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Stack Icecream Hein
[ 희누리 ] 수몰버스
TRPG PlayLog/Hanuri

2021 08 16 | 10H

kpc. 연 희

pc. 서하누리

 

 

*본 포스트는 자작 캐릭터들로 플레이한 '수몰버스'를 백업한 로그입니다.
* 키퍼링을 하다 생긴 개변으로 원작 시나리오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존재하니 본 시나리오를 플레이할 예정이신 분들은 해당 로그를 읽는 것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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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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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버스
 
KPC 연 희
 
PC 서하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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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몸이 얕게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불현듯 꺼져있던 정신이 맞붙습니다.
 
아무래도 버스 안에서 깜빡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에요.
 
눈을 뜨면 들어오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버스의 내부.
 
흔들리는 손잡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
 
조금 낡은 감이 있는 앞 좌석의 시트....
 
익숙한 것투성이인 차체의 내부에서 익숙하지 않은 점이라고는 버스가 텅 비어있다는 점뿐입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제외한 탑승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왜일까요.
 
별로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적적한 버스를 오로지 시선만으로 훑고 있었을 때였나요.
 
문득 좌석의 맞은편 정면에 붙어있는 버스 번호 라벨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하누리, 관찰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눈 꿈벅,)
 
0626번.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번호의 버스인 것 같습니다.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번호의 버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탑승객이 없을 법도 하지요.
 
불안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쯤 왔지?
 
그 전에 목족지가 어디였더라...
 
서하누리:(아.. 그랬나. 멍하니 텅 빈 차안 만을 훑습니다.) 내가 정신이 없긴 없나보다.. (작게 중얼거리고는 턱을 괴며 창밖을 바라봅니다.)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다 보면 문득 기대고 있던 차창 너머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꼭,
 
세상을 수몰시킬 것처럼.
 
서하누리:..장마철인가? (정말 많이 오네. 낮게 중얼거립니다. 그 혼잣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지요. 텅 빈 버스 안, 언젠가부터, 세상을 멈출 것만 같은 고요하기만 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나, 어디 가고 있었지.. (자신이나 버스 안으로... 시선 돌려봅니다.)
(..아니면 지능판정?)
 
지능 판정 해보겠습니다.
 
서하누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잠시만,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글쎄요... 정말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맑았던가요?
 
서하누리:(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보다. 제정신인 게 더 이상한 건가? 하늘은 온통 흐리고, 눈물이 말라버린 나 대신에 비라도 쏟아내주는 걸까. 습하고 꿉꿉한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세찬 빗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과거에 너를 잠깐이나마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묘한 안도감도 듭니다.) ..맑았었나? (이렇게 비가 오는 걸 보면 맑진 않았..을지도.. 따위의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쉽니다. 네가 없는 세상이란, 내가 홀로 정신을 차리기엔 너무 가혹한 곳 같아요.)
 
...서하누리는 문득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그야 잠들기 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언제 이 버스에 올라타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먹칠한 듯,
 
머릿속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뿌옇고 흐릿한 기억만이 잔존합니다.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서하누리 이성 -1
 
덜컹.
 
어지러운 머리를 갈무리하기도 전에,
 
방지 턱 탓인지 버스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립니다.
 
서하누리:(으악...)
 
...그 불친절한 진동과 함께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서하누리:(..? 떨어진 것으로 시선을 내려봅니다. 뭐지..?)
 
서하누리는 버스 바닥을 나뒹구는 [국화꽃다발]을 발견합니다.
 
서하누리:..아, ..내가 가고 있던 곳이, (혼잣말을 멈춥니다. 조용히 허리를 숙여 꽃다발을 줍습니다. 샤락... 조심히 먼지도 털어내요.) ..너한테 주려는 건데, 다시 사야할까요, 희야.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 충격 탓이었을까요?
 
순백색의 꽃잎 몇 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진 것이 보입니다.
 
듣기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닥에 나뒹구는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짤막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틴벨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서하누리:...? (순간적으로 들리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핍니다.) ..몸이 안 좋은 건지, 정신을 진짜 놓아버린 건지.. (한숨을 내쉽니다.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면서.)
 
아,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그렇지.
 
오늘은 사랑하는 희의 첫 번째 기일이었죠.
 
그러니 누리는 희가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서하누리:.. (그냥 그대로 잠 들어버릴 걸 그랬나봐, 그럼 꿈에서라도 널 볼텐데. 이젠 닿을 수도 없는 곳에 있는 너는 언제나, 매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네가 없는 현실이 정말이지 야속하기 짝이 없습니다. 살아나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고, 죽어야할 이유도 찾지 못해서. 단지 방황하기에 살 뿐인 삶. 분명 한없이 다정한 너는, 나한테 살아가라 이야기할테니.) ..보고 싶어요, (작게 웅얼거리고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뚝, 뚝.. 국화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새하얀 꽃잎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하나 둘 내려 앉습니다.)
 
거기까지 떠올리면 문득 버스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서하누리:(..아, 누가 타려나. 급하게 옷 소매로 얼굴을 벅벅 문지릅니다. 내가 강하지도 않지만, 너에 대해서는 더욱이 약해집니다. 이 눈물도 그래서 나오는 거겠죠. 네가 날 너무 약하게만들어서. ..이렇게 약하게 만들어놓을 거면, 곁에 있어주지 그랬어요, 조금이라도 더..) 하아...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심호흡을 합니다. 궁상맞게 이러지 말자, 오늘은 잠깐이라도, 납골당에서 너를 본다고 해도.. 내일은 또 네가 없는 그 하루를 살아가야 할테니.)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서하누리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연희였으니까요.
 
고즈넉한 빗소리가 귀를 먹먹히 울리는 텅 빈 버스 안,
 
죽었던 연희와 조우하게 된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44/22/8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하누리 이성 -1
 
맞붙고,
 
멎습니다.
 
맞붙는 것은 허공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시선.
 
일순 멎는 것은 서하누리의 호흡.
 
그뿐입니다.
 
서하누리:...뭐, (꿈인가? 꿈인가보다. 너무 네가 보고 싶은 나머지 꿈이라도 꾸게 있는 게 분명하다.)
 
서하누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때로 꿈보다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지금껏 비현실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맞이해가며 이토록 불친절하고 잔인한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비현실적인 현실이요.
 
연 희는 분명 1년 전에 죽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요.
 
그래요.
 
나는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곁에 있어 주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의 부재를 부정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내 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연희가 아닌 연희를 지나치게 닮은 사람일 겁니다.
 
꿈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나날 속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이 있는 법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서하누리:... (입술만 달싹입니다. 말을 걸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닐 걸 알잖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 곁에서 환하게 웃던 그 꽃은, 그 사람은 죽었으니까. 그럼에도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너라는 사람을, 너무나도 그리운 너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일 걸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 속에 빠져있는 당신의 상태를 눈치챈 걸까요.
 
막 버스에 올라탄 연희를 닮은 이는
 
서하누리의 생각을 부정하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앉아있는 좌석 옆에 앉습니다.
 
연 희:...안녕, 누리야. 오랜만이에요.
 
서하누리:...희야? (눈을 꿈벅 꿈벅.. 멍한 누으로 너를 바라볼 뿐입니다. 움직이는 너를 따라 시선을 움직입니다. 정말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요? 내가 살고 있는 건 현실이 정말 맞는 걸까요? 비현실적인 현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지 않는 현실입니다.) 희...에요?
(아닌데, 그럴 리 없는데... 그런 생각도 하는 한 켠, 네가 눈에 보인다는 게, 네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는 게, 현실인 것을 알려주듯 선명해집니다.) ...거짓말. (아니라고 해주세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정말로 네가 내 앞에 있는 거라고..)
 
