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크:... ...그나마 건물이 있다는 건 다행인가. 근데... 왜 하필. (한숨 한 번 내쉬더니 멈춰서서 가만히 성당을 바라봅니다. 기억의 계승. 그 덕분에, 어쩐지 걸음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몇 분 간 눈을 맞으며 그대로 서 있었을까요, 맹렬한 추위에 결국 한 곳밖에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하고 맙니다. 언제 생각해도 추운 건 견디기 어렵구나..)
비아크:... ... (허. 짧은 숨을 내뱉는 소리.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자신을 밀어낸다.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일어나, 빨리. (말과는 반대로 주춤 거리는 행동. 어쩌면 반사적인 것이었을지도요. 초췌해보이는 낯에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과거의 불안은 이따끔 일어나곤 합니다.)
클라시카:...(몇 번이고 입을 떼었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한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너무나 많았고. 겨우 그런 수다보다 당장의 절실함이 너무도 컸다.) 나... 나 너무 오래 기다렸어. 제발... (그리 말하며 매달리는 것이 꼭 한평생을 들여 구원을 기다린 망자의 꼴이다.)
비아크:뭐, 뭘 기다렸다는 건데... (흔들리는 동공으로 너를 바라보다, 결국 두 눈을 꾹 감고 다가가 네 앞에 반 무릎 꿇고 앉습니다. 지금의 내가 네게 약해지는 건 과거의 감정 때문인가, 아니면 현재도 동하고 있는 것인가.) ... ...얘기를, 제대로 해.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듣겠잖아. (네 얼굴에 손을 대고, 그대로 쓸어낸다.) 사랑해달라는 건 또, 무슨 말이야...
클라시카:널 기다렸어. 너랑 만날 날만 쭉 기다렸어. 내가 널 얼마나...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는 손길에 제 손을 겹쳐대고 놓고싶지 않다는 듯 제 뺨을 부비다가 이내 떨쳐낸다. 손은 차마 놓지 못한 채.) ...오늘... 자고 갈거지..? 바깥 날씨는 너무 위험하니까.. (제대로 이야기 하라는 말에는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 두어번은 무언가 이야기 하려는 듯 '제발..' 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으나 결국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너무 그리웠어. (채 놓지 못하던 당신의 손끝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곤 힘을 빼 놓는다.)
비아크:... ...클라시카.(욱씬, 순간 가슴 한 편이 세게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제 손에 닿은 감촉은 여전한 것 같으면서도, 지나치게 수척해진 얼굴은 어쩌다 저렇게 된 것인지, 이유를 알고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겠다.) ...난 잘 모르겠어,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그리워한다는 거... ...예전, 그러니까.. 그때의 나 때문인 거 아니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야? (마지막으로 손에 닿는 촉감. 제 손을 주먹 쥔 채로 바라보다, 다시 내렸다.) ...자고, 갈 거기는 한데... 바깥 날씨 걱정보다는 네 걱정을 하는 편이 옳은 거 아닐까 싶어, 지금은.
클라시카: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당신은 그리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제 속을 후벼파는지 당신은 알까. 오래토록 기다려온 단 한 명의 사람이 진정 자신을 기다린 것이 맞느냔 의문을 표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저 애절함을 담을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 본다.) 비아크, 너잖아... 다 기억하잖아. 그러니까 제발 그런 말 안 하면 안될까..? 난 네가 너 말고 다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 (자신이 사랑을 갈구할 대상은 오로지 당신이었고. 그리고 이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고픈 대상 마저 당신 뿐이었고. 심지어는 이 절망감마저.) 나... 난 괜찮아. 응. 괜찮아. (그 후로도 두어번 중얼거린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자리에서 일으킨다.) 그, 쉬고 간다고 했으니까... 성당 안쪽이라도 둘러보고 있을래? 밖에서 왔으니까 많이 지쳤을 거 아냐. 뭐라도 준비해주고 싶어서. (바깥 날씨보다는, 자신보다는 멸망 속을 헤매었을 당신을 걱정한다.)
비아크:... ...그야, 그 때는 네가 이러지 않았었으니까. 그 때도 사랑이었겠지, 나도 널 사랑했었고.. 네가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는지 모르겠어.. 다시 만나 기쁜 게 맞아, 그 두려움과 불확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너 하나만을 믿었고, 너를 사랑해서 현실을 피해 짧게나마 더 살아갔으니까..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한다. 당신의 애절한 눈빛은, 자신을 자신이라고 보는 그 눈빛은, 정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것인가? 그런 것치고는, 바라는 그 애정에 맹목이라는 게 느껴져 그렇다. 목 마른 자의 갈구.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이질감.) 다 기억하는 거 맞아, 기억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 그 때 느낌 감정까지도 전부 다. 내 삶이었고, 내가 보낸 삶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도 확신이 안 드는데 네가 확신을,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을 너를 바라봤다. 무엇이 너를 이리도 처절하게 만든 것인가. 괜찮다 이야기하는 말은 정말일까. 걱정과 동시에 불안이 다시금 자리했다.) ... ...정말, 그 때나 지금이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역시 모르겠다. 관자놀이 한 번 꾹 누르곤..) ...적당한 차 정도로 괜찮아. 지금 어차피 많이 먹을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고... 네 걱정을 안 하기엔 네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그래. (가볍게 무릎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냈다.) ...내게 너무 감정 쏟지 말고 적당히 하는 게 좋을 지도 몰라... 오늘은 자더라도 내일 아침이라도 떠날지 모르니까..
모든 것이 모호합니다. 허나 그 모호함 속에서. 지금 클라시카가 하고 있는 모든 발언이 진심임을 직감합니다.
클라시카:(다시 만나 기쁘다는, 저를 사랑하여 현실을 피해 조금 더 살아갔다는 당신의 말에 옅게나마 웃음을 짓는다. 그 기억, 감정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은 너 외에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알 수 있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마주친 그 순간에. 무언가의 깨닳음이 본능처럼... (그저 미소만을 띈다. 조용히. 답을 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 당신을 바라보며.) 그럼 따뜻한 차랑 적당한 간식거리로 준비할게. 내일 아침에는... 성당에 있는 물자를 챙겨줄게.. 그럼 여행길이 조금은 낫겠지.. (여행길을 챙겨준다는 사람의 표정치고 이렇게까지 착잡할 수가 없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기쁘다. 준비 다 되면 부를테니까... ...볼품없는 성당이지만 구경이라도 하고있어. 금방 올게. (허나 당장 함께 있다는 것이 그리도 행복한지 금새 밝아지는 표정이다.)
