그랬을 겁니다.
꽃향기와 같은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습니다.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당신은...
덜컹거리는 충격에
미로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미로는 어느새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시야에 가득하던,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창밖으로 비칩니다.
그런데...
미로에게 버스를 탄 기억은 없습니다.
이미로, SANC
이미로: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 ...뭐야.
이성 1 감소합니다.
버스 안을 살펴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잠시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미로가 내려야 할 정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이미로:... (아, 내려야지. 조용히 하차벨을 누르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곧이어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미로가 버스에서 내리면
벤치와 노선표가 있는 작은 정거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미로가 갈아 탈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아요.
슬슬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도로는 달아올라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이미로:(환승은 이래서 귀찮다니까... 손으로 태양을 슬쩍 가려 올려봅니다. 밝은 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제멋대로 일렁거리는 공기의 흐름.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왜곡된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때도 천오와 이런 풍경을 보았죠.
수업이 일찍 끝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해가 한창 열기를 과시하고 있을 때 즈음.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눈앞이 온통 하얘질 만큼 아찔했습니다.
현기증에 세상이 핑 도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누군가 미로의 눈앞에서 손을 흔듭니다.
하얗게 변해가던 시야 한가득
그 손짓이 담깁니다.
천오의 손입니다.
천오:흐음~ 요즘 자주 멍하니 있네요. 더위라도 먹었어요? 하긴, 최근들어서 엄~청 덥긴 덥죠! 아, 아니면 혹시.. (눈치) 나랑 있는 거 별로 재미 없어요?
이미로:(!) (눈을 조금 크게 뜨곤 깜빡, 이내 손을 따라 시선을 내려 널 바라보곤) ... 아? (고개 슬 내젓고) 그럴리가. 천오도 알잖아, 나 평소에 생각 많은 거.
천오:그건 그렇긴 하죠~ (웃음 소리 흘리며 고갤 끄덕입니다.) 당연히 농담이에요! (빤히 바라보다가 앗!) 아이스크림 흐르잖아요! 빨리 먹어요, 빨리! 그러다가 손에 묻으면 엄청 끈적거릴 거라구요..!
그 말에 손을 바라보니,
미로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고 있습니다.
이미로:아. (눈을 깜빡거리곤 한 입 베어먹습니다. 달아...)
천오:손에 안 묻었어요? 묻었으면 내가 손수건이라도 빌려주게.. (고개 빼꼼. .하며 미로 바라봅니다.) 가끔 아이스크림 먹으면 가끔 그 때 생각도 나는 거 있죠~ (그 때도 아이스크림은 맛있었지만?)
이미로:(우물...) 괜찮은 것 같은데? 뭐, 어차피 또 녹을 것 같으니까... 다 먹고 씻는게 빠를지도. (우물거리며 빼꼼거리는 천오 내려다보다가) (그 때?아.) ... 그러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천오:아, 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계속 여러 번 딖을 뻔 했네.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 끄덕거립니다.)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는 않았죠? 솔직히 지금 보내는 하루들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엄청 오래 전 일 같은데.. 아, 물론 미로랑 만나서 좋은 건 변함 없지만!
이미로:... ... (빈말이라도 빌려달라고 했어야 했을까, 대답을 잘못한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 중. 이내 눈을 깜빡이곤 다시 네 말에 경청하더니 고개 끄덕.) 하긴, 그 후로 정말 별 일 없이 지냈으니까. 오히려 그 날이 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지만 꿈은 아니겠지. 천오랑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천오:(항상 보지만, 생각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단 말이죠. 괜히 제가 혹시나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건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미로라면 말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 표정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요. 네 말에 너를 보며 웃는 게 전부입니다.) 꿈.. 꿈같기는 했죠, 솔직히 지금도 꿈 같고.. 뭐, 그래도! 그게 꿈이었으면 미로랑 이렇게 걷지도 못할 거 아니에요. 다행이지 않아요?
저, 나중에 미로랑 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구요~
..
지능 판정
이미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3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라.
천오가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이건 그의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텐데,
미로의 기억 속 천오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길이 갈리는 갈림길.
천오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이미로:(...? 기분탓인가. 작게 중얼거리곤) ... 그래, 나도야. (손을 작게 흔들곤) 그러니까 내일 보자, 천오.
천오:아, 벌써 여기까지 왔네.. (괜스레 느껴지는 아쉬움에 하굣길을 한 번 바라보다가, 네 말에 너를 보고 손을 흔듭니다.) 응! 내일 또 봐요, 미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선 순간.
미로는 또 다시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 해의 여름에는 빈혈이 유독 자주 왔었죠.
타는 것 같은 목과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시야.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습니다.
천오:어? 미로?
미로를 보고 크게 손을 흔들던 천오가
당신을 발견하고 다가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천오의 모습과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버스 기사:...생
학생!
이미로:... .... ...