연 희:(당신을 응시합니다. 예전과 같던 그 시선, 행동, 그 모든 것들이 예전과 같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리 움직입니다. 옆좌석에 앉은 그 사람은 모든 것들이 희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었습니다.) 희에요, 네 연인인.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목소리가 선명히 내뱉어졌습니다. 허상도 다른 그 무엇도 꿈도 아닙니다. 감각이 뚜렷하게 느껴질테니까요. 당신의 손등 톡톡 두드립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살아있음을 느끼기에는. 아니 적어도 환상이 아니라고 느끼기에는.) 거짓말일리가요. 설마 거짓이라고 말할 정도로 제가 싫어진 것은 아니겠죠? 믿을게요. 하리야. (작게 웃음소리 내뱉습니다. 허공에 흩어집니다.)
 
저 눈,
 
저 목소리.
 
저 얼굴.
 
아무리 부정하고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웠고,
 
그리웠기에 나날이 새로운 처절함과 아픔을 느끼게 했었던 저 두 눈처럼요.
 
정차했던 버스는 오로지 두 사람만을 태운 채,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서하누리는 받아들이고 맙니다.
 
연희를 닮은 이는,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 아닌 연희 그자체라는 사실을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 잡습니다.
 
서하누리:...아, (터져나오는 탄식. 무슨 말을 무어라 내뱉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할 리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온.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제 손등을 두드리는 손짓에 너를 올려다 바라보았고.)
.. 희야, 희...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히 네 이름을 내뱉습니다. 그 누구도 부르지 않는, 너만이 나를 부르는 그 호칭에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이 뭉개버렸지만.) ..싫을 리 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너를 싫어하겠어... (모든 것이 살아생전과 똑같은 너. 그 작은 웃음 소리마저도 흩어지며 사라질까 소중히 귀에 담아냈습니다. 나의 연인, 나의 사랑. 그리고 그렸던,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 금방이라도 안아버리고 싶은 행동을 겨우 참아냅니다. 혹여 내 손에 닿으면 금방이라도 부숴져버릴까, 모래처럼 흩어져버릴까 두려워서.)
 
연 희:(시선을 마주하자 느릿하게도 입꼬리 올려 짙게도 미소 자아냅니다. 항상 이리 웃어주지 않았던가요. 당신이 자기를 죽은 사람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네, 희에요. 누리야. 오랜만이어서 보니까 너무 좋은걸요. (네 머리카락 슬 쓸어줍니다. 퍽이나 다정한 손길. 다른 사람은 부르지 않는 너에게만 부르는 호칭, 영락없이 현실입니다. 톡톡. 당신을 다시 두드립니다. 몸을 옆으로 돌려서는 안아줍니다. 두 팔로 당신을 감싸 안습니다.) 그러면 울지 말아주세요. 눈 아플라. 목도 아프고. 저는 이리 기쁜데 하리는 슬픈가봐요. (네가 안지 않으면, 제쪽에서 안기 마련입니다. 희는 당신을 버릴 일이 없습니다. 생의 끝까지, 당신을 위한 일만을 할테니.)
그나저나, 하리야. 어딜가던 도중이었어요? (당신에게 군더더기 없는 애정이 가득한 시선을 보낼 뿐입니다.)
 
서하누리:(현실입니다. 항상 달콤한 꿈만 꾸던 내게, 지독히 달콤한 현실이 찾아왔어요. 네가 있는 것 하나만으로 이리도 세상에 밝아보일 수 있나요.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내 사람. 죽었다는 걸 아는데, 분명 알고 있는데..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생이고 내 곁에 있어달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은 부탁도, 소소한 행복들도, 너와 함께 맞이하며 앞으로를 살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될까요? 제가 부담스럽다고 떠나가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없이 소중해서, 한순간에 가버린 당신을 두 번 놓칠까봐 이젠 작은 행동들 조차도 조심스럽습니다.)
..나도, 좋아요..너무 기뻐, 기쁜데.. (그래서 더 눈물이 나는 걸요. 제 품과 맞닿은 품. 그 감촉에, 손길에 저 또한 너를 꽉 껴안았습니다. 모든 감정의 이름을 합쳐도 지금의 기분을 표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당신이 또 사라질까봐 두렵고, 이리 맞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어떤 것보다도 기쁘며, 한 켠으로는 당신이 죽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괴롭습니다. 아프면 어떤가요,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쉰다고 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내 머릿속에 가득 남겨둘텐데. 눈에 가득 채워둘텐데.) ..기뻐요, 물론.. 믿기지는 않고 꿈 같지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아직 눈물이 가시지는 않은 목소리지만, 그럼에도 너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나는 정말, 당신을 다시 만나 기쁘니까.)
..아, 납골당이요. 납.. (..말을 멎습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곳, 들고 있는 꽃다발. 작지만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에. 새하얀 국화꽃과 대비되는 자신의 착장.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희를 보러, 가고 있었어요.
 
연 희:(네 조심스러운 행동 아는지 눈만 깜박입니다. 씁쓸한 표정, 미소. 평생이고 당신 곁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숨이 다해 멎을 때까지, 비록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러고 싶었습니다. 자기의 단 하나뿐인 소망이었습니다. 능소화의 옆자리를 지키는 라일락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소망이 짓밟힌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현재 네 곁에 있는 것은 자신입니다. 속으로 네 이름을 되내입니다.)
기뻐서 눈물이 난다니요. (그럴 법도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고 한들 자기도 울음을 못 참고 내뱉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런 당신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립니다. 토닥, 토닥. 균일하게, 규칙적으로 토닥여줍니다. 당신이 안심할 수 있게 희는 모든 것을 다할 것입니다. 최대한의 성의. 없었던 시간만큼 당신에게 더 잘해주려는 듯한 의도가 다분히 묻어나옵니다. 그는 언제나 다정했기에,) 꿈이 아니라고 말해도 역시 꿈같겠지요? ...어쩔 수 없으려나요. (죽었던 이가 눈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테니... 하고 중얼거립니다. ) 꿈이 아니에요. 지금만큼은 현실이에요. 아니... 허상이라도 이런 말쯤은 해줬으려나요. ...뭘해야 더 이상 꿈같지 않게 느껴질까요. (여름 날의 빗소리, 밖을 바라봅니다. 비가 내립니다. 세상을 수몰시킬 것 처럼. 저 현상 역시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집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놓지 않으려는 듯이 조금 힘을 주어 안습니다. (웃는 당신의 모습에, 자기는 조금 기뻤을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납골당? (네가 말을 멈추자 잠시 바라봅니다. 아무리 보아도 추모하러 가는 복장이 아닌가요. 그저 다정하게 보이도록 웃습니다. 애정서린 눈으로 언제나 이 애정은 끝까지 함께한다는 듯이. 말을 잇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덜컹.
 
다시 한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아. 덜컹, 앉아있음에도 온전치 않은 정신에 버스가 흔들리며 몸이 기울입니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얕은 진동 탓에 시야가 갈라짐과 동시에,
 
문득 운전석쪽으로 시선이 꽂힙니다.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그저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서하누리:...어?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43/21/8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누리야!!!!!!!!!!!
 
서하누리 이성 -1...
 
서하누리:(관자 놀이 꾹..)
 