비아크:... (그 시절의 자신은 본능이 말했다. 네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저 치는 악마가 분명하다고. 모든 게 역겹고 두려웠던 그 때의 자신을 떠올리면... ...그만하자. 더 해봐야 골머리만 아플 것 같으니. 한숨을 짧게 내뱉고는 제 입가를 만지작거린다.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당신을 사랑하나? 아니면 과거의 감정에 휩쓸린 것 뿐일까? 그렇다면 이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까? 정답일 내지 못한 채 자신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묻던 것은, 네 말이 시작되고 나서야 끊기듯 멈춘다.) ...알겠어. (자신 역시도 기쁘다. 하지만 이게, 너와 마찬가지로 백년을 넘어서까지 기억한 자신의 인연을 만나 기쁜 것인지, 단순한 생존자를 만난 기쁨인지 알 수가 없는 거다.) ...사랑. (그 단어를 짧게 입에 담았다가, 네 밝은 표정에 고개를 돌리고서야 만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감정을, 입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해서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만나 기쁘다 이야기하는 네 모습에, 미안함이 더해져서, 발걸음을 서둘렀는지도.) 그래, 고마워.. 부탁할게.
창밖은 밤입니다.
어둑한 하늘 아래 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클라시카의 제안대로 이곳에서 보내겠지만...
내일의 날씨를 걱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버려진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 사람은 자신과 클라시카밖에 없는 듯합니다.
썰렁한 성당 안은 아주 오래 전 마을의 그 성당과 비슷한 구조 같으나 조금 더 넓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신도석, 고해방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비아크:...이번에도 너와 나 둘 뿐인가... (작게 흘리듯 이야기하고 제 옷자락을 세게 쥐더니, 그대로스테인드 글라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는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창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화려한 형식입니다.
비록 일부 바람에 의해 깨진 흔적이 있지만 테이프로 막힌 걸 보면 누군가의 관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아크:... ...대체 이게 무슨 말들이야? 영생... (설마. 아니겠지? 비현실적이잖아. 말이 안 되잖아. 이런식으로 자기합리화를 여러번 해보려고 해도 한 편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자신은 그 비현실을 겪는 중이라서. 전생의 기억, 저주, 그리고... 클라시카.) ...설마 기다렸다는 말이. 죽고 다시 살아나 나를 기억하고 기다렸다는 게 아니라... (... ...거진 백년을? 제가 떠올리는 게 사실이 아니길 빈다. 그냥 망상일 뿐일 거라고. 헛소리는 워낙에 자주했으니까.)
...성당 내부의 어수선한 것들은 대부분 살펴본 것 같습니다.
창밖에서는 더욱 심해진 폭설이 내립니다.
폭풍우를 동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에 나가기는 글렀죠.
당신이 다 둘러본 것을 알았는지 클라시카가 당신을 휴게실로 이끕니다.
클라시카:재밌는 건 없었을텐데... 그래도 꽤 괜찮지?
비아크:(... ...날씨가 가면 갈수록 왜이런담. 타이밍도 안 좋네. 오래 있을 수록 안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생각하며 창문을 바라보다가, 네 말에 고갤 끄덕였다.) 그래, 예전보다 넓기도 하고... ...나쁘진 않네.. 여기서 오래 지냈어?
클라시카:음.... 어쩌면... 꽤...? (잠깐의 정적이 있었으나 이정도는 '오래'의 기준을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비아크:그랬구나. (탁자 위에 팔꿈치를 기대, 턱을 괸다.) 여기 찾아왔던 사람은 없었고? (과연 있었을 리가 있나, 싶지만... 뭐, 오래 지냈다면 있을 법하지 않은가.)
클라시카:(찾아왔던 사람이 없었느냐고. 짧은 고민을 지나 답한다.) 없지. 외진 곳이잖아.
비아크:혹시 몰라 물어봤어, 오래 있었다길래. (탁자를 몇 번 톡, 톡 두드리곤) ...너한테 지금, 사랑이 왜 필요해?
클라시카:사랑 없이 살기엔 너무 외로우니까...? (참으로 애매모호한 답. 이딴 것도 답이 될 수 있을런지.)
비아크:사람 없이, 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만... 사랑 없이 살기에 외롭다고 하니까 모르겠네... (네 손 끝을 살짝 잡아본다.) 넌, 스스로 잘 챙기고 있긴 한 거야? 아까부터 이야기했지, 상태 안 좋아보인다고. 신경 좀 써... (걱정 되니까.)
클라시카:신경 쓰기엔 혼자 뿐이기도 하고 할 일도 딱히 없었어서... (무안한지 웃어보이는 얼굴이 한 세기 전과 비교해도 무척이나 안정되어 보인다. 당신과 재회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까지 변한다.) 오늘 밤은 날씨가 지독하더라. ...대신... 아침에는 눈구름이 다 물러갈지도 모르겠어.. (중얼거리듯 말을 건내고는 따뜻한 차와 고소한 쿠키 몇 개를 당신의 앞으로 내민다.)
비아크:...혼자 뿐인 거랑 신경 안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잠 잘자고 건강 잘 챙기라는 거잖아. (웃는 얼굴. 방금 전보다 훨씬 편안해보여 작게 숨을 내뱉는다. 안도. 하지만,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 정말로 그럼 좋겠네... 추운 건 질색이라 안 그래도 눈 내리는 게 조금 싫었거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의자 뒤에 걸쳐둔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것들을 보다 가볍다는 말을 얹으며 잔을 들었다.) ... ...넌 떠날 생각이 없는 거야?
클라시카:혼자 지내면 그런 거 챙기는 게 너무 귀찮단 말이야. (일상감이 묻어나는 대화를 이어간다. 즐거워라.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치도 못한 채 이 평화를 즐긴다.) 털모자같은 거라도 챙겨줘야 하나... 귀마개나... (코트와 당신의 옷차림을 바라보다가 그리 중얼거렸다.) 나? 나는... (자신 몫의 차가 담긴 잔을 잠시 만지작거린다.) 응... 떠나지 않는 편이 좋을거야.