(!) (눈을 크게 뜨곤 바라봐) ... 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버스가 멈춰서 있습니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버스기사가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갑니다.
버스 기사:안 탈 거야? 날도 더운데 왜 거기서 자고 있어? 더위 먹으려고 그러지.
이미로:... ... 아, 탈 거에요. (눈 깜빡, 이내 버스에 올라탑니다. 더위는 진작에 먹은 것 같은데...)
그래,
더위라도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미 죽은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 기억이 그렇게나 생생한 것도.
더워서 헛것을 보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전부 다 여름이 너무 더운 탓입니다.
미로가 버스에 올라타면 버스는 출발합니다.
덜컹거리는 차체와 그에 맞추어 흔들리는 손잡이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반짝이는 먼지 입자.
그 모든 것이 마치 꿈속처럼,
몽롱하기만 합니다.
..
한참 버스 안에서 앉아 있다보면,
종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버스가 천천히 정차합니다.
납골당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미로:(조용히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봅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납골당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여전히 날씨는 찜통 같습니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미로의 눈에
앞에 위치한 꽃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깥에 놓인 꽃들도
뜨거운 열기에 축 처져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미로:(눈 깜빡.) ... 꽃이라도 사가야하나.
(납골당에는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온 김에 사자는 마음으로꽃집으로 향합니다.)
확실히 천오에게 전할 꽃을 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꽃집 안으로 들어서면 주인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꽃집 주인:어서오세요~ 찾으시는 꽃이 있으신가요?
이미로:... 아. (꽃... 아는게 많이 없는데.) 혹시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 이왕이면 연주황색이랑 비슷한 걸로.
꽃집 주인:주황색이라.. 천수국이나 주황 백합도 많이 사가세요. 금잔화도 있고.. 아, 노란색과 비슷하긴 하지만, 메리골드도 있네요. (하나 하나 가르키며 꽃을 보여줍니다.)
이미로:천수국... (작게 중얼거리더니 이내천수국과메리골드, 그리고 흰색안개꽃를 차례대로로 가리키고는) ... 저렇게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너무 클 필요는 없고... 네.
천오:취향이 바뀌는 것 보다는~.. (으음, 잠시 뜸 들이다가 고개를 내젔습니다. 평소와 같이, 웃으면서요.) 아니에요, 역시 그냥! 미로 말대로 변덕인가봐요.
점심시간의 옥상이었습니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서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처음 옥상을 왔었던 때와는 다른,
고요하지 않은 일상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느 때처럼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살랑거리고…
꽃향기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천오:아, 밥은 잘 먹었어요? 학년이 다르니까 같이 먹을 수는 없는 게 쪼오금 아쉽네요..
이미로:아... 어, 그냥 그런대로. (...) 학년이 같았어도 같이 먹긴 힘들었을 걸. (아무래도 여자애들끼리 먹으니까...)
천오:그런가? (곰곰) 제가 학교 자주 안 왔었다고~ 얘기 하지 않았어요? 밥 같이 먹을 친구.. 별로 없다구요. (반 애들이 착해서 같이 먹어주기는 하지만..?) 같았으면 전 같이 먹었을텐데.. (작게 중얼거리더니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립니다.) 옥상 보면 미로랑 처음 손 잡았을 때도 생각나고~ (장난스레 웃으며 너를 봅니다.)
이미로:(따라 곰곰...) 했었지. 그래도 창고를 알려준다던가, 그렇다길래. 애들이랑 사이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 그냥 애매하게 친한 그런 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고갤 기울였다가, 이내 동조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뭐, 같이 밥먹는 것 정도야. 라는 생각으로.) ... ... 그 때 생각나면 아직도 놀라. 그러니까 조심하고 지내라는 말이야, 천오. (또 떨어지진 않을까, 싶어 빤히 바라봅니다.)
천오:맞아요, 음.. 그래도 좋은 애들은 맞으니까요. 내가 학교를 자주 못 온 탓인데 누구한테 뭐라고 그러겠어요~ 어쩔 수 없는 거지! (괜찮다는 듯 웃곤,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윽, 두 번은 안 그런다구요! 잠깐 휘청거린 거 뿐이기도 하고.. 지금은 난간에 그렇게 가깝게 서 있지도 않구.. (웅얼 웅얼 거리다가 뒷목 매만집니다. 물론 제 잘못이긴 하지만/ 하지만 네가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잔소리를 꽤 듣더라도, 온전히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게 고마웠으니까.) 미로도 조심해요~ 저만 실수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저는 두 번씩 조심하고 있는걸요? 걱정 조금은 덜어도 될텐데!