연희 쪽을 돌아보면,
 
연 희는 일절 놀란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얼굴로,
 
연 희:묻고 싶은 것이 많죠?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서하누리:(네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까 보았던 네 표정, 분명히 이루지 못한 소망, 없지 않았던 후회 등, 꽤나 여러가지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저런 표정, 생전에 본 적이 있었나요? 작년 장마가 올 때, 그 때 잠깐 보았던 표정이었던가요. 당신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나약했던 꽃봉우리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해 당신에게로 와 피어났습니다. 당신의 곁에서 행복한 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은, 내게 너무 과분했나봅니다. 현실.. 현실을 마주해야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그저 네 애정어린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걸고, 온기를 느끼며, 지금의 상황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게 만약 허상이라도,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내뱉고, 네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목소리를 담아야지요. 기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한 편으로는 두려웠으나 죽었던 네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게 훨씬 더,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네가 이렇게 평온한 표정인 것은 이미 죽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게 전부 현실과 비슷해보이는 달콤하다 못해 아린 꿈인 걸까요.) ..많죠. 이해 안 가는 것도 많고.. (네 손가락 위로 손을 올려봅니다. 톡. 그 온기가 맞닿는다면 한 번 더 인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전부.. (눈 꿈벅) 그냥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면.. 그냥, 희랑 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좋지만요.
 
연 희:(이해가 안 가는 것. 그것은 분명 많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해도 이상한데. 운전자도 없고, 비도 미친듯 내리고. ...아는 것은 나의 납골당으로 간다는 목적지 그거 단 하나 밖에 모를테니까요. 그것도 자기가 없었다면 혼자. 혼자 당신 혼자라는 말이 이토록 어색ㅎ게 느껴질 수 가 없었습니다. 당신 곁에는 언제나 자기가 있었기에.) 물어본다면 다 답해드릴게요, 너에게는. 언제나, 숨기는 것 하나없이. (단 것들은 언제나 썩어가기 마련입니다. 제 손가락 위로 톡, 하고 닿은 네 손을 느릿하게 감싸봅니다. 감싸서, 잡습니다. 손바닥이 맞닿게. ) ...현실, 이라고 말했지만요. ...꿈도 현실이 아닐까요. (눈동자를 굴리다가 당신을 봅니다. 자기가 현실이라고 한 주제에 말이 많습니다.) ...그냥 현실이라 믿으실래요? ...나는 네가 보고 싶어서 네 꿈속에 들어온 것이지만. (분명 꿈에서 깼을 터였습니다. 누리는. 그렇다면 이 소리는 꿈 안에서 꿈을 깬 것일까요.) 있잖아요. 내가 너의 목적지까지 동행할게요. 네가 길을 잃지않게 도와줄게요. 내 목적지도 너와 같으니까요.
 
서하누리:(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수몰시켜버릴 것 같던 빗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오로지 당신의 목소리만을 귀에 담았습니다. 텅 비어 혼잣말만이 울리던 버스 안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애정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는 걸요.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너와 함께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안심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동시에 먹먹해지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네가 알면 뭐라고 그럴까요, 엉망으로 산다며 혼을 내지는 않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말 조차도 따스할 걸 알기에. 맞잡힌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손을 마주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믿을래요. 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니까요.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으며, 사랑했던 사람.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 내 평생을 바쳐 사랑할 사람은 너 하나 뿐입니다.) 이게 꿈이라면 자각몽이라고 해야하나요, (낮게 웃음소리를 흘렸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은 된 모양이죠, 이어지는 말에 조용히 국화 꽃을 바라보다가, 제 옷깃을 손으로 꽉 잡습니다.) ..네 납골당에, 너를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너와 함께 가다니, 참.. 모순적이네요, 그쵸. (네게 엷은 미소를 내비칩니다.) 네가 도와준다고 이렇게 와주면, 평생 길을 잃고 살아도 좋을 거 같아요. (조금은 장난스럽게 툭 던진 말입니다. 네 어깨에 닿도록 고개를 조심히 기울였습니다.)
있죠, 희야.. 그럼, 설명해줄래요? 죽었던 네가.. 왜 지금 내 앞에 있는지. 거짓이 있어도 상관 없으니까, 허무맹랑한 소리라도 좋으니까..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연 희:(자기가 없는 시간의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자기자신은. 다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실 자기를 더 생각해주었으면 하지만, 자기가 없는 세상의 당신도 보란 듯이 잘 살아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니까. (참으로 달콤한 말입니다. 이내 당신을 바라보던 시선 거둡니다. 자기를 이토록 의지해서야 어째... 혼자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엔... 만난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조금 더, 뒤로 가도록 할까요. 당신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사랑했던, 사람아.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 나중이 되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사람이.) 그렇네요, 자각몽. 네가 날 의식할 수 있게, 그리 만들려고 설계된 것이니까요. (뜸. 제 옷깃 잡는 감각이 느껴지자 다시금 시선 당신에게로 향합니다.) 신기하네요. 제 납골당에 제가 갈 수 있을 줄 은 몰랐는데요. (가볍게 웃음소리 내뱉습니다. 지조적으로 기계같이 내뱉습니다.)그러면 안되는 것 알잖아요, 너는. (현실을 일깨워주듯 말하다가도 꿈과도 같이 속삭입니다.) 제 도움은 짧으니까요. 네가 무사히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길지만요. (장난으로 답해주지 못했습니다. 아차, 한 듯 하지만 입술 꾸욱 깨뭅니다. 제 쪽으로 기댄 고개의 느낌에 눈 깜박거립니다)
...그냥... 나는 말했어요. 네가 가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해,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왔어요. (뜸) 동행하러.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러면...
(희는 버스의 벨을 눌렀습니다.)
이제 내릴까요. 이야기 할 시간은 많아요, 아마. 네가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가야할 목적지까지 바래다 줄게요.
 
그 말을 끝으로 버스는 곧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서하누리:.. (내가 보고 싶어서, 그 말이 참으로 달콤합니다.) ..네, 내려요.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벌써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루 쯤은 그냥 내다버렸겠지. 길을 잃지 않도록,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세요. 평생은 바라지 않을게, 네 말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도, 그걸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너무 잘 아니까. 몸에 느껴지는 네 온기는 이리도 따스한데, 때때로 들리는 너의 말은 다정하면서도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가요, 희야. 오랜만에 둘이 걷는 길이네요. (복잡한 기분을 뒤로하고, 네 손을 잡은 채로, 애써 웃습니다.)
 
-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 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띕니다.
 
서하누리:..비가 많이 오네, (항상 해왔던 혼잣말, 그 말을 내뱉는 동안에도 옆에 있는 너를 바라봅니다. 제 뺨을 만지작거리다가 벽면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마치 담장을 연상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벽 아래, 꽃이 하나 피어있습니다.
 
흰색의 국화.
 
누리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흰색 국화꽃입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린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국화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가르고 희가 말을 걸어옵니다.
 
연 희:국화꽃의 꽃말을 알고 있어요?
 
빗소리에 파묻힌 탓일까. 희의 목소리는 어쩐지 막연하고 얕습니다.
 
서하누리:.. (길거리에 있는 꽃 치고는 엄청.. 생생해보이네. 벽면에 있는 국화를 바라보다가 네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꽃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않아요..? 제가 알고 있는 건 평화랑.. 감사, 정도에요. (옅게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다른 뜻도 있나요?
 
연 희:그걸 알고 있네요? 예전에 찾아보기라도 한 걸까요? (가만 당신보다가 시선 돌려 국화꽃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국화꽃의 색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서하누리 지능 판정
 
서하누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생각을 해보아도... 글쎄요.
 
국화꽃의 색상에 따라 꽃말이 상이하던가요?
 
처음 알게 된 사실인걸요.
 
서하누리:(그랬...던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희를 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입니다.) ..국화 중에 마음에 드는 꽃말이라도, 있어요?
 
연 희:글쎄요. 마음에 드는 게 있었을까요.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답하듯, 중얼거립니다. 당신을 보며 얕게 웃더니 먼저 걸어가서는 벤치에 앉습니다.) 아직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남은 것 같네요.
 
서하누리, 희에게 심리학 판정을 시도해보나요?
 