비아크:귀찮다고 해도 그러다 골골대면 너만 힘들지. (즐거워보이는 얼굴에 제가 더 얹을 말이 사라진다. 여전히 턱을 괸 채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고.) 그런 거 무거워서 싫어, 차라리 목도리 같은 쪽이... 더 편할 것 같은데. (머리에 쓰는 건 유독 무거웠던...)
...그래, 그럼. 내가 말릴 이유도 없고... (입가에 한 번 따뜻한 차를 머금는다. 조금 얼어있던 몸이 잘게 떨리며 그 온기를 받아든다.) 그렇지만 궁금은 한데... 왜인지 이유 물어봐도 돼? 여기가 익숙해서? 아니면... 또 누가 시켜서 있는 거야?
클라시카:그것도 그러네. 기회가 되면 챙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말하는 내용이 흔해빠진 것이...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버릇때문에서건 무엇에서건 간에.) 그럼... 목도리 쪽으로...? 그래야겠다. 어떻게 그런 추운 옷으로 눈 속을 걸을 생각을 했담. (약하게 나무라며 차를 조금 마신다.)
이유라... 신의 계시가 있었다, 라고 하면... 납득해줄 수 있어?
비아크:말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상황이 있어 가벼히 뱉곤 다시금 차를 한 모금 넘긴다.) ...적당한 옷 찾기도 애매했거든. 그리고 해가 뜨거나 기온이 높아지면 덜 추울 때도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 묵직한 건 싫어. (그래서 대부분 내부에 있는 걸 선호하며 살았던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뭐... 아무것도 남지를 않아, 단지 떠도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괜찮아, 딱히 크게 감기 걸린 적도 없고.
... ...납득하기 싫은데 납득 되는 게 싫네.. (찻잔을 내려놓곤 톡, 톡... 이번에도 탁자를 두드렸다.) 신이라... (싫다. 그냥, 입에 붙는 어감이 별로다.)
클라시카:네에, 노력해 볼게요. (잔을 툭툭 두드리면, 두드리는 박자에 맞추어 작은 도자기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아무리 그래도 코트 하나는 너무하잖아. 있는거 다 챙겨주던가 해야지... (쿠키 하나 입에 쏙 넣고.. 우물우물...)
이거 말고 다른 이유도 대라면 댈 수는 있는데... 혹시 필요할까나. (신을 꽤나 싫어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다른 방향을 제시해본다. 이쪽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이유일까.)
비아크:돌아다니기 무거우니까 더 넣을 생각은 하지 말고. (은근 단호한 투로 뱉더니, 저 역시도 쿠키 하나를 들었다. 반으로 나누어 하나를 넣었고. 한참 오독거리며 씹는 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그냥, 이번엔 신을 정말로 믿는 건지 궁금하기도 해서... (저번에는 아니었지 않나..? 자세히 알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서 묻는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다른 이유는, 뭔데?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어? (나 말고.)
클라시카:고려해 보도록 하겠어요. (오독오독... 그럼 무게가 덜 나가고 든든한 걸로 챙겨야 할까... 혼자 고민한다.) 믿지 않기에는 실존하는 존재이긴 하니까. 일단 존재는 믿는 편이고... 신뢰하느냐 묻는다면... 신이 나같은 거의 신뢰를 얻어서 어디다 쓴담.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보이다 다시 잠깐 입을 다문다. 휴게실 밖으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연다.) 멸망을 끝내기 위해서...
비아크:...음, 멸망을 끝내기 위해서? (네 말에 가볍게 눈을 깜박이곤, 제 입가를 손으로 매만진다. 멸망을, 끝낸다고.) ...확실하게 방법은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확신하고 여기서 있는 거고?
클라시카:응. (그리 말하는 모습은 꽤나 당당한 것인지라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자신은 이를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실하지 않으면 큰일이라서 좀... 그래.
비아크:...멸망, 그거... (...잠시 제 옷을 손으로 세게 쥐었다.) 나 때문에 아직까지 전해지는 걸까.. (아아. 쓸 데 없는 죄책감. 네가 자신의 탓이 아니라 이야기했다 하더라도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미쳐버린 사람들, 어린 아이들과 눈코 뜰 세 없이 바쁜 의사와 간호사들. 모든 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리에 남았다.) ...그래도 사실이라니 다행이네, 방법을 안 다는 것도... ...이미 많이들 죽었겠지만..
클라시카:... (당신을 바라보다 언젠가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넌 언제나 피해자였지. 피해자일 뿐이야.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담요를 가지고 와 당신의 어깨에 둘러준다.) 괜히 얘기해서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린 것 같네. 쉬는 게 좋겠다. (휴게실 구석의 매트리스로 당신을 이끈다. 마땅히 내어주어야 할 물건이라는 양 어깨를 지긋하게 눌러 눕히고 담요 위로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준다.) 더 늦기 전에 해결해야지. 전부 무의미해지기 전에. (느릿하게 당신을 토닥인다.) 언제나. 저주를 끝내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무언갈 탓하고 싶다면 차라리 날 탓해주면 좋겠어. 제가 널 탓할 바에야 미움받는 게 나아...
비아크:... ... (어깨에 둘러진 담요. 그대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건, 역시 자책 때문이겠지.) (어쩌다보니 벌써 자라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인데... 하지만 한 순간에 몸이 따뜻해지니 노곤하여 조금 정신이 멍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다가, 이불을 손에 꽉 쥐었다. 어찌 너를 미워하겠어. 그 때 네 선택에 가장 괴로워했을 건 너일텐데. 세계를 버리고, 나를 선택해버린 사람. 해서, 내가 죽은 뒤로는 후회했을 지도, 죄책감에 휩싸였을 지도 모른다. 선하디 선한 인간임을 알기에 더욱이 걱정되는 거였다. 너는 너를 탓하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제 자신이 맹렬히 거부하고 있음을 모르겠지. 내가 자책하는 걸 알고 있어도, 그에 대해서는 하지 말라고 하니까.) ... ...도울 게 있으면 말해, 내가 떠나기 전에... (네가 나에게 지금으로써 부탁한 건 딱 한 가지였지.사랑해달라고.그 외에, 더 있을까?)