이미로:(... ... ...) (뭔가 말을 잘못 꺼낸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 조용히 고갤 끄덕이며 네 말에 경청했다. 이내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나, 눈을 깜빡이기도 했다. 난간에서 휘청거리던 네 모습이 잠시 스쳐지나가고, 그래도 역시 걱정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의 결론이었다. 다시금 고갤 내려 널 바라보며 말하기를,) ... 물론 나도 실수는 하지, 사람이니까. (당연하게도.)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천오 네가 평소 덤벙거리는 것도 있지만... (눈 깜빡.) 그래도 꽤 소중한 친구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걱정할 수 밖에. (덤덤하게 말을 꺼내곤 따라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제 입장을 설명이라도 한 것 마냥, 납득이 갔냐는 물음 대신의 행동이기도 했다.)
천오:(항상 귀담아주는 건가. 경청하는 것도, 제 말을 듣고 생각해주는 것도 눈에 보였다. 하늘로 시선을 돌린 네 모습을 제 눈에 담았다. 그 날과 같이, 너를 보았다. 멈췄던 세계에서 함께 있던 시간은 길었지만, 어쩌면 한 순간이었지.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을 그 찰나. 그 찰나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느끼는, 소중함.)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요, 걱정해주는 걸 감사히 받는 수 밖에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중한, 그 단어 하나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미로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서로 조심하기. (아) 난 덤벙댄다고 했으니까.. 두 배로 조심할게요, 어때요? (괜찮죠? 하고 덧붙여 물으며 너를 바라본다. 시선에 담긴 네 모습에 항상 웃음 짓게 되는 건 왜일까. 여름이라, 조금 더 푸른 네 모습은 때때로 신기한 감정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금 이대로, 조금만 더 있고 싶은데..)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교실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에요.
천오:그만 내려갈까요, 미로?
이미로:그래야겠네. (끄덕) 수업 열심히 들어, 천오.
미로가 천오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바라본 순간.
툭,
툭.
붉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고,
바닥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천오가 당황한 듯 코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미로:(...?!)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급하게 다가가 코를 막아줘) 왜 그래, 어디 아파?
천오:..아,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닌데.. 요즘 자주 이러더라구요, 더워서 그런건지, 피곤한건지 잘 모르겠는데.. (약속한지 1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이러면 걱정할 거리만 더 만드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괜찮아요! 금방 멎을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진짜!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말합니다.
꽃을 닮은 웃음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향기로운 웃음.
금방이라도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웃음.
정말 언제나와 같은 웃음이었지만,
걱정되어서 일까요,
왜인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
미로는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서 있는 곳은 꽃집 앞.
미로의 한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이 들려있습니다.
분명, 꽃을 고르긴 했지만..
꽃집에서 받은 기억도, 계산한 기억도 없습니다.
또다시 일어난 기이한 현상.
이미로, SANC
이미로:... 정신이 없는 건지, 미친 건지.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미쳤나보네... 미간 꾹 누름.)
이성 1감소합니다.
너를 닮은 꽃.
네가 좋아할지도 모를 꽃.
너의 환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꽃도 샀겠다,
납골당으로 들어가볼까요.
이미로:하아... ...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누르고 있던 미간에서 손을 뗍니다. 이내 눈을 두어번 깜빡거리고 나서야 납골당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납골당의 안치실에 들어서면,
줄줄이 늘어선 유골함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좁은 공간에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중에, 천오의 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의 인생이 이렇게나 작은 곳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누군가 먼저 다녀간 것일까요.
유리 너머로 먼저 놓여있는 작은 꽃이 보입니다.
천오의 어릴 적 사진도 놓여 있네요.
사진 속의 천오는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
천오는 비를 좋아했던가요?
아니면 싫어했던가.
사진에서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날도 빗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와 발치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습니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가 쏟아져 내렸죠.
미로가 있던 곳은 학교 현관.
우산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아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뛰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누군가 미로의 옷자락을 당깁니다.
천오입니다.
같이 쓰자는 듯
자신이 들고 있는 우산을 내밉니다.
천오:먼저 간 줄 알았네요, 진짜.. (뛰어오기라도 한 듯, 숨을 고르고는 평소와 같이 웃습니다.) 같이 쓰고 가요, 미로 우산 없는 것 같던데.. (아).. 혹시! 같이 쓰기 싫으면~ 와이셔츠라도 벗어서 쓰고 달려갈래요? (장난스레 이야기하며 고개를 기울입니다.) 그치만 감기 안 걸리려면 이왕에 비 안 맞고 우산 쓰고 가는 게 좋잖아요! 있는 우산 안 쓰기도 뭣하고~
이미로:(뒤를 돌아보곤 눈을 한 번 깜빡거리더니) 천천히 오지 그랬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우산 있구나. 우산 한 번 힐긋, 이내 다시 널 바라보곤) ... 그냥 우산 쓰고 가자. 이왕 가져왔는데 안 쓰면 의미가 없으니까.