서하누리: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웃는 얼굴에서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앉아 있을까요? (나무 벤치를 힐끗 바라봅니다. 젖지 않았다면 앉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연 희:안아있어도 좋을텐데 말이에요. 별로 젖지도 않았어요. 보세요. (제 손으로 벤치 쓸어보이고)
 
원목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나무 벤치입니다.
 
지붕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막아주는 탓에 젖은 부분 없이 바짝 말라 있습니다.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벤치에 앉아 쉬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하누리:다행이네요, 젖지 않았다면. (먼저 벤치에 앉더니, 네 손을 잡아 살짝 당깁니다.) 비가 정말.. 많이 와요. 지붕이 무너질 것 같이.. (느릿하게 지붕을 꿈벅이며 쳐다보다가 표지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연 희:(잡은대로, 자기를 끄는대로 몸을 움직입니다. 가깝게 붙은, 그런 거리.) 무너지지 않을거에요. 제가 있잖아요. 편하게 가게 도울거라고요, 네가. (웃음 소리 내뱉고)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입니다.
 
표지판 아래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서하누리:..희가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무언가.. 묘한 의무감이 느껴진다. 보고 싶어서 와줬다는 것, 그게 기뻤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 바로 떠나버릴까봐 불안감이 생긴다. 그치만 네게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보다 편안함과 따스함이었기에,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희랑 만나서 너무 좋아요. (네 손에 제 손을 올리며 미소짓곤 버스 노선도를.. 봐봅니다. 볼 게 없다면 그대로 시선은 희에게 향합니다.)
 
누리가 노선도를 바라보자,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서하누리:...어라? (안내판을 가만히 바라보며 눈 깜박. 아까 국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게 이거 때문인가? 희를 보았다가, 다시 안내판을 바라봅니다.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봅니다.)
 
“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 ”
 
흰색: 감사함, 진실함, 성실함
 
분홍색: 정조
 
노란색: 순정
 
보라색: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색: 당신을... 합니다.
 
맨 아래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색상별 의미는 칠이 벗겨져 있어 읽을 수 없습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잘 보이질 않네요, 뭐일까.)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벗겨진 자국을 통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붉은 색 이라고 적혀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글자가 깨진 안내 메시지가 보입니다.
 
정확히는...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입니다.
 
서하누리:... (버스가 오긴 오는 걸까?.. 노선도가 전부 국화 꽃말로 되어있는데..) (우선 전광판을 봐봅니다. 올 때까지 오래 걸리려나?)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지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서하누리 지능 판정
 
서하누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아무런 생각이 안 듭니다.
 
근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자기가 연 희의 이름을 부르면 다음 버스가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서하누리:(저런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 싶었지만.. 애초에 지금 자신이 보내고 있는 현실은, 현실 같지 않은 상황이기에. 길을 잃지 않도록..이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던 걸까요. 납골당으로 가는 길이.. 조금 이상합니다. 차분히 생각을 하다가, 네 이름을 입에 담습니다.) 연, 희..
 
연 희:(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부르는 소리에 당신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르면 달려갈 겁니다. 제 이름, 두글자. 네, 하고 옅게 대답합니다. 서하누리, 저를 부르셨나요. 하고 중얼거립니다. 너무 작아서 들리 지 않았을까 염려합니다.) ...부르셨나요?
 
연희가 서하누리의 이름을 마주부르면,
 
...왜, 였을까요.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마주 부르는 연희는
 
목소리가 어딘가 한구석,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서하누리,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는...
 
한없이 가라앉은 것만 같은 연희의 두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냈나요.
 
심리학 판정
 
서하누리: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 (안돼, 사라지지 마요. 무의식 중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서하누리:..아, (제 앞으로 온 버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네 손을 힘을 주어 잡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 웃어보이는 얼굴이지만, 약간의 불안감은 섞여있어요.) ..이거 타야할 것 같은데, 갈까요.. 희야.
 
연 희:#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418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418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연 희:네, 아무래도 타야하겠죠. 내가 널 데려다 줄 수 있는 버스니까요. (나긋하게 말하고. 네 손 이끌어 버스위로 오릅니다.)
탈거죠? ...이리와줘요.
 
서하누리:..응, 물론이에요. 가야죠. 조금이라도 더 희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일텐데. (여전히 웃는 낯으로 네 손을 잡은 채 너를 따라 버스 위에 오릅니다.)
 
두 사람은 버스에 올라탑니다.
 
듣기 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서하누리:윽,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제 귓가를 꾹 누릅니다. 이명이 들리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 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서하누리와 연희,
 
두 사람뿐입니다.
 
운전석을 살피면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기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스는 그저 운전기사 없이 홀로 굴러갈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의자 두 개가 붙어있는 2인용 좌석에 착석합니다.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생기를 잃었습니다.
 
마냥 하얗던 꽃잎 끝이 짓밟힌 듯 옅게 시들어있습니다.
 
서하누리:..꽃이, (놀란 눈을 하고는 국화를 손으로 쓸었습니다. 왜이러지? 아까까지만 해도 생생했는데.. 눈을 꿈벅거리다가 또 한 번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을 줍니다.) ..시드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안 좋아요. (..너 또한 나의 꽃이니까. 이리 금방이라도 시들어 내 손에서 사라져버릴까봐.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도 운전기사가 없네요, 이 정도면.. 모노레일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실없는 농담이나 흘리며, 너를 바라봅니다.)
 
연 희:왜요? (네 꽃 바라봅니다. 그저, 바라만 보다가 시선 돌립니다.) 살아있는 것이 시드는 거니까 아무래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만도해요. 저도 마음이 같이 안 좋아지네요... (침묵,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기에 슬 토닥 거려주고는) 모노레일이기보단... 꿈이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내가 너와 단 둘이 있고 싶다고 빌었으니까요. 기사도 없이 단 둘이 있게 되버린. ...(눈 깜박.) 뭐하고 지냈어요?
 
서하누리:(네 토닥임을 받을 때면, 겨우 밀어넣었던 눈물이 다시금 비집고 나온다. 그 온기가 느껴져서, 정말 내 옆에 있는 게 당신이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아하하.. 그랬어요? 나랑 단 둘이 있고 싶다고.. 내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빌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너를 바라봅니다. 그래요, 사소한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단지 지금은, 이 꿈이라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앉아 마주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소중합니다.) ..음, 그냥.. 별 건 안 했어요.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으니까..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래도 일도 조금 하고, 가끔은 하루종일 잠도 자고.. (뜸을 들이다가 뒷말은 삼킵니다.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며 고개를 저었어요.) ..무력하게 살았죠.
 
연 희:(이리 저를 의존해서 어떻게 하나. 짧게 고민합니다. 제가 없었던 너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둡니다.) 네, 단 둘이 있고 싶다고 빌었어요. 그리 빌었어요. (의미없을 말 똑같이 따라 내뱉었습니다. 느릿한 시선이 땅으로 가더니 눈 내리감고는 뜹니다.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잠시 생각합니다. 이내 생각은 지워집니다. 그런 쓸모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할 터인가요.) ...왜 그랬대요. 잘 나오고 그래야죠. 잠도 잘 자고, 적당히. 자주 활동하고 소통해야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요. (다정하게도 말합니다. 네 뒷말이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기에. 잠시 눈동자만 굴립니다.) 그러지 말아요. 더 밝게, 보란 듯이 잘 살아주세요.
 