클라시카:(언제나 그랬지. 도움만 받아도 아무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이고. 무력감에 슬퍼하고. 자신은 이것이 참으로 싫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으나 어쩐지 보답을 바라는 형태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호의가 거래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기에 자신은 언제나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조차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것 외에는 바람이 없을 만큼 당신은 자신에게 맹목이었고 헌신이었다.)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네가 바라는 바를 계속 행했으면 좋겠어. ... (모순이었다. 당신이 바라는 것은 분명 저 설원 너머의 쉘터겠지. 그리고 자신은 그 여정을 떠날 당신을 지원하기로 약조한 터였다. 자신의 바람은 지난 말과 호의를 전부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만이지. 당신을 기만하고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지만. 자신은...) 나 참 못됐다... 근데, ...설원 속에서... 다시 널 놓칠 자신이 없네...
비아크:(역시 어렵다. 단순한 자신의 행복과 바람만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 더욱.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은 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채워 생각하는 것이 퍽 답답하게 흘러갔다. 지금 네게 도움을 받을 때 조차도, 아니란 걸 알면서 가끔 그랬다. 내가 무언갈 해야하는 게 있는 걸까, 하고.) ...모순인 걸 잘 아는 구나. (그 상태로 네 옷깃을 살짝 힘 주어 잡는다. 그대로 조금 자신의 쪽으로 당겼을까.)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정말... 나는 변했을 텐데. (말투도, 성격도.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에 당신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당신이 아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놓기 싫으면 차라리 한 번쯤 제대로 붙잡지 그랬어. 하여간... (눈을 내리갑니다. 차라리 잡는다면 하루 이틀은 더 머무를 수 있겠지. 그런데, 넌... 포기하려는 사람 같기도, 의지를 가진 사람 같기도 하다.) ...내가 떠나면 다시 만날 기회도 없을 테니까. (거꾸로 오는 여정을 과연 할까? 싶어진다. 단지 걷고, 걷고. 또 걸어 발길이 닿는대로 움직였으니.) ... ...너만 못 된 거 아니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가져. 나도 못 됐어. 지금, 좀... (이기적인 생각을 여럿하고 있거든. 뒷말은 삼킨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찾아온 사람도 없고, 없을 예정이라면... 너도 누워서 쉬어.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
클라시카:(그저 모순이었고 미련이었다. 이것들이 물질로 존재한다면 아마 자신은 압사당했으리라. 무형의 것임에 감사한다. 허나 이에 따른 답도 없는 무력감은. 당신의 손길을 따라 당신과의 거리를 조금 좁힌다. 어쩌면 당신이 의도한 것 보다 반 뼘 정도 가까이까지. 가까워진 만큼 속이 뒤틀린다. 과연 자신이 당신을 잡아도 되는걸까. 가지 말아달라고. 하루. 이틀이라도 좋으니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걸까.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누군가의 바람을 무시해버려도 되는걸까.) 변하지 않았어. 변한건 너무나도 적고... 그간의 시간이 있으니 변할 만도 하잖아. 그러니까 변하지 않았어. (가까워진 거리만큼 작아진 소리로 혼잣말을 들려준다. 변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몸을 숙여 짧은 순간 당신을 껴안는다.) 그럼... 잠시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같이 있어줄 수 있어? 앞으로 이틀 정도만이라도 좋으니까. (당신이 거절하더라도 분명 자신은 몇 걸음 쫓아가다 그 이름을 입에 담고 말 것이다. 가지 말아달라고. 제발, 제발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줄테니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면서. ...문득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몸을 일으킨다. 오랜만에 느낀 사람의 온기는 도리어 쓸쓸함을 만들었다.) 적당히 자리 잡고 쉴게. ...푹 쉬어. 그리고 아까 말은... ...못들은 척 해도 괜찮아. (괜찮다는 사람치고 안색이 좋지는 않다. 정말로 당신이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비아크:(저와 가까워진 얼굴을 마주하고, 짧막한 숨을 뱉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안쓰러울 정도로 처연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네 얼굴에 손을 뻗었다가, 내린다. 계산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진심으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그를 받아줄 수 있는데. 네가 그때의 나에게 유예를 준 만큼, 나도 그래줄 수 있을 텐데...) 네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네... ...난 정말 죽고 다시 태어난 거라, 이름과 일부의 기억 말고는 다른 것들 뿐일 텐데... (이어서 닿는 온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등에 손을 얹어 한 번 토닥. 애절한 투에 마음은 동하고, 감정까지 휘몰아친다. 들어와서부터 단호한 말들을 일삼았으나 자신의 감정은 너에게 흔들리는 게 어쩔 수 없는 거였지. 그게 좋은 의미이든, 좋지 않은 의미이던간에 말이다. 무엇이 너를 이리도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외롭게 만들었을까...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나는 그를 미워한다. 멎지 않는 멸망에 한 번, 내소중한 이에게 준 크나큰 상처로 인해 두 번. 우리가 겪어야 하는 절망에 또 한 번. 신의 계시라는 게 있다면.. 왜 그를 조금 더 일찍 구원해주지 않았는지.) ...나 정말 한 번만 더 물어. 정말 괜찮다고 하면 난 내일 동트고 바로 나갈 거야. (네 안색을 보고 미묘하게 표정을 찌푸린다. 일순 표정이 괜찮아보였던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난 아직, 사랑하나? 아니면 단순한 동정인가? 과하게 신경쓰인다. 너라는 존재가, 사람이, 상황이, 모든 게. 이불과 담요를 매트리스 위에 올려두고, 일어나 뒤에서 어색하지만 너를 안아 등에 얼굴을 기댄다.) ... ...신경 쓰이게 만들지 좀 마. 그런 표정으로 괜찮다고 해봤자 설득력 없어.
... ...이틀이야. 딱, 이틀.