천오:아, 저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그건 몰랐네. 먼저 간 줄 알고 진짜 급하게 왔단 말이에요~ (환하게 웃더니 이어지는 말에 고개 끄덕입니다.) 좋아요, 그럼 가볼까요? (우산 팡, 피고.. 우선 넘겨줄지 말지 고민해봅니다. 안 넘겨주면.. 머리 다 눌리겠다.. 근데 재밌을 거 같은 기분이.. 그렇다면,) 이리와요! (안 넘겨줘야지~♪)
이미로:... 뭔가 천오 너도 우산 없을 줄 알았거든. (같이 택시라도 불러서 가자 하려고 했음.) (빤히 네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응?) (?)
... ... ... (...ㅍ_ㅍ (허리 숙여서스윾 들어감...)
... 천오, 처음으로 네가 새삼 작다고 느껴졌어.
천오:저 나름 준비성 좋은데~ 사실 엄마가 챙겨준 거기는 해요! 아침에 우산 가져가라고 엄청 얘기하셔서.. ((ㅇ▽ㅇ) 헤헤) ..저 나름 큰 편인데요! 170 넘는데요!? 안 작아요..!! 그리고 처음이면 새삼이 아니잖아요! (괜히 우산 휙휙 거리다가 팔 뻗어서 높게 들어요)
이미로:어머니께서 준비성이 좋으신가보네. (다행이라는 생각 중...)(ㅍ_ㅍ... ...)나보다 작으면 작은 거 아닐까, ... 라기엔 큰 편이긴 하지. (높게 들어주자 그제서야 허리를 조금 폈다. 가자는 듯 힐긋 보기도.)
천오:맞아요, 뭐, 걱정이 엄-청 많으신 거지만.. (미로처럼.. 하고 작게 중얼거립니다.) 그쵸? 큰 편이라니까요! (그제야 만족한 듯 웃다가 고개 끄덕 끄덕..) 물 웅덩이 안 밟게 조심해요, 우리 교복 밝은 색이라 튀면 세탁하기 엄청 힘들거예요..
미로는 천오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었습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발을 디딜 때마다 들리는 찰박이는 소리.
가까운 거리에 간간히 스치는 팔.
꽃향기가 코 끝을 스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향입니다.
그 향기가 주변 공기를 꽉 채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건강 판정
이미로:
건강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
눈 앞이 흐릿합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현기증에
지독히도 어지럽습니다.
...툭,
붉은 선혈이 흘러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코피가 나는 듯 싶습니다.
이미로:(...) (눈 깜빡, 거리며 보더니 제 코를 막습니다.)
천오는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미로를 바라봅니다.
천오:...! 미로, 괜찮―
그렇게 묻는 떨리는 목소리가, 빗소리가.
점점 귓가에서 멀어집니다.
…
퍼뜩, 눈을 뜹니다.
어느새 미로는 버스에 앉아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느껴집니다.
비도, 천오의 모습도,
익숙한 하굣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 밖의 하늘은
한쪽 끝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지난 걸까요.
마침 미로의 집이 있는
정류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이미로:(자신도 모르게 제 코를 슥, 막아봤다가) ... 아.
(다 왔네... 조용히 손을 떼곤 하차벨을 누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곧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는 서서히 멈춥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위가 한 꺼풀 식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흐르는 뭉게구름과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익숙한 풍경입니다.
꼭 오늘처럼 깨끗한 하늘이 인상적이었죠.
그 풍경 속에는 천오 또한 있었습니다.
그리운 향이 나는 그 풍경 속에…
방과 후, 교실.
활짝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붉은 하늘.
흔들리는 커튼과 함께 일렁이는 햇빛.
뒷문으로 막 교실에 들어선
미로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습니다.
천오가 죽기 일주일 전이었나요.
천오는 그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언젠가 흰 빛으로 보였던 머리카락은
노을의 빛으로 한껏 주황색으로 물들고,
그 아래 길게 자리 잡은 속눈썹이 눈에 보입니다.
한 순간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리며 뒤엉킵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천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미로:천ㅇ... (아, 말을 삼키곤 조용히 묵음. 이내 가까이 다가가선 빤...히 봅니다. 잘 자고 있나?)
정말 잘 자고 있네요.
이미로:(그렇다면... 깨우지 않기로 합니다. 차피 집에 가려면 걸어야 하니까, 푹 쉬었다 가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고.)
(마찰음이 나지 않도록 조용히 맞은 편 의자를 끌어 빼곤 앉았다. 이내 천오의 책상에 슬쩍 팔을 올리곤 턱을 괸 채로) ... 잘 자네.
작게 들려오는 천오의 숨소리와 미로의 말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하기만 한 교실입니다.
천오가 예전의 약속대로 공부라도 한 건지,
아니면 다른 걸 한 건지는 몰라도...
잠든 천오의 팔 밑의 책상에는
노트와 필기구가 자리해 있습니다.
이미로:(힐긋) ... (열심히 한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슬쩍노트를 흘겨봅니다.)