서하누리:
..희는 너무 다정해서 탈이에요, 정말. 이렇게 해놓고.. 또 떠나려고 그러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너와의 이별은 나의 마음에 큰 공허함을 안겼다. 사별. 죽음으로 인해서 모두 조각난 나의 일상과 마음을 겨우 붙여 숨을 쉬고 있다.) ..나는요, 희한테 의지한 게 너무 커서... 가장 사랑한 게 희라서. 다른 누구보다 희를 그리워했고, 사랑하고, 남겨준 삶을 이어붙여가고 있을 뿐이에요. 희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거든요.. 살아가라고,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너무 어려운 부탁이에요, 그건. 나는.. (숨 쉬기 조차도 버거운 걸.)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기억.
 
당신의 옆에는 사랑해 마지않는 연희가 자리하고,
 
우리는 조용하고도 한적한 버스에 앉아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서하누리는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
 
공포,
 
슬픔,
 
당황스러움...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 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던 그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과 함께 일순 힘이 빠져나간 몸이 앞으로 쓰러집니다.
 
와락.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 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연희뿐인걸요.
 
연희입니다.
 
희가 억센 힘으로 누리를 끌어안았습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도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마치 눈송이 같은 국화 꽃잎은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나를 꽉 끌어안은 연희의 체온은 어쩐지 전혀,
 
따뜻하지가 않아서.
 
그게 또 어쩐지 너무나도 슬퍼서.......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야속하게도 연희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되고 맙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눈앞에 왈칵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서하누리 듣기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이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듯 귓가에 익숙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섞여들던 탓입니다.
 
괜찮아.” ” "
 
...하고.
 
-
 
...깜빡.
 
서하누리는 눈을 뜹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 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 전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시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시들면 안 될 텐데.
 
당신은 막연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야 오늘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이니까요.
 
연 희:깼어요?
 
서하누리:(깜빡, 깜박.. 느릿하게 떠지는 눈, 동시에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시선을 돌립니다.) ..깬, 것 같아요... (아까 있었던 일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듯 물방울 소리를 제외하고 고요하기만 한 이곳은, 꿈인 걸까요?) ..아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제 손에 있는 꽃다발을 손으로 꼭 쥡니다. 시들어지는 꽃에 마음이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연 희:더 자도 되었을텐데요. (꼭, 빗물에 익사할 것 같은 무겁던 정신을 흔들법한 잔잔하고 담담한 목소리입니다.) 아까? (꽤 다정한 목소리로 돌아와서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별로 이야기하려는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그러곤 생각. 주변을 둘러봅니다.)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입니다.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희에게 기댄 채로 앉아있던 것 같습니다.
 
서하누리:..희를 옆에 두고 어떻게 그래요. (빗물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렇게 많이 오면, 정말 빗물에 잠겨버릴 것만 같은데 말이에요. 기대어 있는 어깨가 편안함이 느껴져 좋습니다. 그럼에도 이 온기가 얼마 가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아까 겪었던 일이 꿈인지, 지금 일어난 일이 꿈인지. 어느 쪽이 꿈이던, 지금 자신에게 두려운 것은 네가 사라지는 것 하나입니다.) ..저희 언제 내렸어요? 버스.. 기다리고 있는 거 맞죠, 우리. (네 손 쪽으로 손을 살짝 뻗으며 잡으려고 합니다.)
 
연 희:제가 옆에 도착 전까지 있을테니 그래도 되는걸요. (낮은 목소리로 그리 말합니다. 빗소리에 섞여들어서는 목소리를 잘 듣기가 어렵겠네요.) ...음, 네가 잠들고 나서 도착했길래 내렸죠. 맞아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버스 정류장이고, 도착지를 향해서 가야하니까요. (나긋한 어투로 말을 끝냅니다. ...손을 마주 잡아주었습니다. 손은, 온기라고 말하기보단 차가운 손에 가까웠습니다.) 아직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남은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연희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것만 같다는...
 
이유모를 생각이 듭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둘러보기 전까지는, 별 눈에 띄는 것을 못보겠네요.
 
서하누리:(피곤해서 그런가봐요. 눈 부빗...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다시 판정해주세요!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5
판정결과:  
 
누리가 주변을 보니...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 이 보입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서하누리:(깜박.. 저번 정류장에는 국화..의 꽃말이 있었던가? 여기도 평범한 게 아니라 다른 내용이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안내 전광판을 자세히 봅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첫 번째 정류장에서 보았던 전광판에 비해 노이즈가 덜합니다.
 
서하누리 관찰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인도자...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서하누리는 첫 번째 정류장에서 연희의 이름을 호명한 직후 버스가 도착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두 번째 정류장에서도 연희의 이름을 불러야 버스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하누리 지능판정.
 
서하누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일까요?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하누리:... (다음 버스, 꼭 타야할까? 불안한 시선으로 전광판으로 바라보다가 희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계속해서 납골당으로 향한다면.. 너와 헤어지는 시간이 빠르게 다가올 걸 자신도 알기에,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애써 웃는 낯을 네게 보이지만, 그 안에 망설임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버스, 언제오려나.. 버스가 늦게 오려나봐요, 그쵸. (괜히 못본 척, 작은 웃음 소리를 흘리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을 꽉 잡았습니다. 놓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서, 계속 네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연 희:(네가 보는 전광판을 가만 바라봅니다. 그러곤 자신을 바라보는 네게 시선을 돌립니다. 그러니까, 시선이 얽힙니다.) ...봤잖아요. 전광판. ...설마 저를 보려고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거나... 아니죠? (느릿하게 말을 이끕니다. 네가 맞잡은 손에 눈동자가 굴러갑니다.) 혹, 버스를 타기 싫은 것은 아니죠?
 
서하누리:.. (..눈치 빠른 게 이럴 때는 얄밉습니다. 괜히 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다가 시선을 흘릴 뿐 한참을 말이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더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네게는 솔직한 말 한마디 한 마디만 해도, 턱없이 부족한 걸요. 너를 놓고 싶지도 않고,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할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는 걸까요. 세상은 왜 이렇게 야속한 건지, 고개를 떨궜습니다. 시선을 마주하고 솔직한 마음을 말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별로 안 좋아서요, 희랑 이별하기 위한 길을 가는 것도.. 아까 본 건지, 꿈을 꾼 건지.. 그거 때문에, 버스에 다시 타기가 찜찜하기도 해서..
 
연 희:(침묵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들 합니다. 희도 딱 그편이었죠. 그래요. 침묵이 길면 길수록 부정적인 말에 가까워지지 않덥니까.) 저랑 이별하려 가는 길이 아니죠. 저를 만나러 가는 길이지. 거기 있는 저도 제가 아니던가요. (느릿하게 웃음소리 흘립니다. 유쾌한 웃음소리는 아니더군요.) ...그래도, 가려면 버스에 타야하는 걸요. 여기는 걸어서도 갈 수 없는 노릇이고... ...저희, 같이 버스에 올라요. 제가 있잖아요. 아직까지는. 저를 믿어주세요. 내가 너를 지켜줄테니까요. 안전하게 데려다준다고 했잖아요.
 
서하누리:..살아있는 희가 아니니까요, 나는, 어떤 희든, 사랑하고 아끼고, 또 소중하지만.. 당연히, 당연히 살아있는 네가, 제일.. 제일 소중하단 말이에요. (잘게 떨리는 몸에 결국 손을 놓고 자신의 얼굴을 손에 묻었습니다. 흘러 나오는 눈물을 멈출 길은 없습니다. 너와의 두 번째 이별을,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힘든데. 너는 또 나를 떠나가려고 하고 있잖아요. 홀로 떠나갈 준비는 다 해놓고, 준비되지 않은, 남겨진 저는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희야.) ..희를, 절대... 희를 못 믿는 게 아니에요, 지켜줄 거라는 말도, 안전하게 데려다준다는 말도 믿고 있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늪에라도 빠진듯 질척 질척, 무거워져만 가서. 함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이상, 네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네 말을 또 한 번 들을 뿐입니다.) ..희야, 연 희. (네 이름을 입에 담습니다. 아아, 이제 버스가 오겠죠, 이곳의 너와는 멀어지도록, 그곳의 너와는 가까워지도록 하는 버스가.)
 