클라시카:(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행동. 당신은 스스로가 변했다 말한다. 이름과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하지만 당신도 알고있지 않나. 기억에는 감정이 따른다. 버릇이 묻어난다. 이는 결코 타인이라 말할 수 없는 요소였다. 그만큼이나 기억이 중요했다. 어쩌면 저를 기억하기만 한다면 뭐래도 상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를 기억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당신이기만 한다면. 무엇이 더 우선적인가. 현재의 당신에게서 과거의 당신을 찾는지도 모른다.) 네가 기억한다고 했잖아. ...기억하고 있으면... 다 괜찮아. 아무리 바껴도 안 바뀐 거야. ...나한텐 그래. (토닥임. 그리고 이어지는 말. 바로 나간다고. 당신은 그렇게 제게 이별의 의지를 고한다. 괜찮다면 사양하지 않겠노라. 당연하다. 괜찮은 사람 곁에 굳이 머물만큼 당신의 시간은. 세계의 시간은 넉넉치 않을 것이다. 등 뒤로 느껴지는 작은 무게감과 온기에 입술을 깨문다. 속에서 자신을 향한 혐오가 치민다. 결국 이렇게까지 이기적이겠다고. 이렇게까지나.)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미안해. (미안해. 그 세 글자에 담긴 후회와, 미련과. 그리고 자신이 전혀 괜찮지 않음은 당신에게 전해졌을까. 그 무엇도 자신이 없다. 당신과 연관된 일이라면 늘 그랬다. 그 무엇에도 자신이 없었다.) ....이틀이라도 좋아..
...이제 정말 쉴까.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것인지, 혹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보이고싶지 않은 것인지.. 당신을 밀어 눕힌다. 애써 지어보인 미소는 눈가가 붉다. 급히 이불을 덮어주고 각도상 당신에게 보이지 않을 의자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하염없이 관자놀이를 누른다.)
비아크: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해줘, ...그게 네 마음이 편한다면야. (이런 걸 거짓으로 진실을 가린다고 이야기 해야할 까. 아니면 가벼운 속임수라고 이야기 해야할까. 내 일부는 과거에, 또 내 일부는 현재에 머물러 있다. 해서, 당장에 자신은 그 어느 쪽이라고도 확신해 이야기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한 번의 하얀 거짓말 정도는 괜찮겠지. 눈을 가려, 현실을 피해.) 네 말대로... 어쩌면 안 바뀐 걸 지도 모르는 거야. (영혼을 담는 그릇이 다르면 같은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너는 같다는 답을 내린 거지. 너에 대한 불환실한 감정을 토대로, 잠시 과거에 머물려 보려 한다. 조금 더 과거의 나를, 너를, 기억을 한 번 떠올려서.) 클라시카, 미안하다고 하지마. 안 해도 돼. (자신이 너를 용서할 만한 것도 없었다. 애초에 네가 잘못한 것은 없었으니까. 너는 내 생을 연명해주고, 세계를 버린 것 뿐이다. 세계를 버리고 나를 택한 사람이 내게 무얼 잘못햇다 이야기 하는가. 네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빌어야한다고 할 지언정, 그것이 나는 아닐 거라는 거다. 차라리 빌어야 한다면 내가 용서를 빌어야지. 너에게, 세계에게.) 응, 이틀. (네 등에 기대었던 얼굴을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웃음도 더하며.)
... ...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너의 표정.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 때문이겠지. 눕혀진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다만, 몸을 돌려 네가 있는 쪽을 돌아보는 정도의 움직임은 있었지. 보이지 않는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늘어나는 의문에 눈이 쉬이 감기지 않는다. 너에게 향하는 감정이 격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격양되어서. 신경쓰여서. 그래서 이유 모르게 괴롭다. 다시 몸을 돌려 벽 한 쪽을 바라보고,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암전되어가는 시야에 입술을 꾹 깨문채, 결국 현실에 있는 상황을 방관하고 무시한다. 지금만. 딱 지금만. 복잡해져가는 머릿속을 비워내자. 작은 한 마디를 겨우 입에 담는다.) 쉬어, 잘 자.
... ...아무래도 꿈인가보군. (그대로 눈을 내리 감습니다. 정확히는, 인상을 찌푸린 것에 가깝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이성 감소 없음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쪽에 떨어져있던 칼이 떠오릅니다.
핏자국이 눌러붙어있던 칼.
…클라시카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걸까요?
...
복잡한 머리속에도 수마는 밀려옵니다.
눈을 떠보면 창밖은 어느 새 눈이 그친 상태입니다.
웬일로 세상이 깨끗합니다.
오늘 떠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약속은 했지만... 가야 옳지 않을까요.
성당은 이 재앙을 더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내일 당장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건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죠.
떠나느냐, 남느냐.
비아크:... ...약속은 지켜야지. (몸을 일으켜 앉곤 제 머리를 대강 정리합니다. 손에 남아있는 종이는, 쥔 채로 자서인지 한껏 구겨진 모양새입니다. 매트리리스 옆 구석에 종이를 던져두곤, 마른 세수를 한 번 합니다.) ...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거야. (저걸 봐버린 이상, 네가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잖아.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작게 한숨을 내쉽니다. 이내, 고개를 들어 휴게실 안 쪽을 바라봅니다. 클라시카는 보이지 않나요?)
떠나느냐 남느냐의 고민을 끝마친 후 클라시카의 모습을 찾아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무얼 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클라시카가 적당한 식사거리를 들고 휴게실로 들어옵니다.
그는 금방 스프도 끓여주겠다며 통조림과 식사용 비스킷을 당신의 손에 쥐여줍니다.
비아크:(...뭔가 엄청 챙김받는 기분인데. 일단 주는 것들은 받고,) 같이 먹을 거지?
클라시카:소소한거 입에 넣으면서 왔는데.... 그럴까...?
비아크:... ...응, 잘 좀 챙기라고 했잖아. (괜히 이마 한 번 톡, 두드리고.) 소소한 거로 떼우지 말고.
클라시카:요즘에 안 소소하게 때우기가 더 힘들텐데... (잉. 하는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스프를 준비하러 휴게실 구석으로 간다. 간단하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컵스프...)
비아크:...이제부터라도 늘려, 그럼. (은근 단호한 투로 이야기하곤 가만히 앉아 네가 오길 기다린다. 챙겨주는 건 원래도 그랬다 하지만... 예전엔 그래도 이 정도까지 본인은 안 챙긴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러는지, 원...) ...혹시나 해서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클라시카:진짜로 물어버리는 것만 아니라면야... (이상한 농담을 하며 당신의 몫과 자신의 몫까지 컵스프 두 잔을 가지고 다가간다. 당신 앞에 컵 하나를 내려놓았고.) 물어보면 안 되는 일이 뭐가 있겠어.