난잡한 글씨가 이리저리 적혀 있습니다.
..
꽃
병?
병원에 가보기.
부모님께는...
같은 단어들을,
간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관찰 판정
이미로: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0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아직도 많이 아픈가?)
이후는 잘려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이미로:... ... (눈썹이 순간 작게 꿈틀거렸다. 이게 뭐지? 천오에게 내가 아는 병 말고도 또 다른 게 있었던가?)
천오:..미로? (부스스.. 잠에서 깬 듯 작게 하품을 합니다.)
눈을 비비며 당신을 바라보는 천오.
그리고 그런 천오를 바라보는 이미로.
지능 판정
이미로: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아, 깼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선 바라봅니다.)
.. 그러고 보니,
천오가 최근에 자주 졸거나 잠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전에 아팠다고 할 지라도,
이렇게까지 자주 잠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기면증 증세가 시작된 걸까요?
천오:응, 미안해요, 졸려서 잠깐 잔다는게.. (눈 부빗거리다가 웃습니다.) 많이 기다렸어요?
이미로:(웃는 낯을 보곤 슬 고갤 내젓곤) ... 아냐, 나도 방금 막 왔어.
... 있잖아, 천오. 너 혹시... (신문에 나온 병에 대해 물어봐도 되나? 상처 받으려나? ... 따위의 생각이 문득 들어 말 끝이 흐려졌다. 어떻게 물어봐야 천오가 괜찮을까.)
천오:다행이다, 오래 기다렸으면 진짜 미안할 뻔 했네요.. (다음부터는 잠을 좀 깨면서 내가 기다려야지, 하는 작은 중얼거림고 함께 제 볼을 당겨봅니다. 브에―..) 응? 왜요, 미로? (미로가 뜸 들이는 건 흔치 않았던 것 같은데.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너를 바라봅니다. 눈만 깜박거리다가,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생각도 해보고.) 혹시, 뭐요? 나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이미로:(브에ㅡ... 보고 입꼬리 3mm 정도 올라갔다가 내려감.)
(이내 손으로 입가를 슬 가리곤 눈 깜빡.) ... 아니야, 아무것도. (...) 그냥 공부 열심히 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 역시 물어보지 않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막 자다 깬 애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좀 그렇지 않나? 아무래도 그렇지.) 피곤한 것 같길래 봐주려고.
천오:(뭐지? 오늘따라 묘하네.. 뭔가 다른 할 말이 있었던 건가..? 싶지만 괜히 캐묻지는 않습니다.) 아, 오늘은 물어봐도 되는데..! 나 오늘 수업 나름 잘 들었어요! (네 말에 거짓말은 아닌 듯 꽤나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피곤한 건 맞아요, 요즘 안 쓰던 머리도 쓰고, 학교도 꼬박 꼬박 나오고.. 그래서 그런건가 싶어요. 집가서 푹- 자야죠!
이미로:(대화 주제를 돌리기로 합니다. 수업을 잘 들었다는 말에 입가를 가리던 손을 슬 내리고,) ... 그래? (하곤 잠시 생각합니다. 이내 고갤 슬 돌려 천오의 반에 있는 시간표를 확인.)
(다시 천오 보며 (ㅍ ㅍ)) ... 역학적 시스템에 나오는 나중 운동량이 뭐로 발생되는지 말해봐.
(지금 정말 할 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지금 피곤한 상태인 것 같으니 이번만큼은그냥참고넘어가니다음부턴꼭열심히공부하기를바란다는 표정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
... 아냐, 다시 생각해도 너무했어. 천오. (가볍게 손날치기로 천오 이마 통...) 이건 맨 처음 개념 정의에 나오는 거잖아.
천오:(넘어가는 줄 알고 화색..했다가, 아야.) ...그, 그치만.. 갑자기 물어보면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어렵단 말이에요..! 게다가 과학이라니, 하필 제일 어려워하는 걸..! (그렇다고 사회를 잘하는 건 아님.) ..공부 더 해야겠네.. (괜히 책상 위에 있던 필기구 손에 쥐고 책상 톡톡..)
이미로:(ㅍ ㅍ... 표정으로 보다가 작게 한숨.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어려울 수록 더 보면 도움이 될 거야. (대체 왜...?!) ... ... (네 모습을 빤, 바라보더니 잠시 침묵. 이내 손날을 펴고 있던 손을 풀어 네 머리 위를 두어번 작게 토닥여주고) ... 꽤 잘하고 있으니까 기억하려고만 노력해봐. 정의만 외워두면 의외로 풀리는 문제가 많거든.