연 희:...지금의 저도 딱히 살아있다, 라고 칭하기는 어려운 걸요. (씁쓸하게도 웃습니다.) 따뜻함보다는 차갑고, 곁에 있다기보다는 머무르지도 못하고, 데려다주기 밖에 못하니까요. 그래도 데려다주기만 하는 게 어디인가요. 아예 못 보는 것보다 훨 낫네요. (당신이 우는 모습에, 희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요. 당신이 고개를 손에 묻어, 보이지 않았을겁니다. 느릿하게 등을 토닥여줍니다. 자신이라고, 당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기를 바랐고, 바라고 있었을겁니다. 언제까지나 가장 오래 영원토록 함께있기를. 하지만 그것은 실현되지 못할 현실이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련을 일고오니 포기해야 마땅합니다.) 네, 알고 있어요. 저를 믿고 게신다는 것을. 한 번 해본 말이에요. (다시금 느릿하면서도 다정한 어조. 함께 있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니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싶을 것이다.) 네, 누리야, 서하누리. 저를 부르셨나요. 버스가 곧 오겠네요. (당신에게 고정되어있던 시선은 저 너머를 바라봅니다. 미련을 떼듯.)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희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될 듯 참담히 젖어있는지.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 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다는 근원 모를 충동만이 내 안에 가득합니다.
 
서하누리:...타고 싶지 않아요. (제 양손을 모아서 꽉 쥔 채로 주춤거렸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몸이 거부하고 마음이 거부하는 것. 네 말을 들을 것이라는 믿음을 더하고 싶어지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움직이질 않습니다.) ..미안해요,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정말 타고 싶지가 않아요...
 
연 희:괜찮아요. (제 손으로 네 양손 감싸쥡니다.) 제가 있을 터인데 뭐가 그리 두렵나요. 너를 안전하게 데려다준다고 한 저인데 말이에요. (느릿하게 손 잡고 이끕니다.) 무서워할 것 없어요.
 
그 이유 모를 낯선 충동은
 
빗물보다도 잘게 흐드러져 떨어지는 연희의 목소리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집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숨통을 조르고 익사시킬 듯 나를 쥐고 흔들었던 불안감마저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그저 온 세상을 적시는 빗소리와 끝없는 안정감만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합니다.
 
연희가 서하누리에게 손을 내밉니다. 잡으라는듯이
 
서하누리:(..주먹을 한 번 꼭 쥐었다가, 너를 바라보며 겨우 네 앞으로 걸어갑니다.) ..알았어요. (언제나 네게 기대 살아서 미안해요, 이런 나라서 미안해요. 추적 추적 내리는 빗방울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삼켜지고, 온기가 있는 제 손에, 차디찬 네 손이 맞닿습니다.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그럼에도 네 손을 놓고싶지는 않아, 힘을 주어 잡았습니다.)
 
잡은 손에 약하게 힘이 일고.
 
두 사람은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418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습니다.
 
서하누리 듣기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아까 전 들었던, 이제는 익숙해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서하누리와 연희, 두 사람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서하누리:(깜박.. 자신에게 열쇠같은 게 있을 리가 없죠. 그래도.. 안 쪽으로 들어가면서 자물쇠나 문을 한 번 힐끗 바라봅니다.) ..여기도 우리 밖에 없네요,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는 것도.. 신기하고..
 
서하누리 관찰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
 
...
 
서하누리:(한 번 더..)
 
굴려주세요.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음을 눈치 챕니다.
 
갓 생명을 피워낸 듯 하얗고 투명하던 꽃잎은,
 
이제 그저 계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단지 몇 송이의 국화만이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발할 뿐입니다.
 
희가 먼저 창가 좌석에 앉습니다.
 
서하누리:(앗...) ..왜지, (자꾸만 시들어가는 꽃잎이 혹시나 너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나타내는 걸까봐, 두려워 눈을 꼭 감았습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그곳에 있는 너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 준비한 꽃다발인데, 네게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 시들어버리는 걸까요? ..대체 왜일까요, 자꾸만 시들어가는 것은.. 네게 물어도 네가 알 턱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아는데도, 한 번쯤은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서 이상하지 않은 상황은 없는 걸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네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꽃다발을 쥔 손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갑니다.) ..저기 있죠, 희야.
혹시, 꽃이 시드는 이유를 아나요? 너한테 전해줄 꽃이 자꾸만 시들어서, (..) 그래서 내가,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연 희:(제 옆자리에 앉음에도 그저 멍한 듯합니다. 창밖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러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밖에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추락하는 꼴을. 아니... 비마저 희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몽롱하다거나, 멍해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우울해 보이는 모습일까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한박자 뒤늦게, 응... 아, 네? 하고 답할 뿐입니다.) ... ... ...잠시만요. 미안해요. 뭐라고 하셨더라요.
... ... ...꽃이 시드는 이유를 물어보셨던가요. (초점이 아직 맞지 않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고정된 듯 마냥 창밖으로 고개가 돌아가있습니다. ) 꽃이 시드는 이유를 물어보셨던가요... (어눌한 어조, 느릿하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뜸이 들여집니다. 당신에게 이유를 말하기 싫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희의 상태가 많이 낮아졌을 뿐입니다. 시선을 창밖에서 떼어 네게 도로 붙입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습니다.) ...살아있는 꽃이니... 시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요.
 
서하누리:(네게 향하는 시선은 곧습니다. 순식간에 반대가 되어버린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 네 반응과 대답에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거립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시드는 것이 이상할 뿐입니다. 게다가 더욱이 어색해보이는 네 미소는 자신에게 불안감을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분명, 무언가 자신의 대답을 오묘하게 피하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다시 되물어봐도 똑같은 대답 아닐까, 어쩌면 말을 돌려버리진 않을까, 갖은 걱정을 하면서도 입을 움직입니다. 자신은, 네게 거짓을 내뱉지 않으니까. 너도 그럴 거라고 믿고 싶으니까요.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임을 압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뿐,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너와의 인연이 부숴질 듯 위태로워도, 신뢰관계는 부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꽃이.. (..) 분명, 출발할 때는 생생했거든요. 흰색이었고, 이렇게 시들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거였어요, (..어째서일까요, 네가 점점 이 빗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은. 우울을 집어 삼켜 그리도 어두운 낯을 한 건가요? 두렵습니다. 네가 멀어져가는 것만 같아서.)
 
연 희:(네 곧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희의 시선은 탁하기 그지 없습니다. 흐릿하고 불투명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 네 모습은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희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딱히 무언가를 숨기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숨기고 있어보인다면 보는 사람은 그리 보이겠지요. 딱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걸까요. 희는. 꽤 많이 지쳐보입니다.) 꽃이... 생생했었다니. (고개 위로 올립니다. 버스의 천장을 바라봅니다. 어조는 같습니다. 느릿하게 말하는 어조. 답은 항상 한 박자 늦게 답하거나, 네 말을 듣지 못한 듯 합니다.) 여기는 꿈이니 그런 것이 아닐까요. 네가 끝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생각하니... 시들어가는 것, 일지도 몰라요. 그게 다... 시들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아요. 소중한 것이잖아요... . (말은 매끄러운 문장을 내뱉지 못합니다.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하고 중얼거립니다. 함께 같이 수몰될 듯한, 목소리마저 삼켜질듯한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일단은, 네 곁에 있는 것은 희가 맞습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좌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서하누리:(희를 바라보던 시선을 뗍니다. 왜일까요, 뭐가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거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너도, 점점 빗 속에 동호되고 있는 것 같은 너도, 힘들어보이는 너도. 무언가 이상합니다. 왜일까요, 나를 납골당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정말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한 마지막 의무감일까요. 네 의지가 맞음을 믿음에도, 평소의 너와 다르기에 머릿 속이 복잡해져갑니다. 소중한 것, 국화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을 한 번 뺍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게 너임을 네가 모르지는 않을텐데. 혹시 나네가 이 꽃처럼 시들어버릴까 겁이 납니다.) ..그래요, 맞아요. 소중하죠, 이 은.. (너라는 꽃이 내게 소중해요.)
(아, 책자를 발견하고 뭐지..? 싶어 조심히 주워봅니다.)
 