비아크:별 농담을. (작게 픽, 웃음 소리를 흘리더니 제 앞에 내밀어진 컵을 바라본다.) ...그냥, 어쩐지 네가 대답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다 먹고 이야기하자, 먹을 땐 적어도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 (식기를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아침 챙겨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클라시카:(건내진 감사 인사에 참으로 행복한듯 웃는다.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는 궁금하지도 않은건지...) 당연히 챙겨드려야지, 응. ...가능한 한 최대한 다 말해줄게.
어째서 이렇게까지 당연하다는 듯 당신을 보살피고자 하는걸까요.
다정하고 헌신적인 모습의 이유는 여전히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당연하죠.
...
순간입니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굳게 닫힌 성당의 입구에서 분명히,
똑똑하게 들린 것은 노크였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두어 번의 소음.
비아크:... ...응? (반사적으로 식기를 내려두며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누가 온 것 같은데... (다시 클라시카 쪽을 바라보고.) 나가볼래? 나같은 사람일지 누가 알아.
그러나 클라시카를 보면,
그는 몸을 딱 굳히고 있습니다.
결코 인간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클라시카:...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비아크:... ...? 왜? 예상 가는 사람이라도 있어? (고개 살짝 갸웃인다.)
클라시카:아니, 그런 건 아닌데.... 시기가 시기이기도 하고... (명확한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고 흐릿한 대답이나 한다.)
이 순간에도 노크 소리와 함께 음성은 계속 들립니다.
아무도 없으신가요? 문이 잠겨 있어서요. 발자국이 여기 나 있는데…….
앳된 음성은 그리 장성한 사람 같진 않습니다.
애절한 목소리가 계속 울려퍼집니다.
먹을 게 없어요.
혹시 저희 좀 도와줄 수 없으신가요?
비아크:... ...무시할 거야? 네 의사이니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테이블에 놓여있는 비스킷을 만지작거립니다.) 어린 애들 같잖아...? 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클라시카:... (고통스러운 듯 찌푸린 미간으로 성당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들여보내면 안 돼. ... .......(그리고 조금의 정적.) 물자 창고가 있어. 거기서 물건을 꺼내서 건내주는 것 까지는 괜찮지만... ...(눈을 내리깐다. 막막한 두려움에 짓눌린듯한 낯빛) 난.. 만나고싶지 않아.
비아크:...그럼 내가 갈게. 네가 싫다고 하는 걸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네 성당이기도 하고, 멋대로 들여보지도 않을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나선 가볍게 네 이마에 제 이마를 톡, 기댄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표정 짓지마. 걱정되잖아. (짧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곤 이마를 뗍니다.) 걱정말고 여기 있어, 내가 다녀올게.
클라시카:응...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라던가 그러면 바로 도망가야 해... (혹시라도 약탈이 목적인 사람이면 어쩌지 하며 당부하고 물자 창고의 열쇠를 쥐여준다.) 다 털어주면 안 된다..? (이런 농담.)
비아크:응~ 적당히 털어줄게.. (가볍게 덧붙이고는 고갤 끄덕입니다. 열쇠 가지고 물자창고 쪽으로 향해요.)
비아크:원인이 사라져야 끝을 낼 수 있고, 끝을 내야 모든 것이 되돌아갈 수 있으며... ...그리고, 사랑만이 재앙을 끝낼 수 있다.
... ...원인. (미간 꾹, 누르더니 작게 숨을 내뱉습니다.)
나보고, 진짜 뭘 어떻게 하라고... ... (머리칼을 쓸어올리곤, 다시 서랍장 속에 양피지를 넣어둡니다.)
서잡장 속에 다시 양피지를 넣어둡니다. 이만 나가볼까요?
비아크:(입술을 짓씹고 밖으로 나갑니다. 아직도... 안 보이나?)
방에서 나오면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의 재앙의 실질적 원인은 결국 당신이었다는 것과.
끝없이 들려온 ‘사랑’.
그리고 그의 빈자리에 떨어져 있던 칼.
죽음이 칼이 아닌 다른 것에서부터 비롯되길 마련이다…….
문득 저 바깥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복도의 끝에서 서성이는 소리.
클라시카입니다.
방에서 완전히 나오면 복도의 끝에 클라시카가 등지고 서있습니다.
바깥에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모를 만한 뒷모습입니다.
아주 고요하게 침잠하여,
다시는 나오지 못할 심해 속에 혼자 갇힌 것처럼.
한 때 당신을,
죽이려 했었던 사람.
한 때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 사람…….
가만 당신이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은 클라시카가 묻습니다.
클라시카:비아크, 멸망을 끝내고 싶어?
그리고 돌아보는 모습.
어둠 가운데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하는 오색의 찬란한 빛이 반사된 얼굴.
마치 악마 같기도, 어떻게는 천사 같기도 한 풍경.
비아크:... ...클, 라시카. (순간 다급해진 발걸음. 그대로 네 앞으로 다가가서 네 팔을 잡습니다.) ... ...모르겠어. 어, 어떤 게 옳은 건지 모르겠어. 결, 국엔, 결국엔 나 때문이 맞는 거잖아. 왜 어제는 아니라고 했어? 왜? (앞뒤를 모두 잘라놓고 뱉는 말. 멸망을 끝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할 텐데.) ... ...끝내고 싶어, 더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네 팔을 잡은 손이 잘게 떨립니다.) ... ...무, 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클라시카:(갑작스러운 접촉에 반사적으로 당신의 손을 쳐낸다. 직후 실수했다는 얼굴을 하고) ...아냐, 아니야... 너 때문 아니야. 진정해봐, 응? (두어번 멈칫거리다 당신의 손을 잡는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안 죽어도 돼.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문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거야... 더이상 힘들지 않게 해줄게. 멸망이 사라진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비아크:... ...허. (짧은 마찰음과 짧게 뱉은 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던 네 행동에 멍한 표정이 이어졌다. 잡힌 손을 되려 자신이 뿌리쳐버린다. 불안감에 휩싸여 침착하지 못한 표정. 너마저도 자신을 쳐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난. 잘게 떨리는 손을 감싸 쥐고, 그대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멸망이 사라지려면, 결국, 워, 원인을... 원인을 제거 해야된다고 적혀 있었어. 그러면, 그러면... (결국 또 죽어야하는 게 맞는 거잖아. 고개를 숙였다. 과거, 죽었던 그 때. 네가 아니었지만, 누군가 저주의 원인인 자신을 죽이려 칼을 치켜들었던 것처럼. 또 다시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뒤짚어 쓰고 죽음 앞에 서 있다.왜, 왜.. 대체 왜!!신이라는 작자는 왜 자신을 그리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 ...내, 내가...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거잖아요, 그래야 멸망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클라시카님, 주, 죽어야 되는 거죠? 계속, 이어지는 이유가 원인이 사라지지 않아서인 거라면... 그렇다면, 난... (흔들리는 동공은 너를 마주하지 못했다. 그저 아래로, 아래로. 정녕 자신은 죄인일 뿐인지라 죄를 고해하더라도 당신을 바라볼 수 없는 거다.)