천오:으응, 쉬운 문제보다는 어려운 문제가 더 점수 많이 주기도 하고.. 자주보다보면 외워지겠죠? (응용은 그 다음 단계니까 잠시 미뤄두고... 잠시간의 침묵에 괜히 미로 눈치를 슬쩍 봅니다.) .. (!) (토닥이는 미로 봄. 기분 좋은 듯 얌전히 받으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니임.. 미로 진짜 가끔은.. 선생님들보다 더 선생님 같아요. 나중에 진짜 과외 알바라도 하는 건 어때요? 다른 애들한테 하긴 좀 그러면 나도 있는데. (반쯤은 농담. 또 반쯤은 진담. 물론 지금도 무료 과외나 다름 없기는 하지만..)
이미로:(맞다는 듯 고개 끄덕.) 그치, 복잡한 계산이 아닌 이상 보통은 거기에서 거기니까... (여전히 두어번씩 토닥. 기분이 좋아 보이는 듯한 네 분위기를 보고 있자니, 이 쪽도 따라 마음이 놓이는지 어깨의 힘을 살짝 풀었다. 이내 질문에 잠시 고갤 기울여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 사실, 정말 그래볼까 생각 중이야. 매번 공부하라고 잔소리 해대긴 했지만… 솔직히 나도 아직 진로가 분명하게 정해진 쪽은 아니거든. 근데, 요즘은 가르치는 쪽에 흥미를 느낀다고 해야할까. (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빡였나, 너와 시선을 마주하곤) 아무래도 이건 천오 너 덕분이겠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천오:좋아요, 이번 기말은 잘 못 봤지만.. 다음 중간에는 더 노력할게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미로가 많이 알려줬는 걸.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조급해 하진 말고. 그리 생각했다.) 확실히 가르치는 거, 잘 하잖아요. 내가 그렇게 오래 배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로 덕분에 학교에서 펜 잡고 공부한다니까요~ (조금은 풀린 듯한 분위기. 옅게 불어오는 바람과 지고 있어 한결 따뜻한 햇빛. 여름, 너와 만난 여름이, 현재의 나로서는 가장 행복했다. 이렇게 학교를 나오는 것도,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것도 네 덕분이니까. 어쩌면, 내 인생의 전환점.) 내 덕분이에요? 내가 미로한테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네. 맨날 잔소리만 들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없이 웃음소리 흘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입니다.)
이미로:... 그래, 기대하고 있어도 되는 거지? (분명 기말 성적은 이번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을 정도의 점수로만 나올 것이 분명했다. 네 건강의 상태나, 네 삶의 의욕 덕분에 놓쳤었던 진도의 양이 생각보다 꽤 많았으니까. 이렇게까지 해도 성적을 단기간에 올릴 수는 없겠지, 당연하다. (...) 그렇지만 천오 너라면 분명 잘하려고 노력할테니까,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다짐할테니까. 이는 매번 볼멘소리로 투덜거리긴 했어도, 어느 정도 성실히 따라와준 네 모습에서 느낀 확신이었다. 더불어 자신과 만난 이후로 자주 보여주었던 삶의 의지에서도 또한 같은 확신을 느꼈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
(조용히 고갤 끄덕이며 이야기에 경청했다. 가르치는 재능이 없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고 느꼈고, 동시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느껴지는 것과 생각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인데, 이는 자신이 당신을 생각하는 원리와 비슷했다. 너와 있으면 재미있고 즐겁다고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둘 다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비슷했고, 오롯이 즐겁다 라는 단어에 정의하기에는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 달랐다. 널 무어라 정의하면 좋을까. 인생의 전환점? 그렇기엔 자신은 아직 그 무엇도 바뀐 것이 없는데, 라며 자각을 하지 못한 생각을 되뇌였다. 실 없는 웃음소리가 작게 제 귀를 간지럽히고 나서야 눈을 깜빡이기 시작하고) ... 매번 말하지만 나도 사람인 걸.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상부상조라고 하던가? 여튼.)
천오:으음, 좋아요. 미로가 기대하면 제가 쪼오금? 부담이 있긴 하겠지만 열심이 알려준 보담은 해야죠! 사실 지금까지 시험 볼 때 긴장을 전혀 안 했어서.. (수업을 들었던 날들이 손에 꼽으니, 배운 게 얼마 없어 당연하긴 했다. 아는 게 있어야 손이라도 댈텐데 모르는 게 태반이었고, 시험 기간에 등교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부를 손에 놓는 것은 어쩌면, 그 날 이 전까지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미로가 기대한다는 부담보다는 긴장이 더 클 것 같은 거 있죠,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것도 처음이고, 시험 시간에 문제 풀어보려고 하는 것도 처음이고.. (너와 같이 있으면 처음인 게 참 많았다. 어쩌면 그래서, 즐거운 거겠지.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신기루와도 같았으니까.) 열심히 알려줬으니까, 저도 열심히 할 거예요. 그러니까, 부담된다 어쩐다 한 건 잊어버리시고.. 기대해도 좋아요! (아자, 하는 작은 소리를 내고 제 양 손 꼭 쥐며 환히도 웃어보인다.)