푸른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제목은 《merry go round》
 
...메리 고 라운드.
 
회전목마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서하누리:(회전목마, 돌고 도는, 단순하면서도 좋은 추억이 되는 곳.) 그런데 이런 게 왜 여기.. (펼쳐볼 수 있을까요?)
 
merry go round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막 망자를 위한 길로 들어서기 직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흔히 인생의 주마등과 마주하곤 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이 눈앞에서 한 차례 영화처럼 펼쳐지는 현상을 주마등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죽음의 끝에 당도한 산 자여,
 
그대의 삶이 적어 내려간 필름의 길이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책자의 내용을 살핀 직후 탐사자는 강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습니다.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서하누리는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
 
어느 순간 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희와의 첫 만남.
 
...단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었던 기억,
 
처음으로 그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던 기억,
 
고조되는 행복감에 웃어버렸던 순간.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빛처럼 터져 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연희와 서하누리.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 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하며,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체온이 따스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마저 서로 간의 애정에 담뿍 물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 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서하누리를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강한 힘으로 끌어안깁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곁에 사시사철 피어나는 국화처럼 존재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늘 누리를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온 생애를 다해 열렬히 사랑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야...
 
연희 아니던가요.
 
연희입니다.
 
연희가 억센 힘으로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의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 듯 희뿌옇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달라붙습니다.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연희만이 아니었습니다.
 
연희와 서하누리,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나’를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연희는 서하누리를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
 
본인을 희생시켜서요.
 
이건... 주마등인가요?
 
그래요.
 
이건 주마등입니다.
 
인생의 주마등 속에서 사고의 진상을 목격한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42/21/8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이성 - 2 감소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서져 내립니다.
 
서하누리 듣기 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조금은.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모든 것이 바닥까지 묵직하게 가라앉고 맙니다.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 또한 함께 수몰됩니다.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기억났습니다.
 
떠올렸습니다.
 
1년 전의 그날,
 
연희는 나를 끌어안고 대신 죽었던 겁니다.
 
고개를 돌리면 연희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서하누리:희, (입 밖으로 나오던 말이 삼켜집니다.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잠들어있는 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죄스러워서, 차마 너를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눈가가 시큰거립니다. 아파요, 머리가, 가슴이, 마음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왜, 나를 그리 끌어안고 죽은 거였나요. 차라리 너와 함께 죽었어도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네가 이어준 생명을 잇고 살아가는데, 되려 너를 원망하는 자신이 미우면서도, 그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희야, 희. 사랑하는 연 희.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사랑스러워서, 나를 사랑해줘서, 아껴줘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너 대신에 살았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괴롭습니다. 왜 함께 있을 수 없는 건가요, 함께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뭉개지고, 눈에서는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또 한 번 투명한 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떨군 채 떨어지는 눈물 방울은 자신의 옷가지를 적셔갑니다. 나는 어떻게 너를 봐야할까요. 너를 마주할 수 있을까요. 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정해서, 이런 나를 위해 대신 죽고, 나를 보러온 거였나요. 내가 뭐라고. 대체, 내가 뭐라고..)
 
깊게 잠든 탓에, 희는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일어나질 않습니다.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여전히
 
덜컹.
 
버스가 방지 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서하누리:(...? 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봅니다. 열쇠..인가?)
 
회전목마 고리가 달린 작은 열쇠를 발견합니다.
 
서하누리:(..열쇠를 주워봅니다.) ..2층, 열쇠인건가... (희를 한 번 힐끗, 열쇠를 한 번 바라봅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가는 문에 걸린 자물쇠를 열어보러 갑니다.)
 
자물쇠에 아까 얻었던 열쇠를 끼워 넣으면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버스 2층이 개방됩니다.
 
-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출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 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서하누리:(..특이하게 생겼네, 작게 중얼거리더니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어색한 몸짓이지만, 가만히 2층을 둘러보다가 책상쪽으로 향합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흔한 먼지 하나조차 쌓여있지 않네요.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을 한 장 발견합니다.
 
서하누리:(뭐지..? 눈을 한 번 깜박이고는 고개를 기울입니다. 쪽지를 주워듭니다. 남의 것을 읽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조심히 펴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이상입니다.
 
서하누리:..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애써봅니다. 고개를 살짝 내젔곤, 쪽지를 다시 접어 책상위에 올려둡니다.) ..별 뜻, 아닐 거야.. (혼잣말만 내뱉다가 책장으로 향합니다. 여기도 비어있을까?)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지만, 그 어느 것도 누리가 읽을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검은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히 즐비합니다.
 
서하누리, 관찰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쪽지를 한 장 발견했습니다.
 
서하누리:(여기도 쪽지...? 고개를 갸웃이다가 뽑아서 펼치고 읽어봅니다.) ..아까 같은 내용은 아니었으면 하는데..
 
죽음의 이름은 곧 다음 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 안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자는 산 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다.
 
세 번의 호명 끝에 산 자는 비로소 망자가 된다.
 
서하누리, 지능판정
 
서하누리: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보니...
 
각 정류장에서마다 누리는 희의 이름을 불렀고,
 
희가 그에 상응하여 답한 대답에는 모두 누리의 이름이 들어가있었습니다.
 
...근데 희가 그 때를 제외하고 서하누리, 그 이름 네글자를 제대로 부른 적이 있던가요.
 
...또한, 희가 이름을 부르고 묘하게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그게, 떠오를 뿐입니다.
 
서하누리:... (..기분탓이라고 여길 겁니다. 아니고 싶으니까, 네가 죽은 것이든 내가 죽은 것이든, 둘 중 누구도 망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너와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을 지 없을 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지금 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음 생에도 너를 찾아 헤매며 방황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그냥 너와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걸.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머리에 박힌 한 가지 생각. 네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이었던 것 같아. 인도자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버스가 도착하는 거였을까. 인도자가 희이고, 죽은 사람이 나인 걸까? 정말로..)
...나, 죽은 걸까.
(아니, 아닐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나쁜 내 머리가 하는 망상에, 추측에 불과하니까.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멍청한 내 머리를 탓하며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 설령, 그게 나의 죽음이라고 해도.)
(한참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침대 쪽으로 향합니다.)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 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서하누리 님’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누리는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서하누리, 당신이잖아요.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갖가지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서하누리,
 
당신입니다.
 
서하누리, 듣기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 나옵니다.
 
서하누리, 관찰 판정.
 
서하누리: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 ... ...
 
서하누리, 듣기판정
 
서하누리: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 ... ... ...
 
누리는 주변에 있는것을, 잘 보지 못해도 저 모니터의 밝은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 장치의 모니터 위로 마치 미약한 파도 같은 누리의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입니다.
 
이제야 확신합니다.
 
당신을 감싸 안고 죽어버린 연희의 희생이 무색하게,
 
당신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언가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2 감소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서하누리,
 
당신입니다.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 삐- ...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갈라져 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서하누리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연 희:일어났어요?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목소리.
 
연희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류장의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그래요.
 
그랬던 겁니다.
 
이름의 불러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연희였습니다.
 