클라시카:비아크 제발... (손을 뻗어보다 자신이 쳐내버린지라 차마 더이상 뻗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한다. 억울함, 슬픔... 눅눅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표정에 드러난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말은. 그냥 자신은...) 죽이지 않을게... 네가 죽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어. 해결할게, 제발 진정해봐. 다 끝난 거 알잖아. 너한테 걸린 저주는.. 다 끝난 거 알잖아. (다가가지도 못하고 변명같은 말만 중얼거린다. 네가 괜찮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해줄 수 있는 말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다지도 무력하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괜찮아야 해... 넌 그냥... (자신을 사랑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마지막 말을 삼킨다. 지금 당신에게 이 말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들릴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입 안을 맴도는 쓴맛을 삼켜낸다.) ...괜찮을거야.
그는 괜찮을 것이란 말을 마지막으로 도망치듯 뒤를 돌아 발걸음을 옮겨 사라집니다.
...
이날 저녁, 밤. 휴게실 앞에 당신 몫의 음식만이 놓여있을 뿐,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비아크:... ... (당장에 무언가 입에 넘어갈 리가 없지, 빛 잃은 눈으로 음식을 가지고 휴게실 내부로 들어옵니다. 테이블 위에 음식을 놓아두기만 할 뿐, 역시 손을 대지는 못합니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그대로 고개를 파묻습니다. 울고 싶어서, 그런데 그러기엔 나라는 존재가 너무 싫어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마저도 이제는 가능 여부의 길이를 따지고 재게 되어 무엇 하나도 제대로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홀로 남겨진 휴게실에서 혼자 내뱉은 건,)... ...클라시카...(당신의 이름, 그 한 마디 뿐입니다.)
(종이를 쥔 손을 세게 쥡니다. 구겨진 게 꼭 제 만신창이의 머릿 속 같군요.) ... ... (사람을 피하는 이유가 있었어. 이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휘청거리며 일어섭니다. 휴게실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습니다.) ...클라시카!!
예배당으로 나가면 역시나 오르간을 연주하는 클라시카가 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하나 하나 건반을 누릅니다.
대놓고 보라는 듯이 놓여있던 그 종이.
필경 이 모든 사태를 고하고자 하는 클라시카의 고의였을 것입니다.
당신의 부름에 클라시카는 그제야 당신을 돌아봅니다.
웃던가요. 웃고 있던가요.
클라시카:이젠 나를 사랑해줄 수 있어?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어?
한 때 당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
한 때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 사람.
말해봐요, 비아크.
사랑할 수 있나요?
사랑할 수 있겠나요?
비아크:... ...못 해. 못 해, 못 해..... (빠르게 네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세게 꽉 쥡니다.) ... ...하나만 물을게, 네가, 죽어? 바로 사라져버려? 지금, 내가 만약에라도 그 말을 입에 담게 된다면... ...네가, 죽어버려? 말해, 말해줘. 제발 사실대로 이야기해줘...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야기해줘.) 아니지, 아니지 클라시카. 당장, 당장 죽는 거 아닌 거지? 조금... 조금 더, 살 수 있는 거지...?
그것만 아니면 돼, 그것만 아니면... ...
클라시카:... (당신이 무엇을 바라던 그저 웃는 얼굴로. 어쩌는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이 전해주는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눈을 마주치고, 호선을 그리면서, 멸망에 종언을 고하라며.)
비아크:... ...아니라고 해줘,제발, 클라시카... (네 양 어깨를 손으로 잡은 채, 그대로 고개를 숙입니다. 곧은 네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함. 싫었다. 이 무력함이 너무나도 싫었다. 자신이 무엇도 할 수 없는데, 제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죽어버리는 이 상황이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 싫었다.) 왜, 어째서야...? 왜 하필, 너야? 네가 아니었어도 되잖아... (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곤,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내 바닥으로 투명한 방울들을 떨어트립니다.) 싫어, 하고 싶지 않아. 하기 싫어, 가지마, 클라시카... (그래, 결국 난. 너를 사랑하고야 만 거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모든 기억이 이어져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너니까. 제 감정을 격양시키고 너를 향하게 만든 것. 명백히 ㅡ였다.)
클라시카:멸망을 끝내고 싶다고 말했잖아.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다 그리 한마디 뱉었다. 멸망을 끝내고 싶다고. 그러나 죽음은 두렵다고. 저 하나만 포기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데. 고대하던 멸망의 끝이 한 걸음 앞에 있는데.) 나여야지. 죄를 지은 사람... 세계를 등진 사람.. 그게 나니까, 책임을 져야지. (그리 말하며 당신을 껴안아준다. 끌어안고 등을 토닥인다. 저는 당신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은 자신이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니라 여겼으니까. 전부 과거 속에 묻어버릴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당신은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겼으니까. 멸망한 세계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았고, 전부 포기하지도 않았고. 멸망을 반기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 자신 하나보다 세계를 택할 것이라고.) 세상을 구할 기회잖아. ...네 말 한마디에 전부 구원받을텐데도. 그런데도 멸망을 내버려둘거야? (잔잔한 목소리로 구원을 말한다. 당신은 세계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 자신 하나만 버린다면. 그럼에도 당신은 세계보다 자신을 택하고자 하는가.)