미로가 사람인 건 저도 잘 알죠~ 그렇지만 내가 도움 받는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밥이라도 사드려야하나 고민중이라고요. 아, 꼭 보답의 의미가 아니더라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점심시간에 같이 못 먹잖아요? 그래도 나름 밥인데 매점에서 때우자니 조금 섭섭한 감이 있고.. 나중에 진짜 나랑 밥 먹으러 갈래요? 시내가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낯이 언제나처럼 밝았다. 네 말대로 편하게 생각하면 좋지만, 무언가 계속해서 접점을 만들어나간다. 만날 명분, 조금 더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좋은데, 그 뒤에 오는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겼다. 나만 그런건가, 싶기도 하지만.. 미로도 분명 자신과 함께 있는 게 즐겁다고, 재밌다고 했으니까,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봤고. 그 날 이후 네가 없으면 조금은 허전한 하루들이 반복됐다. 단지 허전함인가? 아니면 다른 감정도 섞인 것일까. 어쩌면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허전함보다는, 조금 다른 감정인 걸지도.) 학교에서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가끔 새로운 것도 좋잖아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천오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천오:...! 나, 화장실이 급해서… 미로, 미안해요. 미, (..) 먼저 가요!
입을 가리고 힘겹게 말하고는,
급하게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연신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천오가 떠난 자리에는
달콤한 향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뛰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디 아픈 건가?)
(달콤한 향...?)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있으려나.)
언뜻 느껴지는 것은.. 꽃향기 같습니다.
이미로:꽃...?(작게 중얼거렸다. 향수라도 쓰는 걸까.)
... (그러고 보니, 천오의 노트에꽃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그 옆에는 병원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이 없는 단어들이지 않나?)
이미로:하아... (옥상문을 잡고 기댄 채, 턱 끝까지 올라오는 숨을 연신 내뱉다가 겨우 삼켜냈다. 고갤 조금 숙여 숨을 몇 번이나 고른 후에서야, 고갤 들어 널 바라보곤)
... 갔을리가. (...) 천오 넌 몰랐겠지만, 난 항상 너 기다렸거든.
천오:..안돼, 안돼요 미로. 나한테 오면.. (툭, 툭.. 바닥으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세도 없습니다. 그래, 네게 위협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고 싶었지만, 네게 이런 위험을 선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오지마세요. 미로, 제발.. 나는, 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납니다.) 미로 곁에 있고 싶지 않아요, 아니 있어서는 안돼요. 내가 옆에 있으면, 미로가.. (하아, 하아. 힘겹게 막혀오는 숨을 겨우 겨우 토해냅니다. 속이 답답하다 못해서 꽉 막힌 기분. 네게 느꼈던 설렘만큼, 너를 아프게 했다는 게 제게 고통으로 돌아왔어요.) 미로, 부탁이에요. 그냥, 이대로.. 내려가줘요. 저는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내려갈게요. (평소와 같이 웃습니다. ..아니,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울음기를 머금은 얼굴과 목소리가 훤히도 보이니까요. 아무것동 아니라는 냥, 상황을 무마하려는 기색이 눈에 띕니다.)
이미로:...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 천오. (쥐에게 실험을 해봤더니 같은 증세로 죽었다고 했던가, 하지만 시간이 조금은 더디다고 했던가. 그러니 지금 우리가 같이 죽는 꼴은 되지 않을테니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가쁘게 몰아쉬었던 숨이 점점 잦아들고, 이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걸음씩 네게 다가가며 말한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건 알겠지만, 천오 네가 이럴 필요는 없잖아.대체 왜?(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 자신이 평소에 그토록 잘하던 것이 감정을 숨기는 것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다. 표정은 평소와 같이 덤덤했으나, 자신은 지금 화가 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만한 너에게 알리고 있었다.) ... 내가 말했잖아. 난간 근처는 위험하니까 앞으로도 조심하라고.
천오:..왜, 라니요. 이럴 필요가 없다뇨. 미로랑 내 생각이 다른 건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미로가 지금 내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도.. 이해해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요 나는.. (제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쥡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것만 같은 감각에, 울음에 먹혀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눈을 꼭 감았습니다.) ..내가 좋아해서요, 미로. 그래서.. 미로가 아픈 게 싫어요, 무서워요. 아픈 게, 어떤 기분인지는 내가 잘 알아요. 많이 겪었으니까. 그런데.. 미로는 그게 아니잖아요? 미로는, (..적어도 아프지 않았으면 해요.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 공기 중으로 흩어집니다. 많이 아꼈습니다. 너를,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지금의 내가 곁에 있을 수 있는 종착점이었으면 하는 곳.) ..알아요, 여러 번 이야기했죠.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옥상에서 이야기할 때도, 지금도..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 하나만을 눈에 담았습니다. 죽음, 그래, 언젠가 바라본 적이 있었고, 두렵지도 않습니다. 너로 인해 살고 싶어졌고 조금을 더 삶을 이어가 살았으니, 네게 이 정도는 가벼운 보답이자 답레입니다.) ..미로, 미로는..날 좋아하지 않잖아요.