서하누리는 지금까지 연희가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꼭 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연 희.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타 있던 자.
 
바로 서하누리 당신입니다.
 
그렇지만 왜일까요.
 
한참이 흘러도 희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걸로 마지막일 텐데요.
 
누리는 첫 번째 버스에서 조우한 직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희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보입니다.
 
동시에 슬퍼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딘지 홀가분해 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펼친 우산을 누리에게로 기울입니다.
 
희의 어꺠가 젖어듭니다.
 
그제야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만 정장.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누리에게로 기울인 채 처연히 떨어지는 비를 맞던 연희는 나지막이 입술을 엽니다.
 
눈물 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연 희:그대에게
좋은 밤이에요, 내사랑.
 
그렇게 속삭인 연희는 문득 누리에게로 손을 내밉니다.
 
사방은 어느새 컴컴해져 있습니다.
 
연 희:목적지가 바뀌었어요.
제가 처음에 했던 말을 기억하세요?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가야하는 목적지까지 내가 바래다주겠다고 했잖아요.
건너편 정류장으로 넘어가요
네게 전해야 할 말이 있어요.
손, 잡아주실래요? (당신에게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서하누리:... (왜? 대체 왜, 깜박 깜박, 이유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너를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립니다. 건너편 정류장, 내게 해야 할 말, 당신의 손은,) ...무슨, 말인데요..?
(잡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 당신의 손인 걸요. 어떤 말이든, 어떤 곳이든, 너를 보는 내 시선은 한결같고 언제나 너만을 바라볼텐데.)
 
연 희:(네 손을 잡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즐거운 듯한 어투.) 가면서 전해드릴게요.
 
두 사람은 천천히 반대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차가울까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 지금 당신이 집중해야 할 존재는 그저 연희 단 한 사람뿐이니까요.
 
연 희:음. 어디서부터 말할까요. ...1년 전 오늘, 너와 내가 함께 타고 있던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과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너를 끌어안고, 죽었죠. 이어서 너는 병원으로 곧장 옮겨졌지만... 1년째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에요.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너의 영혼은 삶의 경계를 벗어났어요. 그런 네 영혼을 노리는 존재가 있었고... 나는 그런 너의 영혼을 안전하게 안식으로 이끌기 위해 신적인 존재와 계약했어요.
그 계약을 통해 너의 영혼을 안전한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과 힘을 얻게 되었어요. 그게 이 버스들이죠.
제가 각 정류장에서 한 번씩 너의 이름을 불렀던 것은, 너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 불렀어요.
하지만 이제는 네 이름을 더 부르지 않아도 되는걸요.
 
연 희:중간에 우리를 도와준 신이 있어요. 다행히 널 다시 삶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되었단 말이에요.
네가 들고 있는 국화는 네 생명 그 자체에요. 곧 이 정류장에 너를 삶으로 돌려보낼 버스가 도착할 거고, 꽃다발을 들고 버스에 오르면, 넌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거죠.
 
연희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두 사람은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연희에게서 모든 진상을 듣게 된 누리는 숨이 막혀옵니다.
 
억만 겁의 슬픔 탓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연희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기뻐 보여서였을까요.
 
서하누리, 산치체크.
 
서하누리:
SAN Roll
기준치: 38/19/7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하누리 이성 -1
 
문득 연희의 어깨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전광판 메시지와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연 희:이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에요.
내 이름을 불러줘요, 내 사랑.
 
이제는 반대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당신이 연희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서하누리.
 
서하누리:
영원히 당신의 늪에 빠져 살아도 괜찮은 거죠? 당신의 곁에 있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여러 번 참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지막 욕심은 부리게 해주세요, 난 영원히 당신의 아래에서 살아갈 거예요.
당신이 이어진 생명, 되돌아가게 도와준 이 목숨, 당신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데에 쓸 거예요.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줘요,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미련이라지만, 나는 그럼에도 사랑할 사람이 당신밖에 없거든요.
나는 희를 잊을 수 있을 리 없고, 두 번이나 구원받은 목숨이니까.. 희를 위해 살게요. 그 정도는 용서해주실 거죠?
죽을 것 같을 만큼 힘들 때도 당신이 있어야 견딜 수 있는 게 내 삶이거든요.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구원받는 입장이네요. 언젠가,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서하누리:그 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칠게요. 희야. 연 희.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요.
 
-
 
연 희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연 희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 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인 겁니다.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가 한 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0711.
 
버스의 출입구가 열리면 누리는 흠뻑 젖은 다리에 힘을 실어 그 위에 승차합니다.
 
누리가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의 문이 닫힙
 
연 희:니다.
 
당신은 급하게 뒷좌석으로 내달립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든 채 당신을 올려다보는 연희와 두 눈을 마주합니다.
 
연 희:살아서, 죽은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세요. 가서 병원도 들르고, 보란듯이 미련을 버리고 잘 살아가세요.
밥도 잘 챙겨드시고, 옷도 계절 별로 잘 입고 다니셔야해요. 잠도 잘 맞춰서 주무시고요.
이제부터는, 제가 바래다 줄 수 없는 길이니까요.
함께하는 시간보다, 따로 있을 시간이 더 길어질, 미래로의 시간이니까요.
저 없이도 잘 지내주셔야해요.
안녕, 사랑했던 이
 
연 희:안녕, 사랑했어요. 다시 볼 그 때까지.
 
그렇게 속삭이는 연희에게 무어라고 답을 건네기도 전에 버스는 움직입니다.
 
수몰되는 세계에서,
 
수몰될 듯 슬프기만 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서하누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버스 안.
 
이 주체 못 할 슬픔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이제 내게 더는 당신이 없다는데,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앞으로 억겁 같은 하루를 견뎌내야만 하는데...
 
이 슬픔을 어떻게 씻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넘쳐흐르는 슬픔에 턱 끝에 맺힌 눈물을 훔쳐냅니다.
 
뺨 위로 번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냅니다.
 
입술 바깥으로 침잠되어있던 고통이 터집니다.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다시 만나기 전의 수많은 시간을 버텨내며
 
아주 많이,
 
당신이 보고 싶을 겁니다.
 
눈물에 흠뻑 젖어든 소매는 하얗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환자복 차림입니다.
 
무겁게 내려간 고개에,
 
품에 안겨있던 국화 꽃잎 위로 시선이 떨어집니다.
 
까맣게 시들어있던 국화는 물기를 머금어 생생합니다.
 
다시 피어난 겁니다.
 
나의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이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국화는,
 
붉습니다.
 
이제 더는 흰 국화가 아닌 붉은 국화예요.
 
서하누리.
 
떠올랐나요?
 
붉은 국화의 꽃말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은 품 한가득 국화꽃다발을 끌어안습니다.
 
그 위에 호흡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냅니다.
 
삐. 삐. 삐.
 
익숙하고도 적막한 빗소리,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기계음에 눈꺼풀을 떠올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천장.
 
소독약 냄새.
 
밝은 빛.
 
아,
 
바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희가 인도해준 나의 목적지입니다.
 
놀란 간호사의 목소리,
 
커튼을 치고 급히 들어서는 의사의 얼굴.
 
난잡하게 흩어지는 내 삶의 빛.
 
네가 없는 너의 기일.
 
내가 살아 돌아온 비 내리는 밤의 병실.
 
눈가에 고여 있는 뜨거운 물기 탓에 눈이 아픕니다.
 
가슴에 담기 벅차고,
 
감은 눈 아래 떠올리기 힘들고,
 
그 삶이 짧았기에 찬란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안녕, 연희.
 
한 점 떨림 없이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는 것.
 
-
 
그것이 내 사랑의 정의였다.
 
-
 
end 1
 
<서하누리 생환, 연희 로스트.>