비아크:... ...끝내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이 방법은 아니야. 너무 잔혹하잖아. 이건 아니잖아. 그 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죽어가는 게 너무 싫었어. 그런데도... 맞아, 난 죽음이... 죽음이 무서웠어. 도망치고 싶었어. 네가 나를, 구해줬잖아... 나 대신 세계를 버려가면서, 나를 살려줬잖아... 나..., 이런 건 싫어. 너를 잃고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면 뭐하냐는 이야기야... (저를 껴안는 온기, 무게감에 아직도 짓물려있는 눈가에 다시 한 번 눈물이 새어나온다. 싫었다. 이 사람을 잃어야한다는 사실이. 내가 너무나도 ―하는 사람을 이대로, 내 손으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죽음 만큼 괴로웠다. 죽음은 두렵고 제 목숨이 소중했다. 세상을 등지자는 당신의 말을 수락할 만큼 죽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더는 그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서, 그래, 차라리...) 모든 저주가 없는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작은 중얼거림을 남긴 채 당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울면서도, 웃는 낯. 당신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당신의 영생을 멈춰 죽이는 것밖에 없다니. 당신을 죽이지 않고 살아가는 걸 이기심이라고 한다면, 용기를 내어볼까. 모든 걸 뒤로 한 채 다시 한 번 죽음에 몸을 던져, 당신과 만날 수 있을 날을 그려볼까.) ...클라시카, 나는,
나는 네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어... ...
클라시카:왜... 그런 바람을 가진거야. (작은 목소리. 웅얼거림에 가까운 소리로 그런 말을 건낸다. 대화의 의지보다는 한탄에 가까운 말.) 어쩌다 그렇게 잔인해졌어, 어쩌다... 네가 살았으면 했는데. 널 위해서라는 이유로 뭐든 할 수 있었는데. (마음 한편으로 당신을 깊이 탓한다. 애정만큼이나 깊은 증오였다. 사랑한 사람을 끝끝내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찾아온 것은 멸망과 영생 뿐만이 아니었나. 알고있었나. 끝까지 피하고싶었나.) 이 손으로, 너를 죽이라고. (백 년 전 그날. 그리 해야 했던 것 처럼. 내가. ...잔인한 사람아. 잔혹한 사람아. 결국 내 손으로 너를 죽이라고. 이 빌어먹을 사랑이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끊어내라고.) 그러면... ...사랑해줄 수 있어? (당신에게서 눈을 돌린 채 닿은 한 손을 쥐고 그 손에 짧은 입맞춤을 남긴다. 사랑해 주겠느냐고. 내가 당신을 죽이거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연민, 애정 혹은 그 외의 무언가로 자신을. 세계를 구원하겠느냐고. 혹은 자신을 이 멸망 속에 남기겠느냐고. 멸망 속에 남겨 세계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뉘우치라 명하겠느냐고.) 너무한 사람이네...
비아크:나도 마찬가지라서 그래. 너를 위해서 할 수 없는 건 없는 것 같아. 아닐 줄 알았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과거의 겪은 멸망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사실도 부정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직 인과가 맺어지지 못한 거야. 그렇다면, 그 속에 있는 나 역시도... (그 맺음에 함께 해야하는 게 아닐까. 작게 덧붙이고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너는. 늘 선하고 다정해서. 자신에게 있어 과분한 애정을 받게 한 사람이었다. 그런 너에게 칼을 쥐어, 자신을 꿰뚫어달라는 부탁은 이기적이지. 하지만, 나 역시 너를 죽이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이기심을 부리도록 허락해줬으면 해.) ...응, 해줄 수 있어. 대신, 다시 만나게 되면... (한 편으로 내려온 물기조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제 손에 닿는 온기에 제 모든 감정을 맡긴다. 가벼히 네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고, 그대로 제 쪽으로 당겨 짧은 입맞춤을 건넨다.) 모든 걸 잊고, 저주 따윈 상관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과 사람. 그런 사이로 만나자. (날 죽일 수 있는 도구는 많잖아. 나지막히 건네며 눈을 내리감았다. 항상 두려움으로만 가득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자신을 이 저주와 기억 속에서 해방시켜줄 방도라는 걸 깨닫는다.) ...미안해, 클라시카.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네가 백년이 되는 시간동안 기다려온 게 고작, 이런 사람밖에 되지 않아서. (쓴 웃음을 지으며 네 얼굴을 잡았던 손을 내린다.) 네가 피하고자 했던 상황을 마주하게 만들어서, 끝내 도달한 결론이 이것밖에 되지 않아서 미안해. 그때 해주지 못한 말, 지금도 하지 않겠다 했던 말. 이번엔... 네 품에서, 널 보면서 말해줄게. 진심으로. (내 모든 감정이 너를 향한다. 불안과 연민, 책임과 헌신, 신뢰와 애정. 마지막의 ㅡ까지.) 그러니, 해줄래?
멸망의 인과.
이어진 감정.
이것이 말하는 바, 결코 함께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당신은 말했습니다.
함께 죽자고.
함께 죽어버리고 다음 생이라는 것을 기대하자고.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
이 빌어먹을 사랑이 우리들을 파멸시키리라고.
클라시카는 오르간에서 손을 떼고 짧은 나이프를 손에 쥡니다.
익숙한 자세. 몇 번이고 해보았을 행위.
그 얼굴에는 처참한 기색이 깃든 것도 같습니다.
어린 양의 희생과 사랑으로 세계는 구원받을 것입니까.
클라시카의 우는 듯한 낯이 마지막으로 망막에 담기고,
그가 들어올린 칼날이 빛이 났던가요.
한 순간이 반짝임과 함께 가슴이 찔리고 성당의 돌바닥에 몸이 낙하합니다.
당신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갑니다.
두 번째 죽음입니다.
한 가지 속삭임이 연거푸 들려옵니다.
차라리 이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클라시카의 속삭임입니다.
그런식으로 너와 함께 멸망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었어.
...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멸망에 종언을 고해야지요.
비아크:...나도. 차라리, 그랬, 다면... (네 얼굴을 감싼 채, 작은 물기를 머금은 눈에 당신을 담습니다. 흐릿해져만 가는 시야에, 누구보다 확실한 사랑을. 당신을. 웃으며, 생에, 멸망에 종언을 고합니다.)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