..소중히 생각해주신 건 알아요. 그런데,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게 나랑 같지는 않은 거 같아.
이미로:어쩔 수 없는게 어디있어. ...내가 안 괜찮다잖아,천오. (네 상냥함과 다정함은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싶었는데. 지금 널 잃게 된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을텐데. 그러니 이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자신을 위해 곁에 있어달라는 욕심. 그리고 동시에, 네 욕심이지도 않을까. 나에게 다정함을 건네려는 네 욕심, 혹은...)
... 뭐?(다른 감정.자신이 가진 애매모호한 감정따위 같은 것과는 다른, 무어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그 감정.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마음에 어떻게 확신을 가졌는지.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자신도 그 마음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이런 순간에서 마저도 자신은 습관처럼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정리 된 결론에 적당한 이유를 붙여 행동한다. 이게 나인 걸 어떡해, 천오.)
(...) (그렇지만 너를 만나며, 너와 지내며 이 쪽에서도 배운 것이 있었다. 가만히 네 얘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하늘과 너를 동시에 응시했다. 짧게 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마음의 준비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네가 뒤로 도망칠 기색이 보이기도 전에, 그리고 한 번 마주쳤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네게 다가갔다. 한 걸음씩, 절대 멀어지지 말라는 듯 그대로 눈을 응시하며 걸어갔다.)
(너도 이 순간을 기억할까, 그 때 그 순간을 떠올릴까.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그 날, 옥상에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던 그 순간.그 순간처럼, 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이번에는 동화처럼 시간이 흐르지도,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뭐 어떤가. 조용히 널 제 품에 끌어안았다. 이게 바로너에게서 배운 다정함을 자신이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 내가 노력해볼게. 너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도록.
이미로:그러니까 가지마... 제발.
천오:(제게 뻗어진 손, 그리고 훅 가까워진 너와의 거리. 순간적으로 너를 밀어내려 몸을 비틀었다. 이와중에도 네가 좋은, 제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안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너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 나도, 너도 아프다. 대체 왜 이런 병에 걸려서, 왜. 처음에는 아파서 싫었는데, 네가 다치는 걸 알고 더 싫어졌다. 너를 좋아한다는 게, 너를 아프게 만들고 다치게 만든다. 제가 한 걸음, 두 걸음. 아니 그 이상을 물러서야만 네가 안전하리라 믿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 여기로 온 거 였는데. 그걸 너는 또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왜, 왜. 대체 왜!! 너도, 세상도, 이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너를 제외하면 살아갈 이유조차도 불투명해지는, 너로 인해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네가 모르길 바랐다. 네가 좋았으니까. 네게 아픈 추억보다는, 신기하고 재밌는, 즐거운, 그런 추억으로 남겨지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미로, (작게 네 이름을 읊었다. 네 품, 한 번도 이리 안겨볼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 적도 없는데. 왜, 왜 더 나를 아득하게 만드는 거예요. 나를, 좋아하지도―)
..네?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소리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푸른 색이 붉은 색으로 물든 하늘도, 흩날리는 꽃잎도, 밝게 빛나는 햇빛도. 명확하게 보이는 건 오로지너였다. 네 목소리, 네 모습.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웃음으로 무마했던 울음이 터져나온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안긴 채 네 옷깃을 꼭 잡았다. 착각. 오해. 홀로 아파했고, 너를 아프게 한 그 시간들.) ..정말, 정말요..? (한 마디를 입에 담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그조차도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뭉개졌다. 마음이 아파서? 가슴이 답답해서? 네가 한 말이 믿기지가 않아서?) 미로.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단지 네 말에 기뻐서, 벅차올라서. 내 눈 앞에 있는 네가, 미치도록 아름답고도 찬란해서. 언젠가부터 느꼈을지 모르는 이 감정의 이름은,) 가지 않을게요, 미로 옆에.. 있을래요.
당신은 당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향해있는 감정.
한 글자 한 글자,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또박또박 전달합니다.
몇 번이고 당신의 진심을 되묻는 천오의 목소리.
외로웠던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
천오가 웃습니다.
꽃처럼 환하게,
눈앞이 아찔할 만큼 환하게.
바람을 타고 흘러오던 꽃향기가
물거품처럼 흩어집니다.
손끝에 닿는 생생한 감각,
꿈이 아닙니다.
천오:정말.. 정말 좋아해요, 미로. (보라색 아네모네의 꽃말은 짝사랑이라던가. 그동안 수없이 내뱉은 꽃과 꽃향기와 함께, 이 감정은 놓으려 한다. 홀로 하는 짝사랑 말고, 온전히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